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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모릅니다, 연애
2023-11-24T09:14:47+09:00

연애 후에 남겨진 것들.

2022년 10월

모릅니다,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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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연애 필모그래피를 밝히며 시작한다. 연애 경험 1회, 그래서 소량의 연애 자격지심 있음,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사료되나 운 좋아서(혹은 나빠서) 결혼했음. 고로 ‘연애’라는 키워드를 심층적이고 다각적으로 고찰하는 굉장히 읽을만한 글을 기대했다면,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면 좋겠다. 여러분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아까우므로.

회의 시간, 10월 콘텐츠 주제가 ‘연애’로 정해졌다. 나의 편협한 연애사를 동료들에게 다시 각인시키며 적당히 날로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찰나 불길함이 일었다. 평소 어쭙잖은 연애 지식으로 미혼 직원들에게 사랑 조언질을 해댔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유익까진 모르겠지만 나름 무해한 연애 지침을 찔러 넣어줬다고 생각했다. 청자는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라고 생각했다. 듣는 이도 꽤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편집장님은 늘 찬물을 끼얹었다. 연애도 안 해봤으면서, 나대지 말아주겠니?

그런 모진 대접을 받았으니 이번 달에는 ‘연애도 못 해본 주제’를 온전히 만끽하고 싶었다. 연애 달인들께서 진정성 있는 글들 많이 써보시죠. 여러분이 익히 아시다시피 저는 ‘모릅니다, 연애’ 모드로 펜이나 굴리며 앉아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내 손에는 10월 커버 스토리 꼭지가 쥐어져 있었다. 이토록 중요한 대문 글을 할당받다니, 나는 생각했다. 조롱인가, 희롱인가. 아니 이것이 어른의 농락이구나.

남들에게는 한없이 쉬워 보였던 연애, 나에게는 시작도 과정도 너무 어려웠다. 결혼에 대해서라면 날을 세워 이 제도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이지만, 한번은(?) 해볼 만한 것인지 설파할 자신이 있었으나 나는 ‘연알못’이기에 명쾌한 연애 지침도, 농익은 섹스 칼럼도 쓸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얘기를 끄적이기로 한다. 그렇다면 시작은 가장 긴 세월을 걸어왔던 모태솔로 포지션으로.

‘모태솔로’, 너는 무죄다

단언컨대 지금은 종영한 <개그 콘서트>가 낳은 최고의 아웃풋은 ‘모태솔로’라는 단어다. ‘모태’라는 성스러운 단어와 ‘솔로’가 만나면 이렇게 처절해질 수 있다는 걸, 이 처절함이 호(號)처럼 대학 시절 내내 나의 이름 앞에 자리하게 될지 정말, 정말이지 몰랐다. 영화 <브릿짓 존슨의 일기> 속 러네이 젤위거를 애처롭게 바라봤던 어린 시절의 내가 측은했다. 심지어 콜린 퍼스를 만난 그녀인데.

20살이 되던 해 잘 자라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초딩’ 시절 첫사랑과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는 순수와 멀어진, 기백 넘치게 변한 나를 마주하고 꽤나 실망한 듯 보였다. 오해할까 싶어 미리 말하건대 나, 못생기지 않았다(물론 매우 주관적인 입장에서). 원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그렇게 위로하면 그만이었다. <러브레터> 속 후지이 이츠키처럼 너에 대한 기억은 설원 속에 묻어 버리면 됐다.

대학에 입학했다. 역시, 안 생겼다. 늘 붙어 다니던 대학 동기 모두 ‘모솔’이었다. 물론 우린 남자를 좋아했지만 없어도 함께 먹고, 놀고, 바이킹도 탔다. 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욕정. 야한 시를 쓰는 스터디 ‘All That Jz(올 댓 저질)’ 을 창설했고, 유감없이 분출했다. 우린 아주 수준 높은 저질 시를 썼고, 서로 진지하게 작품의 깊이에 대해 합평했고, 졸업과 동시에 깊은 곳에 묻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물었다. 늘 같은 레파토리, 우린 왜 안 생길까.

물론 연애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가끔 들어오는 소개팅 정도는 나갔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발화점까지 묵묵하게 도달해야 하는 법이다. 난 늘 미지근했고, 낯선 상대가 내 공간 안에 발을 디디려 하면 뒷걸음질 쳤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내 마음을 모른 척했다. 솔직하지 못한 성격과 별 탈 없이 지내는 그러니까 안전하다고 느끼는 현재를 유지하려는 안정 추구형 기질이 발동한 탓일 것이다.

해가 갈수록 주위 사람들은 내 외로움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늘어놨다. 내가 무척 옛날 사람은 아니지만, 그 시절 ‘나 혼자 살아’도 괜찮다는 가족 해체에 관한 담론보다 연애, 결혼이라는 키워드가 더 활발히 소비되고 있던 때였고, 대세에 편승하지 않는 이들에게 찾아오는 낙오자가 된 그 찝찝한 기분을 이따금 느껴야 했다.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들 무리에 가는 것 자체가 불편해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네들은 남자와 온통 연애하는 데 시간을 쓰지만 나는 주체적으로 내 시간을 사용하며 일상을 꾸리고 있다고. 책, 영화, 여행 등 좋아하는 것들을 소비하고 즐기며 나라는 사람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다고 말이다. 내가 나를 안다는 오만함을 품었던 그때, 마음을 헛디뎌 연애를 시작했다.

나도 내가 초면 같아서

소개팅이었다. 딱히 이상형이란 게 없기도 했지만, 분명한 건 이상형은 아니었다. 뭐 하나 특출나게 매력적인 지점은 없었지만, 뭐 하나 모가 난 곳도 없었다. ‘나와 다르게’ 모든 면이 둥글둥글했다. 그래서 좋았다.

“사랑은 무거운 생을 송두리째 들어 올리는 축제의 시간을 만나는 것이다. 상투적이고 지리멸렬한 시간으로부터 전속력으로 도주하는 에너지 같은 것, 세상의 모든 축제는 일시적이고, 얼마간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축제는 그 안에 방탕과 폭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때로 그것은 죽음과 맞먹는 삶의 폭발적인 낭비를 의미한다.” <사랑의 미래>, 이광호

무언가 분명 잘못되고 있었다. 별일 없이 살던 하루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없이 흘렀다. 그래봤자 서푼짜리 감정일 것이라 치부했던 사랑 놀음, 그 속으로 질주했고, 철저히 몰입했다. 부작용은 상당했다. <사랑의 미래> 속 이광호 평론가의 문장처럼 나는 언젠가 끝날 이 시한부 같은 축제에 내 생의 한철을 갈아 넣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무늬를 가진 우리는 서로의 결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고, 자주 싸웠고, 그런데도 자주 행복했다. 일상이 정말 좋고, 정말 싫고 딱 두 가지 노선으로만 구성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이건 중간이 없는 느낌. “연애, 나랑 정말 더럽게 안 맞아. 다시 혼자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많아. 근데 내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지, 가끔은 상대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행동하는지,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헌신적인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어.” 연애 중 친구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함께 ‘모솔’ 시장을 공고히 지켰던 (이제는 세미 연애 달인 정도는 된) 대학 동기도 최근 치열한 사랑을 끝낸 후 총평했다. “나는 연애가 꼭 담배 같아. 이게 얼마나 나에게 유해한지 알지만, 자꾸 피게 되는 것처럼 또 연애를 하게 돼. 심지어 이번 연애는 정말 최악이었지만, 적어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타인을 이해하게 됐어. 너는 가도, 나는 남았달까.”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스틸 컷

인간은 자기중심성에 기인한다. 고로 나는 나와 너무 가까워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바라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사물, 타인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면면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관계 속에서 얻어진 나라는 사람의 정보가 바로 쓸만한 데이터인 셈이다.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의 발작 버튼은 어느 지점인지, 선택의 순간 나는 회피하는지 혹은 들이받는지 등. 부모, 친구 관계보다 더없이 풍부하고 솔직하게 여러 색깔의 감정을 나누는 연애라는 필터를 거치면 더욱 많은 정보가 도출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얻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다음 연애로 나아간다면 적어도 자꾸 미끄러지기만 했던 지난 연애 상대와 적어도 ‘무엇’ 하나는 다른 사람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정답, 그 언저리쯤엔 가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최근 개봉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주인공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가 사랑 앞에서 ‘쌍년’ 됨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을 충분히 잘 알고 있어서일 거다. 그 선택이 상대방과 나를 결국 옳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도.

서론이 길었다. 결론은 이렇다. 이번 달 10월 테마는 ‘연애’라는 얘기다. 연애하기 가장 좋은 계절, 가을이 왔다. 누군가는 시작을 주저하고, 어떤 이는 끝을 외면하고, 다른 누군가는 가장 찬란한 때를 맞이하고 있을 지금이다. 지난했던 연애사를 반추하는 칼럼들과 환심 보장 데이트 코스 소개, 모텔의 역사, 연인과 함께 보면 좋을 넷플릭스 작품 추천 등 연애를 중심에 두고 그 곁을 맴돌며 다채로운 읽을거리를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10월에도 진행되는 막 퍼주는 임볼든 이벤트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2022년 10월

모릅니다,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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