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9일, 제네시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GV90을 공개했다. 이번 모델에 대해 가장 많은 말이 오간 건 다름 아닌 문이었다. 최고급 트림인 네오룬에 들어간 ‘네오룬 아치 게이트’. 앞문과 뒷문이 가운데서 마주 보며 열리는 코치 도어로, 두 문 사이를 받치는 B필러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제네시스는 이 구조에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사실 코치 도어에는 유명한 이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수어사이드 도어다. 이 험한 별명은 한 세기 가까이 이 문을 따라다녔다. 보기에는 그저 열리는 방식이 조금 다른 정도인데, 이 문은 어쩌다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그럼에도 제네시스가 이 문을 가져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마차를 계승한 문
탑승객을 위하여
자동차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이 정체 모를 물건은 ‘말 없는 마차’라 불렸다. 짐승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움직인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붙은 별명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마차의 구조를 상당 부분 계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도 그중 하나다. 초기 자동차는 뒤쪽에 경첩을 달아 앞을 향해 열리는 마차의 문 구조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4도어도 마찬가지. 앞문은 앞쪽에, 뒷문은 뒤쪽에 경첩을 달아 두 문이 가운데서 마주 보며 열리게끔 설계했다. 양문형 냉장고를 떠올리면 쉽다.

뒷문이 앞을 향해 열리면 승객이 내리기 훨씬 편해진다. 요즈음의 자동차를 잠시 떠올려 보자. 뒷좌석에서 하차하려면 몸을 구기고 비틀어 방향을 잡아야 한다. 지금이야 이 과정이 어찌저찌 익숙해졌지만, 유심히 보면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반면 문이 앞을 향해 열리면 그대로 발을 딛고 걸어 나갈 수 있다. 우아하게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마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마차를 타던 사람들은 자동차 시대로 넘어와서도 여전히 뒷자리에 앉았다. 택시 이야기다. 영국 법에서는 지금도 택시를 마차(Hackney carriage)라 부른다. 런던 당국은 이 문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뒷좌석을 드나들기에 자연스럽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고, 요금을 안 내고 도망치기 어렵다는 점도 한몫했다.

그래서인지 런던의 명물인 검은 택시는 승용차 업계에서 뒤쪽 경첩 문이 외면받은 뒤로도 이 문을 유독 오래 붙들고 있었다. 1958년에 나온 오스틴 FX4는 1997년 단종될 때까지 한 번도 문을 바꾸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런던 곳곳을 누볐다. 2006년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됐을 때도 적잖은 기사가 기존의 차를 고집했을 정도로.
어떻게 이름이 수어사이드 도어
안전은 품격보다 중요하다
무엇보다 승객을 우선한 구조임이 무색하게 이 문에는 험한 별명이 있다. 수어사이드 도어, 우리말로 완곡하게 표현하자면 살자(?) 문. 이 문으로 내리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이름을 누가 언제 붙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지간히 영향력을 발휘한 탓에 이름을 지은 사람이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갔을 성싶다.
유래에 대한 설명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달리는 중에 문이 조금이라도 풀리면 맞바람에 문이 활짝 열렸고, 안전띠를 매지 않던 시절이라 승객이 도로로 떨어졌다는 것이 첫 번째. 갱들이 달리는 차에서 사람을 밀어버리기 좋아 즐겨 썼다는 이야기가 두 번째다. 마지막은 내리던 승객이 문에 끼인다는 설명이다. 사람이 내리는 중 뒤에서 오던 차가 문을 들이받으면 문이 승객 쪽으로 접히면서 다리를 덮친다. 앞쪽 경첩이었다면 문만 밀려나고 끝났을 일이다.

변호사이자 사회 운동가 랠프 네이더의 저서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Unsafe at Any Speed)는 이 별명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타였다. 자동차 회사들이 돈을 아끼려 안전 기술을 미뤄왔다고 고발한 이 책은 뒤쪽 경첩 도어를 구체적인 우려 항목으로 지목했다고 알려져 있다. 네이더가 이름을 지은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계기를 제공한 건 분명했다.
근거 없는 공포만도 아니었다. 책이 나오고 4년 뒤인 1969년 컨슈머리포트가 스바루 360을 시험하다 첫 번째 상황을 그대로 겪었다. 덜 잠긴 문이 주행 중 바람에 끌려 열려버린 것이다. 컨슈머리포트는 성능과 충돌 안전성까지 묶어 이 차에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그 영향이었을까? 스바루는 한동안 미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제조사도 하나둘 손을 떼기 시작한다. 출시 때부터 뒤쪽 경첩이었던 이탈리아의 국민차 피아트 500은 1965년 F 모델부터 경첩을 앞쪽으로 바꿨다. 프랑스의 시트로엥 2CV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선택을 한다. 판매가 저조하지도 않았다. 피아트 500만 해도 뒤쪽 경첩을 달고 있던 마지막 5년 동안 64만 대가 넘게 나갔다. 그럼에도 변화를 감행한 이유는 안전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조금 다른 연유로 마지막을 맞이했다. 포드 선더버드는 1967년에 4도어 랜도 세단을 새로 내놨다. 첫해에는 24,967대가 팔리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그 기록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1970년 8,401대, 이듬해 6,553대를 끝으로 단종 엔딩. 그렇게 미국 승용차에서 수어사이드 도어는 자취를 감췄다.
코치 도어의 탄생
롤스로이스가 만든 이름
이 문이 대중 차에 다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뜻밖에도 픽업트럭에서였다. 1996년 GM은 확장형 캡 픽업에 뒷문을 하나 더 달아 팔기 시작했다. 그 문이 바로 뒤쪽 경첩이었다. 그전까지는 뒷좌석에 타려면 앞좌석을 밀고 몸을 접어 넣어야 했다.

이 방식을 승용차로 옮겨온 1999년형 새턴 쿠페는 운전석 쪽에 뒤쪽 경첩 문을 하나 더 달았다. 다만 앞문을 먼저 열어야 뒷문이 열린다는 조건이 붙었다. 두 문이 물려 있으면 바람에 젖혀질 일도, 승객이 도로로 떨어질 일도 없다. 이 조건은 한동안 표준이 된다. 2003년 마쓰다 RX-8이 그랬고, 2013년 BMW i3도 그랬다. 심지어 i3는 운전석 안전띠가 뒷문에 달려 있었다. 앞사람이 벨트까지 풀고 내리기 전에는 뒤에 앉은 사람이 나올 수 없는 다소 웃픈 상황이 펼쳐졌다.
예외는 있었다. 2003년 롤스로이스가 내놓은 팬텀 7세대다. 이 차의 뒷문 역시 뒤쪽 경첩이었지만, 다른 차들과 달리 앞사람이 내리든 말든 뒷사람이 알아서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다. 롤스로이스가 이 문을 정해진 사양으로 내놓은 건 7세대가 처음. 여기서 코치 도어라는 이름이 붙는다. 본인 회사 제품의 문을 수어사이드 도어라 부를 수는 없었을 테니까. 롤스로이스만 작명에 나선 건 아니다. 마쓰다는 같은 문을 프리스타일 도어라 불렀다.

물론 처음부터 순순히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팬텀 출시 당시 기자들은 코치 도어를 여전히 수어사이드 도어라 적었다. 그럼에도 롤스로이스는 20년 넘게 이 문을 달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노력은 점차 빛을 발했다. 2019년 링컨은 한정판 이름을 아예 코치 도어 에디션이라 붙였고, 제네시스 역시 GV90을 소개하며 이 말을 사용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살벌한 별명은 여전히 쓰인다. 하지만 공식 석상에서 쓸 수 있는 이름이 생긴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코치 도어와 B필러의 관계
GV90은 뭐가 다를까
제네시스는 GV90의 구조를 설명하며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썼다. 무엇이 처음이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문 사이를 살펴봐야 한다. 마차에는 없고 자동차에는 있는 구조. 지붕과 바닥을 잇는 기둥, B필러를 말이다. 옆에서 들이받혔을 때 상대 차가 실내로 밀고 들어오는 걸 막고, 차가 뒤집혔을 때 지붕이 주저앉지 않도록 떠받친다.

보통 차에서는 B필러가 거슬리지 않는다. 뒷문 경첩이 기둥에 붙어 있어 앞뒤 문이 각자 제 구역을 연다. 코치 도어는 다르다. 뒷문 경첩이 차 뒤쪽에 있으니 두 문을 열면 앞뒤가 하나의 입구처럼 넓게 트인다. 그런데 그 한가운데에 기둥이 떡 하니 남는다. 널찍해 보일 수 있었던 내부가 반으로 갈라져 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롤스로이스 팬텀에는 B필러가 있다. 그것도 꽤나 두껍게. 기둥이 문 사이를 받치고 있으니 뒷문이 앞문에 걸쇠를 물릴 필요가 없다. 팬텀의 뒷문이 혼자 열릴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다. 제네시스는 이 둘을 한꺼번에 해결했다고 말한다. 기둥을 없애면서 문은 따로 열리게 만들었다고. 어떻게 해서 가능했을까?
기둥을 없앤다고 그 역할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옆에서 들이받혔을 때 실내를 지키는 일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래서 GV90은 기둥을 문안에 집어넣었다. 문 속에 초고강도 강철 빔을 심고, 문이 닫히면 그 빔이 차체와 맞물리도록 설계했다. 충격이 오면 문과 차체가 그 힘을 나눠 받는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 앞문이 뒷문에 잠긴다는 점이다. 뒷문부터 열고 싶어도 열리지 않는다. 앞서 나온 i3의 운전석 안전띠가 뒷문에 달려 있던 것도 같은 사정이다. GV90은 여기서 한 단계를 더 넣었다. 뒷문을 곧바로 젖히지 않고, 먼저 바깥으로 살짝 밀어낸 다음 돌린다. 앞문에 물려 있던 자리에서 빠져나온 뒤에 열리는 방식이다. 문턱도 기둥도 없이 손님을 맞이하던 마차의 역할이 이제야 온전히 돌아오게 되었다.
사라지지 않는 문
환대는 영원히
자동차에는 이상한 문이 여럿 존재한다.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설계상의 이유로 탄생한 케이스도 더러 있다. 메르세데스 300SL의 걸윙 도어는 튜블러 프레임 때문에 문턱이 높아져 옆으로 열 방법이 없어 나온 형태다. 람보르기니의 시저 도어도 비슷하다. 디자이너의 욕심도 없진 않았지만, 후방 시야가 워낙 나쁜 탓에 운전자가 문을 열고 상체를 내밀어 뒤를 보며 후진하라는 실용적인 이유도 분명 있었다.

걸윙 도어와 시저 도어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시절의 이유는 남아 있지 않다. 요즘 차에는 후방 카메라가 있고, 문턱을 낮게 만들 방법도 얼마든지 있다. 람보르기니는 이 문을 두고 ‘신화’라는 표현을 쓴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상징의 개념으로 탑재한다는 것이다.
코치 도어는 다르다. 뒷좌석에 사람이 타는 한, 그 사람이 어떻게 내릴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100년 동안 이 문이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차 호세 무뇨스 사장은 GV90을 공개하며 이 차가 한국적 환대를 구현했다고 언급했다. 마부가 마차 문을 열어주던 시절 환대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