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한마디면 다 됐던 옛날의 카페. 그런데 언제부턴가 메뉴판에 낯선 단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워시드, 게이샤… 커피 한 잔 주문하는데도 알아야 할 것이 많아진 것. 바로 스페셜티 커피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대체 스페셜티 커피가 뭘까? 어떻게 주문하고 마셔야 하는 걸까? 내 입맛에 맞는 스페셜티 커피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스페셜티 커피를 즐기는 가장 쉬운 방법과, 한국을 대표하는 스페셜티 카페를 소개한다.
스페셜티 커피가 뭐야?
기준점을 갖고 관리되는 커피

스페셜티 커피를 한마디로 말하면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까지 확인, 관리되는 커피’다. 커피도 와인처럼 생산지와 품종, 재배 환경, 가공 방식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스페셜티 커피는 생산 국가와 지역은 물론, 품종, 가공 방식, 재배 고도 등 원두에 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원두는 일정 기준에 따라 품질을 평가 받는데, 이러한 기준점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관리된 콩이라는 것. 카페 메뉴판에 낯선 단어가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가 많아진 만큼 커피가 가진 향미도 더욱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표현된다.
최근 들어 스페셜티 커피를 ‘특별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어’ 스페셜하다고 일컫는 바람도 불고 있다. 단순히 ‘하이 퀄리티 커피’라서가 아니라, 원두 품질과 생산 과정에 직접 관계를 맺고, 산지와 생산자 이야기를 함께 전달하는 문화가 담겨있어 이러한 흐름이 생겨난 것.
스페셜티 커피 즐기는 법
핵심 내용만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름부터 쉽게 읽자
스페셜티 커피를 어렵게 만드는 건 긴 이름이다. 하지만 메뉴에 줄줄이 적힌 낯선 단어들은 ‘이 커피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나타내는 정보일 뿐,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로스터리마다 표기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생산 국가와 지역, 농장이나 가공소(워싱스테이션), 품종, 가공 방식 순으로 적는다. 여기에 재배 고도와 컵노트, 배전도 같은 정보를 더하는 곳도 많다.
예를 들어 ‘Ethiopia Yirgacheffe Gedeb Anaerobic Natural’이라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권역의 게뎁 지역에서 생산한 원두를 무산소 내추럴(Anaerobic Natural) 방식으로 가공했다는 뜻. 이름이 길어 보일 뿐, 커피의 출신과 생산 과정을 차례대로 적어놓은 셈이다.
가공 방식에 따라 원두의 맛이 달라진다
커피는 붉은 열매인 ‘커피 체리’에서 씨앗을 꺼내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가공 방식이라고 하는데, 같은 원두라도 맛이 크게 바뀌는 순간이다.
워시드 : 과육과 점액질을 제거한 뒤 건조한다. 깨끗하고 산뜻하며 품종 본연의 맛이 잘 드러난다.
내추럴 : 과육째 그대로 건조한다. 발효가 진행되며 과일 향과 단맛이 풍부하고 개성이 강하다.
허니 : 점액질을 일부 남긴 채 건조한다. 워시드와 내추럴의 중간 정도로, 단맛과 균형감이 좋다.
최근에는 무산소 발효(Anaerobic), 카보닉 메서레이션(Carbonic Maceration)처럼 발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가공 방식도 늘고 있다. 열대과일이나 와인 같은 독특한 향을 만들어내, 최근 자주 볼 수 있는 키워드다.

같은 산지라면 고도가 더 높은 것으로
원두 봉투에 적힌 ‘1,800m’ 같은 숫자는 커피가 재배된 해발 고도다. 일반적으로 고지대는 기온이 낮아 열매가 천천히 익는데, 그만큼 밀도가 높고 향미가 복합적인 커피가 발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재배 가능한 면적이 줄고 수확과 운반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도만으로 커피의 품질을 판단할 수는 없다. 품종과 토양, 기후, 재배 및 가공 방식도 맛에 영향을 미치며, 적정 고도 역시 생산국의 위도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 그러니까 고도는 비슷한 지역과 품종의 커피를 비교할 때 참고하는 정보로만 보자. 같은 산지의 원두라면, 더 높은 곳에서 재배된 커피가 대체로 선명하고 향미가 복합적일 가능성이 있다.
내게 맞는 로스팅 종류를 선택한다
원두의 개성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소는 로스팅(배전도)이다. 같은 원두라도 볶는 정도에 따라 전혀 다른 향과 맛을 내기 때문이다.

라이트 로스팅은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짧게 볶아 원두가 가진 개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이다. 꽃향이나 과일 향처럼 산뜻하고 섬세한 향을 느끼기 쉽고, 산지와 품종의 특징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스페셜티 커피에서 라이트 로스팅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두가 가진 고유한 개성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반대로 다크 로스팅은 더 높은 온도에서 오래 볶는다. 다크초콜릿이나 카카오, 견과류처럼 묵직한 풍미와 진한 바디감을 느낄 수 있다. 대신 원두 자체의 개성보다는 로스팅에서 만들어지는 풍미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편.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로스팅 방법을 선택하자.
컵노트를 보면 훨씬 쉬워진다
긴 이름이 출신을 알려준다면, 컵노트는 맛을 알려준다. 컵노트는 커피에서 느껴지는 향과 맛을 표현한 것으로, 한 잔의 커피를 가장 직관적으로 설명해 주는 정보다.
원산지만 보고도 어느 정도 맛을 예상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가공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원산지만으로는 맛을 예측하기 어려워진 상황. 요즘은 컵노트를 먼저 보고, 커피가 가지고 있는 향을 파악하는 게 훨씬 실용적이다.
컵노트에 자스민, 캐모마일, 레몬그라스, 청사과가 적혀 있다면 밝고 화사한 스타일을, 체리나 베리, 시트러스라면 산뜻한 과일 향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반대로 아몬드, 피칸, 브라운슈가, 다크초콜릿은 고소하고 묵직한 풍미에 가깝다.
몇 번만 의식해서 마셔보면 내가 꽃향기를 좋아하는지, 견과류 계열이 취향인지 등 자신의 입맛이 보이기 시작할 것. 스페셜티 커피가 낯설다면, 주문할 때 좋아하는 노트를 이야기해 보자. 내게 맞는 향과 맛을 하나씩 발견하다 보면 스페셜티 커피는 훨씬 쉽고 재밌어질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스페셜티 카페
카페 특징부터 대표 원두까지
지금 한국은 스페셜티 커피 시장이 크게 발달하는 중. 스페셜티 커피를 직접 마시러 갈 때가 됐다.
재료와 산지에 집중하며 20년 넘게 한국 스페셜티 커피의 기준을 만들어온 로스터리. 스페셜티 커피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2002년 문을 열어, 좋은 커피는 좋은 생두에서 시작된다는 원칙을 꾸준히 지켜왔다.
대표적으로는 포도와 패션프루트, 레드와인의 풍미를 지닌 콜롬비아 ‘마이크로 모카 내추럴’을 선보인다. 내추럴 가공 특유의 풍부한 과일 향과 복합적인 단맛이 특징으로, 나무사이로가 재료의 개성을 어떻게 끌어내는지 잘 나타내는 커피다. 리치와 라즈베리, 건자두처럼 섬세하고 다층적인 향을 지닌 게이샤 품종도 나무사이로의 재료 중심 철학을 잘 보여준다.
Information
주소 | 서울 종로구 사직로8길 21
시간 | 매일 07:30 ~ 20:30
인스타그램 | @namusairocoffee
커피와 베이커리, 물개 마크가 어우러진 독특한 세계관으로 한국 스페셜티 커피를 대중적인 문화로 확장한 브랜드. 산지에서 직접 고른 원두를 로스팅하고, 매장에서 구운 빵을 함께 선보인다.
프릳츠를 처음 찾는다면 에스프레소 블렌드로 만든 라테나 플랫화이트를 마셔볼 것. 균형 잡힌 단맛과 묵직한 질감이 우유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담백한 우유식빵이나 바게트처럼 기본에 충실한 빵을 곁들이는 것도 추천. 프릳츠가 추구하는 커피와 베이커리의 조합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다.
Information
주소 | 서울 마포구 새창로2길 17
시간 | 평일 08:00 ~ 22:00, 주말 10:00 ~ 22:00
인스타그램 | @fritzcoffeecompany
한국에서 다이렉트 트레이드와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가장 먼저 알린 1세대 로스터리. ‘얼굴 있는 커피’를 모토로 생산자와 직접 관계를 맺고,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전달해 왔다.
커피 리브레가 처음이라면 과일 시럽 같은 단맛과 복합적인 향미가 특징인 시그니처 블렌드, 배드 블러드를 추천한다. 스페셜티 커피 특유의 산뜻한 과일 향과 균형 잡힌 단맛을 부담 없이 경험하기 좋다. 시즌마다 달라지는 싱글 오리진도 함께 선보이니, 바리스타에게 그날의 추천 원두를 물어보는 것도 커피 리브레를 즐기는 방법이다.
Information
주소 | 서울 중구 명동길 74 명동성당 1층
시간 | 평일 10:00 ~ 19:00, 주말 09:00 ~ 18:00
인스타그램 | @coffeelibre_md
부산에서 시작하여 한국 스페셜티 커피를 세계에 알린 국가 대표 로스터리. 2019년 전주연 바리스타가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모모스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모모스가 추구해 온 커피를 맛보고 싶다면 에스쇼콜라(Es Chocolat)를 추천한다.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온 시그니처 블렌드로, 프랄린 피칸을 떠올리게 하는 달콤함과 크리미한 질감, 초콜릿 같은 여운이 특징이다.
Information
주소 | 부산 금정구 오시게로 20 모모스커피 1층
시간 | 매일 07:30 ~ 18:00
인스타그램 | @momoscoffee_official
영국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스퀘어마일 출신이자 UK Brewers Cup 챔피언 출신 박상호 대표가 운영하는 로스터리 카페. 직접 산지를 오가며 엄선한 생두를 들여오고, 원두마다 다른 개성을 섬세한 로스팅으로 표현한다.
센터 커피의 시그니처 블렌드는 메이 데이(May Day). 캐러멜 같은 단맛으로 시작해 식을수록 복합적인 과일 향이 드러나는 블렌드로, 센터커피가 추구하는 균형감 있는 로스팅을 가장 잘 보여준다. 시즌마다 선보이는 게이샤 커피도 빼놓을 수 없다. 게이샤 품종 특유의 섬세한 꽃향기와 과일 향이 잘 드러나도록 가볍게 로스팅해 선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