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닫기

임볼든 앱을 홈 화면에 추가하여 간편하게 이용하세요.

하단 공유버튼() 선택 후, '홈 화면에 추가(홈 화면에 추가)'

김지원 건축가가 말하는 집의 근본
2023-02-22T17:40:10+09:00

요즘 집의 트렌드는 ‘개취 존중’.

2022년 9월

그곳에 언제나, 집 이야기

+ View All

사실 이 직업을 택한 건 거창한 꿈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고 느낀 편안하고 행복했던 공간이나 장소를 떠올리며, 내 생각을 도면이나 이미지 등으로 구현하는 작업이 좋았다. 과정이 힘들지라도 같이 작업하는 팀원들과 생긴 에피소드, 나누는 감정들, 결과물에 대한 성취감, 매년 쌓여가는 경험과 능력의 조각들은 건축가의 길을 걷게 한 이유였다.

나는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규모가 큰 설계사무소들에만 지원했다. 사무소의 규모에 따라 프로젝트의 규모와 업무가 달라진다. 학생 신분으로서는 경험하지 못할 규모와 전문적인 시설, 예를 들면 공항, 컨벤션센터, 국제 경기장, 은행, 병원 등을 실제 설계로는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대규모 설계사무소에 입사하면 ‘신입사원들은 몇 년 동안 화장실만 설계한다(?)’는 식의 루머들이 있었지만, 뭐든 배울 점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보다 큰 건축 사무소의 문을 두드렸다.

대형 설계사의 경우 본부마다 프로젝트 시설과 성격이 다르다. 내가 속해있던 곳은 복합 문화시설, 업무 및 연구시설, 물류 시설 등을 주로 담당해 다양한 복합시설의 설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 몇 개가 있다.

이런 프로젝트, 이런 기억

신입사원 시절 광운대 역사 주변 부지에 주거 및 복합시설을 설계하는 신축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처음으로 다른 본부 및 해외설계사와 협업을 진행할 기회였다. 그 중 ‘UN Studio’는 학생 때부터 익히 알던 세계적인 사무소로 함께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설레는 일이었다. 그들이 이해하기 힘든 건축법에 맞게 디자인을 수정하고 해외 설계사와 건축주 사이의 의견 조율을 하는 업무가 내 몫이었다.

또 다른 업무 중 하나는 건축주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정형의 매스를 스티로폼 보드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열선 기계로 폼보드를 녹여 곡면을 다듬고 붙이는 일이다. 열선 기계를 처음 사용하는 데다가 곡면의 디자인을 구현하는 부분이 어려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A1 사이즈의 폼보드 2개를 모조리 사용해 건축 컨셉 모형 한 개를 겨우 만들었고, 스티로폼을 너무 많이 녹여 그날 냄새를 잘 맡지 못했을 정도였다.

해외 설계사와 매주 화상회의를 하며 의견을 나눌 때는 일 자체를 떠나 그들의 업무수행 방식이나 표현 방법 등이 새롭게 다가왔다. 화상 화면에 바로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회의를 진행하였고 직급에 상관없이 대화가 편하게 오고 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아쉽게도 너무 큰 규모의 금액이 오가는 프로젝트라 계획 설계 단계까지 마무리하고 중단되었지만, 대형 설계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경험하기 힘든 과정이었기에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들었던 순간이다.

기억에 남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작년에 진행한 YG 엔터테인먼트의 의정부 복합 문화시설 프로젝트다. 시설은 1,000평, 500평, 200평과 VFX 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었다. VFX란 시각적인 특수효과(Visual FX)를 말하는데, 존재할 수 없거나 촬영 불가능한 장면 또는 실물을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이용되는 기법과 영상물을 뜻한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분야에서 사용하는 효과다.

YG에서는 뮤직비디오 등의 촬영과 게임, 문화 산업 등 미래형 문화 콘텐츠 사업 확장의 일부로 네이버, 넥슨, 위지윅 스튜디오 등 다양한 기업들과 공동으로 진행하였다. 회사 내에서도 MBC, SBS 등 방송 시설의 설계 경험은 있지만, 스튜디오 위주의 계획 설계 프로젝트는 드물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형 기획사의 색다른 설계 계획에 참여한다는 게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복합 문화시설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례조사와 규모 검토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공연장, 방송사, 특수 스튜디오, E-스포츠 게임 경기장 등 다양한 시설의 사례를 보고, 답사를 다녀왔고 YG 측으로부터 송민호 단독콘서트 리허설에 초청받기도 했다. 잠실 올림픽홀 공연장 답사를 위해서였지만 ‘성덕’이 된 순간이었다.

막연하게 내 생각을 도면과 3D 이미지로 구현했던 작업이 설계 사무소에서의 경험과 만나 건축에 대해 심도 있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 작업하는 건축물의 규모가 커지고, 분야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들이 나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집’, 주거 공간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시대 변화에 따른 ‘주거’ 공간의 가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사는 우리의 삶은 많은 것이 전과 달라졌다. 타인과 상호작용을 하며 영위하던 일상은 ‘언텍트’로 꼴을 달리했고 이러한 변화는 주거 공간으로도 전이 되었다. 학생들은 비대면 강의를 듣고, 직장인은 재택근무를 하고, 취미로 헬스장이 아닌 홈 트레이닝과 요리 등 이 모든 것을 집에서 한다. 이렇듯 밤이나 주말 동안만 머무르던 집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바뀌면서 주거 공간에 대한 가치도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기존 거주 공간은 획일화된 평면 구성과 좁은 면적임에도 많은 수요가 있었다. 잠을 잘 수 있고 최소한의 생활 반경만 보장되어도 괜찮았다. 외부 활동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양한 가치를 담는 공간이 필요해졌다. 이전보다 넓어지고, 자연과 조경을 만날 수 있고, 개인의 특성이나 취향을 반영한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알파룸’

새로운 형태의 등장

그렇다면 앞서 말한 변하는 주거 가치를 담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나 구조의 집이 되어야 할까? 기존의 획일화된 구조가 아닌 본인의 생활 패턴에 따른 공간 분할이 필요하고, 이에 맞춰 주거 형태는 변화 중이다. 아파트를 예로 들면, 공용 공간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알파룸’ 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추가되었다. 주거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알파룸을 방으로 쓰거나 거실 혹은 주방과 통합해 활용 가능하다. 공간 구조가 정해져 있지 않아 거주자의 취향에 맞춰 공간을 확장하고 분리할 수 있다.

외부공간에도 새로운 형태가 요구된다. 과거에는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모두 마당을 품고 있었고, 영역 안에 외부 공간을 두었다. 한옥 내부의 ‘ㅁ’자 ‘ㄷ’자 마당 등도 이러한 개념이다. 주택과 같은 마당이 아니더라도, 각 거주자의 공간 사이에 완충, 중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실제 식물을 이용한 인테리어인 플랜테리어도 보편화되었다.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구와 집이라는 공간이 결합하면서 내부와 외부를 직접 연결하는 테라스 구조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알파룸이 반(半) 사적이면서 집의 내부, 마당은 집의 외부에 속한다면, ’테라스’는 내 외부를 서로 잇는 중간 공간의 확장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테라스 외에도 중간 공간을 더욱 다채롭게 활용하는 형태가 나타나리라 예측해 볼 수 있다.

트렌드는 ‘개인 취향’을 반영한 집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은 모두 다르고, ‘자기만의 트렌드를 찾아가는 게 트렌드’라는 말이 있다. 지금까지 공간을 바꿀 때는 건축가, 인테리어 업체에 의뢰를 했지만, 요즘 20~30대, MZ 세대는 다른 경향을 보인다. MZ 세대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고, 각종 매체 및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공간을 좇는다. “2020년,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잃어버린 해가 아니라 도리어 우리에게는 기회이자, 건강한 주거 문화가 자리 잡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업계 전문가의 말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의 근본

이렇게 시대의 변화에 따른 공간에 대한 가치와 트렌드가 변하더라도, 우리가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집의 본질은 과거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 땅을 밟고, 자연의 물소리와 나무를 좋아하고, 볕이 잘 드는 향을 고려하는 것 등 인간이 추구하는 근원적인 집의 조건들은 바뀌지 않았고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아울러 사용자의 이야기, 집을 짓는 이유나 앞으로의 미래, 어떤 공간을 남기고 싶은지 등을 깊게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주거 공간의 본질은 보편적이고 일률적인 집이 아닌 사용자의 삶을 담은 집이다.

2022년 9월

그곳에 언제나, 집 이야기

+ View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