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게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4월 20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이에게는 자연이 건넨 고마운 선물을 기리는 기념일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현실의 틀에서 벗어나 영혼의 해방을 바라는 의식의 시간이다. 그날의 풍경은 지역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레게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화의 정신만큼은 장소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를 하나로 연결한다.
서울 끝남동의 어느 골목,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경한 레게 비트가 매일 같이 흐르는 곳이 있다. 바로 루츠 레게 바를 표방하는 원러브서울이다. 자메이카의 음악과 메시지가 이역만리 한국에서 하나의 공간으로 피어나기까지, 그 여정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묻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사랑을 외치는 유일무이 레게 커뮤니티
원러브서울 김산도 대표를 만나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레게 바 원러브서울을 운영하는 김산도라고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원러브서울은 어떤 공간인가.
자메이카 루츠 레게 위주의 바이닐 음악으로 채워지는 작은 레게 바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나 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하나의 레게 커뮤니티로 역할하기도 한다. 가게 이름은 레게 문화에 있어 가장 상징적인 인물인 밥 말리(Bob Marley)의 곡 ‘원 러브(One Love)’에서 따왔다.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밥 말리인가.
멋지고 뛰어난 레게 아티스트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돌고 돌아 결국 밥 말리로 돌아오게 되더라. 아무래도 음악이 좋다는 차원을 넘어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 아닐까. 사실 정확히는 밥 말리라는 인물 자체보다 ‘원 러브’라는 슬로건을 혼자 과대해석할 정도로 좋아한다.

원 러브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밥 말리가 이 말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설명한 적은 없다. 나 같은 팬들이 유추할 뿐이다. 원 러브는 말 그대로 ‘하나의 사랑’인건데,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세상 어떤 것도 그 하나와 같은 마음으로 대하며 사랑할 수 있다’라는 맥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당연해 보이는 이 사실이 삶을 잘 살아가게 만드는 하나의 태도라고 생각이 든다.
사랑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어릴 때부터 종교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다양한 종교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각기 다른 교리 속에서도 결국 그들이 지향하는 본질은 모두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신은 무엇일까? 내가 내린 결론은 ‘사랑’이었다. 인간은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추구해오지 않았나. 물론 완전히 닿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이해하려 헤매는 그 과정만으로도, 세상을 한결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레게 역시 종교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알고 있다.
연관이 깊다. 레게 음악의 가사를 살펴보면 성경을 기반으로 한 내용이 많다. 따지자면 일종의 찬송가인 셈이다. 그렇다고 보편적인 기독교 음악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레게의 뿌리인 자메이카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무역으로 끌려온 사람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사회다. 그래서 본인들을 핍박한 백인의 모습이 아닌 흑인 예수님을 믿는 독자적인 종교, ‘라스타파리(Rastafari)’가 생겼다. 이를 배경에 둔 음악이 레게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면 레게가 개인 간의 사랑을 넘어 인류애, 평화, 연대를 외치는 이유를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고 모든 레게 음악이 이렇게 담대한 메시지를 담는 건 아니다. 레게도 록이나 펑크처럼 장르가 다양해서, 가벼운 내용으로 가사를 구성하는 방향성의 음악도 많다. 원러브서울이 추구하는 루츠 레게의 경우 비교적 클래식한 쪽이다.

레게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나.
스무 살 무렵만 하더라도 ‘사랑과 평화를 외치는 따분한 휴양지 음악’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베를린의 한 레게 바를 방문한 경험이 전환점이 됐다. 자메이카인 사장님은 동양인이 혼자 온 게 신기했는지, 한참 동안 레게를 주제로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레게는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하나의 철학 공동체라면서. 이야기 주제가 ‘신’에까지 이르자 당시엔 그저 적당히 웃어넘기며 자리를 모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그 대화들이 궁금해져 레게 문화를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제야 조금씩 이해가 가더라. 그들이 왜 머리를 자르지 않고 드레드락을 하는지, 왜 그들의 음악이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닌지가. 그때부터 레게가 완전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YOU & I’가 아닌 ‘I & I’, 즉 ‘너는 곧 나고 내가 곧 너’라는 레게의 공동체 의식은 인생관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음악을 넘어 삶을 사는 하나의 태도로서 레게를 열렬히 사랑하게 된 거다.
그러다 레게 바까지 열게 된 건가.
맞다. 사실 처음부터 지금 바를 열 계획은 아니었다. 원래는 노년에 작은 레게 바 차려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에너지가 충분히 있을 때 좋아하는 걸 해보면 단순한 취향 이상의 무언가를 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 그래서 계획보다 시기를 많이 앞당겨 문을 열게 됐다. 혼자는 아니고, 고등학교 동창인 박경대 대표와 함께 운영 중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취향을 공유하는 사이였나.
전혀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교류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서른 언저리에 다시 가까워졌다. 이 친구는 오랫동안 취향 없이 살다가 뒤늦게 삶의 즐거움을 찾아 헤매던 중이었다. 반면 나는 이미 확고한 취향을 가진 상태였고.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툭 던진 제안이 원러브서울의 시작이 됐다. 나는 디자이너 일과 병행하고 있지만 친구는 전업으로 가게를 운영한다. 거의 목숨을 걸었다.(웃음)

원러브서울에는 어떤 사람들이 방문하나.
비율로 따지면 동네 주민이 4, 호기심에 방문하는 사람이 4, 레게 팬이나 아티스트가 2 정도 된다. 처음 공간을 열 때는 동네 분들이 많이 와주길 바랐다. 레게 음악이 소수만 즐기는 매니악한 장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일상에서 더 반짝거리는 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테리어에서도 특유의 색채를 덜어내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다행히 초반에는 선뜻 오지 못했던 분들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레게가 낯선 사람이 이곳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보통의 카페나 캐주얼한 바를 방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레게’라는 키워드에 사로잡히면 이걸 잘 즐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최근에 SNS에서 반려견들이 레게 음악에 심신 안정을 느낀다는 이야기가 화제였는데, 그 소식을 듣고 산책하듯 들르는 분들이 많아졌다. 딱 그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던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실제로 많은 손님이 레게와 관련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이게 왜 명곡인지 모르겠다, 밥 말리가 이렇게 유명한 이유가 뭐냐 같은. 대단한 가창력이나 기교가 돋보이는 장르가 아니다 보니, 어찌 보면 처음에는 귀에 확 꽂히지 않는 게 당연하다. 음악의 배경지식을 알고 들으면 또 다른 맛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매장 음악을 선곡하는 기준이 있나.
무조건 캐주얼하게 가려고 노력한다. 이해도가 높은 손님이나 뮤지션이 방문하면 좀 더 깊이 있는 바이닐을 꺼내기도 하지만, 레게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음악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요즘은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처럼 누구나 알 법한 팝 음악의 레게 버전이 수록된 레코드를 종종 선택한다. 내가 뮤지션이 아니다 보니 이런 부분에 있어 딱히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것 같다.
아티스트와도 교류하는 편인가.
서울에서 레게를 즐길 공간이 현재로서는 원러브서울이 유일하다 보니 많이들 찾아주신다. 사실 이곳을 열기 전에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레게 뮤지션들의 앨범 표지나 공연 포스터를 제작했었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작년에는 하하 님과 스컬 님이 방문해 주셨는데, 특히 하하 님이 우리의 작업물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셔서 함께 협업하는 기회로 이어지기도 했다.
처음 레게 바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티스트 분들이 좋지 않게 볼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뮤지션이 아닌 일개 팬이었으니까. 막상 공간을 오픈하고 연락을 하니 너무 반가워하시더라. 도움도 많이 받았다. 특히 해외 레게 아티스트가 한국에 오면 원러브서울을 소개해 주고 연결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감사한 일이다.

해외 아티스트의 공연이나 바이닐 파티도 종종 열린다고.
따로 인연이 있거나 섭외하지 않았는데, 뮤지션 측에서 먼저 공연이나 바이닐 셀렉팅을 하고 싶다고 문의를 준다. 다가오는 4월 26일에는 스페인 아티스트인 자바리(JABARI)가 내한해 플레이를 할 예정이고, 4월 30일에는 인도네시아 아티스트 나모이 부다야(NAMOY BUDAYA)가 작년에 이어 방문을 앞두고 있다.
먼저 제안을 해본 적은 없나.
아직은 없다. 먼저 제안하게 되면 비용 문제도 발생하고, 아티스트의 일정도 관리해 줘야 하지 않나. 그럴 여력이 안 된다. 공간 운영을 통해 얻는 수익이 사실상 거의 없는 실정이라, 현실적으로 먼저 제안을 건네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래서 아티스트 측에서 먼저 연락이 오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상업적으로 잘 되는 공간이 아닌 지라 만족스러울 만한 페이를 주지는 못한다고.
그럼에도 뮤지션들은 흔쾌히 오겠다고 한다. 우리는 문화를 전파하는 사람들이잖아, 라고 말하면서. 자국에서는 극진히 대접받는 사람들인데,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게 미안하면서도 너무 고맙다. 이런 연대감이 내가 레게 문화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래도 육회탕탕이 정도는 사드리고 있다.(웃음)

운영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금전적인 문제인가.
그 부분도 크지만, 초반에는 손님이 지갑을 열 만한 가치를 증명하는 데 가장 애를 먹었다. 특히 식음료에 있어서. 처음엔 그저 자메이카 맥주 몇 개 가져다 놓고 음악만 좋으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레게 바도 결국 커피나 술을 즐기고 음식을 먹는 공간이라는 본질을 간과한 거다. 초창기에 ‘별거 없다’라며 발길을 돌리는 손님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손님들이 만족할 만한 식음료를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레게 문화 안의 ‘라스타파리안(자메이카 토속 종교인)’들이 슬로건으로 삼는 내츄럴에 초점을 잡았다. 가능한 한 자메이카와 개연성이 있는 메뉴를 설계했고, 지금은 가공 제품이나 육류를 최대한 배제한 자연스러움을 키워드로 한 음료와 음식을 선보이고 있다. 주류 또한 자메이카 전통 차, 근본에 가까운 칵테일 등 여러 라인업을 마련한 상태다.
원러브서울이 지향하는 최종적인 모습이 있다면.
첫 번째로는 가벼운 스탠스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공간이고 싶다. 말보다는 음악과 행동, 이 공간에서의 사소한 태도 하나하나를 통해 손님들이 무언가를 느꼈으면 좋겠다.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이념에 닿게 되는, 그런 무드를 가진 공간을 지향한다.
두 번째는 서울 특유의 독자적인 레게 커뮤니티가 되고 싶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레게가 각 지역의 감성과 문화에 맞게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해 왔다. 한국의 레게 신도 물론 훌륭하지만, 아직은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존재한다. 해외 아티스트들이 서울을 떠올렸을 때 바로 연상되는, 음악에 더해 공간과 사람이 주는 에너지가 가득한 고유의 레게 컬처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