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오전 10시, 성수동의 한 복합문화공간. DJ는 믹싱한 음악을 선보였고, 커피를 비롯한 논알코올 음료가 준비됐다. 한밤에나 열릴 법한 파티가 아침에 열렸다는 사실이 낯설겠지만, 알고 보면 파티도 아니다. 기아가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연 채용 팝업이었다. 최근 빠르게 확장 중인 모닝 레이브를 채용 현장에 들여온 것이다.
모닝 레이브는 말 그대로 아침에 여는 레이브다. 술 대신 커피를 들고 음악에 맞춰 춤추다가, 오전이 끝나기 전에 각자의 하루로 돌아간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퍼지는 속도는 적잖이 빠르다. 한국은 어쩌다 아침에 DJ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게 되었을까?
밤의 레이브, 아침의 레이브
런던의 창고에서 출근 전 카페까지
레이브(Rave)는 단어 뜻만 봐도 어떤 문화인지 대강 짐작이 간다. ‘헛소리하듯 떠들다’, ‘무언가에 홀린 듯 열광하다’. 정신없이 들뜬 상태를 가리키던 이 말이 파티의 이름이 된 건 50년대 말 영국에서였다. 당시 보헤미안들의 요란한 파티를 레이브라 불렀다. 모드족을 거치며 잠깐 쓰이다 잊힌 그 이름은 80년대 초 런던의 불법 창고 파티에서 다시 한번 소환된다. 우리가 아는 지금의 레이브는 여기서부터 이어진다.
80년대 중후반, 시카고의 하우스와 디트로이트의 테크노가 건너오면서 사람들은 그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밤새 춤췄다. 장소는 크게 상관없었다. 버려진 창고나 공장, 하다못해 교외의 허허벌판에서도 판이 열렸다. 그렇다고 마냥 놀기만 하자고 모인 자리는 아니었다. 그보다 꽉 막힌 주류 사회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다. 기존 규범에 어깃장을 놓고,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 기댈 공동체가 되어 주는 곳. 레이브가 저항의 현장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유다.

허가 없이 여는 파티가 많다 보니 경찰과의 숨바꼭질도 잦았다. 티켓에 적힌 내용은 장소가 아닌 전화번호뿐. 당일 밤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걸면 또 다른 번호를 알려 주고, 그렇게 몇 번을 거쳐서야 겨우 장소를 알 수 있었다. 1994년 영국은 야외에서 열리는 레이브를 겨냥한 법을 만들기까지 했다. 단속 대상이 되는 음악은 ‘반복되는 비트가 연달아 나오는 소리’. 사실상 테크노와 하우스를 저격한 조문이었다.
이 문화가 가장 깊게 뿌리내린 곳은 베를린이다. 대표 주자는 역시 베르크하인. 요즘은 악명 높은 ‘입뺀’으로 더 유명하지만, 운영 방식을 들여다보면 레이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옛 화력발전소 건물에서 테크노를 틀고, 토요일 자정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는 마라톤 파티를 연다. 안에서는 촬영도 금지다. 바깥의 시선은 내려놓고 음악에만 빠져들라는 취지다. 그 자유를 지키려고 입구를 누구보다 깐깐하게 닫아 둔다는 건 조금 아이러니하다만.
레이브가 아침으로 자리를 옮긴 건 2010년대 들어서부터다. 2013년 5월 런던에서 모닝 글로리빌이 첫 행사를 열었고, 비슷한 시기 뉴욕에선 데이브레이커가 생겼다. 규칙은 밤의 레이브와 정반대였다. 술과 약물은 철저히 금지. 그 빈자리를 요가와 마사지, 스무디 같은 웰니스가 채웠다.

시간도 출근 전으로 당겼다. 아침 6시 반에 모여 춤추고, 땀을 식힌 뒤 그대로 회사로 향했다. 런던에선 행사가 끝나면 참가자의 회사 앞으로 쓴 맞춤형 지각 사유서를 건넸다. “OO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 내내 모닝 글로리빌에서 열심히 춤췄거든요.” 반응은 금세 번졌다. 모닝 레이브는 미국과 유럽을 넘어 이제 아시아까지 그 영향력을 펼치게 되었다.
한국에 당도한 모닝 댄스
국립현대미술관을 무대 삼아
모닝 레이브의 물결이 한국에 닿은 건 지난해 봄이다. 그 중심엔 서울모닝커피클럽(SMCC)이 있다. ‘알람보다 강한 약속’을 내걸고 아침 커피 모임을 꾸려 오던 이곳은 작년 5월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첫 레이브를 열었다. 한국 사람들이 과연 아침부터 춤을 출지 창립자도 확신하지 못했다고. 반신반의하며 연 첫 모임엔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이 모였다.
그 뒤로 판은 빠르게 커졌다. 오틀리, 프룻오브더룸 같은 브랜드와 손잡고 행사를 열었고, 올해 6월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춤판을 벌였다. 다른 아침 활동과도 섞이기 시작했다. 7km를 함께 달린 뒤 결승점인 호텔에서 레이브를 즐기기도 했다. SMCC는 음악 듣고 춤추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침을 깨우는 여러 형태의 파티를 한데 담는 쪽으로 품을 넓히는 중이다.

SMCC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스킨케어 브랜드 가히는 지난해 11월 말부터 북촌 매장 지하에서 격주 토요일마다 ‘가히 모닝 레이브’를 열어 왔다. 누적 방문객만 7,000명이 넘는다. 서울 밖도 마찬가지. 강릉 해변에선 일출 파티가, 창원에선 술 대신 그린 주스를 마시는 레이브가, 전주에선 아침 러닝 뒤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 레이브가 열렸다. 모두 1년 남짓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왜 모닝 레이브인가
콜라텍에서 힌트를 얻다
흥의 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우리나라엔 음악과 춤을 즐길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꼽자면 클럽 정도일까. 하지만 그마저도 술과 밤을 감당할 수 있어야 즐길 수 있다. 자정은 넘어야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놀다 보면 막차는 끊기고, 할증 붙은 택시비는 입장료보다 비싸다. 다음 날 하루쯤은 통째로 반납할 각오도 필요하다. 춤은 좋지만 새벽이 버거운 사람에겐 꽤 높은 문턱이다.
요즘 술자리가 줄고 있다는 얘기는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술을 꼭 마셔야 하는지 한 번쯤 의심해 보는 태도,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가 퍼지면서 술과 밤이 한 묶음인 클럽은 자연히 멀어졌다. 그렇다고 아쉽지 않은 건 아니다. 술을 줄이고 싶을 뿐이지 놀기 싫은 건 아니니까. 모닝 레이브는 갈 데가 마땅치 않던 이들의 속내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사실 한국엔 이런 공간이 한 번 있었다. 90년대에 유행한 콜라텍이다. 술 대신 콜라를 판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청소년이 술 없이 춤출 곳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반짝 유행하다 사라질 뻔한 이 공간은 엉뚱하게도 중장년과 노인들의 사교댄스장으로 살아남았다. 여전히 영등포 일대의 콜라텍에서는 대낮부터 수많은 어르신의 춤사위가 펼쳐지고 있다.
모닝 레이브는 문턱을 하나씩 걷어 낸다. 대체로 오전 안에 끝나기 때문에 신나게 놀고 나서도 하루가 고스란히 남는다. 알코올은 어디에도 없으니 숙취 역시 먼 나라 이야기. 들어가는 문도 넓다. SMCC에서는 열여섯 살 중학생과 70대 어르신이 한 플로어에서 춤을 추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참가비도 없거나 음료 한 잔 값 정도다.

미라클 모닝, 갓생, 러닝 크루 등 아침 일찍 일어나 무언가를 하는 문화는 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했다. 모닝 레이브는 그 아침의 쓰임을 살짝 비튼다. 한국에선 아침에 나와 있으면 유난히 생산적으로 사는 사람처럼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침이 꼭 열심히 살기 위한 시간일 필요는 없다. 즐기는 시간이어도 된다. 글로벌 웰니스 서밋(GWS)은 올해 웰니스 트렌드로 ‘웰니스의 페스티벌화’를 꼽았다. 자기 계발 차원을 벗어나 즐거움으로 건강해지는 게 요즘의 트렌드이자 모닝 레이브의 맥락이다.
한계는 없을까
레이브에 자본이 붙는 이유
어쩐지 모닝 레이브 소식엔 늘 브랜드 이름이 따라붙는다. 사실 당연한 수순이다. 참가비가 거의 없는 행사가 굴러가려면 누군가는 DJ를 부르고 공간을 빌리는 비용을 내야 하니까. 해외 레이브 역시 파트너 브랜드를 두지만, 참가자가 값을 지불하는 게 낯선 일은 아니다. 뉴욕의 데이브레이커는 춤만 추는 티켓이 25달러부터 시작하고, 요가나 사우나 같은 콘텐츠가 묶이면 70달러가 넘어가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의 레이브에는 자연스레 브랜드의 목소리가 섞인다. 가히의 모닝 레이브는 브랜드 제품의 대표 성분인 캐비아 PDRN을 알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SMCC의 행사에는 크러쉬, 르세라핌 등 여러 셀럽이 참석했다. 사진도 그렇다. 지금의 모닝 레이브는 찍히고, 올라가고, 공유되는 게 전제다. 비용 걱정 없이 노는 대신 브랜드 SNS 속 한 장면이 되는 걸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돈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선 아무 가게에서나 춤판을 벌일 수 없다. 현행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은 식당과 카페가 음향 시설을 갖추고 손님이 춤추게 하는 걸 막는다. 대놓고 춤출 수 있는 업종은 유흥 주점 정도인데, 매출의 13%에 해당하는 세금이 더 붙는 데다가 청소년은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월 부산의 라이브클럽 오방가르드는 공연 중 관객이 춤을 췄다는 이유로 두 달 영업정지를 받았다.

모닝 레이브 자체가 불법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 규정이 모닝 레이브가 열리는 방식을 제한한다. 지금으로서는 동네 카페가 ‘매주 토요일 아침엔 테이블 치우고 다 같이 춤추자’ 하고 평소 영업처럼 끌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날을 하나 잡아 공간을 따로 빌리거나, 브랜드가 내준 매장을 무대로 쓴다. 모닝 레이브가 대개 날짜가 정해진 행사로 열리는 이유다.
매일 눈 비비며 정신 차리기 급급했던 아침. 반갑기보다 피하고 싶던 그 시간을 음악과 춤으로 채운다는 것만으로도 모닝 레이브는 해볼 만한 시도다. 하지만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문화인 만큼 생각할 거리도 여럿 남아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다음날을 설레어하며 잠자리에 들 수 있게끔, 모닝 레이브의 긍정적인 확산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