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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사용하지 않을 시계 기능에 집착하는 우리들의 모습
2023-07-31T13:47:33+09:00

feat. 집돌이의 월드타이머 시계.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여행에 걸리적거릴까 봐 눈에 보이는 대로 타임온리 시계 하나만을 챙겨 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손목을 내려다볼 때마다 심심해 보이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그 불만의 연기는 스위스 바젤을 방문했을 때 비로소 멈출 수 없는 산불이 되어버렸다. 시계의 고장 바젤에 처음 왔는데 범용 무브먼트의 중저가 타임온리 시계를 차고 온 내가 한심했다. 마침내 컬렉션에 GMT 시계가 없기도 했고, 세계를 유랑하며 그 경험을 글과 영상으로 풀어내려는 나 정도의 교양 있는 여행자라면 월드타이머 시계는 꼭 하나 필요하겠다는 최면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샀다.

그로부터 5년, 코로나의 여파도 있었지만, 바쁜 삶에 치여 여행다운 여행은 한 적이 없다. 그때는 서둘러 구입하지 않으면 나의 정체성을 위협할 것 같던 월드타임 시계가 지금은 맞추기 귀찮아서 시계함에 고이 잠들어 있다. 아주 가끔 그날 입은 착장과 어울려 차고 나갈 때도 시간을 맞추는 수고는 하지 않는다. 그 결과, 나는 월드타임 시계를 찰 때 세계 각국의 시간은 물론 알 수 없고, 혹시 누가 시간을 물어보는 일이라도 생기면 바로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만 늘었다.

오늘은 이처럼 꼭 필요한 것 같지만 뜨거운 가슴을 식히고 냉철하게 보면 절대 필요 없는 시계의 기능들에 관해 얘기해 보려 한다.

무쓸모지만 갖고 싶은 컴플리케이션 시계 6

01
심해어급 방수력

롤렉스 씨-드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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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언급한 50m, 300m 방수 스펙을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3,900m 방수. 필요 이상으로 준비된 당신에게 적합한 다이버다. 물론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다이버 시계도 존재하지만, 일상에서 찰 수 있는 크기는 이 정도(43mm)가 한계.

02
미친 정확도 크로노그래프

제니스 크로노마스터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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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비트 크로노그래프 하면 역시 엘 프리메로다. 36,000 bph(5Hz)로 1/10초까지 정확하게 잴 수 있다. 1/6초의 정확도밖에 없는 3861 코액시얼 스피드마스터는 낄 자리가 아니다.

03
이토록 영롱한 문페이즈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울트라 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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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실용성이 없는 문페이즈라지만 영롱하게 움직이는 달과 다이얼 위를 수놓은 별을 보면 못 참지. 이왕 감성으로 가는 거 골드로.

04
기능 집약체

파텍 필립 520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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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리즈에 걸맞게 퍼페추얼 캘린더에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그리고 문페이즈까지 넣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작고 깔끔하게 뽑는 파텍의 실력은 알아줘야 한다.

05
경외하라 뚜르비옹

랑에 운트 죄네 리차드 랑에 뚜르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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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같은 키보드 워리어들이 인터넷에선 뚜르비옹을 까도 막상 이 시계가 눈 앞에 있다면 경외심이 생길 거다. 오차를 줄여준다는 말에 갑자기 설득이 된다. 랑에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06
여행 낭만 월드타임

쇼파드 L.U.C 타임 트래블러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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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갈 돈으로 여행 시계를 샀습니다. 안전한 세상에 살면서 좀비 서바이벌을 대비하는 것처럼, 휴가 때 가평 가는 게 전부인 회사원도 세계여행의 낭만을 품은 월드타이머를 꿈꾼다. 아쉽게도 사진 속 동일 모델은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스틸 모델은 판매 중이다. 가격은 2,438만 원. 

방수 : 300m 이하는 안 돼!

그런데 손 씻을 때 물 안 닿게 함.

다이버 베젤은 사실 꽤 유용할 때가 많다. 다만 방수 기능 자체에 목매는 것은 기우다. 시계에 처음 입문할 때가 떠오르는데, 평생 그런 생각 안 하고 잘만 살다가 시계 방수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갑자기 세상의 모든 물이 나의 손목을 노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가를 지나가다가 갑자기 발을 헛디뎌 빠지면 어떡해. 축하해 준답시고 친구들이 내 생일파티에서 나를 수영장에 집어 던지면 어떡해. 제임스 본드처럼 비밀임무 수행 때문에 평상복으로 바다에 바로 뛰어들어야 하면 어떡해. 이러한 쓸데없는 걱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50m 방수(좀 봐줘서 100m 방수)로도 충분히 저런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건 둘째 치고, 무엇보다 나는 살면서 시계를 차고 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수영장 옆을 지나가다가 발이 미끄러진 적도 없고, 옷을 다 입고 있는데 갑자기 입수 충동이 들었던 적도 없다. 예고 없이 헹가래를 당할 정도로 화끈한 친구 무리를 둔 인싸의 삶을 살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한 방면에서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눈물로 젖으면 젖었지…

크로노그래프 : 라면 끓이는 시간 4분?

아니, 정확히 240초간 끓이겠어.

실용성 측면에서 크로노그래프 정도는 봐줄 법도 하지만, 주제가 주제인 만큼 그냥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당연 플라이백 크로노,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같이 복잡한 배리에이션은 애초에 이 관용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에이, 그래도 크로노그래프는 확실한 용도가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도 현실 말고 인싸 헹가래의 상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필요할 것 같은 시나리오를 떠올리는 건 그만두고, 과거에 필요했던 적을 떠올려 보자.

그렇다, 없을 것이다. 초시계 자체도 M세대들 어릴 적 운동회 이후로는 본 적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스마트폰 초시계 기능을 쓰는 게 여러모로 훨씬 편리하다는 말은 치트키니 접어두고, 초시계가 만약 일상에서 요긴한 도구였다면 집에 손전등이나 접착제가 있듯이 초시계도 서랍 어딘가에 있었겠지. 받아들이자. 우리는 크로노그래프가 필요 없다.

문페이즈 : 혹시 늑대인간이세요?

그게 왜 궁금한데.

늑대인간이 아니더라도 달의 주기 변화를 알면 밀물과 썰물의 시간을 파악할 수 있어 15세기 항해사라면 매우 요긴한 기능이다. 또 오늘날 실제로 존재하는 마녀 협회에 속한 대체 종교인에게는 달의 위상을 항상 꿰뚫고 있는 게 중요할 수 있다.

조금 더 현실적으로 유성우 사진을 촬영하는 사진가라면 달이 안 보일 때 별을 더 잘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알면 좋은 점은 있으나, 그럴 경우 단순 시계에 있는 문페이즈에서 주는 정보보다는 훨씬 디테일한 정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차피 인터넷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렇다. 문페이즈는 우리에겐 아무런 쓸모가 없다.

캘린더 : 차린 게 많다는 말은

치울 게 많다는 말도 된다.

날짜, 요일, 달, 연도를 굳이 기계식 시계에서 보려면 가능은 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유용한 기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와인더를 써서 항상 시계를 작동하는 상태로 유지하지 않거나, 한 시계만 매일 차지 않아서 시계가 가끔 멈추는 일이 생긴다면 구매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달력을 보는 입장에서 달력을 매번 세팅해 주는 입장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까. 즉 손님에서 서비스직으로 바뀌는 셈이다.

흔히 퍼페추얼 캘린더 시계들이 스펙을 자랑할 때 2099년까지 한 번도 조정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 그건 시계가 계속 갈 때(그리고 오차 조정이 필요 없다는 말도 안 되는 가정 하)의 얘기고, 나는 그 표현을 볼 때마다 앞으로 내가 살아있을 수십 년 동안 과연 몇 번이나 시계가 멈춰서 내 손으로 일일이 그 작은 용두를 돌려서 달력을 세팅하게 될까, 또 몇 번이나 실수해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처음부터 맞추게 될까, 혹은 언제 시계가 멈출지 모른다는 스트레스로 인해 시계의 노예가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남몰래 하곤 한다.

그렇다고 무브먼트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와인더는 쓰기 싫다. 현실적으로 캘린더 시계 오너들은 결국 나처럼 시간을 안 맞춘 채로 차는 경우가 수두룩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럴 경우 부정확한 정보를 보고 있을 바에 차라리 정보가 없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혹자는 디지털시계나 쿼츠 시계에서 제공하는 캘린더 기능은 이러한 수고로부터 자유로우니 괜찮다고 반박할 수 있다. 타당한 말이지만, 흔히 우리가 열광하고 우러러보는 캘린더 시계는 하이엔드 기계식 시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 글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

뚜르비옹 : 동네북

내가 안 패도 이미 두들겨 맞는 중.

사실 뚜르비옹은 애초에 옹호의 편에 서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언급하기도 미안하다. 한 올이라도 실용적인 핑계가 있어야 하는데, 뚜렷한 목적마저도 없으니 그 누구도 실용성 측면에서는 변호해 줄 수가 없다. 이미 컴플리케이션 계의 피젯 토이 같은 대접을 받고 있으니, 오늘은 굳이 더 조리돌리지 않기로 한다.

월드타임 : 지금 누벨칼레도니 수도 시간은?

꼭 알아야겠니.

앞서 개인적인 일화로도 언급했지만 조금 더 상세히 다뤄보자면, 세계 24개의 시간대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설탕 발린 말에는 어폐가 있다. 정작 시계 다이얼에는 각 시간대를 대표하는 딱 하나의 도시의 이름만 나와 있으니 내가 시간을 알려는 도시 혹은 나라가 그 중 어느 곳에 속해 있는지는 스스로 알아내야 할 과제다.

이는 세계 지리를 완전히 꿰뚫고 있지 않으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데, 먼저 지리적으로 세계의 도시들이 균등히 분포되어 있지 않아서 어느 시간대는 태평양 한가운데 섬밖에 적을 게 없고 (사실상 무용지물), 어느 시간대는 여러 대도시가 몰려 있지만 그중에 하나만 표기할 수밖에 없기에 마드리드가 같은 땅덩이에 위치한 파리 시간을 따르는지 경도상 더 근접한 런던 시각을 따르는지는 검색해 봐야 한다.

시간대 구분선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고안된 시스템이라 지구의 정확한 경도를 따르지 않는데, 이 때문에 사실상 같은 경도에 위치한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사용한다. 또한 어떠한 나라들은 서머 타임을 채용하고 있어서 24개 시간대 표기가 한 번에 모두 정확하지도 않다. 결국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면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하고, 시계의 월드타임 기능을 굳이 사용하더라도 로컬 타임 외에 한 군데 시간 정도를 파악하는 데에 쓸 경우 결국은 GMT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또한 캘린더 시계와 같은 맥락으로, 날짜, 요일, 세계시간, 로컬시간을 하나의 용두로 맞춰야 하는 건 즐겁다면 즐거운 일이고 귀찮다면 정말 귀찮은 일이다. 생각 없이 돌리다가 날짜를 지나쳐 처음부터 세팅한 적도 많다 보니, 개인적으로 이제는 시간을 맞추지 않고 차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실용적으로만 살 수 있나. 기계식 시계를 차는 이유가 이미 실용성 때문이 아닌데, 시계의 컴플리케이션에 실용성을 요구하는 것부터가 논리적 오류이긴 하다. 시계는 감성으로 차는 거니까. 정교한 부품끼리 맞물려 하나의 기계를 이루는 걸 좋아하는 공대 감성. 방수 스펙의 터프함과 크로노그래프의 정밀도는 남자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나아가 문과 감성 충만한 문페이즈와 월드타이머는 정말 낭만적이다.

또한 크로노, 캘린더, 뚜르비옹, 월드타임 같은 복잡한 기능 덕에 워치메이킹 기술의 정점을 손목 위에서 볼 수 있으며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다이얼이 디자인적으로 꽉 차기도 한다. 솔직히 멋지다. 시계를 좋아하는 데에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다만 실용적이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멈추자.

쓸모는 없지만 멋진 컴플리케이션 시계 6

01
심해어급 방수력

롤렉스 씨-드웰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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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언급한 50m, 300m 방수 스펙을 하찮게 만들어 버리는 3,900m 방수. 필요 이상으로 준비된 당신에게 적합한 다이버다. 물론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다이버 시계도 존재하지만, 일상에서 찰 수 있는 크기는 이 정도(43mm)가 한계.

02
미친 정확도 크로노그래프

제니스 크로노마스터 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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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비트 크로노그래프 하면 역시 엘 프리메로다. 36,000 bph(5Hz)로 1/10초까지 정확하게 잴 수 있다. 1/6초의 정확도밖에 없는 3861 코액시얼 스피드마스터는 낄 자리가 아니다.

03
이토록 영롱한 문페이즈

예거 르쿨트르 마스터 울트라 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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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실용성이 없는 문페이즈라지만 영롱하게 움직이는 달과 다이얼 위를 수놓은 별을 보면 못 참지. 이왕 감성으로 가는 거 골드로.

04
기능 집약체

파텍 필립 520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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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시리즈에 걸맞게 퍼페추얼 캘린더에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그리고 문페이즈까지 넣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작고 깔끔하게 뽑는 파텍의 실력은 알아줘야 한다.

05
경외하라 뚜르비옹

랑에 운트 죄네 리차드 랑에 뚜르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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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같은 키보드 워리어들이 인터넷에선 뚜르비옹을 까도 막상 이 시계가 눈 앞에 있다면 경외심이 생길 거다. 오차를 줄여준다는 말에 갑자기 설득이 된다. 랑에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06
여행 낭만 월드타임

쇼파드 L.U.C 타임 트래블러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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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갈 돈으로 여행 시계를 샀습니다. 안전한 세상에 살면서 좀비 서바이벌을 대비하는 것처럼, 휴가 때 가평 가는 게 전부인 회사원도 세계여행의 낭만을 품은 월드타이머를 꿈꾼다. 아쉽게도 사진 속 동일 모델은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스틸 모델은 판매 중이다. 가격은 2,438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