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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라는 키워드로 글을 써 달라고 한다. 당혹스러웠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닌데. 그래서 이것저것 되는대로 써 봤다. 무엇도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웠다. 그래서 결정했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그래서 나는 ‘꾸준히 하는 기술’을 배워온 과정을 통해 마무리에 관해 얘기해볼까 한다. 그 기술은 ‘달리기’였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달리기 일지를 작성하며 나름 인기를 끌게 해주었던 기술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든 마무리하려면 꾸준히 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시작은 자주 하는데 마무리할 때까지 꾸준히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하자’도 그 기술 중 하나다. 그래서 이 글은 ‘마무리’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마무리를 제대로 하기 위한 과정과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울 것이다. 뭐든 꾸준히 하지 않으며, 마무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힘든 걸 이겨내는 게 아니라 힘든 상황을 안 만드는 게 중요하다.
아무튼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꾸준함의 기술을 익혀왔다. 최선을 다하지 말고 적당히 하는 걸 체질화하는 게 그 내용이다. 나름 성과를 냈다. 3년째 꾸준히 달리고 있다. 체중은 20kg을 줄였다. 금연 2년 차다. 금주 1년 차다. 무엇보다 건강해져서 좋다. 적당히 하는 게 별거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그렇게 쉽지 않다. 먼저 적당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걸 말한다. 그런데 그게 어느 정도일까? 투자하는 시간이 기준인가? 아니면 노력의 강도가 기준인가? 지금 내가 적당히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알기 어렵다.
하기도 어렵다. 한국은 최선을 다하는 걸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정신력의 강조가 예다. 예전에 아버지가 너는 정신력이 세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뜬금없었다. 그런데 당신은 진지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봤다. 아버지가 자원은 없는데 빠르게 발전하려고 했던 ‘조국 근대화’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질적 자원은 없는데 성과를 내려면 결국 강조하는 게 정신력이다. 나는 아버지가 그런 사회 분위기를 본인의 정체성으로 내면화했다고 이해했다. 물론 아버지의 가난, 타고난 기질, 우연한 사건 등은 본인이 그런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돌이켜보면 나도 아버지로부터 그런 성향을 이어받은 것 같다. 힘들면 억지로 참고했다. 더 나아가서 몸을 정신으로 이기는 걸 즐겼다. 3년 전 다이어트를 하려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 당시 달리기는 어려운 기준을 정해놓고 정신력을 이용해 몸을 맞추는 일이었다. 10km를 목표로 정하고 거의 매일 뛰었다. 10km 달리기를 매일 할 수 있는 몸은 아니었다. 14년 동안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피웠었다. 체중은 90kg에 육박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몰아붙였다. 스스로 벌을 줬던 것 같다.
넌 왜 살을 못 빼. 넌 왜 담배를 못 끊어. 넌 왜 직장이 없어. 넌 나약해. 넌 열심히 하지 않았어. 넌 벌을 받아야 해. 고통스러웠다. 더 독하게 달렸다. 나약한 나를 벌주고 내 몸을 복종시켰다. 나는 폭군이자 노예였다. 사디즘적, 마조히즘적 쾌감과 고통을 동시에 느꼈다. 다리 근육을 칼로 베어내는 듯한 통증. 숨소리만 남고 내가 사라지는 쾌감. 오롯이 혼자서 느꼈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얼마 못 갔다.
무리하면 몸이 신호를 보낸다. 그렇다. 적당의 기준은 몸 상태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정신력으로 억누르면 몸이 거덜 난다. 나도 그랬다. 나는 사람의 몸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아플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먼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이 당시에 극단적인 식단 조절까지 했었다. 그 영향인 것 같았다. 게다가 슬개인대염, 햄스트링염, 대퇴근막장근염, 승모근 과긴장, 천장관절염, 무릎연골연화증 등 다양한 근골격계질환이 찾아왔다. 게다가 종종 참을 수 없이 졸렸다.
노력했는데 파국이 왔다. 단순히 운동을 하다가 부상을 입었거나 다이어트에 실패한 게 아니었다. 이건 이전에도 몇 번 경험했던 상황이었다. 대학원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논문을 잘 못 썼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잘해보려 했는데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취직하려고 열심히 했는데 면접장에서 인정은 받아도 선택을 못 받았다. 왜지? 왜 열심히 할수록 결과가 안 좋지? 정말 궁금했다.
몸과 맺는 관계가 변했다. 예전에는 명령과 복종이었다면 이제는 질문과 대답이다.
몸을 공부했다. 크고 강한 심장을 가지려면 천천히 달려야 한다. 심장이 한 번 뛸 때 뿜어내는 혈액량은 운동강도가 높아지면 증가한다. 그런데 최대운동강도의 60%를 넘어서면 심장의 1회 박출량은 거의 증가하지 않는다. 대신 1분당 심장박동수가 가파르게 증가한다. 혈액을 한 번에 많이 뿜는 대신 여러 번 빨리 공급하는 걸로 필요한 혈액량을 채운다는 얘기다. 따라서 크고 강한 심장을 갖고 싶다면 60%의 운동강도가 가장 효율적이다. 별로 힘들지 않으니까 오래 할 수 있다. 그 정도 강도에서도 이미 심장은 최대출력으로 뛰고 있다. 더 강도를 올려봤자 힘만 든다. 신기했다. 적당한 노력의 강도는 60%라고 우리 몸이 말해주고 있다.
몸과 맺는 관계가 변했다. 예전에는 명령과 복종이었다면 이제는 질문과 대답이다. 오늘은 길고 느린 조깅 괜찮니? 오늘은 짧고 빠른 언덕 달리기 어때? 몸은 그때그때 다른 대답을 한다. 몸 상태는 항상 변하니까. 기대에 못 미쳐도 조바심 나지 않는다. 60%의 강도로만 해도 내 심장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힘들게 하는 대신 힘듦을 최소화하는 게 나의 훈련 원칙이 됐다. 그래야 꾸준히 하니까.
쉬는 법을 배웠다. 열심히 하려면 잘 쉬어야 한다. 공부를 해보니 사람이 활동할 때는 교감신경이, 쉴 때는 부교감 신경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술을 익혔다. 쉬는 날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방을 어둡게 하고 가라앉는 쿨 재즈를 듣는다. 목욕탕에 가서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로 목욕을 한다. 평소에도 항상 심호흡을 한다. 바빠도 꼭 짧은 낮잠을 잔다. 이것저것 할 여력이 안 되면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는다. 뜬금없지만 난 내가 죽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러면 사는 게 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하다.
음식을 적당히 의식적으로 먹게 됐다. 예전에는 아예 생각을 안 하거나 과도하게 의식하면서 먹었다. 살이 쪘을 때는 아무거나 몸에 쑤셔 넣었다. 살을 뺄 때는 몸에 아무것도 안 넣으려 했다. 지금은 필요에 따라 먹는다. 장거리 달리기 전에는 커피를 마신다. 카페인은 지방산의 활용도를 높여 운동효율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언덕 인터벌처럼 짧고 힘든 운동을 할 때는 전날 빵을 먹는다. 고강도 운동을 할 때는 글리코겐이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마치고 오면 단백질과 비타민 섭취에 신경을 쓴다. 손상된 조직을 회복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피자를 먹을 때도 있다. 열심히 하면 실패하고 적당히 해야 성공하니까.
내가 60%의 노력을 체질화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산이었다. 집 앞에 산이 있어 트레일 러닝도 하게 됐다. 산에서 빨리 달리면 위험하다. 돌부리, 나무뿌리에 걸려서 넘어질 수 있다. 평지에서 넘어지는 건 찰과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산에서 넘어지면 크게 다칠 수 있다. 그러니 자연히 천천히 달리게 됐다. 게다가 산에는 좋은 풍경이 있다. 이끼, 꽃, 풀, 나무, 바위, 하늘이 있다. 잠깐 멈춰서 가만히 쳐다본다. 기분이 좋다. 무리하지 않게 된다.
지구력은 기술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산에서 도중에 퍼지면 위험하다. 저체온증이 올 수 있다. 지치면 근육 대신 관절의 소모도가 커진다. 힘든 걸 이겨내는 게 아니라 힘든 상황을 안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나는 장거리 트레일 러닝 전날 수면에 더 신경을 쓴다. 산에 가서는 계속 먹는다. 30분마다 양갱을 물과 함께 먹는다.
예전에 미군이 사람의 수분 손실과 수분 섭취의 관계를 연구한 적이 있다. 사람은 마음껏 물을 마시라고 해도 땀으로 흘리는 양보다 물을 적게 마신다고 했다. 그러니까 목이 안 말라도 주기적으로 마시는 게 중요하다. 물을 마셔서 관절의 마찰을 줄이는 관절액도 보충해야 한다. 목이 마르면 이미 늦다. 내리막길에서는 폴을 이용해 다리 부담을 줄인다.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솔직히 지금도 어렵다. 내가 나태한 건지, 쉬는 건지. 열심히 하는 건지. 무리하는 건지. 결과가 말해준다고들 하는데 살아 보니까 그것도 아니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경우도, 운이 좋아서 잘 되는 경우도 다 봤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방금 달리고 왔다. 예전에는 그렇게 길었던 10km가 짧다. 그러니까 꾸준히 하면 분명히 변한다. 강박적이지 않으면서도 성실하고. 죄책감 없이 방탕할 수 있는.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마무리는 나에게 어떤 종착점과 같은 것이 아니다. 꾸준함을 배워가는, 그래서 더디게나마 변화를 모색해가는 목표이고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