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버스, 기차, 다시 버스, 페리. 서울에서 8,000km 넘게 떨어진 스코틀랜드 서쪽의 작은 섬, 라세이는 들어가기조차 쉽지 않은 곳이다. 크기는 울릉도보다 작고, 사는 사람은 200명 남짓. 한국과는 일말의 인연도 없을 듯한 이역만리 땅에 한국인이 산다. 라세이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이세기 디스틸러다.
스카치의 본고장에서 위스키를 만든다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근사하다, 위스키 많이 마셔서 부럽다, 연고 없는 타지에서 힘들겠다. 어느덧 라세이에서 네 번째 여름을 지나 보낸 그가 말하는 디스틸러의 진짜 삶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을 방문한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스코틀랜드의 한국인 디스틸러, 이세기 인터뷰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스코틀랜드 라세이 증류소에서 위스키를 만드는 이세기라고 한다. 2023년 2월에 들어갔으니 이제 3년 반쯤 됐다.
어떤 일정으로 한국에 왔나.
바앤스피릿쇼 행사 일정에 맞춰 매년 방문하고 있다. 사실 흔한 케이스는 아니다. 아시아 메인 시장인 중국, 일본, 대만에도 사람을 매년 보내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앰배서더도 아니고 생산팀 소속이지 않나. 생산 스케줄을 조정해 가면서까지 보내는 거다. 한국인 디스틸러가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브랜드를 알리고 한국 시장을 확장하고자 함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일하는 한국인 디스틸러 자체가 많지 않고, 위스키 디스틸러라는 직업이 한국에서 생소하다 보니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신다. 보통은 디스틸러리 매니저나 마스터 블렌더가 오지, 디스틸러가 오는 경우는 잘 없기도 하고. 다만 출장의 목적은 라세이 위스키를 알리는 거니까, 나보다는 위스키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디스틸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위스키를 만드는 A부터 Z까지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린다. 위스키는 시간이 만드는 술이지만, 어쨌든 누군가 원액을 제작하고 통에 집어넣어야 숙성이 시작되니까. 거기까지 가는 동안의 결정을 다 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업무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기보다는 모든 일을 두루 처리하는 편이다. 원료 입고부터 품질, 당화, 발효, 캐스크 체크, 제품 만들기 전 스피릿 체크, 숙성된 원액 평가, 그 외에 증류소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일까지.
사실 디스틸러의 역할은 증류소마다 다르긴 하다. 어디서는 당화, 증류까지만 하고 숙성 과정부터는 관여하지 않는다. 규모가 큰 곳은 당화하는 사람은 당화만, 병입하는 사람은 병입만 한다. 라세이는 작은 증류소인 데다가 숙성 창고까지 섬 안에 있다 보니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남들이 보는 이미지와 다른 지점이 있나.
디스틸러라 하면 시음하면서 평가하는 장면 같은 걸 흔히들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너무 부럽다고, 어떻게 될 수 있냐고 여러 사람이 묻더라. 하지만 마시는 것과 만드는 건 굉장히 다르다. 위스키를 생산한다는 개념 안에는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제작을 위해 필요한 수많은 공정이 포함된다. 반복적인 일도 굉장히 많다. 디스틸러가 되고자 한다면 위스키를 좋아하는 건지, 위스키 만드는 걸 좋아하는 건지를 먼저 봐야 한다.
위스키 만드는 걸 좋아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
내 의도가 담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지가 중요하다. 핸드폰을 만든다고 치면 화면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할지, 카메라 렌즈는 몇 개를 탑재할지 정해야 한다. 술도 똑같다. 어떤 맛을 만들지 정하고, 그 맛을 어떻게 표현하고 패키징할지를 설계해야 한다. 위스키를 매개 삼아 나의 상상을 맛과 향으로 구현하는 일에 흥미가 동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생물이나 동물을 좋아했고, 무언가를 관찰하고 키우는 것도 좋아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그것이 술의 맛과 향까지 바꾼다는 점에 끌린 것도 어쩌면 그 관심의 연장선인 것 같다.
디스틸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관찰력이다. 발효라는 게 조건만 맞으면 계속 동일하게 돌아가는데, 약간만 틀어져도 맛이나 향이 달라진다. 그 작은 변화를 감지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면 관찰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내가 관찰력이 좋은 편이냐 하면 딱히 그렇진 않은 것 같다.(웃음) 그러려고 노력하는 쪽이다. 루틴하게 일하다 보면 모든 것에 무뎌지기 마련이라, 의식적으로 익숙함을 경계한다.

몸 쓰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살이 많이 빠졌다고 들었다.
몸은 당연히 많이 쓴다. 캐스크 관리를 비롯해 업무의 절반 이상이 몸으로 하는 일이다. 살이 빠진 건 그것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섬 생활 때문이다. 섬 안에는 식당이 두 곳밖에 없다. 슈퍼도 딱 하나뿐인데, 정말 필수적인 물건만 갖춘 소규모 매장이고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쉬는 날은 어떻게 보내나.
날이 좋을 때는 걷거나 자전거를 자주 탔다.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스카이섬으로 장 보러 나가기. 원래 미리 계획하는 타입이 전혀 아닌데, 섬에서는 그렇게 안 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일주일 치 식량을 주말에 다 사둬야 하고, 병원도 미리 잡아야 하고. 이제 조금은 적응이 됐다.
사실 심심하긴 하다.(웃음)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닌지라 이방인의 신분을 벗어날 수가 없다. 아시아인도 나뿐이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문화적인 동질감을 공유할 수 있는 아시아인 친구가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섬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다른 유럽으로 여행을 가거나 양조, 증류 관련 행사에 참석하려면 에든버러나 글래스고로 나가야 한다. 차로 다섯 시간, 대중교통으로는 일곱 시간쯤 걸린다. 배까지 타야 하니 시간 맞추기도 어렵다. 분명 유럽에 살고 있는데 이동이 제일 힘들다.
언어도 여전히 문제다.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지 않나. 외국인이다 보니 표현이 어색할 때도 있고, 이 맥락이 맞나 싶을 때도 잦다. 언어에는 문화가 담겨 있다 보니까. 그래도 차별을 겪은 적은 없다. 거주민이 2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섬이다 보니 다들 서로 아는 사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나쁘게 대할 수가 없다. 이건 좋은 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가끔은 익명 속에 숨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가족은 한국에 있나.
3년 정도 떨어져 지냈다. 올해 상반기에 다섯 달을 같이 살았는데 그게 굉장히 도움이 되더라. 그러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다. 더 이상 떨어져 지내면 안 되겠다 싶더라.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바람직한 방향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빨리 합치기로 했다. 내년 2월쯤 아내와 아이가 들어온다.
첫 직장은 위스키와 거리가 멀었다고.
제빵 회사의 영업 파트였다. 신입사원 연수 때 공장에 가서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게 됐는데, 그때 발효를 만나게 된 거다. 따지자면 술 만드는 발효와는 다르긴 하지만. 그렇게 4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여행을 많이 다녔다. 현지 맥주를 마시다 보니 크래프트 맥주에 관심이 생기더라. 한국에도 크래프트 맥주 붐이 일던 시기였다.
더 이상 주말만 기다리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한테 이야기했더니 그럼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한번 해보라고 응원해 줬다. 때마침 제주맥주 양조팀에 자리가 있어서 직장을 옮기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멋모르고 갔던 것 같다.(웃음)
양조를 할 준비가 되어 있었나.
홈브루잉은 하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맥주 관련해서 경력도, 지식도 없었다. 회사마다, 맡게 되는 업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양조사가 되는 것 자체는 대단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유학은 어떻게 결심했나.
술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전문적인 지식을 얻고 싶다는 갈망이 일하는 내내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가 골든블루에 장학생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려줬다. 감사하게도 기회가 주어져 헤리엇와트 석사 과정을 1년 다녀올 수 있었다.
처음부터 위스키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 전통주가 위스키 아닌가. 학교에서 업계 사람들도 만나고, 위스키 소사이어티도 접해 보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왕이면 현지에서 일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고. 가족이 걱정을 많이 하긴 했다. 멀리 가는 거고, 떨어져 지내야 하니까.
결단력이 있는 편인 것 같다.
결단력이라기보다는, 안 하면 후회하겠다 싶을 때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그쯤 되면 어떻게든 하게 되더라. 추진력 있게 밀고 가든, 이 길 갔다 저 길 갔다 하든. 돌아보면 첫 직장은 원해서 선택한 건 딱히 아니었다.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는 그때그때 궁금하고 흥미를 느꼈던 걸 따라갔다. 즉흥적인 타입인 것 같다. 아내는 이제 좀 정착하고 싶다고 한다.(웃음)
취직 과정은 어땠나.
50군데 정도 지원했고, 그중 라세이에서 오퍼가 왔다. 맥주 양조사로 일한 경력과 발효 주제로 썼던 석사 논문이 어필이 된 것 같다. 지금도 증류소에서 효모나 발효 관련된 건 내가 담당하고 있다. 오퍼도 오퍼지만, 라세이라면 커리어에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도 있었다. 신생 증류소 중에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몇몇 과정을 외주로 하는 곳도 있다. 반면 라세이는 몰트가 들어와서 위스키가 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한다.

라세이는 어떤 술인가.
드셔보신 분들은 특이하다고들 하신다. 다른 증류소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맛이나 향이 아니라고. 쓰는 원액도, 캐스크도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다. 라세이는 원액을 만들 때 피티드를 6개월, 언피티드를 6개월 생산한다. 이 두 가지 원액을 세 가지 캐스크에 담는다. 보르도 레드와인 캐스크, 라이 위스키를 담았던 캐스크, 한 번도 쓰지 않은 버진 친커핀 캐스크.
그렇게 원액 여섯 가지를 만든 다음에 블렌딩을 하거나, 다른 캐스크에 피니싱을 해서 코어 제품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캐스크가 많다 보니 개성이 강하면서 맛도 좋다. 한국 수입사에서 만든 캐치프레이즈가 ‘라세이는 라세이 맛이 난다’이다. 소비자분들도 라세이만의 맛이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술을 볼 때 기준으로 삼는 게 있나.
만든 사람의 의도가 잘 반영되었는지, 맛과 향으로 잘 표현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받쳐줘야 한다. 만들고자 했던 맛과 향을 똑같이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일관성, 여러 맛의 층위를 완성도 높게 표현하는 복합성이다. 증류소들은 각자의 스타일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라세이는 일관된 품질을 위해 공정을 전산화했다. 어떤 몰트가 언제 들어왔는지, 어느 캐스크에서 무슨 원액이 얼마나 나왔는지를 철저히 추적 관리할 수 있다. 복합성은 원액과 캐스크 조합으로 구현한다. 보통 버번이나 셰리를 많이 쓰지, 라이 위스키 캐스크와 보르도 레드와인 캐스크를 주로 쓰는 스카치는 별로 없다.
직업 만족도는 높은 편인가. 급여는 어떤가.
만족도는 어떨 때는 높고 어떨 때는 높지 않다. 다들 그렇지 않나. 좋아서 선택한 일이지만 항상 좋을 수만은 없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내가 생산에 관여한 술이 하나의 제품으로 나오는 순간이나, 경험이 쌓이면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때는 이 일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급여는 회사마다 편차가 크고 학력이나 경력, 역할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다. 그래서 위스키 업계의 급여 수준을 하나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급여뿐 아니라 어떤 경험을 쌓을 수 있는지, 그 경험이 앞으로 어떤 디스틸러가 되는 데 도움이 되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디스틸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루트가 있을까.
요즘에는 한국에도 양조 관련 교육기관이나 전공을 신설한 대학처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긴 것 같다. 해외에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먼저 경험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라든지, 내가 이 직업에 정말 맞는지를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일하고 싶다면 현실적인 요건을 꼭 따져봐야 한다. 비자가 제일 중요하다. 아무리 일하고 싶어도 신분이 보장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다음은 언어다. 나도 해외 경험이 많았던 게 아니어서 더 그렇게 느낀다. 위스키를 만드는 것 역시 사람과 소통해서 하는 일이다.
생활 여건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굉장히 큰 요소다. 스코틀랜드에서 도시라고 할 만한 데는 글래스고와 에든버러 정도인데, 증류소는 대부분 그 바깥에 있다. 스페이사이드만 해도 굉장히 외곽에 속한다. 심지어 라세이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다. 나도 이런 부분을 100% 고려하지 못해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혔던 것 같다.
한국 시장은 어떻게 보나.
올해 바앤스피릿쇼를 보니 브라운 스피릿 계열보다 화이트 스피릿이 좀 많아졌더라. 여러 지역의 증류주도 많이 들어왔고. 위스키 부스는 작년에 비해 조금 축소된 느낌이었다. 그만큼 한국 소비자들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새로운 걸 탐색하는 데 능한 것 같다. 먹던 것만 계속 먹기보다 빨리빨리 옮겨 가려는 욕구가 크다. 그래서 어려운 시장 중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서 일할 생각은 없나.
할 수야 있다. 그런데 개인적인 걸 떠나서 산업 전체로 보면 얘기가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위스키 산업에 필요한 제반이 다 갖춰져 있다. 배럴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증류기가 고장 나면 스페이사이드에서 사람이 와서 고쳐준다. 한국은 증류기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 쉽지 않다. 양조용 보리가 나는 것도 아니고, 몰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추진하는 사람의 부재도 걸림돌이다. 스카치 기준으로 위스키가 되려면 3년이 무조건 지나야 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위스키가 되기 위한 시간이 3년이지, 사업적으로 수익화하려면 15년, 20년은 봐야 한다. 서른인 사람이 시작해도 쉰이 돼야 수익을 본다는 건데, 그걸 추진할 수 있는 회사가 있을까 싶다. 한국은 트렌드가 빠른 만큼 결과 역시 빨리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나. 그걸 쭉 끌고 갈 힘을 가진 단체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가능성이 없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못 할 건 아니라고 본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은 이제 시작한 단계니까 갈 길이 멀게 느껴지는 정도다. 그래도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엄청나게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해외에서 보면 자랑스럽기도 하다. 위스키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다농바이오를 눈여겨 보고 있다. 라세이와 캐스크 거래를 한 번 했다. 우리가 보낸 캐스크에서 숙성된 소주는 어떨지 궁금하다.

다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블렌딩과 연구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해보고 싶다. 싱글몰트라고 하더라도 원액을 어떤 비율로 어떻게 섞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데, 그게 굉장히 매력적이다. 신생이거나 규모가 작은 증류소는 대부분 블렌더와 디스틸러를 겸한다. 라세이의 마스터 디스틸러 역시 마스터 블렌더이기도 하다. 결국 위스키라는 제품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0년 후 본인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
1년 후도 모르겠는데.(웃음) 10년 후는 너무 거창하고, 목표로 보자면 내 경력과 이름을 걸고 술을 만들고 싶다. 나만의 증류소든 어딘가의 책임자든 내 의도가 제대로 담긴 술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좋겠다.
꼭 위스키가 아닐 수도 있다. 술은 너무 다양하니까. 혹시 카샤사라는 술을 아시나. 브라질의 증류주인데 럼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결국 술은 원료에 있는 당, 혹은 원료에서 만들어낸 당을 효모가 발효해 알코올을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기본 원리는 비슷하지만, 어떤 원료를 선택하고 그것을 어떻게 발효하고 증류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그 차이가 재미있어서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스키가 가장 매력적인가.
지금까지는 그렇다. 맥주는 원료도, 부재료도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예전에 맥주 업계에서 일할 때 본 것 중에 제일 특이한 게 피자 넣은 맥주였다. 위스키는 반대다. 단출한 데서 시작하는데 맛에서는 선택지가 다양하다. 그걸 조합하는 게 즐겁다. 위스키를 많이 마시다 보면 어떤 캐스크를 썼는지 예상이 되는데, 가끔 그 예상이 깨지는 술이 있다. 그런 걸 발견할 때가 제일 재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