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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추념, 역사 속 전쟁을 다룬 영화 6선
2023-02-22T19:00:25+09:00

1차 세계 대전부터 베트남전까지. 전쟁의 역사는 반복 되었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전쟁과 함께였다. 우리 주변의 참전 용사들이 그 역사의 산증인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도, 사람답게 죽을 수도 없게 만드는 전쟁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 땅을 수호하기 위해 그 참혹한 풍경 속에서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1차 세계 대전부터 베트남전까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벌어졌던 전쟁을 그린 영화를 소개하겠다. 전우애와 화끈한 전투 장면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전쟁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영화로 골랐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930, 1979)

1914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당하는 사라예보 사건은 1차 세계 대전의 시발점이 된다. 기관총과 독가스 그리고 철조망으로 가득한, 지옥이나 다를 바 없는 서부 전선의 한 가운데에는 독일 제국의 폴 바우머가 있다. 그저 고통스럽지 않게 즉사하기만을 바라는 동료들. 안전한 후방에서 결사 항전을 외치는 어른들. 적국인 프랑스 공화국의 병사들도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폴의 정신은 한계에 몰린다.

독일 출신의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이 원작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1930년에 영화화되었고 1979년에 리메이크작으로 돌아왔다.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일어난 전쟁 속에서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희생되는 병사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반전 메시지를 던진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06)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어 수탈당하고,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눈 동족상잔의 비극.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는 한민족만 겪은 일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의 전흔이 사라지지 않은 1920년, 지구 반대편의 아일랜드 또한 독립운동과 내전을 거치며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동생처럼 여기던 이에게 방아쇠를 당기며 주인공인 데이미언은 말한다. ‘조국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거겠지?’ 시간이 흐른 후 데이미언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이런 신념이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전쟁의 상흔이 치유되지 않은 우리 민족에게 더욱 절실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우리가 겪었던 아픔의 세월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헥소 고지 (2016)

1941년 일본 제국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은 1945년에 이르러 마침내 종언을 고한다. 자국민마저 총알받이로 사용하는 일본 제국에(슬프게도 비유가 아니다) 맞서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은 사상 최악의 끔찍한 전투를 경험한다. 적과 아군이 뒤엉킨 아비규환의 현장. 미 육군의 데스몬드 도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 채 의무병으로서 전장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간다.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살리기 위해.

이 영화는 픽션이 아닌 실화다. 멜 깁슨 감독 특유의 ‘폭력성을 배제하지 않은 과감한 연출’도 인상 깊지만, 순수하게 사람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며 미 의회 명예 훈장까지 받은 데스몬드 도스 상병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보자. 물론 믿기지 않는 스토리지만.


랜드 오브 마인 (2015)

2차 세계 대전은 추축국의 패망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전쟁이 남긴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고, 고통은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었다. 덴마크 해안에는 독일이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매설한 지뢰로 가득했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독일 소년병 포로들이 투입된다. 지뢰 해체 중 사고로 인해 끔찍하게 죽어가는 소년들과 점령군에 대한 분노로 거칠게 대했지만, 점차 연민을 가지게 된 덴마크 군인. 하지만 이들 사이에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뒤바뀐 혼란스러운 상황을 통해 ‘랜드 오브 마인’은 관객들에게 전쟁의 양면성과 모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해답은 스스로 내려야 하겠지만 한 가지만은 가슴속에 간직하자. 전쟁이 남긴 상처 속에서도 최소한의 인간성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고지전 (2011)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 전쟁은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전선이 교착된 지는 2년 6개월이 흘렀고, 그사이에 죽어간 이는 50만 명에 달한다. 고지 하나를 두고 벌이는 공방전은 무의미한 전사자만 남긴 채 계속되고 있다. 죽은 이들의 자리를 어린 병사들이 채우고, 어린 병사들은 또 헛되이 죽어간다. 휴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하는 윗분들의 뜻에 따라. 지리멸렬한 전투는 끝없이 계속되고 살아남은 이는 동료의 죽음이 전쟁 탓이라 애써 변명하려 한다. 이 지겨운 전쟁, 도대체 언제 끝나는 것일까.

싸우는 목적을 상실한 채 그저 하루하루 적들을 죽이는 것에 매몰된 병사들에게 현실은 지옥이었다. 그들이 싸웠던 대상은 적이 아닌 전쟁 그 자체였다.


플래툰 (1986)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말은 거창하지만 결국 얻는 것도, 명분도 없는 전쟁이었다. 사지에 몰린 것은 가난한 이들뿐이다. 1964년 미국의 구축함이 북베트남의 경비정에게 습격당한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사회적 부조리함의 극치였다. 대학생인 크리스는 가난한 이들만 전쟁에 동원되는 현실에 반발하여 베트남전에 참전한다. 하지만 그의 상상 이상으로 베트남은 민간인 학살, 마약, 그리고 하극상이 뒤엉킨 시궁창이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베트남 전쟁 3부작 중에서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플래툰’은 사회적 문제와 전쟁 범죄에 대해 고발한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Fortunate Son’이 생각나는 이유는 그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