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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클래스 쿠페의 마지막 불꽃, 메르세데스-벤츠 S450 쿠페 시승기
2023-02-22T18:08:28+09:00

낭만을 간직한 채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S-클래스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

독일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는 자동차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것에 도가 튼 것 같다. 쿠페형 SUV, 소형 SUV, 소형 쿠페 SUV, 그리고 더 많은 SUV까지. 일단 돈이 되는 SUV는 갖가지 모양으로 다 뽑아내고 있는데, 덕분에 요즘 벤츠의 SUV들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들의 쿠페, 컨버터블, 그리고 다른 특별한 차량에 대한 관심 역시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재 자동차 업계에 떠돌고 있는 루머에 의하면 이런 추세를 반영해 벤츠가 S-클래스 쿠페다음 세대부터 생산하지 않을 계획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정말 유감스러운 소식이다. 벤츠는 오랜 세월을 통해 쌓아 올린 헤리티지로 항상 아름답고 우아한 모양의 쿠페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긴 후드와 B필러가 없는 디자인을 한 S-클래스 쿠페는 항상 벤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차량이었다. 이는 벤틀리의 화려함, 또는 BMW의 절제된 딱딱함과는 분명 구분되는 지점이었다.

정작 플래그십이라는 포지션에도 불구하고 벤츠 S450 쿠페가 3.0리터 V6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제 450이라는 네이밍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무리이지 싶다. 차의 크기에 비해 작게 느껴질 수도 있는 파워트레인은 많은 자동차 마니아로 하여금 ‘최소한 V8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같은 의문을 품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S-클래스 쿠페에서 가장 빛나는 모델이 S450이라고 한다면?

우선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S-클래스 쿠페는 스포츠카가 아니다. 뒤에 문짝 두 개가 없고, 미끄러질 듯한 디자인이 스포티함을 표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차는 GT에 더 근접한 성격을 갖고 있다. 포르쉐 911과 경쟁하기 위해 태어난 차가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AMG 튜닝으로 엄청난 마력과 토크를 자랑하는 V8, 심지어는 V12 버전도 존재하긴 한다. 공격적인 디자인이 추가되었고, 스포티한 세팅의 서스펜션은 이 럭셔리카의 운동신경이 생각보다 월등하다는 제안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AMG S63이건, 아니면 비현실적인 AMG S65가 되었건 간에, 이 차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무게를 쉽게 숨기지 못한다. 화려한 전성기를 자랑했던 복서가 20년 동안 허리둘레만 늘린 격이다. 물론 싸움에서는 여전히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겠지만, 재빠른 상대는 화려한 스텝과 위빙으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이 토실한 벤츠는 전성기에도 날렵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 차는 언제나 비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S-클래스 쿠페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높은 마력수와 칼 같은 핸들링이 마치 차의 모든 것을 정의하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요즘, S-클래스 쿠페 같은 차량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많이 벗어나 있기는 하다. 실제로도 S-클래스 쿠페가 5초 이하의 제로백을 마크하거나, 고카트 같이 날카로운 핸들링을 선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차는 스스로 무엇을 잘하는지를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고집스럽게 추구한다.

우선 S-클래스 쿠페는 현재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 중에서 가장 우아하게 디자인된 차량이다. 우아한 실루엣을 따라 앞으로 쭉 뻗은 후드, 그리고 양쪽에 날카롭게 세워진 라인을 따라 뒤쪽으로 향하면서 마무리되는 뒷모습. 이 모든 디자인에 마침표를 찍는 필러리스 디자인까지. 이 모든 구성 요소는 조화롭고 아름답게 이 차의 섬세함을 표현한다.

S-클래스 쿠페는 현재 도로를 주행하는 자동차 중에서 가장 우아하게 디자인된 차량이다.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이 박혀있는 헤드라이트는 그릴을 감싸며, 그 그릴은 AMG 버전의 파나메리카나 그릴과는 또 다른, 더욱 아름다운 크롬으로 표현된 점으로 구성된다. 파나메리카나 그릴은 차량에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긴 하나, 이렇게 우아한 디자인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한니발 렉터 박사의 마스크가 연상되다 보니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스티어링 휠을 잡고 느끼는 첫인상은 부드러움이다. 엔진, 변속기, 그리고 승차감까지 모두 스타일리시한 안락함으로 도로를 달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가속성능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스포츠카나 슈퍼카 같이 빠르지는 않아도 항상 계기판을 보면 생각했던 속도를 훌쩍 넘어가서 운전자를 놀래게 만든다. 지금 내가 50km/h 정도로 달리고 있을까 싶어 계기판을 보면 두 배 정도 되는 속도를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속임수는 차를 운전하면서 처음 경험했고, S-클래스 쿠페의 가장 큰 강점을 요약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약 이런 스피드가 이 차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작은 엔진을 탑재한 S450이 가장 훌륭한 S-클래스 쿠페라고 생각할까? 터보가 달린 이 6기통 엔진은 이 차를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하다. 엄청난 힘을 자랑하는 AMG 엔진은 갓 운전면허를 따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가속페달을 무식하게 밟아대지 않는 이상, 나머지 일상 주행에서의 승차 경험은 거의 비슷하다.

내가 탄 차가 S63이건 S450이건, 계기판에 나온 속도는 몸으로 체험하기 힘들다. S450은 단지 AMG의 95% 정도 경험을 선사하면서 출차할 때와 주유소에 들를 때 지갑에 무리를 덜 준다. 아낀 돈으로 깔끔한 중고 포르쉐 한 대는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고, 스포츠카에 대한 욕망은 이쪽으로 해소하는 것이 더 이득이지 않을까? 물론 AMG를 타고 있다는 사실은 특유의 배기 사운드가 실내까지 전해질 때 수시로 상기되겠지만, 워낙 조용한 내부에서 음악의 볼륨을 조금이라도 높인다면 이마저도 어차피 잘 들리지 않는다. 밖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작은 팬서비스 정도는 되겠지만 말이다. 

인테리어도 S450은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우리의 시승차 실내에 도배된 Designo 옵션은 더욱 빛이 났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덮인 시트는 구름 위에 누워있는 듯 몸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 준다. 대시보드, 도어카드 등 모든 표면도 가죽으로 덮여있다. 물론 최고급 가죽은 아니지만, 이런 디테일에 목숨 걸지 않는다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단점이다.

소소하게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알칸타라 헤드라이너가 없다는 것 정도일까? 차의 성능이나 가치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알칸타라로 덮인 헤드라이너의 고급스러움은 부정하기 힘드니까. 그래도 디자인적으로는 다른 점이 없고, 모든 S-클래스 쿠페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거대한 스크린이 두 개나 대시보드를 장악한다. 물론 이 두 스크린의 인터페이스는 이 차가 곧 연금을 받을 신세라는 점을 강조하듯, 점차 올드해 보이는 인상을 숨기기는 어렵다. 그리고 지난 세대에 사용되었던 로터리 노브는 이 인포테인먼트의 단점을 더 부각시키기도 한다.

조금 더 깊이 단점을 파고들면 이 S-클래스 쿠페, 아니 전반적인 현세대 벤츠의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는 감촉성의 부재다. 가죽도 부드럽고 우드 트림도 멋지지만, 이 모든 표면의 밑에는 미묘할 정도의 딱딱한 플라스틱의 존재가 느껴진다. 이는 다임러 크라이슬러 세대 이전의 벤츠에서라면 결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예전 클래식 벤츠의 부드러움은 화강암이 비단 위를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줬다면, 지금은 화강암 패턴을 플라스틱 위에 프린트해 미끄러지는 듯한 감각에 가깝다. 비슷한 부드러움과 조용함을 선사하지만, 그 알맹이는 묵직한 맛 없이 가상으로 표현된 부드러움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차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나쁜 차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지 제네시스(Genesis)처럼 신생 럭셔리 브랜드들은 가격대보다 더욱 고급스러운 차를 생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고, 벤츠나 BMW는 예전과 달리 이윤에 더욱 민감해지면서 묘한 타협점에 이른 것이라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예전처럼 벤츠가 R&D에만 무지막지한 투자를 하고 예산 걱정하지 않고 품질에 목을 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는 S450이 S-클래스 쿠페 중 가장 적합한 모델인 이유이기도 하다. 

. 예전처럼 벤츠가 R&D에만 무지막지한 투자를 하고 예산 걱정하지 않고 품질에 목을 매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차 내부를 온통 가죽, 알칸타라, 카본파이버로 도배해 놓아도 어딘지 모르게 플라스틱스러운 여운을 감추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더 높은 급의 S-클래스 쿠페로 시선을 돌리니 인정하기 힘든 가격대가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이 차량 오너들은 아마도 90%가 출퇴근을 하거나 가끔 설렁설렁 드라이브하기 위해 이 선택지를 골랐을 것이다. 당연히 더 힘 좋은 엔진은 스포츠카도 아닌 S450 쿠페에는 그다지 어울리지도 않는다.물론 AMG를 타면 골프장 주차장에서 목에 한번 힘을 줄 기회도 생기고 자랑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일시적인 허세에 불과하지 않을까?

우리가 S450 쿠페를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로 도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S450은 S-클래스 쿠페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모델이다. 부드럽고, 조용하고, 운전자와 승객들을 편안하고 스타일리시하게 이동시켜주는 것. 럭셔리 그랜드투어 쿠페에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이미 S450 쿠페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