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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이란 말은 어딘지 따뜻한 구석이 있다. 작고, 소담스럽고, 숨을 몰아쉬며 오르지 않아도 너른 어깨를 내어줄 것 같다. 한성대입구역에 위치한 ‘공간 뒷동산’에 들어서면 꼭 그런 마음이 든다. 그곳엔 나무의 따뜻함, 모난 곳 없이 끝과 끝으로 이어지는 곡선, 그리고 직접 빚은 쌀 술과 단단한 대지 위에서 자라난 제철 안주가 있다. ‘공간 뒷동산’ 송대영 대표는 절기의 마디마디에 서서 계절과 나란히 걷는 듯 보였다. 이렇게 우리에게 가장 건강하고 빛나는 한때를 잔과 접시에 내어주기 위해, 그런 마음을 나누기 위해.
일단 ‘공간 뒷동산’을 처음 접하신 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쌀 술을 직접 빚고, 그것과 어울리는 음식들도 같이 판매하고 있어요. 또 분위기에 맞는 음악도 직접 선곡해 들려드려요. 주로 동아시아권에서 쌀 술을 즐겨 마시는데 이런 요소들을 고려해 동아시아 기반 음악, 번안곡 들을 주로 선곡해 틀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술과 음식뿐만 아니라 ‘공간 뒷동산’ 하면 음악에 대한 얘기가 많이 언급되더라고요. LP로 음악을 직접 틀어주시기도 하고요.
사운드 엔지니어 쪽을 전공했어요. 기본적으로 제 마인드가 ‘배운 게 있으면 활용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기도 하고, 음악에 대해 보통보다는 이해의 폭이 조금 더 넓으니까 공간을 구성할 때 음악이라는 요소를 살리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음악을 좋아해요. 음식 서빙도 하고 되게 바쁜 순간에는 제가 일일이 틀어드릴 수는 없지만, 여유가 있으면 부러 제가 선곡을 하는 편이에요. 개인적인 음악 취향은 1세대 한국 재즈 플레이어 음악, 최근에는 7~80년대 인도네시아 밴드 음악들을 많이 들어요. 하지만 음반을 파는 곳이 많이 없고 정보를 얻기에도 쉽지는 않아 을지로 ‘우주만물’ 운영 기획자 박다함 씨에게 주로 정보를 받곤 해요. 디깅도 일인데 다함 씨는 그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시니까 조언을 구하고 있습니다.
밴드를 초대해 ‘오늘은 노래 동산’ 같은 공연을 기획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시겠네요.
물론 이런 이벤트들이 수입이나 경제적인 것에 아주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그래도 재밌는 걸 시도하고 싶고, 그런 시도를 좋아해요. 그냥 조용하게 술을 드시러 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도 하고, 또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자주 열기 보다 비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공간을 보고 나무가 주는 따뜻함, 천장, 테이블 곡선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길종상가’ 디자이너셨다는 것을 알고 수긍이 되더라고요.
지금도 디자인 쪽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길종상가’에서 오래 활동하다가 최근에는 박길종 씨가 길종상가를 전담하고, 저와 길종 씨 그리고 다른 팀원과 윈도우 작업 같은 상업적인 일들을 해요.
이 공간은 물결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동산의 능선을 표현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아무래도 술집이니까 모서리가 없으면 훨씬 덜 위험할 거 같더라고요. 저에게는 실용적인 건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이런 요소들을 고려했습니다.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저희가 초창기부터 이 소재를 많이 다뤄 나무의 물성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기도 했고요.
또 잔, 식기 등은 웬만하면 다 만들어서 쓰려고 해요. 술을 만들다 알게 된 유승협 작가와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해 보고 있어요. 손님들에게 내어드리는 이런 식기들도 공간 구성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오신 분들도 재밌어하시는 게 보여요. 실용적인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식기가 효율적이진 않을 수 있어요. 다른 업장에서는 큰 대야에 쏟아 넣고 우르르 설거지하는데 이건 하나하나 씻어줘야 하거든요. 그래도 디테일이 주는 재미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최종 전공은 음악을 하셨고, 또 디자인 분야에 몸 담으셨다가 갑자기 술을 빚게 되셨는지 더 궁금해지네요. 왜 하필 쌀 술인지도요.
디자인은 보통 혼자서 일을 하잖아요. 오년 차 정도 됐을 때 맨날 집에서만 일하고 누굴 만나지도 못하고 마감에 늘 쫓기는 생활을 했던 거 같아요. 몸쓰는 것도 좋아하는 편인데 손으로 뭔가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게 없을까 생각하던 시점에 마침 전통주에 한해 온라인 주문이 가능하게 됐어요. 원래 술을 좋아하기도 했고 호기심이 생겨서 쌀 술을 하나씩 사 먹어 보다가 몇 백 종류를 접하게 됐어요. 자연스레 내가 직접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혼자도 공부하고 온라인으로 배우고, 조금 더 교류 할 필요성이 느껴져 학원에도 다녔어요. 제가 빚은 술들을 마셔본 이들의 반응들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서 무모하긴 하지만 조금씩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쌀 술의 매력이 뭘까요.
일제 강점기 시대에 맥이 끊기긴 했지만,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있었잖아요. 집마다 술 빚는 맛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요.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매력을 느낀 부분 중 하나에요. 쌀 술은 다른 첨가제를 넣지 않고도 쌀을 어떻게 발효시키느냐에 따라 과일 맛도, 초콜릿 맛도 나요. 쌀이 있으면 만들 수 있으니 접근성도 좋고요.
보조제와 첨가제를 넣지 않고, 무언가를 수치화시켜서 그 결괏값의 맛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고생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온도가 높으면 과발효가 되고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니까 사서 고생을 하고 있죠(웃음).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고, 데이터를 쌓으면서 이 공간 안에서 최적화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시간을 지나왔어요. 어느 정도는 안정화됐다고 생각해 병입해서 판매도 하고 있습니다.
막걸리 만드는 방법 같은 것을 찾아봤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쌀을 씻는 과정이었어요. 술을 빚고 기다리는 시간도 의미 있지만, 무언가를 깨끗하게 하는 반복적인 행위에 숭고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거 같아요.
쌀을 씻는 건 단백질 제거하고 전분만 취하는 과정이에요. 여러 번 씻으면서 단백질을 빼는 거죠. 상업화된 곳들은 쌀을 갈기도 하는데 저희는 직접 씻고 있어요. 백번 씻는다고 해서 ‘백세’라고 하는데 사실 오백 번은 씻는 거 같아요. 또 이것 말고도 전처리 과정이 매우 많아요. 가루를 만들어 뭉치지 않게 붓고, 젓는 등 세세한 스킬들이 필요해요. 반복적이기도 하지만 기술도 요하고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 진짜 많죠. 저희는 공장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손수 만들었듯 술도 그렇게 빚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조금 순진했달까. ‘맛있어져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했는데(웃음), 요즘에는 업장 운영이라던가 다른 아이디어들을 생각하는 거 같아요.
쌀 술에 관심이 생기셨으면 양조장을 내셨어도 되는데 왜 이런 주점을 차리게 되신 건가요.
제가 공간 구성 디자인 쪽 일을 하니까 자연스레 ‘공간 운영’에 대해 매력을 느꼈어요. 양조장보다는 시음을 할 수 있는 곳, 거기에서 더 나가서 간단한 음식도 같이 준비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일이 커진 거죠.
원래 음식에 조예가 있으셨나 봐요.
직접 음식을 해 먹는 편이에요. 요리 관련 자격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강원도, 충청도 쪽이 제 고향인데 그쪽 지역의 음식을 베이스로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어요. 어머니와 연구를 많이 하면서 토속 음식을 살짝 비틀어 메인 메뉴들을 구성해요. 고조리서를 참고하며 술 빚는 법을 연구하는데 조리서에 보통 음식과 술이 같이 있더라고요. 한국 술 문화는 외국처럼 바에서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음식을 곁들이잖아요. 거기에 실려 있는 음식 중 술맛을 돋울 수 있는 메뉴를 참고해 구성해보고 싶었어요.
장도 직접 담근 것을 사용해요. 물론 장 같은 것들은 사 먹으면 간편하죠. 그런데 저는 예전부터 어머니께서 직접 담근 것들로 음식을 해주셨고 거기에 길이 들여져 있고 그 맛을 기억해요. 시판 고추장 같은 건 제 입맛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 공간에 계절이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철 재료로 계절주를 만드시고, 또 철에 따라 안주 메뉴가 달라지니까요.
소개해드리고 싶었어요. 여러 계절 술 레시피들을 하나씩 직접 만들어 보고, 그게 맛이 있든 없든 그 자체로 재미라고 생각해요. 생소할 수 있지만, 이런 맛이 나는구나 알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손님들께 계속해서 선보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쌀 술은 이럴 때, 이렇게 먹으면 좋다’라는 게 있으신가요.
일 끝나고 저희 술도 물론 좋고, ‘꽃잠’이라는 막걸리를 마실 때가 있어요. 맥주 같은 청량감도 가지고 있거든요. 맥주는 가볍고 끝에 맺히는 여운이 많지 않은데 이건 새콤달콤하면서 탄산 느낌이 세서 바쁘게 일하고 마감하고 난 뒤 마시면 좋더라고요. 바로 내린 독한 원주 같은 경우에는 진득하게 생각하면서 마실 때 찾게 돼요. 청주는 개인적으로 단맛은 많이 없지만, 산미가 느껴지는 종류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것 같이 낮에 여유롭게, 그리고 얼음 넣어 차갑게 마시는 것도 썩 훌륭해요.
개인적으로 막걸리에 나물 안주를 곁들이는 걸 좋아해요. 막걸리는 쌀로 만든 거니까 쌀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 나물과 잘 어울리기도 하고 너무 무겁지 않게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서요. 부침도 좋아합니다.
가끔 선물 같은 이벤트를 준비해주는 걸 보고 이 공간에 오는 분들께 무언가를 자꾸 드리고 싶어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 느껴졌어요.
1주년이 공교롭게 성탄절이었어요. 저도 조그맣게 성의를 보이고 싶었어요. 한창 코로나가 심했을 시기라 손 닦을 일이 많으실 거 같아서 손수건에 로고를 새겨서 드렸어요. 물론 자주 챙기진 못하지만 가능하면 조금씩 이런 마음을 드리려고 노력해요.
그럼 오시는 분들이 이 공간을 어떻게 느끼시길 바라세요.
술이라는 게 기호식품이기도 하고 각자 선호도가 매우 다를 거라 무언가를 바란다기보다 그냥 편안하고 재미있게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편안함’을 염두하고 준비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저는 음식점에서 물수건을 받으면 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물수건을 준비해 드려요. 손님의 입장에서 편의성을 많이 고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한 지금까지는 유통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많은 분이 오셔서 자기만의 공간에서 맛보실 수 있게끔 준비할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대표님의 공간에서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술 빚는 것 말고 다른 취미가 있으신지.
화요일이 휴무인데 보통 이날은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요. 그런데도 예약도 받고, 문의도 받고, 응대도 하게 되더라고요. 디자인 일과 뒷동산에서 평일에는 정신없이 지내다가 화요일만큼은 오프로 지내자는 생각이에요. 사실 취미가 딱히 없어요. 가끔 영화 보고. 다른 걸 하고 싶다기보다 그냥 쉬고 싶어요.
상호는 뒷동산으로 지으셨지만, 실제 산을 타는 건 좋아하시나요.
바라보는 거 좋아해요. 올라가는 거 안 좋아하고(웃음).
임볼든 인터뷰 마지막 공식 질문인데요, 대표님이 매일 가지고 다니는 EDC(Every Day Carry) 아이템을 소개해 주세요.
집이 가깝고, 집과 가게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무언가 필요한 일이 없어요(웃음). 제가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인데 이 열쇠 고리는 통영에서 구입한 거예요. 누빔이 유명하다고 하더라고요. 이 크기면 존재감 때문에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이폰 SE, 매일 쓰는 안경, 가끔 쌀주머니 정도 들고 다닙니다.
<공간 뒷동산>
주소 서울 성북구 삼선교로2길
운영시간 매일 17:00 ~ 24 : 00 / 화요일 휴무
문의 0507-1387-3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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