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간관계에서, 연애 시장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회피형. 안타깝게도 좋은 뜻에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 아니다. 무조건 피해야 한다, 절대 만나면 안 된다는 식이다. 심지어 이러한 여론은 점점 더 과열되고 있고, 혹자는 이 사회에서 축출해야 하는,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과격한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정말 회피형은 절대악의 존재일까? 단정 짓지는 말자. 알고 보면 나조차 몰랐던 회피 성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회피형이 대체 뭔지, 회피형으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피형과 연애는 가능한 일인지. 화수분처럼 쏟아지는 회피형 관련 궁금증을 하나씩 해결해 보자.
회피형이 이별을 고한 이유
알고 보면 갑자기가 아니다
여기, 최근 연애의 종지부를 찍은 남녀의 이야기가 있다. 실화 기반이다.
A와 B는 3년을 만났다. 연애 동안 단 한 번도 크게 싸워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서도 항상 보기 좋은 커플이라 불렸다. 그러던 어느 날, B는 갑작스럽게 A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영문도 모르고 헤어지게 된 A는 B에게 이유를 물었다. B는 A가 연애 초반에 자신의 행동을 지적했던 일을 언급하며 ‘상처였다’라고 말했다. A는 황당했다. 기억이 흐릿하긴 해도 분명 당시에는 별일 아닌 것처럼 넘어갔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속 B는 요즈음 사람들 사이에서 회피형으로 불리는 유형의 전형적인 행동 방식을 보여준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실은 ‘회피형’이라는 개념이 생각보다 근본 있는 단어라는 점이다. 영국 정신과 의사 존 볼비의 애착 이론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유아기에 양육자와 맺은 관계가 이후의 대인관계 틀을 만든다는 이론이다.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혼란형으로 나뉜다.
물론 지금 심리학을 공부하자는 건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회자되는 회피형과 엄밀한 의미에서의 회피형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을 알아두길 바랄 뿐이다. 연애 시장에서 오르내리는 회피형은 ‘회피’라는 단어에 집중한, 온갖 사람들의 경험 총체에 가깝달까. 모두가 핏대를 세워가며 욕하는 그들의 특징은 대략 이렇다. 연락 공백, 갈등 회피, 답변 거부, 침묵 유지 등.

다시 한번 A와 B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B의 입장이다.
연애 초반, B는 자신의 행동을 지적하는 A에게 크나큰 서운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나쁜 사람이 되기도, 그걸로 싸우기도 싫었다. 문제는 그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떠올랐다는 것이다. 비슷한 순간마다 그 기억은 돌아왔다. 점점 더 A와 함께하는 미래가 불안해졌다. 그래서 헤어짐을 고했다. A가 이유를 물었을 때 꺼내 든 건 오래된 일이었지만, 사실 그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댈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였을 뿐이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갈등을 삼키는 것의 형태는 겉만 봐선 동일하다. 싸움 없는 3년은 A에게 평화였지만 B에게는 인고였다. 안타깝게도 본인이 그 사실을 가장 늦게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적당히 넘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눈에는 배려가 넘쳐 보이고, 무던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결국 중요한 결정조차 미루고, 떠넘기고, 도망친다. 혹은 B처럼 예고 없이 터져 버린다.
어쩌면 나도 회피형일지 모른다
시작은 인지에서부터
간혹 연애하면서, 심지어 살면서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누구보다 안정형으로 보이는 이들. 평화야말로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인 만큼 축하해 마땅할 일임은 분명하다. 다만 본인이 그런 케이스라면 한 번쯤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살면서 화가 나는 일이 진정 단 한 번도 없었나? 어쩌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순간의 갈등을 외면해 오지 않았나?

이 글은 회피형을 죄악으로 낙인 짓는다거나, 사회에서 피해야 할 존재로 규정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회피 성향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성향일 뿐. 간혹 정도가 지나친 케이스를 인터넷상에서 적잖이 목격했겠지만, 그건 질병에 가까운 극단의 사례로 보는 편이 맞다.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그 모든 사람을 싸잡아 넣으면 너무 많은 이가 억울해하지 않겠나.
게다가 회피형이라 불리는 케이스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선택이 필요한 상황에서 상대에게 전부 맞춰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수틀리면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방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합리화로 밀어붙이는 유형도 있다.
드러나는 모습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을 회피형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제각각의 형태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 맞춰주고 침묵하면 어쨌든 부딪치지 않는다. 자기합리화를 계속하면 상대로부터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방식이 어떻든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의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을 피하고 있다면 회피형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회피형 중에서는 꽤 안정적인 연애를 이어가는 케이스도 많다. 회피형과 불안형 둘 다 만나본 C는 이렇게 전했다. 연인 상대로 불안형과 회피형 중에 골라야 한다면, 주저 없이 회피형을 고르겠다고.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C의 입장에서는 본인을 통제하려 드는 불안형이 더 고역이었다. 세상 무너질 듯 싸우고 구속을 당하느니, 조금 답답하더라도 각자의 삶이 있는 쪽이 더 맞았던 거다. 회피형이 더 나은 유형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형에는 우열이 아닌 궁합이 있을 뿐이다.
안정적 연애를 꿈꾸는 회피형에게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으니까
이제서야 자신이 회피형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 사람들이여.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자고로 사람은 바뀌지 않는 법, 타고난 성향이 이런 걸 어떡해, 라고 생각했다면 부디 그 강을 건너지 마시길. 사고의 회로가 그쪽으로 가는 순간 ‘난 회피형이니까’라는 또 하나의 자기합리화 거리만 늘어날 뿐이다. 타고난 성향을 탓하지는 않겠지만, 온 세상이 치를 떠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회피형의 대표적인 행동 패턴으로 꼽히는 두 가지, 안읽씹과 잠수. 상대방이 이 행동에 분노하는 이유는 그저 거리를 두기 때문이 아니다. 왜 거리를 두는지 끝끝내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말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솔직해져 보자. 정녕 그 시간 내내 그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가? 오히려 머릿속에서 싹 잊은 채 편한 일상을 보내지는 않았는가?

‘싸우고 나서 이틀째 연락이 안 돼요’, ‘한 달째 잠수 중인 상대 기다리고 있어요’. 연애 고민 게시판에 수도 없이 올라오는 유형이다. 걱정과 초조로 가득하던 상대방의 마음은 점차 지치고, 결국 너덜너덜해진 채 포기에 이른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현실로부터 도망친다는 건 알지만, 그 행동은 결국 그 상처를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한을 정해두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잠시 거리를 두고 싶은 것도 괜찮다. 다만 그게 언제까지인지를 정해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1시간만 지나고 이야기하자, 사흘만 시간을 줘, 일주일 뒤에 연락할게.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일 자체가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끝이 보이는 기다림이 백배 천배 낫다. 가능하다면 24시간 안에 끝내는 게 베스트.
평상시에 적용하기 좋은 방법도 있다. 회피형의 대답 3대장, ‘괜찮아’, ‘상관없어’, ‘네 맘대로 해’를 구체적인 답변으로 대체하는 거다. 사소하게는 저녁 메뉴를 고르더라도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말 대신 더부룩해서 간단하게 먹고 싶다, 점심으로 중식을 먹어서 그것만 아니면 좋겠다는 식으로. 회피형은 본인이 원하는 바가 뭔지 들여다보고, 그걸 표출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별일 아닌 듯 보이지만 변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성향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회피형 인간’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장본인인 정신과 의사 오카다 다카시 역시 성인이 되어서도 성향은 바뀔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스스로 바뀌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무엇도 무의미하다. 사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회피형과 사랑할 수 있을까
가시밭길일지 모르지만
회피형이 있다면 회피형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겠다. 회피형과의 연애, 가능할까? 우선 알아둬야 할 점이 있다. 회피 성향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다. 이 사람은 회피형이다 아니다를 칼로 무 베듯 나누는 게 아니라, 100점 만점에 몇 점짜리 회피 성향을 가졌느냐에 가깝다.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어느 정도의 회피 성향은 품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회피형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성향이 어느 정도로 짙으냐다. 적정선이라면 성향을 존중하는 쪽의 연애가 가능하다. 하나만 기억하자. 회피형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바꾸려는 시도에 거부감이 강하다. 침묵하거나 물러서려는 상대를 붙잡고 몰아세우면 관계는 그 자리에서 끝나버릴지 모른다. 답답하더라도 시간을 주는 편이 낫다.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닌, 안전함을 느끼고 스스로 다가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명백한 갑과 을의 관계가 되어서도 안 된다. 연락이 어려우면 어렵다고 말이라도 해달라는 식의 최소한의 요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마저 지켜지지 않는 관계라면 떠나는 것 역시 선택지에 두어야 한다. 판단을 위해 기록을 남겨두는 것도 권할 만하다. 회피형과의 연애에서 가장 위험한 건 기다리는 데 무뎌진 나머지, 기다림 자체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상황이다. 그럴 때 나의 요구와 상대방의 응답을 기록으로 남겨두었다면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판단할 수 있다.
앞서 C가 회피형을 택한 이유를 떠올려 보자. 그 선택은 C가 특별히 인내심이 남달라서가 아니었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C의 성향과, 거리가 있어야 하는 상대의 성향이 맞았을 뿐이다. 유형에 우열이 아닌 궁합이 있다는 말은, 안 맞는 궁합을 억지로 견딜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성향이 아니라 질병 수준의 극단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을 돌봐야 하는 사람은 연인이 아니라 전문가다. 본인이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거나, 내가 아니면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는 식의 구원 서사는 영화 속 판타지로 남겨두자. 아무 문제 없던 본인의 삶마저 피폐해져 버릴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애착 성향은 불변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바뀔 수 있다. 다만 곁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 주변을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것까지고, 밖으로 나설 발걸음을 떼는 건 결국 동굴 안에 숨은 사람의 몫이다. 회피형도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이 용기를 내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상대방의 존재를 기억해 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