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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가 바라본 학교폭력, 모든 날이 흉흉해질 것 같은
2024-01-12T14:21:00+09:00

학교의 학폭 대처 방식,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자는 걸까.

2023년 2월

출근 대신 등교,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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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이다. ‘나는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할 때 그 선생 맞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에서 이번 달 테마가 학교라며 원고 청탁을 해왔을 때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꽤 쓸모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잠시 망설였다. 수업 시간을 ‘쓸모’ 있게 써야 진도를 맞춰 학기를 끝낼 수 있는 어떤 직업병적 회로가 작동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조심스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한 동력은 우리 모두 ‘학창 시절’이 있었다는 그 공통 분모 때문이다.

그 시절과 요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아이들이 올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 조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는 유의미한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다만 필자는 현재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므로 중고등학교 상황과는 다른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부대끼며 길러지는 것들

필자의 학창 시절만 하더라도 학원, 과외 등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학교 수업이 더 우선시 되는 분위기였다. 학교는 여러 교과목을 학습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컸다. 물론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수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학생들이 더 많이 있지만, 해가 갈수록 교과 관련 학습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다양한 대체물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것을 몸소 느낀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지식을 체득하고, 학원이나 과외 등 다양한 대체 학습 공간을 통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교과 학습 공간으로서의 학교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음은 교육계에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조되고 있는 학교의 역할이 있다. 바로 대인 관계 능력을 기를 기회를 제공하는 것. 흔히 연애를 ‘이론이 아닌 실전’으로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사회적 지능이야말로 교과서가 아닌 무수한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다.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소소한 갈등이 생기더라도 평화롭게 해결하며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이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학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재 가르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나는 그저 작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저학년 시절에는 학교에 적응을 잘하지 못해 조퇴, 결석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차차 학년이 높아질수록 갈등을 예방하거나 혹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깨우치며 조금씩 성격도 변해갔다. 갓 입학한 학생들이 교문에 들어가기 싫어 부모님께 의지하는 모습에서 3학년만 되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의젓하게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그때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대인 관계 학습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교육 방식도 달라지는 추세다. 물론 나도 학창 시절 다양한 모둠 활동 형태의 수업을 경험했지만 이보다 암기 위주 주입식 교육 방식의 비중이 더 컸다. 필자는 학교에서만 교과 학습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일정 학업 성취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주입식 교육 방식이 어느 정도 꼭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절대적 지식보다는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걸맞게 단순한 지식 습득이라는 결과보다는 타인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과정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대인 관계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협동 학습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이 형태의 학습 적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성취 기준과 관련된 공통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모둠 친구들과 역할을 나누고 돕는 협동 학습의 중요성은 여러 번 설파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모 사정권

학생들끼리 자유롭게 어울리는 상황들에 제약이 많이 생기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우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자유롭게 사용하던 체육관이나 운동장 등도 선생님이 동행하지 않으면 안전상의 이유로 학생들끼리 사용할 수 없도록 바뀌고 있다. 아울러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학생들끼리 운동장을 사용하다가 일어날 수 있는 갈등들이 학폭 신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해지자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당번을 정해 학생들이 안전하게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지켜보는 시스템도 도입됐다.

지켜보기만 하면 안전상에서도 참 좋은 취지라고 생각이 드는데 말이 지켜보는 것이지 놀이 규칙을 선생님이 정해주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생길 수 있는 아주 작은 문제에도 어른이 바로 개입하게 되는 상황이 생긴다. 이런 장면을 마주하면 대인 관계 실전 기회를 빼앗는 것 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방과 후나 주말이면 시간 맞는 친구들끼리 동네 놀이터에 모여 놀거나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등을 하며 어울렸던 문화들도 많이 바뀌고 있다. 학생들이 바깥 놀이 보다는 스마트폰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늘기도 했지만, 바깥에서 자유롭게 즐기던 스포츠 문화 자체도 달라졌다.

요즘은 부모님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아이들 축구나 농구 등도 클럽팀을 꾸려 방과 후나 토요일에 전문 교육을 받게 하는 일이 흔하다. 주로 초등학교 1학년쯤 형성된 학부모 커뮤니티를 통해 스포츠 클럽, 그룹 과외 등이 이뤄지고 이 조직이 몇 년씩 유지돼 이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알아서 친구를 사귀고, 마음 맞는 아이들끼리 팀을 꾸려 스포츠를 즐기던 우리 때와는 사뭇 다름을 느낀다. 부모님의 영향력이 학업을 떠나 교우 관계 형성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대화가 필요해

“사과하지 마. 사과받자고 10대도, 20대도, 30대도 다 걸었을까. 넌 벌 받아야지.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

요즘 안 본 사람 찾아보기가 더 힘든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주인공, 학폭 피해자의 대사 중 일부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잔혹한 사건들이 예전 학교폭력을 덜 무겁게 여기던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사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일까? 필자는 자신이 행한 무자비한 일에 가해자가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해야 한다는 편에 손을 들고 싶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들도 어른들에 의해 더 큰 갈등으로 번져 교우 관계가 어색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상황을 들어 설명하자면, 점심시간 운동장에 있던 놀이기구를 누가 먼저 사용할 것이냐는 문제로 말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중 한 학부모님께서 학폭 신고를 하셨고 절차 진행 중 철회를 하셨지만, 학생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부탁의 말을 전했다.

그 친구들이 서로 같은 모둠이 되지 않도록, 서로 말을 나누는지 유심히 봐야 했는데 정작 당사자들의 반응에 마음이 아렸다. “선생님, 아까 **이가 했던 발표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이랑 아무렇지도 않고 적당히 어울리고 싶은데 부모님이 어울리지 말라고 하셔서 좀 그래요.”라는 말을 아이들이 나에게만 조용히 와서 들려줄 때 어른들보다 아이들의 넉넉한 그릇에 마음이 먹먹했다.

아이들이 원만하게 갈등 조정을 하는 멋진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지혜를 기르도록, 그다음으로는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경험을 통해 습득하도록 학부모님과 교사가 힘을 합쳐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학폭 신고나 분리된 교육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일방적이고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아 상처받았다면 그건 분명 학교 폭력 신고나 경찰 신고를 통해 마땅한 처벌과 교육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필자가 몸담은 곳은 초등학교이고, 아주 사사로운 갈등에 한해서라는 점을 노파심에 다시 말한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는 학생들 간 쌍방향 소통 문제로 인한 작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는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성인이 된 어른들도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족, 친구 사이에서도 마음의 마찰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사람에 따라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어 크게 번지기도 혹은 재처럼 사그라들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지혜롭지 않고 불편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볼 때는 안타깝기 그지없다는 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호 아래 그 이전보다 훨씬 안전한 환경에서 적은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안전을 보장해주되 허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역할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원만하게 갈등 조정을 하는 멋진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지혜를 기르도록, 그다음으로는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경험을 통해 습득하도록 학부모님과 교사가 힘을 합쳐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다양한 친구들을 경험하며 서로 배척하지 않고 두루 어울리되 마음 기댈 수 있는 소중한 친구를 찾아가는 경험을 하는 것, 아이들이 실수하더라도 실수를 통해 배워가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허용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인 거다. 아이들이 스스로 관계를 맺고 갈등을 조정하는 경험을 충분히 하여 그들이 주도할 미래 사회에서는 지금 이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줄어들길 바라본다.

2023년 2월

출근 대신 등교,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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