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를 각색하는 일은 쉽지 않다. 수많은 인물과 복잡하게 얽힌 관계, 시대를 초월한 상징과 서사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방대한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겼다가 고배를 마신 작품들 속에서 최근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는 <오디세이>는 이례적인 좌표다.
신과 인간, 영웅과 괴물, 사랑과 복수,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까지. 매력적인 이야기의 원형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럼에도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영화와 이야기의 원천이 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가 다시 한번 고대 그리스 서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신화가 스크린에서 어떻게 다시 태어났는지 이 영화들을 살펴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일지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 추천 리스트다.
그리스 로마 신화 기반 영화 7
호메로스 <일리아스>를 바탕으로 한 작품. 원작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파리스, 헬레네 등 그리스 신화 속 인물과 트로이 전쟁을 대중적으로 다룬 대표적인 영화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둘러싼 갈등이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의 전쟁으로 번지는 과정을 그리며,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영웅들의 명예와 사랑, 욕망을 묵직한 스케일의 전쟁 서사로 풀어낸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상상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신들의 개입을 대부분 덜어내고 아킬레우스의 성격과 서사 변화, 헬레네와 파리스의 관계에도 각색이 가미되었으니까. 하지만 대중성은 물론 그 시절 브래드 피트의 존재감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하다. 러닝타임 196분.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의 이야기를 다뤘다.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를 영화화한 것으로 신화 속 영웅의 모험보다는 전쟁이 만들어낸 희생과 인간의 욕망, 집단의 광기를 바라보게 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트로이 원정을 위해 아울리스에 집결한 그리스 함대가 바람이 불지 않아 출항하지 못하면서 시작된다.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딸을 살리려는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전쟁을 위해 희생을 요구하는 군대 사이에서 비극은 피할 수 없는 결말로 향한다. 1978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197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오래된 영화지만 현재 유튜브에서 영어 자막이 포함된 풀버전 감상이 가능하다. 러닝타임 127분.
그리스 신화 속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1981년 작.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공주 안드로메다를 구하기 위해 메두사와 맞서고 바다 괴물 크라켄과 싸우는 과정을 그리며 신과 인간, 괴물과 영웅이 뒤섞인 고전적인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정통 판타지 어드벤처의 문법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특수효과의 전설 레이 해리하우젠의 마지막 장편이자 그의 스톱모션 기법이 집대성된 영화다. 메두사, 크라켄, 거대 전갈, 페가수스 등 신화 속 존재들이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아날로그 스톱모션으로 구현돼 특유의 기묘하고 클래식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투박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아날로그 특수효과가 선사하는 로망이 모험심을 자극한다. 러닝타임 117분.
그리스 신화 속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의 황금 양털 탐험을 그린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 왕위를 되찾기 위해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난 이아손과 원정대가 바다를 건너며 다양한 괴물과 맞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바위 사이에 끼인 아르고호를 구하기 위해 거대한 트리톤이 등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서도 활약한 레이 해리하우젠이 만들어낸 스톱모션 괴물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이아손과 일곱 해골 병사의 결투 장면은 약 3분의 시퀀스를 완성하는 데 4개월 반이 걸렸을 정도로 정교한 작업을 거친 명장면이다. 또한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중요한 요소는 버나드 허먼의 음악. <시민 케인>과 <현기증>, <싸이코> 등을 만든 거장의 타악기 중심 음악이 스톱모션 특유의 움직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러닝타임 104분.
프랑스의 시인이자 영화감독 장 콕토가 오르페우스 신화를 초현실주의적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오르페우스 3부작’ 중 두 번째로, 신화 속 음유시인 오르페우스를 파리의 유명 시인으로 옮겨온 것. 오르페우스가 신비로운 공주를 만나면서 사랑과 죽음, 예술과 창작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서사다.
고대 신화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저승으로 향하는 나룻배를 검은 롤스로이스로, 죽음의 전령을 가죽 재킷을 입은 오토바이 부대로 바꾸는 등 현대적인 이미지를 차용해 은유의 미학을 살렸다. 특히 거울을 통과해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장면은 CG 없이 당시의 아날로그 영화 기법으로 만들어 낸 최고의 명장면. 현재 로튼토마토에서 97%의 신선도를 기록 중이다. 러닝타임 95분.
이 리스트에서 액션은 허큘리스가 담당한다.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대형 블록버스터. 12과업을 마친 헤라클레스가 신의 아들이라는 명성을 뒤로하고 동료들과 함께 용병으로 살아가는 내용이다. 묵직함과 비장함보다는 신화 속 12과업 뒤에 숨겨진 인간 헤라클레스의 이야기를 드웨인 존슨 표 액션으로 풀어냈다.
신적인 존재라기보다 상처와 두려움을 가진 인간 영웅으로 헤라클레스를 그리며, 이아올라오스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대규모 전투를 치르는 정통 검투, 전쟁 영화의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신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로 무엇보다 드웨인 존슨의 피지컬은 정말 압도적이다. 러닝타임 98분.
그리스 신화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모티프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킬링 디어>는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작품. 아가멤논이 사냥터에서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사슴’을 죽인 죄로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쳐야 했던 신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성공한 심장외과 의사 스티븐은 아내 애나와 두 자녀와 함께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 자신이 수술 중 실수로 죽은 환자의 아들 마틴과 가까워지면서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마틴은 스티븐에게 가족 중 한 명을 희생해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선언하고. 감정을 배제한 대사, 기묘한 인물들의 행동, 불안을 증폭시키는 롱테이크가 더해져 요르고스 란티모스 특유의 불편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공기를 지배한다. 러닝타임 121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