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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이주민의 노마드 회고록
2023-02-22T17:39:35+09:00

함부로 이주하지 마라.

2022년 9월

그곳에 언제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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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청춘처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정글 같은 도시의 삶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제주도 푸른 밤 가사 中)”로 가면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벗어나 유유자적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도 절도 없이 유유자적이라니. 순진했다.

운이 나빴다

제주로 입도한 2014년 당시에는 이주 열풍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연세 200만 원이면 농가형 주택을 얻을 수도 있었고, 5,000만 원 아래에서 전세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가능했다는 이야기지 평균치는 아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직장을 다녔던 나는 그해 6월 제주 원도심에 첫 집을 구했다. 옛 탐라국 수도 부근 성곽 잔존 터인 ‘제주성지(제주도 기념물 3호)’ 인근이었는데, 놀러 왔던 ‘육지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음침한 게 올라가기 약간 께름칙한” 건물 2층, 분리형 원룸이었다.

집 주변 상가들은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옛 간판이라 1990년대 서울을 보는 것 같았다. 상가들 사이사이 도우미 노래방이 많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건물 2층에는 두 세대가 살 수 있었고, 현관이 붙어 있었다. 집은 대로변이 아닌 골목에 위치해 조용했다. 착각이었다. 세대수를 늘리기 위해 가벽으로 방을 쪼갠 집임을 옆집 코 푸는 소리를 듣고 알았다.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로 가면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벗어나 유유자적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도 절도 없이 유유자적이라니. 순진했다.

찬장에 있던 물건이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에 잠이 깼다. 새벽이었다. 소리는 옆집에서 난 것이었다. 50대 중반의 옆집 남자가 직업여성을 데리고 집에 온 날이었다. 둘 다 술에 취해 있었고, 방음 성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집에서 ‘새벽의 소음’을. 이를 겪고 며칠 후 밤 10시 정도였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옆집이었다. “이사 왔다고 들었는데 인사나 나누자”고 했다. 늦은 시간이라 내일 나누자고 하니까 옆집. 

“내일은 내가 바쁜데, 그냥 지금 하지”

섬뜩함을 느낀 나는 다음날 바로 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했다. 주인은 “처자가 예민하게 구는 것”이라며 말을 잘랐다. 그 일이 있고 한 달쯤 흘렀던가.

밤 9시 30분 어간. 현관 문고리를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60대 노인이었는데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온다면서 숨겨달라고 했다. “왼쪽 베란다 쪽에 숨겨주면 된다”고 말하는 그는 집안 내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봤지만 그를 쫓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고 기다리는 동안 노인은 계속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20여 분간 문고리 돌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신경증에 걸릴 것 같았다.

경찰이 사건을 수습하는 동안 혼자 있기 무서워 직장 동료 집으로 갔다. 다음날 경찰은 그를 훈방 조치했다고 했다. 다시 찾아올 수 있지 않냐고 묻자 경찰은 “운이 나쁘면”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운이 나빠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

나는 집주인에게 간밤의 정황을 이야기하고 이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씨알도 안 먹혔다. 집주인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길게 이야기해봤자 별 소득이 없을 것 같았다. 며칠을 짱구 굴리다 고안해 낸 묘수. 도민들 체감거리에 입각한 제안을 해보기로 했다.

“저 회사서 서귀포로 발령 났어요”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차로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거리임에도 도민들은 차로 20분 거리도 먼 거리로 받아들였다. 집주인은 그제야 “별수 없다”면서 집을 내놨다.

한 번쯤 당해보는 ‘사기’

제주에서 알게 된 분이 나의 상황을 듣더니 자신이 살던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본인은 사정이 생겨 집을 빼야 할 상황이라고. 계약 전 집을 보기 위해 ‘제주 전원생활 종결지’라는 전원마을로 갔다. 20여 년 전 조성된 마을로 좌우로 봄이면 벚나무와 철쭉이 차례로 피어 ‘웨딩길’이라 불리는 마을 입구를 지나 도착한 동네에 당시 40여 세대가 모여 살고 있었다. 내가 살 집은 마당이 잘 가꿔진 나무로 된 복층 집. 제주살이 로망이 제대로 이뤄지나 싶었다.

이사 기간이 맞지 않아 탑차에 이삿짐을 싣고 열흘 정도를 여행하면서도 집이 맘에 들어 별로 수고롭다 생각되지 않았다. ‘마침내’ 짐을 풀었을 때, 그의 계약 기간이 6개월 남았으며, 집주인은 계약 연장을 할 마음이 없음을 알게 됐다.

“원래 이주민 사기는 먼저 온 이주민이 친다.” 와흘에서 만난 동네 주민이 해준 말이다. 선한 얼굴로 다가와 도움을 주는 척하면서 자기 실속을 챙긴 그는 제주 이주민 1세대로 나름으로 유명세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에게 ‘제주 신고식’을 치른 이주민은 상당수 존재했다.

가족용 노래방에서 살다

종교는 없지만 일로 알게 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서귀포시 남원에 집이 하나 나왔는데 끝내준다는 거였다. 1,500평가량의 잔디 마당에 야자수가 있는 집. 세 들어 살 집도 본체와 분리된 별채, 컨디션이 좋았다.

가족노래방 용으로 지은 별채는 할머니 혼자 살게 되면서 주거용으로 개조, 내가 첫 세입자라고 했다. 벽지와 소파는 화려했고, 침대는 무대 위에 있어 높았다. 화려한 벽지가 마음에 걸렸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탁 트인 마당이 현란한 벽지를 상쇄했다.

물론 이 집의 한 칸만 썼다.

할머니는 육지 분이었다. 자식들은 타국으로 모두 떠나고 혼자 그 커다란 집을 지키고 있었다. 한량 기질의 남편을 일찍 보내고 없는 살림에 자식들 키우느라 자린고비가 된 할머니는 종종 식사에 초대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들려줬다.

문제는 잔디 관리였다. 업체에 맡기면 좋으련만 ‘자린고비’ 할머니는 꼭 수동 예초기로 직접 깎았다. 어르신 혼자 밖에서 잔디 깎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당은 1,500평. 도와드리고 나면 몸이 성치 않았다.

잔디 때문에 모기도 많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마당이 넓어 이불도 마음껏 널 수 있었고, 지인들과 바비큐 파티도 할 수 있었다. 마당 한 켠 호박, 부추, 파, 상추. 깻잎 등을 언제든지 수확해 먹을 수도 있었다. 연고도 없이 직장 하나 보고 제주에 온 나에게 무엇보다 좋은 건 할머니의 지나친(?) 보살핌이었다(그는 나에게 프라이빗한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6개월. 계약 기간이 6개월이나 남았는데 방을 빼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자식이 타국에서 아파트를 장만한다며 남원집을 팔겠다고 한 것. 자식들 자랑을 입에 달고 살던 할머니는 그날 이후 잔디 관리 안 해도 돼서 속 편하다는 말만 곱씹어 말했다.

집 같지 않은 집

지금은 부동산 중개업자도 많아지고, 부동산 앱도 생겼지만, 당시만 해도 제주 오일장 줄광고를 통해 집을 구했다. 와흘에 적당한 가격의 집이 나와 있었다.

회천동 인근 중산간 도로에 있는 복층 펜션이었다. 당시 숙박업에 손을 댔다가 망해서 임대로 돌리는 곳이 많았다. 잦은 이사로 강제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게 된 나는 좁은 내부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원목 인테리어에 2층 침실에서 보이는 한라산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다.

집은 단순히 밥 먹고 잠자는 곳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안식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문제는 겨울에 찾아왔다. 제주도는 도시가스 보급률이 낮아 주로 기름보일러나 LPG 가스보일러로 난방을 한다. 난방비로 한 달 20만 원을 써도 실내 온도가 18도를 넘지 못했다. 코끝이 시린 것이 밖인지 구분이 안 됐다. 결국 침대에 실내 방한 텐트를 쳤다.

집은 단순히 밥 먹고 잠자는 곳이 아니다. 몸도 마음도 안식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심신이 고단한 나를 이끌고 가장 가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밥 먹고 잠자는 가장 단순한 생활조차 되지 않는 집에서 겨울을 나며, 현타가 찾아왔다.

“여기서 난 뭘 하는 거지?”

이제 집을 선택할 때 생활반경에 어떤 편의시설이 있는지부터 따진다.

끝내, 변심

지면상 그간의 과정을 생략하자면, 나는 아직 제주에서 잘 버티고 있다. 변한 게 있다면 도시를 떠나 제주도에 왔으니 외곽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 버린 지 오래다. ‘풀떼기’만 널린 곳이라면 주말에 바람 쐬러 들르면 된다.

이제 집을 선택할 때 생활반경에 어떤 편의시설이 있는지부터 따진다. 사실 잘 가지도 않지만, 맥도날드가 보이면 안심이 된다. 치킨 배달도 안 되는 중산간 마을에서 폭설 등 자연재해로 고립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난방하면 난방 값하는 집에서 아플 때 죽이라도 배달시켜 먹는 수 있는 집에서 살아야 덜 고독함을 깨달았달까.

가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기분이 들기도, 견딜 수 없는 고립감이 찾아들기도 한다. 근데 그건 서울에서도 그랬고, 어딜 가도 그럴 것이다. 중요한 건 그런 기분이 들 때 설거지라도 할 수 있는 ‘고독 근력’이 제주에 살면서 생겼다. 다만 난방하면 난방 값하는 집에서 아플 때 죽이라도 배달시켜 먹는 수 있는 집에서 살아야 덜 고독함을 깨달았달까.

함부로 이주하지 마라.

2022년 9월

그곳에 언제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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