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디어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취미가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예능 <소라와 진경>에서 이소라가 온전한 마음의 위안을 얻던 시간, 넷플릭스 드라마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 버렸다>의 주인공 코델리아 컵이 탐정 활동보다 더 열중하던 행위. 심지어 배우 김태리가 오랜 시간 이어온 취미라고 고백했던 이것.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 탐조다.
쌍안경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은 단순하다. 도파민을 뿜어내는 숏폼 콘텐츠도, 전 국민의 포모를 유발하는 주식 창도 그곳엔 없다. 그저 언제 날아갈지 모를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을 뿐이다. 이 단출한 풍경에 무엇이 숨어 있길래 너나 할 것 없이 빠져드는 걸까? 100여 명의 크루원과 함께 울산의 자연을 기록하는 생태 공동체, ‘짹짹휴게소’의 홍승민 대표를 만나 그 비밀을 엿들었다.
탐조에 빠지는 순간
거창한 계기는 필요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홍승민 대표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거주지는 서울, 일터는 파인 다이닝 주방이었다. 당시 그는 새로운 메뉴 개발에 영감이 될 무언가를 찾기 위해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전전하곤 했다. 더 이상 사람이 만든 작품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지경에 이른 어느 날, 우연히 방문한 어린이대공원에서 새를 찍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호기심에 그분들이 찍은 사진을 한 번 보여줄 수 있냐고 부탁했거든요. 그 안에는 파랑새 한 마리가 들어있었어요. 너무 예쁜 거예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죠. 사람이 표현해 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자연에는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습니다.”
짹짹휴게소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도 거창한 계기는 없다. 요즘 대부분의 취미가 그렇듯 가장 많은 유입 경로는 유튜브 알고리즘이다. 그간 무심히 지나쳤던 도심 속 생명체들이, 알고 보니 이렇게나 귀엽고 멋지다는 사실을 영상으로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새에 관심을 보이는 자녀나 연인과 함께 방문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오히려 동행한 사람이 더 큰 흥미를 느끼면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한다.

탐조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바가 있다면 단연 예상 밖의 재미다. 다들 ‘탐조를 하면 어떨 것이다’라는 막연한 짐작을 하고 오지만, 홍 대표가 후기로 전해 듣는 즐거움의 크기는 항상 그 이상이다. 생각해 보면 수많은 이들이 공룡이나 곤충, 파충류에 몰두했던 유년 시절을 건넜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탐조에 흥미를 느끼는 건, 수십의 시간이 흘렀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탐험가의 피를 품고 있기 때문 아닐까.
“제가 새를 본 지 6년 됐어요. 지금까지 짹짹휴게소를 운영하는 비용은 모두 제 사비였습니다. 결혼 자금도 깼어요.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죽어야 하는 상황이에요.(웃음) 그래도 행복해요. 2년 전인가, 배 타고 선상 탐조를 나갔었거든요. 안개가 심해서 한 치 앞도 안 보였는데,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머리 바로 위를 지나가더라고요. 그런 경험은 돈 주고도 못 해요. 죽기 직전에 그 장면이 맨 먼저 떠오를 것 같아요.”
새가 물어다 주는 즐거움
디톡스이자 도파민
탐조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회로부터 잠시나마 거리를 두는 정신적 디톡스에 가깝다. 나뭇가지의 미세한 흔들림이나 작게 퍼지는 새소리에 온 감각을 모으다 보면 복잡하던 머릿속은 자연스레 비워진다. 홍승민 대표는 탐조를 하면서 성격마저 바뀌었다. 이전에는 거친 주방에 걸맞은 불같은 성격이었지만, 새를 보기 위해선 그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화를 내면 날아갈 테고, 서두르면 놓칠 테니까.
“저도 잘 몰랐는데요. 제가 예전에는 엄청나게 급했대요. 탐조하면서 성격이 아예 개조된 거예요. 새를 볼 때는 기다리고, 참고, 인내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전에 없던 여유가 저한테도 생긴 거죠. 인생 자체가 새를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해요. 유유자적하는 느낌이랄까요.”

자칫 지루해 보인다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롯이 나의 눈과 귀로 직접 새를 포착하고, 도감을 뒤져 이름과 생태를 확인했을 때의 성취감을 상상해 보라. 나만의 도감을 하나둘 채워가는 재미는 의외로 쏠쏠하다. 되레 어지간한 자극에는 꿈쩍도 안 하는 도파민이 생각지도 못하게 샘솟을지 모른다.
“처음 보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새를 만나면 항상 이름이 뭐냐고 물어봐요. 물론 말이 통한다는 말은 아니고요.(웃음) 몰랐던 친구들의 이름을 알아냈을 때 너무 재밌어요. ‘나 이런 새 봤어’, ‘나 이런 새 구분할 줄 알아’ 같은 자랑이 아니라 ‘내 주변에 이런 새도 살고 있었네’에 가까워요.”
주의할 점도 있다. 새를 얼마나 많이 발견하고 기록했는지를 앞세우는 지적 허영심과는 초점이 조금 다르다. 이 부분을 간과한 채 남보다 더 귀한 새를 봐야 한다는 경쟁심으로 변질되거나, SNS에 자랑하기 위한 사진이 목적이 되는 순간 탐조는 독이 된다. 홍 대표 역시 희소한 새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이를 조절하는 것 역시 탐조의 일환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쌍안경이나 망원경이나 카메라로 새를 관찰하면 어느 정도는 감정이 읽혀요. 적어도 불안한지 편안한지는 알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찍어서 올리는 사진을 보면 대부분 새들이 불안해해요. 그런 것들을 모르고 계속 그냥 사진만 찍어대는 분들이 계셔서 안타깝죠.”
어떻게 시작할까
장비보다 중요한 게 있다
탐조는 어떻게 시작하면 될까? 소위 장비병이 있는 사람이라면 겁부터 먹을지 모른다. 깃털 한 올까지 선명한 SNS 속 사진처럼 찍기 위해선 집채만 한 카메라가 필요할 테니까. 홍승민 대표는 초심자에게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굳이 고르자면 쌍안경 1개, 도감 1권만으로 충분하다. 도합 10만 원 초반대 정도로만 투자하면 평생 새를 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AI 시대에 도감이 필요한가 싶겠지만, 아직 새의 종을 구분하기엔 한참 이르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쌍안경 하나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서라는 말은 아니다. 십중팔구 막막함만 안고 돌아올 테니까. 소리는 사방에서 들리는데 새는 안 보이고, 겨우 찾았다 싶으면 이미 날아간 뒤다. 홍 대표는 탐조 팀의 프로그램에 몇 차례 정도는 참여해보기를 권한다. 많은 팀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통해 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장비 대여가 가능한 곳도 있다. 그렇게 여러 번 나가다 보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새를 보고 싶은지, 어떤 새에 끌리는지에 대한 나름의 ‘쪼’가 생긴다. 그게 잡히고 나서 혼자 나서도 늦지 않다.
스승을 찾는 것도 탐조에 발을 들이는 좋은 방법이다. 먼저 길을 튼 스승이 있으면 비교적 편하게 탐조 생활을 즐길 수 있다. 홍 대표 역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가 스승으로 여기는 한 분이 울산에도 새가 많으니 울산을 기록해 보라고 제안했고, 이 한마디는 짹짹휴게소가 울산의 자연생태를 기록하게 된 시작점이 됐다.
현장에서는 이론보다 관찰이 먼저다. 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를 눈과 귀로 먼저 익혀야 한다. 아무리 도감을 달달 외워봤자 순식간에 날아가는 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중백로와 중대백로는 둘 다 온몸이 흰 백로인데, 머리 형태와 부리 옆 피부색이 미묘하게 다르다. 나란히 세워놓지 않는 이상 초심자는 구분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갓 시작한 단계에서 이런 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눈은 땡그랗고, 털은 복실복실하고, 날갯짓은 힘차고. 보이는 그대로를 느끼면 그걸로 족하다. 나중에 욕심이 생기면 그때 카메라도 사고, 직접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종을 기록해 나가도 늦지 않다. 처음에는 새의 귀여움을 즐기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가장 가까이서 시작하기
핵심은 일상성
흔히 탐조를 하러 간다고 하면 어디 멀리까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새를 보기 좋은 장소는 수도권에도 즐비하다. 강서습지생태공원은 탐조 명소로 잘 알려졌고, 창경궁 춘당지는 원앙의 쉼터로 유명하다. 남산, 중랑천, 어린이대공원, 국립수목원 등 도시 곳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새들이 찾아온다. 소풍 나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해 봄 직한 곳들이다.
탐조하기 좋은 공간을 여럿 소개했지만, 사실 어디서 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름이 거창할 뿐 탐조는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거주지가 어디든 매일 참새와 비둘기를 보고, 직박구리의 울음소리가 잠을 깨운다. 청계천만 나가도 청둥오리 가족이 줄지어 헤엄친다. 늘 곁에 있던 새들을 알게 모르게 관찰하며 살아온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 아파트나 주택에 거주하시잖아요. 알고 보면 집 주변에도 새들이 꽤 많이 찾아옵니다. 저도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만 60종 가까운 새를 봤거든요. SNS에서 비둘기가 에어컨 실외기에 둥지를 틀었다든지, 황조롱이가 찾아왔다든지 하는 영상도 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탐조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탐조를 위해 계획을 짜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새에 눈길을 건네고, 가볍게 핸드폰으로 찍어보는 게 오히려 진정한 탐조에 가까울 수 있다. 같은 장소에도 시간에 따라,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새가 다르다. 오늘은 보이지 않던 새가 내일은 올 수도 있다. 탐조에서 진정으로 느낄 수 있는 기쁨은 우연으로부터 온다.
느리게 걸으면 보이는 것들
옥류천 탐조 동행기
백문이 불여일견. 탐조의 매력을 직접 확인해 보고자 홍 대표와 함께 길을 나섰다. 장소는 짹짹휴게소에서 멀지 않은 옥류천 근방. 그가 수없이 드나들었다는 이곳은 의외로 어디서나 마주칠 법한 동네 뒷산 같은 분위기였다. 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위로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탐조지에 가면 사방에서 새가 날아다닐 줄 알았건만, 완벽한 착각이었다. 막상 찾으려 들자 새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취를 감췄다. 소리에 집중해 보라는 조언에 따라 귀를 최대한 열었다. 그제야 먼발치에서 삐비빅- 하는 울음이 잡혔다. 박새라고 했다. 하지만 쌍안경을 아무리 돌려봐도 끝내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새 한 마리 보는 게 이토록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일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얼마 가지 않아 익숙한 실루엣과 마주쳤다. 길 위를 총총 뛰어다니는 참새 무리였다. 가까이 가도 좀처럼 달아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아기 새들이었다. 쉴 새 없이 삐약대는 저 소리마저 어미에게 밥을 조르는 베깅 콜(begging call)이라는 홍 대표의 설명에, 부모 새도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습고도 짠했다. 새를 본다는 건 단순한 관찰을 넘어 잠시나마 그들의 이웃이 되는 일이었다.

결과물을 남기고 싶다는 욕심에 새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부리나케 카메라를 들었다. 하지만 셔터를 누르는 족족 허탕이었다. 뱁새도 뻐꾸기도 소리만 흘리고 떠나갔다. 렌즈에 담은 건 다시 돌아온 참새 한 마리가 전부. 그 한 컷만으로도 감개무량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사람들이 왜 귀한 새 사진에 그토록 목을 매는지 어렴풋이 알 듯했다.
신기한 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탐조의 핵심을 몸이 먼저 알았다는 점이다. 바로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분명 새를 보러 왔는데, 걸음을 늦추니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경관이 커다랗게 다가왔다. 개울은 흐르고,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 찌르르 우는 이름 모를 벌레, 새들의 울음소리까지. 탐조의 진짜 피사체는 새가 아니라 그 새를 품은 자연 전체일지도 모르겠다.
반나절 만에 에디터의 세상은 전보다 시끌벅적해졌다. 쌍안경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도 새소리는 이어졌으니까. 항상 무심히 지나치던 그 소리가 조금은 궁금해졌다. 넌 이름이 뭐니, 이름을 묻고 싶었다. 오늘 하루만큼은 이어폰을 빼고 먼발치의 기분 좋은 소란에 귀 기울여보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