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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틀링이 선택한 ‘유니버설 제네브’라는 의미 (+영상)
2026-04-30T18:51:36+09:00
유니버설 제네브

오랜 침묵을 깨고 그들이 보여 줄 미래는?

시계 애호가들을 제외하고, 유니버설 제네브(Universal Genève)라는 이름은 낯설게 들릴지 모른다. 파텍필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20세기 스위스 시계 제조의 황금기를 대표하던 브랜드였지만, 그 명성은 오랜 세월 빛을 잃은 채 역사 속에 묻혀 있었다. 한동안 이름만 남아 있던 이 브랜드가 2023년 12월 돌연 시계 업계의 모든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유니버설 제네브

브라이틀링이 유니버설 제네브를 6,900만 달러에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 오랜 시간 끝맺지 못한 채 펼쳐져 있던 한 권의 책처럼 방치된 이 브랜드가 마침내 새로운 장을 넘기게 된 것.

1989년부터 홍콩의 스텔룩스 홀딩스(Stelux Holdings)가 소유해 온 이 워치 메이커는 이제 브라이틀링의 품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2026년 가을, 곧 다가올 브랜드의 새로운 출발을 마주하기 전 유니버설 제네브가 써 내려간 시간을 미리 들여다본다면 이번 재회가 더욱 반가울지도 모를 일.

미처 몰랐던 화려한 포트폴리오

그리고 50여 년의 공백

시계 제작자 두 명이 의기투합하며 유니버설 제네브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위스 르로클 출신의 누마-에밀 데스콤브(Numa-Emile Descombes)와 율리스-조르주 페레(Ulysse-Georges Perret)는 유니버설 워치(Universal Watch)를 설립하고, 시계 케이스, 용두, 다이얼, 무브먼트 등 시계의 핵심 요소를 생산하며 정밀한 장인정신으로 명성을 쌓아나간다.

그러나 데스콤브는 3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이후 회사의 핵심 인물이었던 루이 베르투(Louis Berthoud)가 1897년 페레의 파트너로 합류, 새시대를 연다. 1910년대에 이르러 유니버설은 자체 브랜드로 완제품 시계를 생산하기 시작하며 1919년에는 제네바로 사업장을 이전해 본격적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해 나간다.

©유니버설 제네브

이들의 도전은 곧 당시로서는 꽤 앞선 발상으로 이어진다. 1927년에는 케이스를 뒤집어 다이얼을 보호할 수 있는 최초의 직사각형 시계인 이데오, 일명 카브리올레가 출시되었다. 이는 훗날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예거 리베르소보다 4년 앞선 시기.

양면 시계라는 개념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혁신적인 접근이었다. 실용성과 아이디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시계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브리올레는 1929년까지 단 3년간만 생산되며 짧은 생을 마감한다.

유니버설 제네브 카브리올레
©유니버설 제네브

1930년대에 들어서며 유니버설 제네바는 크로노그래프 제작의 선구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 첫 번째 모델은 1934년 바젤월드에서 공개한 모델 컴퍼(Compur). 이중 컬럼 휠 시스템을 사용한 초기형 듀얼 푸셔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로 기술적 초석을 다진 크로노그래프 라인의 1세대다. 

이후 복잡한 기능 구현과 한층 깊이를 더한 브랜드는 1936년에는 2개의 서브 다이얼을 가진 유니-컴팩스(Uni-Compax)와 더불어 아워 카운터를 탑재한 세계 최초의 3 서브 다이얼 크로노그래프인 컴팩스(Compax)를 선보인다.

특히 컴팩스 라인은 핀란드 출신의 모델 니나 린트(Nina Rindt)가 남편 요헨 린트의 그랑프리 우승을 트랙 옆에서 지켜볼 때 착용했던 시계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컬렉터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니나(Nina)’라는 별칭으로 더욱 유명하다. 

컴팩스 Ref. 885103/02

유니버설 제네바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기술 개선과 제품군 확장을 이어가며 명실상부한 크로노그래프의 명가로 자리매김해 나간다. 특히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유니버설 제네바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 아울러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크로노그래프 수요가 급증하던 1941년에는 레퐁드마르텔(Les Ponts-de-Martel)에 새 공장을 건설하며 생산력을 대폭 확장하기에 이른다.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1944년에는 브랜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트리-컴팩스(Tri-Compax)를 세상에 공개했다. 크로노그래프와 풀 캘린더, 그리고 문페이즈 기능을 결합한 최초의 시계 중 하나로 복잡한 기능을 담아내면서도 우아하고 간결한 디자인으로 오늘날까지 시계 제조 역사의 걸작으로 회자되는 중이다.

트리-컴팩스 Ref. 881101/01

20세기 중반 전성기를 누린 트리-컴팩스는 수집가들은 물론,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 등 명사들에게 사랑받으며 브랜드의 독보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이 애용한 시계로도 널리 알려져 있어 현재까지도 빈티지 워치 시장에서 높은 상징성을 지닌다.

제랄드 젠타 원조 맛집

그의 초기 디자인

그리고 중요한 전화점이 된 1954년, 유니버설 제네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해로 브랜드 역사에 제랄드 젠타(Gérald Genta)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된다. 손목시계 디자인의 흐름을 바꾼 전설적 인물인 그는 불과 23세의 나이에 자신의 첫 주요 작품을 완성한다.

바로 폴라라우터(Polarouter)다. 이는 오데마 피게의 로열 오크나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 등이 탄생하기 무려 20년 전의 일. 젠타의 천재성을 세상에 처음 알린 시계로 브랜드는 훌륭한 필모 하나를 얻게된 셈이다.

이 시계는 1950년대 상업 항공 여행의 비약적인 발전과 발걸음을 나란히 같이한다. 1954년 11월 15일, 스칸디나비아 항공(SAS)은 극지방을 직접 횡단하여 로스앤젤레스와 코펜하겐을 잇는 파격적인 항로를 개설했다. 이는 기존 항로보다 비행시간을 14시간이나 단축하며 단 22시간 만에 두 도시를 연결한 항공 업계 역사적인 사건 중 하나다.

극지방의 강한 자기장을 견뎌야 했던 조종사들을 위해 탄생한 이 모델은 제럴드 젠타 특유의 심미성과 탁월한 기능성을 완벽히 결합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 충분했다. 시계 이름도 북극 항로(Polar Route)에서 유래되었다.

유니버설 제네바는 다이얼에 ‘Polarouter’ 로고와 함께 ‘SAS’ 문구가 새겨진 오리지널 모델을 단 100여 개만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해당 시계가 초기 스칸디나비아 항공 조종사들에게 지급용으로 제작된 특별한 타임피스라는 의미이기에 해당 매물을 발견한다면 주저 없이 장바구니에 넣어도 좋을 거다.

©유니버설 제네브

이 시계는 4.5mm 스틸 케이스에 입체적인 트위스트 러그, 날카로운 삼각형 핸즈, 그리고 독특한 질감의 이너 링으로 장식된 간결한 노 데이트 다이얼이 특징이다. 1960년대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날짜 창을 추가하는 등 변화를 거쳤고, 출시 1년 만에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폴라우터(Polerouter)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러한 기술적 진화는 곧 무브먼트 구조의 혁신으로 이어진다. 1955년에 등장한 레퍼런스 20357-1은 유니버설 제네브가 자체 개발한 칼리버 215를 탑재한 최초의 폴라우터다. 이 무브먼트의 등장은 시계 제조 기술의 비약적인 도약을 의미했다. 진동추를 무브먼트 내부에 통합한 설계 덕분에 전체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여 더욱 얇고 우아한 시계 제작이 가능해졌기 때문. 

칼리버 215

마이크로 로터 덕분에 피아제는 12P 칼리버를 개발할 수 있었고, 1960년 두께가 단 2.3mm에 불과한 역사상 가장 얇은 자동 무브먼트를 선보일 수 있게 한 초석이 됐다. 또한 마이크로 로터 구조 덕분에 무브먼트의 대부분이 가려지지 않아, 기계의 움직임을 보다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시계 애호가들에게는 중요한 매력으로 남는다. 그간 허울뿐인 이름만 남아 있는 듯 보였지만, 그들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의 손목 위에서 또렷하게 이어지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반세기 터널의 끝

DNA는 간직한 채

하지만 찬란했던 브랜드의 성장세는 1969년 크리스마스, 역사상 최초의 쿼츠 시계인 ‘세이코 쿼츠 아스트론 35SQ’가 등장하며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세이코가 촉발한 쿼츠 혁명으로 1970년대와 80년대 기계식 시계 산업은 수십 년간 침체기를 겪었고, 유니버설 제네브도 예외는 아니었다.

브랜드는 쿼츠 기술로 명맥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이름과 지식재산권이 여러 차례 주인을 바꾸는 격변 속에서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다. 그리고 약 반세기 후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이 브랜드는 2026년 가을,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무대에 설 준비를 하고 있다.

폴라우터(좌), 컴팩스(우) ©유니버설 제네브
카브리올레(좌), 디스코 미니(우) ©유니버설 제네브

현재 공개된 것은 6개의 컬렉션. 그중 네 가지 라인업이 주축이 될 예정이다. 39mm와 37mm 두 가지 크기로 제공되는 폴라우터 라인은 시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섹터 다이얼, 트위스트 러그가 특징으로 스테인리스 스틸 또는 18k 로즈 골드 중 선택할 수 있다.

니나 린트 손목에서 빛났던 클래식한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이어받은 컴팩스, 아르데코 양식을 반영한 카브리올레, 브랜드 새로운 컬렉션인 디스코 미니 등이다. 브라이틀링 CEO 조르주 케르네스가 강조했듯 브랜드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세련된 디자인, 그리고 혁신적인 무브먼트를 조화롭게 결합하겠다는 비전과 부합하는 모습이다.

시그니처 에디션(좌), 캡슐 에디션(우) ©유니버설 제네브

브라이틀링은 유니버설 제네바를 자사 라인업보다 상위에 위치시켜 명실상부한 최고급 하이엔드 브랜드로 안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위상에 걸맞게 가격대 또한 높게 책정되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카브리올레 모델이 약 9,800스위스 프랑(약 1,800만 원)부터 시작하며, 브랜드의 핵심인 크로노그래프 라인은 약 15,500스위스 프랑(약 2,900만 원)부터다.

제대로 만들어진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생각하면 납득만할 만한 수준이지만, 한 번쯤 소유를 꿈꿔온 이들에게는 다소 높은 문턱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유니버설 제네바가 단순한 복각을 넘어, 과거 시계 제조의 쿠튀리에라 불리던 최상위 클래스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읽히기도 한다.

©유니버설 제네브

2023년 인수 발표 이후 수년에 걸쳐 진행된 이 세심한 노력의 결과물은 단순한 브랜드의 귀환 그 이상을 의미한다. 조르주 컨이 유니버설 제네바의 미래를 ‘재건’이라 정의한 것처럼, 브랜드의 빛나는 과거 위에 어떤 주춧돌을 쌓고, 어떤 기둥을 골라,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벽을 어떤 방식으로 세워 나갈지 시계 애호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