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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DP 향수인가? 럭셔리한 향의 정수, 특별한 남자 EDP 향수로의 초대
2023-02-21T17:19:51+09:00

알아두면 쏠쏠한 향수 상식과 함께 소개하는 4개의 EDP 향수.

한 달에 한두 번은 어김없이 백화점 향수 코너를 찾아 이런저런 향을 테스트해 본 지가 1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이미 맡아본 향도 새롭게 느껴질까 다시 맡아보고, 신제품이 나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콧구멍을 벌름거려보는데, 이렇게 취미를 방자해 낭비해버린 시향지가 책 한 권 분량은 될 것 같아 늘 마음 한편에 죄책감을 안고 있다.

정승 집 개도 삼 년이면 륙갑을 한다고, 이런 낭비벽이 의외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그중 하나는 이상하리만큼 오 드 퍼퓸(EDP, eau de parfum) 향수를 추천 받았던 경험이 드물었다는 것이다. 특히 유명 디자이너 향수 브랜드일수록 그랬는데, 모 브랜드의 한 직원은 ‘남자분들한테 EDP 제품은 좀 별로예요.’라고 까지 말하기도 했다. 글쎄다.

EDP 향수라고 하면 진하고 독한 향수로 인식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래서 다소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EDP 향수를 기피하는 이들도 있는데, 몇 가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점들이 있다. 최근 EDP 향수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니치 향수, 인디 향수들도 국내에 많아지며 경험의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EDP 향수에 입문하기 전 EDP 향수란 무엇이며, 어떤 제품들이 눈여겨볼 만한지 아래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본문 하단에서 동영상으로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알아두면 쓸모있는 EDP 상식 

일단 EDP가 뭔지 좀 알고는 가자. 향수마다 제품명 끝에 EDC, EDT, EDP, Parfum 등의 수식어가 붙는데, 이는 부향률(알코올에 대한 퍼퓸 오일의 비율)에 따른 분류이다. 기본적으로는 부향률이 높을수록 향의 강도와 지속력이 높아진다. EDP의 부향률은 보통 15% 내외로 가장 높은 부향률을 가진 퍼퓸(parfum, 20-30%) 보다는 낮고 오 드 뚜왈렛(eau de toilette, 8-12%) 보다는 높다. 최근 출시되는 향수들이 부향률을 높여 출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여 부향률이 18-20%에 이르는 EDP 향수가 많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EDP 향수는 ‘헤비한’ 향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부향률에 따른 향수 분류와 관계없이, 모든 향수가 주는 주된 느낌에는 조향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가장 크게 반영된다. 따라서 EDP 향수라도 조향사가 프레쉬한 향을 의도했다면, 프레쉬한 느낌이 강하고 무거운 향을 의도했다면 무거운 느낌이 강해지는 것이다. 예로써,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니치 향수 크리드(The House of Creed)의 ‘실버 마운틴 워터’나 톰 포드 ‘네롤리 포르토피노’, 바이레도 ‘선데이즈드’, 페라리 ‘라이트 에센스 EDP’ 같은 향수들은 EDP 향수임에도 헤비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EDP 향수는 대개 지속력과 발향력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독한 향수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사실과 거리가 멀다. EDP 향수는 보통 알코올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피부 자극도 적은 편이고 두통을 유발하는 정도도 생각보다 적다. 오히려 피부 자극이나 두통에는 부향률보다는 향수의 원료나 기타 화학 성분이 더욱 크게 관여한다.

아울러, EDP 향수라도 EDT보다 지속력과 발향력이 약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바이레도 EDP 제품 같은 경우 대체로 지속력이 떨어진다는 평이 많으며, 딥티크 탐다오 EDP는 발향력이 약하다는 후기가 많다. 이외에도 내가 맡았을 때와 남이 맡았을 때 느껴지는 발향력 및 지속력의 괴리가 있을 수 있고, 개개인의 체온이나 땀이 나는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EDP 계통의 향수는 의외로 역사가 가장 짧은, 그러나 가장 럭셔리하게 취급되는 분류이기도 하다. 정확한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970년대부터 프랑스 패션계를 중심으로 출현했다고 알려졌다. 당시까지만 해도 가장 높은 부향률을 가진 퍼퓸은 상류층 위주로 소비되었는데, 부향률은 조금 낮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퍼퓸 못지않은 고급스러움을 가진 EDP의 출현은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교적 최근에는 EDP 향수의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더욱 강해지는 추세를 관찰할 수 있다. 특히 라인업 대부분을 EDP로만 구성하는 브랜드들의 경우보다 더 고급스러운 향료와 복잡한 공식으로 제작한 고가 제품을 선보이며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주로 디자이너 향수 브랜드보다는 니치 향수 브랜드들이 이에 포함되는데, 캐주얼함보다는 유니크하고 력셔리한 향을 내세워 구매력이 높은 계층과 향수 마니아들을 포섭해 명성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한 크리드를 비롯해 아래에 소개할 퍼퓸 드 말리, 아무아쥬 같은 브랜드들이 그 예이다.

다음에 소개할 네 개의 EDP 향수들을 하나의 주제로 묶을 공통점은 사실 없다. 남들과 향이 겹치면 남자끼리 팬티 돌려 입는 것에 준하는 불쾌감을 느끼는, 사회성 부족한 에디터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픽(pick)’이다. 다만, 사용해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고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향수들이니, 넷 중 하나는 반드시 독자의 취향에 부합할 것이라 믿는다. 향에 심취할수록 더 빠져든다는 EDP 향수, 아래 네 개의 제품과 함께 그 심오한 세계로 발을 들여보자.


싱그러움과 묵직함의 공존, 퍼퓸 드 말리 ‘페가수스’

탑노트: 헬리오트로프, 커민, 베르가못 | 미들노트: 아몬드, 라벤더, 재스민 | 베이스노트: 바닐라, 샌달우드, 앰버
발향력: ★★★★☆ | 지속력: ★★★★(5-6시간)
용량: 75ml / 125ml | 가격: ₩200,000-260,000(75ml 기준)

작년 롯데월드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 입점하며 국내 런칭한 프랑스 하이엔드 니치 향수 퍼퓸 드 말리(Parfums de Marly). 제품 중에서는 우디 계열의 향수 ‘레이튼(Layton)’이 가장 유명하다. 이 제품을 두고 할리우드 배우 톰 하디가 연상된다는 후기도 더러 있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레이튼뿐만 아니라 제품 대부분이 톰 하디처럼 묵직하고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약간의 껄렁껄렁함도 느껴지는 이미지가 강하다.

퍼퓸 드 말리는 향수 문화가 부흥했던 18세기 루이 15세 왕실의 유산과 문화를 재해석한 브랜드로도 알려졌는데, 2011년 출시된 ‘페가수스(Pegasu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말, 페가수스를 닮은 향수로도 거론된다. 신화 속 동물의 냄새를 어찌 알겠냐마는, 신비롭고 애니멀리한 느낌이 있다,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사실 첫인상은 거부감이 들 소지가 있다. 3분도 안 가서 없어지는 베르가못의 시트러스함과 함께 뭔지 모를 비릿한 냄새가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데, 흔히 ‘물 비린내’, ‘오이 비린내’, ‘수박 비린내’ 등으로 불리는 반쯤은 싱그럽고 반쯤은 역한 타입의 비린내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향인데, 목욕탕에서 틈틈이 흘러들어오는 스킨 혹은 오이 비누 향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 비린내가 한 시간 이내로 살짝 누그러들기는 하는데, 나중에 가면 이 비릿함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페가수스에서 중심이 되는 향은 아몬드 향이다. 진짜 아몬드 말고 아몬드 향 핸드크림이나 바디로션을 떠올리면 쉽게 어떤 느낌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초콜릿 향으로 알려진 헬리오트로프, 라벤더, 재스민이 꽤 조화롭게 뒷받침되어서 파우더리하고 밀키한 느낌을 만들어준다.

사실 이러한 아몬드, 헬리오트로프, 라벤더, 재스민의 조합만 놓고 보면 따뜻하고 묵직한 느낌을 연상하기 쉬운데, 앞서 말한 싱그러운 비릿함이 개입함으로써 전혀 다른 느낌을 연출한다. 둘 사이의 조합이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을 텐데, 어떤 향료와 블렌딩으로 만들어 냈는지 몰라도(모든 향수는 향료와 블렌딩을 100% 공개하지 않는다) 너무나 신비롭고 매혹적인 향을 전달한다.

베이스 노트로 가면 바닐라, 우디 향이 앞으로 치고 나오는데 여전히 묵직한 느낌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러 후기에서 페가수스를 가을, 겨울용이라고 평가한 것을 봤는데,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대놓고 시원한 느낌은 아니더라도 드라이한 느낌이 매우 강해 어느 정도의 경쾌함이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된다. 습기를 머금어 축축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그런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때문에 무더운 한여름만 아니라면 어떤 계절, 날씨와도 큰 이질감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살보다는 옷에 뿌릴 때 싱그러운 향이 더 강조되고 오래 가니 참고할 것.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남성, 캐주얼한 옷과 포멀한 옷 모두에 어울리며, 데일리보다는 특별한 날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오만 왕실이 직접 만드는 향수, 아무아쥬 ‘리플렉션 맨’

탑노트: 로즈마리, 레드 페퍼 베리, 오렌지 잎 | 미들노트: 네롤리, 오리스 뿌리, 재스민, 일랑일랑 | 베이스노트: 베티버, 패츌리, 샌달우드, 세다우드
발향력: ★★★☆ | 지속력: ★★★★(5-6시간)
용량: 50ml / 100ml | 가격: ₩340,000-370,000(50ml 기준)

아무아쥬라는 이름이 낯선 이들이 많을 것이다. 1983년 당시 오만의 술탄이었던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Qaboos bin Said Al Said)의 지시로 그의 아들이 수도 무스카트에 설립한 왕실 브랜드이다. 도대체 왜 술탄이 향수 브랜드 설립을 직접 지시했는지 의아할 수 있는데, 오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좀 더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오만은 유향나무에서 추출한 유향 산지로 유명한데, 독특한 향을 가진 유향 에센스는 오만과 다른 국가의 왕실 및 황제들에게 진귀한 공물로 바쳐졌다고 한다. 지금도 오만에 가면 이 유향 특유의 냄새를 어렵지 않게 맡을 수 있다고 하며, 속된 말로 길바닥에서 발에 치이는 게 유향이라고 한다.

이 유향 덕분에 과거부터 오만은 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오랜 기간 독자적인 향수 제조 전통을 쌓아왔는데,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 술탄은 이러한 전통을 보존하고 또 다른 국가 지도자들에게 전달한 특별한 선물을 개발할 목적으로 아무아쥬 설립을 지시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외교 목적으로 아무아쥬 향수가 각국 명사들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아무아쥬 향수 중 직접 테스트 해 본 것은 시그니처 향수인 ‘인터루드 맨(Interlude Man)’과 ‘리플렉션 맨(Reflection Man)’ 두 가지인데, 인터루드 맨의 경우 국내에 한정해 ‘호’보다는 ‘불호’가 압도적으로 많을 향이라고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이국적인 향을 좋아하고 딱히 싫어하는 향도 없어 재미있게 경험했지만, 중동 특유의 강하고 톡 쏘는 향이 극도로 강해서 대다수의 이들이 쉽게 범접하기 힘들 것이다.  

반면 2007년 출시된 리플렉션 맨은 무난한 향을 가진 향수이다. 너무 무난해서 해외에서는 ‘지루하다(boring)’는 평이 꽤 많다. 다만, 꼭꼭 숨겨놓은 향도 귀신같이 찾아내는, 향에 경험이 많은 이들이라면 절대 이 향수를 지루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파우더리한 향과 비누 느낌이 지배적인 향수이다. 로즈마리의 산뜻함과 레드 페퍼 베리의 맵콤 쌉싸름한 향이 은근히 후각을 자극하는 것으로 시작해, 곧이어 재스민 향, 네롤리와 베이비 파우더 느낌의 향이 베이스노트까지 이어진다. 중간중간 일랑일랑, 오리스 뿌리, 패츌리같이 독특한 향이 개입하긴 하는데, 그다지 명료하게 드러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자세히 맡아보면 어딘지 모를 신기한(정말 신기하다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향이 문득문득 코를 ‘툭’하고 건드린다. 솔직히 어떤 향인지 모르겠다. 그냥 ‘중동 느낌’, 너무도 이국적인 향이다. 매번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를 가득 메우는 파우더리한 메인 향이 끝나려는 찰나, 이 이국적인 향이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일으켜 ‘이게 뭐지?’ 하고 계속 향을 쫓게 만든다. 바로 이 향수의 포인트이다. 

온라인 향수 콘텐츠의 클리쉐인 ‘여성이 돌아보게 하는 향수’의 정점이라고 할 만하다. 대놓고 ‘나 좀 돌아봐 줘, 돌아봐 줘’라며 관심을 구걸하는 느낌이 아닌, ‘잠깐, 이 남자 뭐지?’ 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미스터리한 느낌을 발산한다. 과한 향수가 싫고 점잖으면서도 남들과는 보일 듯 말 듯한 차이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합할 듯.

리플렉션 맨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바로 병 디자인이다. 중동을 연상케 하는 여러 장식을 비롯해 고급 시계 크라운을 연상케 하는 병뚜껑 상단 디자인, 핑크빛 큐빅 등이 독특한 개성을 뽐낸다. 또한, 병뚜껑에는 자석이 들어 있어 여닫을 때 손으로 전해지는 쾌감도 흥미롭다. 병뚜껑을 거꾸로 끼우면 자석이 병뚜껑을 밀어내는데, 마치 ‘우리가 의도한 디자인을 해치지 마!’라고 말하는 듯하기도 하다.  

차분하고 투명한 느낌의 향수로 30대 이후 연령대, 포멀한 의상에 잘 어울릴 듯하다. 헤비한 느낌은 아니지만, 약간의 온기가 느껴져 늦봄 정도까지는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을 듯. 유니크한 향수를 찾는다면, 국내에도 정식 수입사가 생겼으니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할 것이다.


학력세탁용 향수? 세르주 루텐 ‘세르귀’

탑노트: 아이리스, 장미, 슈가 | 미들노트: 허니, 머스크, 인센스, 토바코, 앰버 | 베이스노트: 샌달우드
발향력: ★★★★★ | 지속력: ★★★★☆(6-7시간)
용량: 50ml / 100ml | 가격: ₩250,000-280,000(100ml 기준)

프랑스 명품 향수 브랜드 세르주 루텐은 국내에서 그야말로 ‘죽을 쑨’ 브랜드이다. 2010년대 초반 야심 차게 국내 백화점에 입점한 적도 있으나,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2021년 초 전 매장이  철수했다(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있기는 한데, 면세점 매장이다).이후 향수 편집숍에 이따금씩 수입되기도 하고 올리브영 온라인숍에 등장하는 등 마땅한 거처를 찾지 못하고 전전하다가 최근에는 퍼퓸그라피에서 공식 수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한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로 지나치게 진중하고 음침한 느낌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대부분 향수가 경쾌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디올 옴므나 조르지오 아르마니 같은 브랜드의 묵직한 향수 라인들과 비교하면 딱히 더 어둡거나 음침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세르주 루텐에 대한 또 다른 평가는 나무위키 피셜 명문대생과 명문대 출신이 주 소비자층인 학벌주의적인 향수라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학력 세탁용으로 딱 좋겠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몽환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는 데는 적극 동의한다. 

여러 세르주 루텐의 제품 중 2005년 출시된 ‘세르귀(chergui)’를 추천하게 된 것은 이 향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토바코 향 때문이다. 토바코 향을 강조하는 향수를 적어도 10개 이상은 시향해 봤지만, 세르귀만큼 토바코 향을 기분 좋게 살려낸 향수는 없었다. 토바코 향을 강조한 향수들은 흔히 두 갈래로 나뉘는데, 돌체 앤 가바나의 ‘더 원 포 맨’ 같이 토바코 향이 날 듯 말듯 미약하거나, 퍼퓸 드 말리의 ‘헤로드’ 같이 전자담배 연초 맛 액상 향에 가까워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세르귀는 토바코 향의 좋은 부분들만 골라내 고소하고 드라이하고 스모키한 느낌을 극대화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토바코 향이 더욱 좋게 느껴지는 것은 세르귀의 장미 그리고 꿀 향과의 조합 덕분이다. 아이리스 향이 탑노트에서 먼저 느껴진다는 의견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강렬한 장미 향과 꿀 향이 처음부터 지배적으로 다가왔다. 

장미는 생화보다는 드라이플라워 같은 건조한 향에 가깝고, 꿀은 시중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아카시아꿀보다는 밤꿀 같이 고소하고 쌉싸름한 달콤함이다. 이 향긋하고 달큰한 향이 코로 흘러들어오는 중간중간 틈새로 토바코 향이 반복되는데, 마치 잘 짜인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을 듣는 듯하다. 여기에 잘 말린 건초와 인센스 향도 아주 살짝씩 흘러들어와서 그윽한 느낌을 더해준다. 

미들노트에서 베이스 노트로 넘어갈 무렵도 흥미롭다. 앞에서 느껴졌던 달콤한 장미와 토바코 향이 약해지고, 묻혀있던 아이리스 향이 좀 더 강해지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약간의 가죽 향이 가미되는데, 디올 옴므 퍼퓸 혹은 자라 베르가못 & 레더 스프리츠의 가죽 향과도 비슷해 반가움을 느꼈다.

창문 하나도 없는 어두운 조명에, 원목 인테리어의 앤티크한 시가 바 혹은 위스키 바를 연상시키는 향수이다. 그만큼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강해서 조금 나이대도 있고, 외모도 묵직한 느낌이 있는 남성에게 잘 울릴 듯. 가을, 겨울에, 그리고 포멀한 옷과의 조합을 추천한다. 


바카라 루쥬 540 EDP by 메종 프란시스 커정

탑노트: 샤프론, 재스민 | 미들노트: 앰버우드, 앰버그리스 | 베이스노트: 퍼 레진(전나무 송진), 시더
발향력: ★★★★☆ | 지속력: ★★★★☆(6-7시간)
용량: 35ml / 70ml / 200ml | 가격: ₩180,000-210,000(35ml 기준)

옷이든, 신발이든, 시계든 브랜드를 몰라도 직감적으로 ‘아, 이건 비싼 거야.’ 라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바카라 루쥬 540 EDP(Baccarat Rouge 540 EDP)’가 그런 향수이다. 2015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 걸작은 프란시스 커정이 왜 세계적인 ‘천재 조향사’라 불리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향수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메종 프랑시스 커정 제품 중 우드 EDP, 머스큘린 플루리엘을 더 선호하지만, ‘특별함’이라는 기준에서는 바카라 루쥬를 따라올 모델이 없다고 본다.

바카라 루쥬 540은 다소 분석이 어려운 향수이다. 앰버 플로럴 계열 향수, 분자 향수 등으로 분류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에 딱 들어맞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냥 바카라 루쥬 540 계열이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합성 향료로 제작한 탓이 큰데, 이런 향수들은 자연 추출 향료들과 다른 독보적인 향을 발산한다. 또한, 정작 뿌린 사람은 냄새를 명확히 맡지 못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매우 강하게 느껴지는 특징도 있다. 그래서 지속력과 발향력이 약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본인이 판단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인들만큼은 이 향수를 기가 막히게, 매우 적확히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바카라 루쥬’를 검색해보면, ‘요쿠르트 냄새’, ‘솜사탕 냄새’, ‘쇠 냄새’, ‘치과 냄새’, ‘피 냄새’ 등으로 표현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름 괜찮은 코피셜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이러한 표현들을 거부하고 좀 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고 싶지만, 도저히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커정은 한국인들에게 할인을 좀 해줘야 한다.

이처럼 독특한 향들의 조합에서 약간의 익숙함도 느낄 수 있다. 은근하게 샤프론, 재스민 등 플로럴한 향기가 스며 나와 산뜻하고 그윽한 터치를 가미해주며, 따뜻하고 달콤한 느낌, 메탈릭하고 차가운 느낌의 앙상블을 완성한다. 섭씨 540도에서 완성되는 레드 크리스탈을 오마쥬한 크리스탈 브랜드 ‘바카라’의 미학이 돋보이는 병 디자인도 일품.

연령, 계절, 복장 상관없이 사용하는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줄 향수다. 주의점은 있다. 바카라 루쥬 540 EDP를 뿌렸더니 알고 지내던 여성이 어떤 향수 쓰냐고 물어 ‘혹시나’ 하고 설렜지만, 나중에 보니 다른 좋아하는 남자에게 사줬더라는 슬픈 전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결국 향수도 ‘향완얼’이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