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를 때리면 아동 학대인가, 재물손괴인가?’
누군가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아마 ‘얼토당토않은 소리 하지 말라’라며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 같은 질문, 어쩌면 이보다 더 나아간 기상천외한 이야기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답하는 이가 있다. 심지어 철학에 입각한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철학 박사 과정 중이자 에포케책방의 대표인 고도(예명)의 이야기다.
지난 4월, 수유동에 인문학 책방 하나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모두가 미래 기술을 바라볼 때, 문학과 철학을 다루는 정반대의 공간이 생긴 것이다. 2023년 두 명의 창업자의 독서 모임에서 시작된 에포케는 가볍고 유쾌한 주제를 통해 우리의 일상에도 철학이 녹아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이들은 어쩌다 철학으로 오프라인 공간까지 열게 되었을까?
철학과 대중을 잇다, 에포케책방 고도 대표 인터뷰

책방을 연 지 두 달 정도 지났다. 요즘 분위기는 어떤가.
솔직히 열기 전까지는 조금 안일하게 생각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특별히 일이 많을 것 같지도 않고, 손님 없으면 개인 작업하는 용도로 쓰겠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생각보다 너무 바쁘다. 손님이 없는데도 바쁘다. 그렇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웃음) 생각에도 없던 장사를 하려니 그런 것 같다. 지금은 다른 쪽의 수입으로 책방을 먹여 살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이 계륵 같은 공간이라도 없었다면 뿌리 없이 흔들리는 느낌이지 않았을까? 오프라인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주는 안정감이 있다. 손님이 많아지기를 바라기보다는, 이 공간을 통해 철학이나 인문학 모임이 좀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무리를 하면서까지 넓은 곳을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소비자로서도 오프라인 공간이 있고 없고가 주는 신뢰감 차이가 있다.
책방 운영으로 얻게 되는 가장 큰 장점이다. 외부 독서 모임도 종종 진행하는데, 재작년만 해도 석사 과정 중이라는 게 이력의 전부였다. 그런데 ‘책방지기입니다’라고 하면 조금 더 신뢰감이 들지 않나. 그게 이 계륵에 붙은 몇 안 되는 살점이다. 굉장히 관념적이다. 유물론적인 물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에포케라는 이름은 어떻게 정하게 됐나.
에포케(Epoché)는 판단중지를 뜻한다. 대화를 나눌 때 누구 하나라도 자기 의견만 정답이고 진리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면 이야기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본인 주장만을 관철하려 드는 대화는 평행선을 달리는 행위에 불과하니까. 생산적인 대화는 내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태도, 상대방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태도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생각을 담아 이름을 판단중지, 에포케라고 지었다.

평행선을 달리는 대화가 만연한 세태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이게 다 철학의 부재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칸트나 플라톤의 저서를 읽지 않는 게 문제라는 말이 아니다. 철학이 주는 기본적인 태도, 즉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철학자들의 말버릇이 있다. ‘저는 잘 모르지만’이다. 답을 정해놓지 않고 끊임없이 따져보는 작업을 하다 보면 ‘안다’라는 게 얼마나 미약한지 깨닫게 된다. 사회에서 담론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가 이런 지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모임으로 시작했다고.
친구끼리 하던 독서 모임이었다. 그러다 모임 앱에 올리면서 규모가 커졌고, 모임을 백 번 넘게 진행하다 보니 강연이나 외부 모임 진행 같은 기회가 생겼다. 당시 석사 과정을 하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있겠다 싶어서 판을 키우게 됐다.
다른 독서 모임은 대체로 가벼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책 안 읽고 오는 모임이라든지, 책은 핑계인 모임이라든지. 우리는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정직하게 인문 고전으로 진행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관심을 많이 받는 걸 보고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는 걸 느꼈다.
책방은 서울시 창업지원으로 열게 됐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나.
원래는 책방이 아니라 연구자와 대중을 연결하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다 떨어졌다. 이유는 사업성이 없어서. 그러다 우연히 로컬 청년 창업 현수막을 보게 됐고, 지금까지 한 걸 오프라인 공간 버전으로 바꿔서 지원한 게 덜컥 된 거다.
지원 당시에는 명분을 앞세워 심사 위원을 설득했다. 책방도 철학도 돈 안 되는 일 맞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돈 되는 사업은 카페든 밥집이든 자연스럽게 생긴다, 하지만 꼭 필요하지만 돈 안 되는 일, 동네 전체에 유의미한 일이야말로 시에서 지원해 줘야 하지 않겠냐는 식으로. 대의명분 덕분에 선정될 수 있었지만, 그때 어물쩍 넘어간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가 발목을 잡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굳이 내가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본인이 자처하는 이유가 있나.
첫째는 재밌어서. 재미없으면 못 한다. 철학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사람들과 철학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즐겁다. 일종의 책임감도 있다. 석사 1학기 때, 졸업하시는 박사 선생님에게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다. 장사하신다더라. 인문 사회계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런 지식인이 사회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없나 싶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대단한 분들도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면, 그보다 훨씬 못한 나는 어떡하지. 결국 누군가는 이걸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제일 공부 못하는 내가 해야겠다 싶었다.(웃음) 공부는 못해도 말은 잘하니까.
지도 교수님이나 대학원 동료도 에포케의 존재를 알고 있나.
그렇다. 처음에는 교수님도 그게 얼마나 돈이 되겠냐는 식으로 이야기하셨는데, SNS 팔로워가 2만 명이 넘어가니 태도가 조금 바뀌시더라.(웃음) 얼른 유명해져서 다른 선생님들하고 같이 뭐라도 해보라고. 사실 교수님도 제자들의 불투명한 미래를 항상 걱정한다. 배운 걸 활용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라, 내가 그런 걸 한다고 하니 좋아하신다. 그렇다고 대단히 달라진 건 없다.
교수님에게 죄송한 건, 에포케에 전념하다 보니 정작 공부에는 신경을 못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교수님께 편지를 썼다. ‘죄송합니다, 안 되겠습니다’라고. 과제 하나를 아예 못 냈다. 성적은 안타깝게 됐지만, 지금 성적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당장은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에포케 관련 일정과 업무를 더 우선시하고 있다.
SNS에서는 ‘웃자는 소리에 죽자고 말하기’ 같은 콘텐츠로 철학에 가볍게 접근한다. 이런 콘텐츠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 철학하는 사람들은 그러고 논다. 밥 먹다가도 “김치찌개와 부대찌개를 나누는 건 질료일까, 아니면 김치찌개의 ‘김치찌개 됨’일까” 하면서. 일종의 지적인 헛소리랄까. 이과 개그가 하나의 영역을 형성한 것처럼 철학 개그도 사람들이 재밌어할 지점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런 콘텐츠를 올린 건 아니다. 데스노트로 만든 콘텐츠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고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애니메이션도 콘텐츠에서 종종 다룬다. 평소에도 즐기는 편인가.
좋아하고 관심도 많지만, 그에 비해 많이 보지는 못했다. 요즘은 문화생활을 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도 요청이 많은 작품은 최대한 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콘텐츠로 다루는 작품은 실제로 봤다. 작품을 철학으로 번역하기 위해선 철학도 알아야 하지만 그 작품에 대한 이해도 당연히 필요하니까.
철학을 가볍게 접근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없나.
있다. 댓글로 달린다. 숏폼은 길어야 1분이다 보니 그 안에 담다 보면 어떤 사상이든 논문이든 축약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따지고 들어가면 99%는 틀린 말이다. 나 또한 직접 하기 전까지는 인문학 콘텐츠를 곱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칸트의 물자체와 현상계를 구별하는 이야기를 할 순 없지 않나. 약간의 왜곡이 있더라도, 전공자들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한다.
팔로워의 연령대를 보면 80%가 10대다. 철학에 관심이 있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대다수가 고등학생이다.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좀 더 접근성 있는 방법으로 충족시켜 주는 게, 장차 철학도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작업이지 않을까. 물론 틀리지 않기 위해 최대한 검수한다. 1시간짜리 영상을 통으로 날려버린 적도 있다. 편집한 친구가 화내더라.

철학의 수요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것 같다.
‘B급 철학회’를 진행하면서 많이 느꼈다. 애니메이션 작품을 중심에 두고 실제 철학 학회 형식과 동일하게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참여하는 거겠지만, 사실상 철학 학회와 다를 바 없는 이 프로그램에 50명이 모이는 걸 보고 정말 놀랐다. 규모 있는 출판사에서 북토크를 해도 이 정도 인원을 모으기 쉽지 않은 실정인데도 말이다.
진격의 거인을 하이데거로 발표하고, 데스노트를 그로티우스의 자연법으로 분석하고. 전공자에게도 쉽지 않은 학술적인 내용으로 2시간을 진행했다. 그런데도 너무 짧다는 피드백이 오더라. 누군가는 대중을 오만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대중에는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중 절반 이상은 철학을 재밌게 받아들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주느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메시지나 댓글로 질문도 많이 받을 텐데, 공통점이 있나.
유사한 내용이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테세우스의 배라든지, 기계 몸에 기억을 옮기면 그것이 ‘나’인지를 묻는다든지 하는 것들은 자아동일성의 문제다. 윤리와 관련된 문제는 대부분 트롤리 딜레마의 변형이다. 사람들의 질문을 정리하면 10종류 안으로 수렴될 것 같은데, 그게 다 철학사에서 닳도록 논의한 질문들이다.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모두 철학적인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철학과 대중을 연결하는 일종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위로는 안 가고 사다리에만 매달려 있을 듯하다.
철학자가 되는 것과 철학적 태도를 갖추는 건 다르다. 전문 철학자는 글도 쓰고 입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책도 많이 읽어야 하지만, 일상을 사는 데 그게 꼭 필요하지는 않다. 헬스를 생각해 보라. 헬스하는 대다수의 이유는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기 위함이 아니라, 허리가 아프니 살자고 하는 것 아닌가. 트레이너의 역할은 몸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에 적절한 철학자가 헤겔인지 비트겐슈타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 ‘이 주장은 타당한가’, ‘너무 이분법적으로 보는 건 아닌가’를 한번 생각할 수 있다면, 일상에 필요한 철학은 충분하지 않을까. 사다리에 매달려 있기만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헬스장을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나가는 것과 아예 하지 않는 게 천지 차이인 것처럼, 엉성하더라도 철학적인 대화와 사고를 하는 건 그렇지 않은 것과 완전히 다르다.
결국 철학의 필요를 설득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철학하는 사람한테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철학의 쓸모를 물으면 입이 탁 막힌다. 그 질문엔 숨은 전제가 많다. 철학이 돈 버는 데, 기업 가치에, GDP와 코스피에 어떤 기여를 하냐는 질문이니까. 철학이야말로 무용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돈을 왜 버나? 편하게 책 좀 보고, 인생의 중대한 문제를 고민하려면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니까 버는 것 아닌가. 철학은 잘 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잘 산다’라는 개념 안에 이미 포함돼 있다.
철학은 일종의 꽃 같은 존재다. 없어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은 없다. 하지만 화병 하나만 놓아도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고, 삶의 색채가 달라진다. 연인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꽃을 선물하는 이유는, 어쩌다가 건네는 꽃다발 하나가 둘의 관계를 깊고 성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철학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철학하는 사람들은 늘 이야기해야 한다. 꽃 좀 사라고, 꽃 좀.(웃음)

에포케는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나.
출신이 종교철학이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한다. 성경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그게 교회다’라는 말이 있다. 에포케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일주일에 한 번 책을 읽고 나누러 모이는 모임인데, 교회가 성경을 강독하는 곳이라면 에포케는 순수이성비판을 읽는 곳인 거다. 아, 너무 어려우니까 일리아스 정도로 바꾸겠다.(웃음)
이런 철학 공동체가 어디에나 가득하고, 그곳에서 전공자들이 배운 걸 이야기할 수 있다면, 철학의 부재로 야기되는 시대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내가 틀릴 수 있다’, ‘모든 세상일이 이분법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말은 혐오와 배제가 될 수 있다’ 같은 개념을 알려주는 게 바로 철학이니까.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첫 번째는 소박하게, 이 일로 내 한 몸 책임지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인문학의 대중화다. 어디서든 ‘에포케’라는 이름을 보면 ‘저기는 믿을 만해, 재밌고 유익해’라고 신뢰받는, 일종의 인문학 프랜차이즈처럼 널리 확장되기를 꿈꾼다.
세 번째는 동료들의 밥벌이다. 사실 대학원생들은 엄청난 부귀영화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책값 하고, 밥 챙겨 먹고, 자기 몸 하나 건사할 정도만 벌게 해줘도 굉장히 만족할 사람들이다. 에포케가 철학으로 먹고살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되기를 기대한다.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