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린 콘돔 이야기

2020년에 공개된 단편 영화 <여름의 사랑>은 고등학생 여름(강채윤)이 남자친구에게 관계를 갖고 싶다고 말하며 직접 콘돔을 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그려낸다. 정확히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20년 전인 1990년 개봉한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속 장성한 박중훈이 약국에서 콘돔이라는 이 단어를 발설하지 못하고 끙끙대던 장면과 비교해 볼 때 요즘 첫 성관계를 경험하는 나이, 13.6세라는 통계가 피부로 다가온다.

나이를 불문하고 연인 관계에서 꼭 필요한 것이 믿음, 사랑, ‘이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잠자리 필수 도구 콘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만큼 첫 잠자리에서 이 콘돔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막막해했던 아찔한 경험, 다들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직관적이고 명료한 사용법은 물론 거의 100%에 달하는 피임률과 몸 건강, 정신 건강까지 지켜주는 물건이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300억 개가 사용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중인 콘돔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콘돔 과거사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와 밀접한 물건은 필요에 의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므로 그 시작점을 제대로 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콘돔도 마찬가지다. 가장 유력하게 대두되는, 그러니까 처음이라 불리는 콘돔의 흔적은 기원전 11,000년경 프랑스 레 콤바렐(Les Combarelles)의 동굴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그림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피임의 목적보다는 상처, 벌레 등으로부터 성기를 보호하기 위해 활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어원에도 몇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야기는 호색한으로 유명했던 영국 왕, 찰스 2세의 주치의의 콘돔 백작(Earl of Condom)에서 유래했다는 것. 이미 사생아만 14명을 낳은 찰스 2세가 문란한 성생활로 가문의 혈통을 망가뜨리는 것을 방지하고 매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양의 장기로 콘돔을 만들어 바친 그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콘돔에는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는데 15세기 이전에 일본과 중국에서 사용된 콘돔 소재는 거북이 등껍질, 얇은 가죽 그리고 기름종이 등으로 만들었다.

앞서 언급했듯 콘돔은 피임뿐만 아니라 매독 감염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탈리아 해부학자 가브리엘 팔로피우스(Gabriele Falloppio)는 15세기 유럽 전역 폭발적으로 확산하여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매독에 걸리지 않도록 동물 내장 표피를 이용해 최초로 콘돔을 만들었다(물론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돌아오기 100년 전부터 매독균이 이미 유럽에 상존하고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실제로 UN 에이즈 기구 발표에 따르면 1990년을 기점으로 4,500만 명이 콘돔 덕에 HIV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니 콘돔은 인류를 구원한 생명줄과도 같은 존엄한 물건이라 할 수 있을 거다.

콘돔의 비약적인 발전은 1839년 이루어진다.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가 황을 첨가해 내구성과 탄성이 뛰어난 가황 고무를 발명했고, 이를 사용해 최초로 두께 2mm 고무 콘돔을 만든다. 훗날 타이어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돼 인류 발전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남아 있다. 콘돔의 대량 생산화를 이룩한 건 1920년대 라텍스 소재 발명하게 되면서부터. 최초의 윤활 콘돔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세계적인 브랜드 듀릭스 사가 1957년에 생산했다.

여성용 콘돔?

남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되었던 콘돔을 여성들이 착용하도록 만든 제품에 대해 들어봤는가. 이는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피임에 개입할 수 있게 된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최초 현대식 여성용 콘돔, 페미돔은 1984년 덴마크 의사인라세 헤셀이 만든 것으로 1992년 개발을 마쳤고, 그다음 해인 1993년에 출시되었다. 여성의 질 내부를 감싸는 방식으로 착용하는데 전체 길이는 약 17cm이며, 끝과 끝에 폭이 각각 5cm, 6.5cm 고리가 적용되어 있어 일반 콘돔보다 크기가 크다.

국내에도 1996년 상륙해 1주일 만에 서울 지역에서만 6백여 개 정도가 판매되었다는 당시 기사도 확인할 수 있지만, 초반 인기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실적 저조로 결국 판매가 중단됐다. 남성용 콘돔과 달리 어디서나 쉽게 구매할 수 없었고, 생식기 안으로 깊이 밀어 넣어 착용해야 하는 사용의 번거로움, 3개들이 6,600원이라는 높은 가격, 아직은 따라잡을 수 없는 보수적인 정서 간극 등의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최초로 여성용 콘돔을 10만 개 배포한 바 있다.

쾌락은 짧으니까

올림픽과 콘돔, 그리고 우리나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을 지녔다. 바로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콘돔이 처음 배포됐기 때문. 1990년대 에이즈(AIDS)가 세계적 이슈로 떠올라 큰 행사를 개최하는 당국 입장에서는 이에 대비할 필요성을 느꼈고 당시 8,500개의 콘돔을 선수촌에 비치했다. 8,391명이 올림픽에 참가한 것을 비춰 볼 때 1인당 1개가 할당되었다는 것인데 이건 지극히 선비의 나라의 셈법. 개수는 턱없이 부족했고 이를 교훈 삼아 4년 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는 서울올림픽 배급량의 10배인 무려 9만 개를 비치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OECD 국가 중 임신중절수술 1위 국가이며, 콘돔 사용률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더 짜릿한 절정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혹은 안일한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감정을 무기로 휘두르며 ‘노콘섹스’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룻밤의 눈먼 쾌락이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며 아래 리스트를 참고하자. 추천, 콘돔 리스트다.

써봐야 아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