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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진심을 담는 혈중 알코올 농도 가득한 헤비메탈 밴드들
2023-02-21T17:02:05+09:00

코피클라니 가라사대, ‘마셔봐 존나 개쩔어’.

2022년 8월

달뜬 여름밤의 술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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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마약’, ‘여자’, ‘술’을 가리켜 록스타의 3대 덕목으로 꼽곤 한다. 물론 절반은 우스갯소리에 가깝지만, 록과 헤비메탈이 대중적으로 큰 지지를 얻었던 1980년대로 시계추를 돌려보면 결코 순수한 농담으로 그치지만은 않는다. 특히 머틀리크루(Motley Crue)를 위시한 LA 기반의 수많은 헤어메탈 밴드에게 이 3대 요소는 거의 일상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친숙한 존재였다.

이를 확인사살 시켜 주는 넷플릭스 영화 <더 더트>가 있다. 머틀리크루의 결성과 전성기, 몰락, 그리고 재결성까지 그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더 더트>는 당대 밴드들의 경악스러운 실제 사건들을 단 1%의 과장 없이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들의 기행에는 앞서 말한 약물과 여자, 그리고 언제나 술이 함께 했다.

허나 아무리 헤비메탈 덕후인 필자도 영화를 보면서 그 이야기에 깊게 스며들진 못했다. 일단 시대 상황이 바뀌었고, 아마도 당시에는 그저 악동의 이미지로 비추어지던 이들의 기행이 지금 시점에서는 엄연한 범죄 행위로 다소 거부감이 든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또한, 그루피와의 난교부터 마약에 취해 온갖 사고를 치는 이들의 모습은 아무래도 유교의 나라(?)에서 태어난 필자에게는 무언가 부담스러운 소재이기도 했다. 소위 이 ‘록스타의 3대 덕목’ 중에서 합법적인 범주에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크게 부끄럽지 않은 ‘술’이 그나마 내가 향유할 수 있는 유쾌한 소재였다. 사실 헤비메탈을 듣기 시작한 10대 시절부터 나에겐 ‘록커라면 당연히 술을 마셔야지’라는 스테레오타입의 전제가 항상 깔려있었는데, 그래서 ‘술’이라는 포인트는 내가 <더 더트>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온전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매개체이기도 했다.

술에 진심을 담는 포크메탈

이번에는 시계추를 조금만 더 현대로 당겨보자. 오늘날 헤비메탈의 서브 카테고리에서 2000년대 이후 비교적 신에 굵직한 줄기로 대두된 장르가 하나 있다. 바로 포크메탈이다. 물론 이들 음악의 사운드 성향은 기본적으로 -과거 국내에서는 소위 멜로딕 스피드 메탈이라는 용어로 통칭되던- 유러피언 파워메탈에 근간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세부 디테일로 들어가면 포크메탈만의 확연한 특징이 도드라진다.

대표적인 포인트는 바로 민속음악이다. 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민속음악을 결합해 중세 유럽의 (다소 흥겨운) 느낌을 물씬 풍기는 송라이팅을 들려주는 것이 대체로 이 장르의 트레이드마크다. 이를 위해 밴드들은 전통적인 헤비메탈의 악기 구성인 전자 기타, 베이스, 드럼 외에도 아코디언이나 바이올린 같은 고전적인 악기를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배치하곤 한다.

물론 이 장르의 음악이 다루는 내용, 즉, 가사 측면에도 선명한 정체성이 있다. 이들이 주로 노래하는 테마는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한때 유럽의 패권을 주름잡았던 바이킹 혹은 해적에 대한 찬가, 중세 유럽의 목가적인 풍경, 다양하게 전승되어오는 북유럽 신화와 설화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술’에 대한 예찬이 있다.

여러 가지 테마 중에서도 술은 이 포크메탈 밴드들에게 일종의 교집합 같은 소재다. 북유럽 신화를 다루는 본격 진지충 모드의 밴드도, 해적질 이야기로 앞뒤 없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하는 밴드도 항상 술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시켰다. 알코올에 대한 찬가가 앨범에 꼭 한두 곡씩 의무처럼 실리는 모양새를을 보면 마치 밴드들끼리 암묵적인 합의라도 한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만큼 (북)유럽의 포크메탈 밴드들은 술에 대해 진심을 담아내곤 했다.

코피클라니, 민속음악 듀오로 시작한 진짜 근본 있는 밴드

술, 그리고 포크메탈이라는 카테고리를 논할 때 상당수의 헤비메탈 마니아는 십중팔구 이 코피클라니(Korpiklaani)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포크메탈 신에서도 밴드의 긴 역사부터 위상까지 그 자체로 지위를 공고히 다진 밴드지만, 독특하게도 국내에서 의외의 포인트(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뒤에서 언급하겠지만)로 인지도를 획득한 전례가 있는 밴드이기도 하다.

코피클라니의 전신은 샤머아니 듀오(Shamaani Duo)라는 핀란드 민속음악 듀오였다. 결성 당시의 멤버는 마렌 아이키오라는 퍼커션 연주자, 그리고 현재까지도 코피클라니의 프런트맨으로 남아 보컬과 기타를 병행하는 욘네 얘르벨래의 2인조였다. 보통의 포크메탈 밴드들이 애초에 메탈밴드를 근간으로 출발해서 그 위에 민속음악과 악기로 양념을 뿌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코피클라니는 정반대의 케이스다. 애초에 민속음악으로 시작했다가 메탈밴드로 전환해 포크메탈의 아이콘이 된, 어찌 보면 진짜 근본 있는 밴드인 셈이다.

1990년대 활동 당시 이 듀오의 테마는 주로 핀란드의 대자연, 그중에서도 숲 이야기와 함께 다양한 북유럽 설화를 다루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이 테마는 포크메탈 밴드가 된 현재에도 음악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던 이 듀오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97년이었다. 이름을 샤먼(Shaman)으로 바꾸고, 음악에는 마치 과격한 익스트림 메탈에나 들어갈 법한 그로울링 보컬도 첨가하기 시작하면서 변화를 꾀했다. 1999년에는 아예 메탈 밴드의 포맷으로 샤먼의 첫 정규앨범을 발표하였으며, 2003년에 코피클라니로 개명하고 멤버 구성과 음악적인 스타일을 현재의 모습으로 일신하면서 결국 오늘날까지 팀을 이어오고 있다.

코피클라니로 개명한 뒤 발표한 첫 풀렝스 앨범은 2003년작인 <Spirit of the Forest>다. 앨범 타이틀에서부터 드러나듯, 음악은 시종일관 이들의 핵심 테마 중 하나인 숲과 대자연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트랙의 제목은 다름 아닌 ‘Wooden Pints’. 맥주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 순록 고기를 먹고, 밤새도록 싸우고 춤추며 파티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밴드는 첫 단추부터 알코올과 파티로 점철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밴드의 한결같은 알코올 찬가는 계속됐다. 두 번째 앨범인 <Voice of Wilderness>에서는 ‘Beer Beer’가 큰 사랑을 받았고, 뒤이은 <Tales Along This Road>에서는 ‘Happy Little Boozer’로 또다시 주정뱅이에 대한 예찬을 이어갔다. 토속적인 멜로디가 상당히 진하게 남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이때부터 리듬 템포가 조금 더 빨라지며 인상적인 훅을 남겼다.

보드카로 포크메탈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여섯 번째 풀렝스인 2009년 작 <Karkelo>는 결코 빠질 수 없는 노른자위같은 앨범이다. 현재도 밴드의 이름값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가히 이들의 시그니처송이라고 할 수 있는 싱글 ‘Vodka’가 바로 본작에 수록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게도, 이 곡의 영향력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과거 이들의 뮤직비디오에 한 국내 인터넷 유저가 초월번역 수준의 코믹한 한글 가사 자막을 달았는데, 이 영상이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재미있는 개그 소재가 되어 퍼진 덕분에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할 수 있었다.

사실 이전까지 코피클라니의 앨범은 단 한 차례도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유머 콘텐츠로 히트한 ‘Vodka’의 인기 덕분이 이 곡이 수록된 6집 <Karkelo>가 결국 ‘갑툭튀’로 CD 라이센스 발매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이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유튜브에서 4천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Vodka’의 공식 뮤직비디오에서 한국어 자막 옵션을 설정하면, 과거 초월번역 버전의 한글자막이 뜨면서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싱글 ‘Vodka’에 힘입어 <Karkelo>가 성공을 거뒀다면, <Ukon Wacka>는 앨범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리며 차트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둔 작품이었다. 전작의 ‘Vodka’를 잇는 ‘Tequila’(실제로 이 앨범 발표 전에 밴드는 남미 투어를 돌았다)가 증류주 예찬 시리즈로 그 명맥을 이었고, ‘A Pint of Beer’로 맥주에 대한 애정이 여전함을 과시했다. 이 앨범은 자국인 핀란드 차트에서 9위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0위권 안에 진입했으며,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독일에서도 <Karkelo> 때보다 더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코피클라니는 지금도 포크메탈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로 평가받으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바로 지난해에도 정규작 <Jylhä>를 발표하며 여전히 정력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코피클라니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정규앨범만 따져봐도 이미 11장에 달하고, 1993년 결성했던 샤머아니 듀오부터 계산하면 어느덧 30년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한 유산을 남긴 밴드가 되었다.

해적, , 그리고 알레스톰

하지만 꼭 포크메탈이라고 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만 밴드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해적을 테마로 하는 스코틀랜드 퍼스 출신의 알레스톰(Alestorm) 역시 알코올 하면 빠질 수 없는 포크메탈의 강자다. 2007년에 결성해 이듬해인 2008년 <Captain Morgan’s Revenge>로 메탈 신에 데뷔했는데, 밴드는 자신들의 음악을 가리켜 해적 메탈(Pirates Metal)로 표현하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알레스톰은 기본적으로 ‘해적’이라는 아주 확실한 콘셉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알코올 딱지가 붙어버린 이유는 바로 해적 하면 그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럼’이라는 술이 있기 때문이다. 해적이 접하기 가장 쉬웠던 원료가 바로 사탕수수였고, 이 때문에 럼은 해적의 상징과도 같은 술이 됐다. 해적을 자청하는 알레스톰이 당연히 이 좋은 소재를 마다할리 없었다.

밴드는 2011년작인 <Back Through Time>에서 ‘Rum’이라는 직관적인 타이틀의 곡으로 럼에 대한 지독한 애정을 표현한다. ‘난 위스키나 진은 필요 없어, 오로지 단 하나만이 날 취하게 하지, 럼은 힘이자 열쇠이며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지니(I don’t want whiskey or gin, There’s only one drink that gets me so drunk, Rum is the power, Rum is the key, Rum is the thing that will set us free!)’ 같은 노랫말은 럼에 대한 지독한 집착과 사랑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사실 알레스톰의 경우 어느 정도는 자기복제 같은 원패턴의 사운드 전개로 호불호가 갈리는 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캐치하고 신나는 멜로디 전개, 계산 없이 몰아치는 시원한 리듬 패턴과 기본 이상은 뽑아내 주는 준수한 연주력으로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에서만큼은 최대의 능력치를 끌어낼 줄 아는 밴드다. 그리고 이 요소는 기본적으로 포크메탈이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주정뱅이 메탈 헤드에게 최고의 알코올 찬가로 불리는 ‘Drink’가 수록된 <Sunset on the Golden Age>는 밴드가 만들어낸 웰메이드 앨범이다. 대양으로 나아가는 고양감에 흥겨움을 흠뻑 끼얹어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제대로 연출한다. 이들이 그렇게나 강조하는 해적 메탈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필청을 권하는 명반이다.

참고로 밴드는 지난 6월에도 <Seventh Rum of a Seventh Rum>이라는 타이틀로 정규 7집을 발표했다. 필자가 구태의연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제목에서 보다시피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거창한 미사여구로 럼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은 앨범을 만들었다. 이 앨범 역시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포크메탈만 있는 건 아니다

헤비메탈은 그 장르적 –반항의 음악이자 때로는 방탕한 음악이기도 한- 이미지 덕분에 예로부터 알코올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이어온 음악이다. 당연히 비교적 현대에 등장한 포크메탈만이 술에 대한 찬가를 부르지는 않았을 터. 사실 이 분야에서라면 조금 더 고전적인 고참 밴드를 소환해야 한다. 바로 저먼 스래시 메탈의 숨은 강자, 탱커드(Tankard)다.

탱커드는 198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결성된 스래쉬 메탈 밴드다. 1980년대에는 물론 미국 베이에어리어 지역을 위시한 스래쉬 메탈 밴드 붐이 강력했지만, 이 독일에서도 전세계적인 스래쉬 메탈 밴드가 여럿 탄생했다. 그중에서도 탱커드는 비교적 초창기부터 활동한 밴드였는데, 팀 네이밍에서부터 이들은 콘셉트를 명확히 규정짓는다. 손잡이가 달린 원기둥 형태의 –주로 맥주를 담는- 잔을 가리키는 명칭이 바로 ‘Tankard’로, 이들은 술에서 모든 음악적 콘셉트와 가사를 얻어 표현한다.

실제로 밴드는 데뷔 전 발표한 2장의 데모 앨범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타이틀은 바로 <Alcoholic Metal>이었다. 말 그대로 자신들의 음악을 알코올 메탈로 규정한 셈이다. 1986년에 발매된 이들의 첫 풀렝스 앨범인 <Zombie Attack> 역시 혈중 알코올 농도 충만한 넘버로 가득 차 있는 데뷔작이었다. ‘Alcohol’이라는 직관적인 타이틀의 곡이 이를 상징한다.

또한 본작에 수록된 여섯 번째 트랙 ‘(Empty) Tankard’도 빠질 수 없다. ‘우리는 빌어먹을 맥주를, 위스키를 마시고 싶어, 간이 박살이 나더라도 죽을 때까지 계속 마실 거야(We want to drink some fucking beer, We want to drink some whiskey, Liver is broken down so bloody hard I keep on drinking until I drop)’라며 질러대는 이들의 일갈은 거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다. 참고로 이 곡은 현재까지도 탱커드의 공연에서 항상 오프닝을 장식하는 밴드의 대표곡이자 그룹송으로 지금도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탱커드는 동시대의 여타 스래쉬 메탈 밴드들과는 확실히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알코올에 만취한 듯한 리듬 전개는 어지러우면서도 스트레이트함을 잃지 않았고, 무조건 과격한 것이 아닌 익살스럽고 흥겨운 포인트의 멜로디를 귀신 같이 캐치해내곤 했다.

하지만 강한 개성과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탱커드는 동시대의 다른 저먼 스래쉬 메탈 밴드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소위 저먼 3대 스래쉬로 군림하며 화려한 커리어를 이어온 크리에이터(Kreator), 소돔(Sodom), 디스트럭션(Destruction)과 비교하면 –물론 현대에 와서는 여기에 탱커드를 포함시켜 ‘Big Teutonic 4’로 지칭하며 각종 협업을 하기도 했지만- 그 영광은 다소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신념을 한결같이 굽히지 않았다. 지난 2014년에는 <R.I.B(Rest In Beer)>라는 타이틀로 여전한 맥주 사랑을 이어갔으며, 오는 9월에는 통산 17번째 정규앨범인 <Pavlov’s Dawgs>를 발표한다. 마침 올해는 탱커드 결성 40주년이 되는 해다. 탱커드야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문장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산증인이 아닐까.

2022년 8월

달뜬 여름밤의 술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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