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쓴 정우영의 직업은 에디터다. 그동안 그는 바이닐 레코드를 수천 장 샀고, 또 수천 장 팔았다. DJ로 음악을 틀고, 믹스테이프를 만들었으며, 음악 바 ‘에코’도 운영했다. 에디터로 일하면서도 오랫동안 음악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걸 계속 좋아하는 건 쉽지 않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예전에 좋아했던 것’이 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선명하지 않을 때도 있다.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 것을 지켜낼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것을 더 선명하게 밀고 나가는 정우영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이닐 레코드를 수천 장 사고팔았다. 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했나?
스물한두 살쯤부터였던 것 같다. 사실 그때는 바이닐이 지금처럼 비싼 물건이 아니었다. MP3가 나오고 CD 시장도 무너지던 시기라, 오히려 가장 저렴하게 음악을 살 수 있는 매체가 바이닐이었다.
또 듣고 싶은 음악들이 모두 바이닐이었다. 당시 레어 그루브 같은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사고 싶은 음반을 찾아보면 CD는 없고 바이닐인 경우가 많았다. 세상에 나온 훨씬 많은 음악이 바이닐 안에 남아 있던 거다. 그렇게 바이닐을 들으면서, 차트나 미디어가 소개하는 음악보다 내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직접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이렇게 음악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나.
전혀. 어릴 때는 게임을 더 좋아했다. 음악도 듣긴 했지만 삶의 중심은 아니었지. 그러다 중학생 때 용돈을 모아서 처음 CD 플레이어를 샀다. 친구들은 ‘그걸 어디에 쓰냐’라고 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음악은 당장 쓸모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음악을 조금 진지하게 듣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전율 같은 걸 느꼈다.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이걸 그냥 무시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 감동을 모른 척하고 사는 건, 나한테 거짓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뭔지 알고 싶었고, 그 마음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직업은 에디터였지만 DJ를 하고, 음반을 만들고, 음악 바 ‘에코’도 운영했다. 왜 음악을 계속 삶 가까이에 두려고 했나?
뭔가를 너무 좋아해서 푹 빠지는 시기는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 대부분 10대 후반이나 20대쯤이다. 많은 사람은 거기서 멈춘다. 시간이 지나면 음악도 ‘예전에 좋아했던 것’이 되고, 10대와 20대를 추억하는 일이 된다. 나는 그게 싫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게 어느 순간 내 삶에서 사라진다는 걸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이유를 만들었다. 음반을 내고, 믹스테이프도 만들고, 친구들과 공간도 운영했다. 일부러 음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거다. 에디터, 기획자, DJ, 바 사장.. 프로필에 이것저것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 다음 이유를 만든 셈이다.

무언가를 혼자 계속 좋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결국 사람들의 영향이 컸다. 10대, 20대에 누구를 만났는지가 지금의 나를 많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지나고 보니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다 에디터가 됐더라. 당시 음악하는 친구들도 많이 알았지만,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아니었다. 만약 가장 친한 친구들이 아티스트였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친구를 만나면서 원래 관심 없던 것들도 많이 보게 됐나.
만물 상점 ‘우주만물’을 같이 운영한 것도 그런 계기였다. 만약 그곳이 아니었다면 친구들이 좋아하던 사진집이나 잡지, 컬렉터블 같은 것들은 아마 평생 몰랐을 거다. 평소 내 관심 밖에 있던 것들이니까. 그런데 가까이 있다 보니 흥미로운 것들이 보였다.
실제로 그렇게 좋아하게 된 것도 있었나.
도라에몽. 사진가 이윤호라는 친구와 우주만물을 같이 했는데, 작은 문구점 같은 데서 파는 장난감을 가져와 팔곤 했다. 나는 그냥 허접한 공산품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런데 친구가 물건을 진열하고, 사진을 찍어 맥락을 만들자 전혀 다르게 보였다. 귀엽더라.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끝까지 그렇게 보지 못했을 것 같다.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중요했나 보다.
혼자서는 어렵다. 새로운 일을 만든다는 건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니까. 사람들과 같이 뭔가를 하다 보면 원래 내 세계에 없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나는 내 것이 아닌 세계를 먼저 보고, 그 안에서 내 것을 고른 셈이다.
요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관심사를 찾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좋아하는 걸 찾아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고.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거 없다. 제도권 안에서 해결할 필요도 없고. 만약 사진을 좋아하는데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회사 다니며 사진을 찍으면 된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안에서 관련된 다른 걸 찾을 수 있다. 다른 관심사가 생길 수도 있고.
새로운 걸 계속 받아들이면 오히려 내가 뭘 좋아하는지 흐려질 수도 있지 않나?
카프카가 한 말 중에 좋아하는 문장이 있다. ‘너의 활동 무대를 계속 좁혀라. 그리고 그 바깥에 네가 숨어 있지 않은지 계속 찾아라.’
뭔가를 오래 하다 보면 세계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점점 뾰족해지는 거다. 그런데 그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느 순간에는 그 바깥도 계속 봐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도 받아들이고, 결국 내 것도 계속 남겨온 거네.
그런 셈이다.

5000장의 음반을 사고팔았다. 레코드를 계속 정리한 것도 같은 이유였나.
처음에는 현실적인 이유였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고, 물리적인 한계도 있었다. 만약 내가 재벌 집 아들이었다면 굳이 팔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이유가 생겼다. 레코드가 너무 많아지면 결국 다 듣지 못한다. 4천 장에서 3천 장으로 줄이는 건 쉽지만, 3천 장에서 2천 장으로 줄이는 건 정말 어렵다. 그때부터는 좋아하는 음반도 내보내야 한다. 결국 끝까지 즐길 수 있는 만큼만 남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걸 내보내는 게 아쉽지는 않았나.
전혀. 나한테 남아 있는 건 물건이 아니라 경험이니까. 음반을 들었던 시간은 이미 내 안에 있다. 그걸 내가 알고 있고.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됐나.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 ‘바이닐은 반영구적인 매체’라고. 그때 처음으로 ‘내 차례의 경험은 충분히 했다’는 생각을 했다. 중고 음반은 누군가를 거쳐 내게 왔고, 언젠가는 또 다른 사람에게 간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내 몫의 시간을 보낸 거다.

그렇게 계속 덜어내고, 남기다 보면 무엇을 알게 될까.
점점 더 솔직해지는 거 아닐까?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생각보다 주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다들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좋아할 법한 것이라도,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좋아하면 괜히 싫어질 수도 있지.
그런데 하나씩 걸러내다 보면 아주 작은 덩어리만 남게 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말이다.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건 남들이 좋아해서, 거기에 속하고 싶어서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거였구나’하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거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좋아했던 척했던 게 있나?
대표적인 게 시티팝이다. 사실 처음에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았고, 막연히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풍요로운 시대의 감수성을 담고 있는 음악이라는 이미지도 있었고, 나는 그런 정서와는 거리가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에코를 운영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손님들이 시티팝을 자연스럽게 즐기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이를 함께 경험하면서 영향받았다. 결국 좋아하게 되더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도 달라질 수 있었다.
솔직해진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솔직하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걸 설명해야 하는 일이다. 왜 내가 이걸 좋아하는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뭐가 나한테 중요한지 계속 들여다봐야 하니까.
내가 말하는 솔직함은 세상을 향한 게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솔직함이다. ‘나는 외롭다’, ‘누군가가 필요하다’ 같은 것도 결국 솔직함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정하는 거지. 인정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많은 게 해결된다.

그렇게 하나씩 걸러낸 후, 이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게 됐나?
아니다. 지금도 계속 확인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맞는지, 거기에 너무 쉽게 나를 겹쳐 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의심은 여전히 한다.
아직도 뭘 확인하고 있나?
좋아하는 것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를 오래 좋아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이나 말이 어느 순간 내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나도 그랬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고, 나는 나인 거지. 그렇게 조금 거리를 두니까 더 많은 게 보였다. 강태환에게도 배우고, 디터미네이션스에게도 배우고, 라디오헤드에게도 배웠다. 누구 하나가 전부가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서 조금씩 영향받았다는 걸 알게 된 거다. ‘난 이걸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아닐 수도 있다.’ 지금은 그 정도의 거리를 두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요즘은 무엇에 관심이 가나. 아직도 새로운 게 궁금한가?
최근에는 신부님을 인터뷰하면서 종교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옛날 명랑만화 스타일로 그림 그리는 작가들을 찾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고독사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시민단체를 알게 됐는데, 그 이후로 계속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음악에서 시작했는데, 관심이 계속 다른 곳으로 뻗어나가는 것 같다.
자연스러운 것 같다. 하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거기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음악을 좋아하면 뮤지션이 입은 옷을 보게 되고, 커버 아트를 보게 되고,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는 것처럼. 결국 음악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 문화를 좋아하게 되는 거다. 사실 음악만 그런 건 아니고. 뭘 좋아해도 결국 그 하나만 좋아하게 되는 일은 별로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