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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늘도 집이 아닌 짐 속이라면, 공유 창고 ‘박스풀’
2023-02-20T20:45:17+09:00

하게 될 거야, 헤어질 결심.

2022년 9월

그곳에 언제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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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에서 가장 분주해지는 때는 손님 오기 2시간 전. 고루 펴져 있는 온갖 세간의 자리를 잡아주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경험한 바 1시간 전에 정리를 시작하면 늦다). 내가 사는 공간에 누군가 발을 들여야 너저분함이 정리되는 이 아이러니는 아마 태생적인 게으름에서 온 것이겠지만, 태생이란 건 관성이라는 성질을 지녔기에 적당히 노력 후 적당히 체념하고 살았다.

물론 물건을 들이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꼭 필요한 것인지 누차 스스로 되묻고, 촘촘하게 소비 습관을 검열하고, 고릿적 ‘아나바다’에 충실하자고 늘 다짐했다. 이런 무기력한 다짐을 통해 깨달은 건 나는 생각도, 사람도, 물건도 쉬이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매몰차도록 한정된 집이라는 공간 안에 그렇게 짐들은 무한히 늘어났다.

책들은 이중, 삼중으로 꽂혀있는 것도 모자라 책장을 이탈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운동 목적으로 설치한 철봉, 그곳에 걸어 놓은 옷들은 통행을 방해해 방을 드나들 땐 머리를 헝클어뜨리기 일쑤라 치솟는 짜증을 감내해야 했다. 가뜩이나 비좁은 현관에는 1년 전 구매한 나홀로 집에 레고가 미개봉 상태로 방치되어 있고, 비정기적 행사인 캠핑을 위한 장비들은 늘 베란다에 상주해 물청소라도 할라치면 이것들을 나르며 먼저 진을 빼야 했다. 용도를 잃은 사물과 동거하면 이 물건들이 작지만 자주 신경을 거스른 다는 걸 절실히 체감하며 지냈다.  

끝내 버리지 못할 거라면

코로나19로 삶의 꼴이 달라진 점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일터와 집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외식 산업은 배달 앱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집안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헬스장은 홈트로, 영화관 대형 화면은 벽면을 가득 채우는 빔프로젝터가 엇비슷하게 구색을 갖춰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한다. 팬데믹 이후로 많은 이들은 사람이 운집하는 곳을 벗어난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에서 먹고, 놀고 일상을 보내는 방법 하나를 더 체득한 셈이다. 그게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지도 말이다.

집에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한다면, 우리는 더 아늑할 권리를 취하고 싶기 마련이다. 아늑하기 위해선 쾌적함이 담보되어야 하고, 이 쾌적함은 면적의 너비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집 평수를 늘리는 건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니 여백을 늘리는 것이 더 쉽고 빠른, 즉 실용적인 방법이다. 이런 맥락 속에서 공유 창고 산업이 급성장한 것은 자본주의의 이치다.

인도 시장 조사 기관 모르도 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에 따르면 글로벌 셀프 스토리지 시장은 2020년, 480억 2000만 달러에서 2026년에는 647억 1,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북미 시장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지만, 홍콩, 싱가포르, 도쿄와 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도 그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3개월 전쯤, 그러니까 6월 말 내가 셀프 스토리지 공유 창고를 찾게 된 것은 어쩌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무탈하게 순항 중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나를 행동하게 하는 동력 중 하나는 ‘불편함’인지라, 가뜩이나 철저히 집순이인 내 일상을 조금씩 좀 먹는 짐들과 사투를 끝내기 위해 검색에 들어갔다. ‘점 정리’, ‘짐 맡기기’,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정신병의 일종인가요’ 등의 검색어를 입력했다. 

그리고 수많은 공유 창고 서비스 업체 중 ‘박스풀’을 발굴했다. 박스풀을 선택한 기준은 아주 명확했다. ‘배송부터 짐 보관까지’, 그리고 ‘무인화 시스템’. 그렇다. 전생에 낯 가리는 베짱이였을 나는 기사님이 방문해서 물건을 수거해가는 방문 배송 시스템과 스마트폰만으로 대면하지 않고 24시간 언제든 짐을 보관하고 찾을 수 있다는 그 지점에 방점을 찍었다. 여담이지만 브랜드 로고와 서체, 컬러도 예뻤다. 예쁜 건 뭐든 늘 옳은 법.

수상한 박스가 도착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대략적인 서비스 구성을 살펴봤다. 첫 번째는 물건을 직접 창고에 가지고 가 원할 때 찾고, 또 맡길 수 있는 방문형 스토리지 서비스다. QR 코드와 웹에서 설정한 도어락 비밀번호로 드나들 수 있는 비대면 방식. 내가 가진 물건들을 생각해 봤을 때 공간은 많이 차지하지만,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 아닌 캠핑용품을 넣으면 적당할 것 같았다. 혹은 누구에게도 쉽게 밝힐 수 없는 혹은 밝히기 싫은 은밀한 취미를 이 공간과 공유해도 썩 괜찮은 선택이 될 거란 생각. 비대면이라는 메리트 덕이다.

두 번째, 박스 단위로 배송을 통해 물건을 맡기고 배송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여기에는 종이 상자, 브랜드 규격 박스, 골프 가방, 캐리어 등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비규격 품목, 비키니 옷장을 연상케 하는 옷걸이 박스가 있다. 이 서비스는 계절을 타거나, 시기를 타는 품목을 맡기면 유용할 거다. 꺼냈다 넣을 필요 없이 소위 몇 개월간 ‘짱박아’ 두기 좋은 것들 말이다.

마지막은 전자와 후자를 결합한 듯, 면적 단위로 물건을 배송시키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소규모 이사와 같이 박스로 해결되지 않는 정도의 짐을 배송을 통해 운반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눈여겨볼 만하겠다. 이 세 가지 옵션들은 모두 월별 정액제로 운영되며, 박스 개수, 이용하려는 스토리지 크기, 혹은 지점별로 가격이 상이했다.

처음에는 방문형 스토리지 서비스에 관심이 가 집에서 가까운 지점에 방문했다. 홈페이지에 기재되어 있는 수치, 그리고 사진으로는 스토리지 면적이 쉽사리 가늠되지 않아서다. 미리 연락하면 직원과 직접 만나지 않고도 부여받은 비밀번호로 전시용 스토리지를 열어 볼 수 있다. 

고민 끝에 스토리지 대비 저렴한 박스형, 그중에서도 옷걸이형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눈 가리고 아웅에 능한지라 베란다에 자리한 캠핑용품들은 잠시 차치하고, 앞서 말했듯 철봉에 걸려 있거나, 곱게 접힌 채 방바닥 한편에 무덤처럼 쌓여 있는 옷가지 처단에 나서기로 한 것. 방 안으로 침투해 있는 어수선함을 먼저 몰아내기로 결정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절차는 간단하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서비스를 신청하면 된다(문의 결과 ‘BOXFUL’ 앱은 외국 지점에서 사용하는 거라고). 가격은 옷걸이 박스 기준 달에 2만 5천 원으로, 본격적으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부터 이 외투들을 걸치면 될 테니 3개월간 이 서비스를 나름대로 시범 기간으로 정하고 사용해보기로 했다.

마음의 여유는 공간의 여유로부터

빈 박스가 도착했다. 옷걸이 봉이 세트로 동봉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상자를 접은 후 봉을 끼우고 재킷과 외투 10벌을 골랐다. 얇은 경량 패딩 같은 옷은 다른 외투와 겹쳐 걸어 가장 두툼한 외투 10벌을 꼬박 채웠다. 사계절 움켜쥐고 있었던 내 것들을 과감하게 덜어냈고 내 공간에 여백이 생겼다. 그리고 부지런히 그 공간을 비워 뒀다.

서비스를 사용했던 기간 물론 삶의 질이 수직 상승했다고는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고기를 구울 때면 방바닥에 쌓여 있는 옷가지들을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고, 서낭당처럼 걸려 있는 옷가지를 목도하며 가뜩이나 정신 시끄러운 일상 속 공해 하나 더 추가할 일이 없었다. 소중하게 확보된 공간에 느긋한 몸짓으로 어지러운 마음 벗어 놓을 수 있었고, 가장 편히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인 집의 역할도, 또 집과 나와의 유대도 더욱 공고해졌다.

계절이 바뀌고 3개월이 흘러 객지 생활을 마친 옷걸이 박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다시 민트색 규격 박스 3개를 시켰다. 샌들과 여름옷을 정리했고, 여름 이불을 넣었고, 당장 사용하지 않지만 버리지도 못할 물건을 담았다. 그렇게 상자 세 개 크기만큼의 유휴 공간을 다시 확보했다. 이번에는 그곳에 양육에 소질은 없지만 화분 몇 개를 들여볼 생각이다. 집이 건넨 여유를 만지며, 사람이 아닌 것에 정성을 쏟는 일에 집중해보고 싶어서다. 

2022년 9월

그곳에 언제나, 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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