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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모터사이클 이야기 (3): 한국 영화 속 바이크
2023-02-22T18:22:51+09:00

정우성이 하면 자유로운 영혼, 내가 하면 도로교통법 위반하는 오징어.

지금 다시 보면 헬멧 미착용을 필두로 법규란 법규는 깡그리 무시한 무서운 장면. 하지만 핸들바에서 손을 떼고 두 팔 벌려 마치 자유로운 영혼처럼 도심을 질주하는 정우성의 모습이 그땐 왜 그리도 멋져 보였는지. 물론 영화니깐, 또 정우성이니깐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그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모터사이클을 다양한 솜씨로 다뤄낸 영화들이 꽤 있다. 때로는 강렬하고 멋있게, 또 때로는 잔잔하지만 여운을 남기면서. 안타깝게도 모터사이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이제 거의 바닥까지 떨어져 더 내려갈 데도 없지만, 그 와중에도 이 두발 달린 탈것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작품들을 찾아 소개한다.

본 투 킬(1996) – 야마하 V-MAX 1200

1990년대 정우성의 이미지를 만들어준 영화가 ‘비트’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비트’ 이전에도 모터사이클을 매개로 캐릭터의 정체성을 멋지게 다듬은 ‘본 투 킬’이라는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다. 허나 아쉽게도 ‘본 투 킬’은 –물론 ‘비트’도 이미지로 남은 영화지, 원작과 비교하면 구성이나 만듦새가 매우 빈약했지만- 당대 홍콩 느와르 영화를 조잡하게 따라한 끝에 실망스러운 완성도를 보여준, 흥행 역시 참패를 기록한 그저 그런 영화였다.

그래도 유의미한 가치는 있다. 정우성과 심은하라는, 지금은 결코 상상하기 힘든 대스타들의 진짜 청춘이 담긴 시절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담아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둘의 케미도 꽤 좋은 편이었다. 한편으로는 부족했던 정우성의 연기력을 커버하기 위해 대사의 분량이 적은 것도 나름 훌륭한 선택이었다.

이 작품에서 정우성은 야마하의 1세대 V-MAX 1200을 타고 나온다. 최초 출시는 1985년이었지만, 35년이 지난 지금 봐도 매력적인 근육질 디자인을 갖고 있다. 이 슈퍼 바이크의 실루엣에 매료된 이들은 앞다투어 차량을 구입했지만, 6,000rpm에서 터지는 V부스트 시스템은 부족한 테크닉의 라이더들을 코너에서 그대로 내던져 버렸다. ‘과부 제조기’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바로 이 때문. 멋진 디자인과 무시무시한 고출력의 성능 뒤에는 안타까운 사연도 여럿 담긴, 여러모로 한 시대의 획을 그은 모터사이클이다.


비트(1997) – 혼다 CBR600F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했지만, 모터사이클의 완성도 결국 얼굴이었다는 사실로 수많은 라이더를 좌절시킨 바로 그 영화. ‘비트’는 역대 한국 영화 중에서 모터사이클을 하나의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가장 멋지게 그려낸 작품이다. 심지어 그 모터사이클을 탄 장본인이 정우성이라니. 이미 이 시점에서 게임은 끝난 셈이다.

내가 하면 중2병이지만 정우성이 하니 불후의 명장면이 된 바로 그 신, 핸들바에서 손을 떼고 두 팔 벌린 채 질주하는 장면의 모터사이클은 바로 혼다의 CBR600F다. 영화 초반, 태수는 쇼윈도에 전시된 이 바이크를 보며 “이빠이 당기면 300도 나오겠는데?”같은 대사를 던졌고, 결국 훗날 이 바이크를 민에게 선물로 준다. 자신은 “네 발 달린 것이 더 좋아졌다”면서.

물론 실제로 CBR600F의 최고속은 300km/h까지 나오진 않았고, 외수용 모델 기준으로 240km/h가 거의 한계였다. 안전 규제가 더욱 강했던 일본 내수용은 180km/h에 리미트가 걸려있었다. 그래도 4기통 고회전 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가히 폭발적인 명차다. 현재는 더욱 멋진 디자인으로 리뉴얼된 CBR650R이 그 명성을 잘 이어가고 있다.


퀵(2011) – BMW S1000RR

‘퀵’은 개봉 직전만 하더라도 라이더들로 하여금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화가?’ 같은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기대감이 큰 작품이었다. 그러나 막상 개봉하고 난 뒤에는 좌절을 금치 못했던, 또 그러나 그 후에 나온 더욱 말도 안 되는 -같은 제작사가 대형사고를 친- ‘7광구’ 같은 작품 덕분에 적당한 평작의 이름표가 붙어버린 도깨비 같은 영화다. 다행히 망하진 않아서, 흥행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그래도 영화의 완성도는 둘째치고, 모터사이클을 영화의 본격적인 소재로 녹여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다. 특히 BMW의 협찬의 힘이 컸다. 주인공 한기수는 무려 (현실성 없지만) BMW S1000RR을 타는 퀵서비스 기사고, 김명식 또한 R1200GS를 타는 등 모터사이클에 대한 묘사가 결코 허투루 그려지지 않는다. 모터사이클 체이싱 신 자체도 상당히 공을 들여서 찍었는데, 덕분에 대역 스턴트 배우들이 여럿 다치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같은 제작사가 만든 희대의 괴작 ‘7광구’에서 KR모터스의 트로이를 가져다 놓고 실소가 나오는 시퀀스를 찍은 것을 상기한다면, ‘퀵’은 분명 선녀같이 보이는 영화다. 물론 그래도 옥의 티는 있다. 청담동에서 강서구까지 20분 만에 배달이 가능하다는 설정은 S1000RR이 아니라 S1000RR 할아버지가 와도 어렵지만,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가자.


시동(2019) – 대림 CT100

‘배달 오토바이’라고 했을 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 바이크. 그렇다. 바로 대림의 CT100이다. 조금산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시동’은 이 평범한 배달 오토바이인 CT100을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한다. 학원비를 융통해 덜컥 CT100을 사버린 주인공 택일은 미숙한 운행 끝에 사고가 나고, 경찰서에 갔다가 이를 발견한 배구선수 출신 엄마에게 말 그대로 초강력 스파이크를 얻어맞는다.

집을 나와 무작정 군산으로 간 택일은 중국집에서 일을 시작한다. 자연히 CT100도 배달 오토바이로 줄기차게 등장한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이 CT100은 다시 멋진 그림을 만들어낸다. 숨을 헐떡거리며 당장 폐차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던 초반부의 그 CT100은 결국 종장에 이르러 경쾌한 일발 시동을 건다. 그리고 분노의 스파이크를 날리던 무서운 엄마를 뒤에 태우고 유유히 달려 나간다.

평범한 배달 오토바이의 대명사 CT100은 그렇게 영화 속에서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 그만큼 굵직한 의미를 부여했으니 포스터에서도 마치 주인공처럼 전면에 등장했겠지만 말이다. 덧붙여 배달기사님들, 올겨울에도 부디 안전운전하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