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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23] 사소함이 쌓여 변화를 이루는 과정, 브랜드의 성장 이야기
2022. 2. 4.
[뉴스레터 #22] 봄이 오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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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24.
[뉴스레터 #19] 님, 메리 크리스마스🎅
2021. 12. 10.
[뉴스레터 #18] 임볼든에서 연말 선물에 대한 힌트를 얻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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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7] 브랜드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빛나는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며
2021. 11. 12.
[뉴스레터 #16] 겨울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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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13] 임볼든 뉴스레터? 선물 상자를 뜯어보는 것 같은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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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종류와 역사
Guide
빛으로 그리는 예술,
카메라 생기초

카메라 역사부터 보정을 위한
기초 상식까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착 붙는 비유를 통해
더욱 쉽게 지식을 채워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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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를 찍는다는 행위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해 사진이라는 취미에 발을 들여보지 않은 사람이어도 대중매체나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를 접했을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카메라는 어떻게 변형, 발전되어 왔는지 사진기와 사진술의 기술적인 용어를 접하기 전, 준비운동을 하는 기분으로 카메라 역사부터 훑어보자. 

카메라계의 단군 할아버지, 대형 카메라

카메라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의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유래됐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처음 고안해냈고,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더욱 현실감 있게 묘사하기 위한 보조 도구로 사용됐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스틸 컷

모습부터 사뭇 낯선 대형 카메라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카메라의 고조할아버지의 조상님 격 정도쯤은 된다. 카메라를 개인이 보유하는 건 꿈도 못 꿔서 사진을 ‘사진관’에 가야만 찍을 수 있던 7080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 이를테면 한석규, 심은하 주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초원 사진관’을 떠올리면 쉽게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렌즈를 통해 직접 들여다보기 때문에 ‘뷰카메라’라고 부르기도 하고, 접어서 휴대할 수 있는 대형 카메라는 ‘필드 카메라’라고 칭하기도 한다.

대형 카메라가 ‘대형’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진이 기록되는 필름의 사이즈가 크기 때문이다. 대형 포맷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즈는 4×5인치(102×127mm)로 이는 요즘의 풀프레임 카메라(24x36mm)에 비하면 15배나 큰 면적이다. 스마트폰 카메라와 비교하면 200배 정도 더 크다. 대형 카메라가 이렇게 큰 필름을 사용해야 했던 주된 이유는 당시엔 필름 사진을 확대해서 인화하는 기술이 없었고, 신문사에서는 사진을 실으려고 큰 필름을 바로 인화지에 붙여서 1:1 크기로 프린팅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형 카메라는 요즘 카메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동 기능도 전무했다. 또한 렌즈를 통해서 직접 들여다보기 때문에 상의 위아래가 뒤집힌 채로 구도를 잡아야 하며, 대형 카메라는 한 번에 한 장의 필름만 장전할 수 있던 ‘시트 필름’을 사용해 사진을 찍기 전 매우 신중하고 치밀한 계산이 필요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가격, 무거운 무게로 야외 촬영을 진행한다는 건 그야말로 대형 행사였기 때문에 카메라는 필연적으로 작아져야만 했다.

달에 오른 핫셀블라드, 중형 카메라

대형 카메라 다음에 나온 것이 바로 중형 카메라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을 때 들고 간 카메라가 바로 이것. 이 기념비적인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화질, 우수한 내구성과 더불어 대형 카메라보다 더 작으면서도 사용하기에 편리한 카메라가 필요했다.

NASA는 스웨덴 브랜드 핫셀블라드 ‘70mm EDC 카메라’를 선택했다. 이 카메라는 원래 소매용으로 나온 모델을 NASA가 우주 환경에 맞게 개조한 것이다. 통상적인 중형 포맷 롤 필름은 한 통을 넣으면 12장을 찍을 수 있지만 달 착륙에 사용된 카메라는 70mm 영화용 필름을 사용해 한 번 장전했을 때 70장을 촬영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압도적인 크기와 무게 때문에 짐가방과 삼각대가 필수였던 대형 카메라와는 달리 중형 카메라는 나름 컴팩트해 두 손으로 들고 촬영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한 번에 1장 분량만 찍을 수 있었던 대형 카메라와는 달리 중형 카메라는 두루마리 모양으로 돌돌 말려져 있는 ‘롤 필름’이 사용되어 한 번 장전했을 때 여러 장을 찍을 수 있게 된 것도 특징이다.

닐 암스트롱이 사용한 우주용 카메라의 특이한 점은 뷰파인더가 없어 사진이 어떻게 찍힐지 화각을 확인할 수 없어 감으로 촬영해야 했다는 점이다. 이 감각을 익히기 위해 닐 암스트롱은 지구에서 사진 촬영 훈련까지 받았다고 한다.

원조 맛집 라이카, 소형 카메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사용하고 있는 모든 카메라가 이 소형 카메라라는 범주에 속한다. 여러분이 알거나 들어봤을 캐논, 니콘, 소니, 펜탁스, 올림푸스 같은 브랜드들 역시 모두 소형 포맷 카메라를 만드는 제조사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소형 포맷을 창시해낸 시초이자 일명 ‘원조 맛집’은 따로 있는데 바로 ‘라이카’이다.

출처 ‘라이카’ 홈페이지

라이카는 ‘라이츠 카메라’를 줄여 부르는 것으로 창업자인 에른스트 라이츠의 이름에서 따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웨츨러라는 작은 도시의 광학 회사였던 라이카는 당시 수요가 급증하던 과학연구 및 의료용 고품질 현미경을 만들던 현미경 제조 회사로 시작했다. 그 후 천재적인 발명가이자 사진을 사랑했던 오스카 바르낙이라는 인재를 만나게 되면서 ‘소형 포맷 카메라’의 대중화를 끌어낸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위에서 대형 카메라 이야기를 할 때 당시엔 사진을 확대하는 기술이 없어 필름을 바로 인화지에 붙여서 1:1 크기로 프린팅했다고 언급했었는데 바로 그걸 바꾼 사람이 오스카 바르낙이다. 뛰어난 사진가였지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오스카 바르낙은 중형 카메라보다 더 작고 휴대하기 간편한 카메라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바르낙은 카메라에 작은 크기의 필름을 넣어 촬영한 뒤 확대기를 이용해 사진을 크게 인화하는 방식의 35mm 필름 카메라를 고안해냈다.

바르낙이 고른 필름의 사이즈는 영화용으로 쓰이던 18x24mm 필름의 두 배 크기인 36x24mm이다. 그리고 코닥이 이 규격에 맞게 필름을 생산하며 붙인 이름이 ‘135 필름’이다. 이 135 필름은 사진 위아래로 필름을 감기 위한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 부분을 포함한 필름의 전체 높이가 35mm라서 ‘35mm 필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된 지금에 와선 ‘풀 프레임’ 규격이라고 불리고 있다.

라이카는 몇 차례의 프로토타입을 거친 뒤, 1925년 ‘라이카 I’이라는 카메라를 처음으로 대량 생산하여 판매를 시작, 총 60,000대가량 생산하며 큰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고 해서 이 카메라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출처 ‘라이카’ 홈페이지

라이카 I은 우측 사진에 보이는 거리 측정기, 즉 ‘레인지파인더(RF)’를 별도로 카메라 위에 부착하여 거리를 잰 다음, 그렇게 측정한 거리에 맞게 렌즈를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후속작인 라이카 II는 레인지파인더를 카메라 위에 탑재했지만, 사진을 찍을 때 들여다보는 뷰파인더와 초점을 맞출 때 쓰는 레인지파인더가 별도로 존재해 양쪽을 번갈아 가며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을 안고 있었다.

라이카는 이러한 점을 묵과하지 않고 라이카 I 이후의 후속작인 라이카 II, 라이카 III를 통해 성공을 맛보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이 외장형 레인지파인더를 카메라와 한 몸인 것처럼 결합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성장하는 시장에서 물꼬를 이제 막 튼 라이카의 카메라 사업부의 연구와 노력은 하룻밤 사이에 전부 올스톱 된다. 바로 세계 2차대전이 일어났기 때문. 전쟁이라는 안타까운 사건 때문에 라이카는 소형 카메라를 기술적으로 발전시킬 시기를 놓치게 되지만, 역설적으로 라이카의 유산으로 남은 전설적인 사진들은 이 시기에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라이카’ 홈페이지

세계 2차대전을 겪은 뒤 1954년, 라이카는 ‘35mm 카메라의 바이블’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카메라 업계를 뒤집어놓은 역작이자, 라이카의 최대 전성기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카메라인 ‘라이카 M3’를 내놓게 된다.

라이카 M3는 뷰파인더와 레인지파인더가 한 화면으로 합쳐져서 훨씬 간편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모든 카메라 브랜드가 사용하는 렌즈 마운트 방식인 바 요 넷 마운트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전에는 렌즈를 바꿀 때마다 촬영할 때 들여다보는 뷰파인더도 같이 갈아 끼웠어야 했으나, M3는 렌즈의 종류를 인식해서 알맞은 프레임 라인을 그려줘 편리한 촬영을 가능하게 한 것.

스승님을 뛰어넘은 니콘, SLR과 DSLR

라이카가 ‘소형 카메라’라는 카메라의 장르를 새롭게 개척하며 전성기를 찍고 있던 와중, 지구 정반대의 일본에선 언젠가 ‘제 2의 라이카’가 되리라는 다짐을 하며 꿈을 키운 신생 업체가 있었는데, 바로 ‘니콘 광학’이 그들이다.

출처 ‘Wikimedia’

니콘은 초창기에 라이카용 호환 렌즈를 만들며, 라이카와 같은 레인지파인더(RF) 방식의 카메라인 ‘니콘 S’를 만들며 어떻게든 라이카와 경쟁해보려 했지만, 라이카 M3는 너무나 강력한 상대였기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니콘, 캐논, 펜탁스 같은 신생업체들은 라이카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RF 시장이 아닌 ‘SLR’이라는 다른 방식의 카메라를 만드는걸로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SLR은 ‘일안 반사식 카메라(single-lens reflex)’의 줄임말로, ‘일안’은 렌즈가 하나라는 것을 의미하고, ‘반사식’은 카메라 내부에서 거울을 이용해 빛을 반사하여 촬영자에게 뷰파인더를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SLR 방식의 카메라가 처음 발명된건 1860년대였지만, 내부가 복잡해 주류의 선택을 받는 방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적인 걸림돌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물이 오른 일본의 제조업과 맞물려 하나하나씩 해소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1959년, SLR 시대 개막의 신호탄이 터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니콘 F’다. 다른 카메라들은 천으로 만든 셔터막을 사용할 때 니콘 F는 티타늄 소재를 셔터막에 사용했고 아주 튼튼했다. 니콘이 라이카를 따라 RF 카메라를 만들며 얻었던 여러가지 교훈들을 모두 녹여냈으며, RF보다 SLR 방식이 더 우월하다는걸 전문 사진가들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카메라다.  

더 뛰어나다고 꼽을 수 있는 점은 RF 카메라는 사진이 찍히는 렌즈와 촬영자가 들여다보는 뷰파인더 사이에 거리가 있어 시차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데, SLR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이 거울과 프리즘에 반사돼서 바로 촬영자에게 보이는 구조다. 때문에 ‘보이는 대로 찍힌다’는 강점을 가지게 된다 .또한 렌즈로 들어온 빛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초점을 잡는데도 RF보다 편리했다. 

이후 니콘은 ‘전문가용 SLR 카메라의 대명사’로 자리잡으며 수많은 신문사, 잡지사와 기자, 그리고 전문 사진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런 니콘에게도 라이벌이 생기게 되는데 그 회사가 바로 ‘캐논’이다.  

자동 초점(autofocus, AF) 기능이 갓 도입되던 시기에 기술 발전이 더뎌지는 니콘을 보며 캐논은 기회를 노리기 시작한다. 니콘은 수동 초점 카메라였던 니콘 F부터 사용하던 ‘F 마운트’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자동 초점 기능을 넣느라 고전하고 있었지만, 캐논은 자동 초점 시대에 맞춰 새롭게 설계한 전자식 마운트인 ‘EF 마운트’로 깔끔하게 빈 도화지에서 시작했기에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결국 1990년대에 들어서 니콘은 캐논에게 1위 자리를 넘겨주게 되고, 이러한 분위기는 SLR 카메라가 디지털로 전환한 이후의 DSLR(디지털 SLR)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유지된다. 

소니의 화려한 부활, 미러리스 

캐논과 니콘이 피 튀기며 1위 자리를 쟁취하려고 50년의 긴 싸움을 펼치는 동안 ‘만년 찬밥’ 신세를 누리던 회사가 있었다. 처음엔 ‘미놀타’, 한국에 수입될 땐 ‘삼성미놀타’, 인수합병 이후엔 ‘코니카-미놀타’,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니’. 이 회사가 지금까지 거쳐온 이름들을 쭉 나열하기만 해도 이 회사가 순탄치 않은 히스토리를 거쳐왔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미놀타는 수많은 ‘세계 최초’ 타이틀을 보유한 혁신적인 카메라 메이커였다. 캐논과 니콘이 ‘자동 초점’을 화두로 경쟁하고 있을 때 세계 최초 35mm 자동 초점 SLR인 ‘알파(α)’를 개발해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도 미놀타였으니까. 하지만 기술에 집착하는 ‘공돌이’ 집단이었던 미놀타는 안타깝게도 아쉬운 사업적 결정을 몇 번 내리게 되며 슬픈 운명을 맞게 된다.

자동 초점 SLR인 ‘알파(α)’의 핵심과도 같았던 ‘위상차 AF’ 기술은 억울하게도 ‘세계 최초’라는 이유만으로 특허침해 소송을 받게 되어 총 1억 2750만 달러의 배상금을 물어내야만 했고, 이후 35mm 필름을 이을 차세대 ‘APS 필름’ 포맷을 코닥과 함께 내보냈으나 이미 시대는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가던 중이었다. 그렇게 미놀타는 ‘원투펀치’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일본의 다른 광학 제조사인 ‘코니카’와 합병한 뒤, 2006년 카메라 사업부를 소니에 매각하게 된다.

세계 최초 35mm 자동 초점 SLR 카메라 ‘알파(α)

당시엔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카메라 업체가 TV나 워크맨을 만들던 전자제품 업체에 매각된다는 일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초라한 신세를 면치 못했던 미놀타는 소니에 매각된 이후로도 DSLR 시장에서 마땅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소니의 카메라 사업 역시 금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거라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의외로 ‘광학 회사’와 ‘전자제품 회사’의 시너지는 훌륭했다. 소니는 디지털카메라의 심장과도 같은 ‘이미지 센서’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치를 겸비했기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의 콤팩트 카메라엔 이미지 센서로 들어온 빛을 처리해 바로 디스플레이에 출력해주는 ‘라이브 뷰’ 기능이 보편적이었지만, 그 기술을 DSLR에 적용하기엔 아직 무리가 있었다. 정보를 빨리빨리 처리해서 디스플레이에 보여주기엔 이미지 센서 자체의 성능도 모자랐고, 그걸 처리하는 프로세서의 성능도 부족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보급과 발전은 반도체 시장에 도화선을 붙였고, 마침내 소니가 ‘DSLR에서 미러를 없애버린다’는 커다란 결단을 내리게 만든다.

그렇게 DSLR에서 미러를 없앤 ‘미러리스 카메라’가 세상에 등장하게 된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콤팩트 카메라의 편리한 라이브 뷰 기능과 DSLR의 커다란 이미지 센서에서 뿜어져 나온 뛰어난 화질을 접목하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게 되었다. DSLR에 필요한 여러 가지 거울과 프리즘 같은 기계 구조를 탑재하지 않아도 돼 카메라의 소형화까지 이뤄냈다. 처음으로 소니가 발표한 미러리스 카메라는 사진 입문자를 위한 ‘NEX-3’와 취미 사진가를 위한 ‘NEX-5’다.

출처 ‘소니’ 홈페이지

NEX 시리즈를 처음 선보인 후 3년 뒤, 소니는 세계 최초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인 ‘소니 알파7’ 그리고 형제 모델인 ‘알파7R’과 ‘알파7S’를 출시하게 된다. 알파7 시리즈는 전문 사진가들의 염원이었던 ‘풀프레임 센서’ 그리고 ‘전자식 뷰파인더’를 탑재해 지금까지 미러리스의 단점이라고 지적되었던 부분을 개선한 모습이었다.

초고화소 특화 모델인 알파7R은 일반 모델보다 1.5배 더 높은 3630만 화소 센서를 탑재했고, 이는 당시 풀프레임 카메라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화소 수였다. 영상 촬영 특화 모델은 알파 7S는 촬영 시 감도를 최대 409,600까지 올릴 수 있어 어두운 한밤중이라도 대낮처럼 밝게 촬영하는 일을 가능케 해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미놀타가 소니에 매각될 때까지만 해도 금세 망할 거라는 회의론자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고, 소니는 끊임없는 기술 혁신을 통해 카메라 업계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위대한 비상의 중심에는 미놀타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알파(α)’라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

소프트웨어의 힘, 핸드폰 카메라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볼 카메라는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할지도 모를 ‘스마트폰 카메라’이다. 카메라의 역사는 곧 ‘소형화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대형 카메라는 가지고 나가려면 짐가방이 필요했지만, 중형 카메라는 카메라 백에 넣어서 휴대할 수 있었고, 소형 카메라는 더 작아져서 스트랩을 달아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작아지고, 가벼워지고, 편리해진 카메라의 궁극적인 형태는 ‘따로 챙겨 나오지 않아도 항상 함께하는 카메라’, 즉 스마트폰에 내장되는 형태가 되었다.

출처 ‘애플’ 홈페이지

사실 스마트폰 카메라는 센서 크기에서부터 페널티를 받고 시작한다. 대형 카메라부터 소형 카메라까지 계속해서 판형의 크기를 줄이면서 카메라의 크기도 같이 작아졌는데, 풀프레임보다 작아지게 되면 화질의 손해가 급격하게 커지기 때문이다. 풀프레임이 100년 넘게 사랑받고 있는 데엔 이유가 있는 법.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작은 센서는 어두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자글자글한 노이즈가 많이 끼게 되고, ‘다이나믹 레인지’ 역시 좁아지게 된다. 이는 밝은 부분에 맞춰서 사진을 찍으면 어두운 부분이 까맣게 탄 듯 그을리게 되고, 어두운 부분에 맞춰 사진을 찍으면 밝은 부분이 하얗게 날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이러한 단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쏟은 노력은 바로 ‘소프트웨어’다. 렌즈나 이미지 센서와 같은 카메라 하드웨어는 느릿느릿하게 발전이 이뤄지고 있었지만, 그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두뇌, 즉 프로세서는 해를 거듭할수록 처리 능력이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Apple’ 홈페이지

사진을 한 장 촬영했을 때 노이즈가 낀다면, 여러 장을 연달아 빠르게 촬영한 다음 알고리즘을 통해 노이즈를 제거하는 기술을 이용해 극복했고, 다이나믹 레인지가 좁아 사진의 밝은 부분이 하얗게 그을린다면, 어두운 사진도 찍고 밝은 사진도 찍은 다음 즉석에서 합성하는 방식으로 센서 크기의 한계를 극복해 냈다.

매년 출시되는 제품의 특장점을 어필하기가 어려워진 제조사와 더 이상 디지털카메라를 별도로 구입하지 않고도 항상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소중한 순간을 촬영하고자 하는 이들의 수요가 톱니바퀴처럼 딱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지금의 스마트폰 카메라는 기성 카메라 업체들은 엄두도 못 낼 천문학적인 수준의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고 있으며, 전문 사진기를 위협할 정도로 맹렬하게 성장하고 있는 카메라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