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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암벽등반 입문기
2023-02-21T17:03:40+09:00

등반이 가져다 준 행복의 기준.

2022년 7월

저 문-너머, 아웃-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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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암벽반, 암벽연수반. 총 10주의 등산학교 암벽등반 교육이 끝났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해낸 일들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30여 년간 살아오며 딱히 근력운동은 하지 않았고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세상도, 산도 책을 통해 배운 것이 크다. 그런 내가 어찌 근력, 지구력, 균형감각, 고도의 집중력, 장비와 등반 시스템 등 살아온 삶에서는 익힐 수 없던 능력이 요구되는, 야외 활동 중에서 고난도에 해당하는 ‘암벽등반’을 즐기게 되었을까?

Photo by 이은

자연과 사람이 완성하는 활동

암벽등반은 아주 특별한 야외 활동이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함으로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에서 등반의 매력은 크다. 하루 7~8시간 등반을 하는 동안 등반가는 바위에, 풀에, 나무에, 때로는 비와 젖은 이끼에 온몸을 비빈다. 일상의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감각이다. 그 시간 동안 사람과도 몸을 섞는다. 로프 한 줄에 엮인 등반가와 확보자(등반가의 등반을 지원하고 추락을 멈추게 하는 등반 동반자)는 눈빛과 몇 마디의 외침, 숨소리, 로프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의사소통한다.

로프 한 줄에 엮인 등반가와 확보자는 눈빛과 몇 마디의 외침, 숨소리, 로프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의사소통한다.

어느 구간이 등반하기에 까다로웠는지, 서로의 안전한 등반을 위해 상대가 얼마나 희생하고 고생했는지, 등을 돌렸을 때 바라본 산의 파노라마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날 그곳에서 함께 등반한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세밀한 감각과 감정들이 등반의 세계에 존재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일상에서는 느끼기 힘든,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끈끈한 시간들로 채워진다.

나의 등산학교, 정승권 등산학교

그 힘에 이끌려 10주간의 일요일 내내 산으로 향했다. 매주 북한산과 도봉산을 번갈아 가며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암벽등반에 입문한 등산학교는 ‘정승권 등산학교’다. 1990년 개교해 30년이 넘은, 도봉산 자락 수유동에 자리한 등산학교로 암벽등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등반가들의 스승, 등반가 ‘정승권’이 운영하는 학교다.

Photo by 김예림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다른 동문과 마찬가지로 좋은 산사람들이 ‘정등’ 출신이어서’였다. 등반을 잘하면서도 산에서 겸손한, 한마디로 진정 멋진 산꾼들이 나와 같은 초보들을 암벽등반의 세계로 이끌었다.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와’라는 말은 없었다. 그저 그들과 함께 산에 가고 싶고 그들을 닮고 싶어서 따라간 것이다. 대부분 그런 이들이 ‘정등’을 찾았다.

암벽등반에 입문할 수 있는 교육은 ‘암벽반’으로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진행한다. 봄 교육을 수료한 내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달아 수료한 교육은 ‘암벽연수반’으로, 암벽반에서 기초를 다진 후에 많은 실전 등반을 경험할 수 있는 교육이다. 단순히 오르는 행위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등반할 수 있는 등반 시스템, 등반에 임하는 태도 등을 배울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이다.

‘정승권 등산학교’ 뿐만 아니라 ‘코오롱 등산학교’, ‘한국등산학교’, ‘서울등산학교’ 등 암벽등반을 배울 수 있는 등산학교는 많다. 대부분 봄, 가을 암벽반이 열리며 가능한 일정을 찾아보고 신청하면 된다. 겨울에는 빙벽을 배울 수 있는 ‘빙벽반’과 겨울의 암벽교육인 ‘동계암벽반’이 열린다.

Photo by 정승권 등산학교

등반가들의 꿈과 열정, 인수봉

교육은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선인봉에서 이루어진다. 북한산 인수봉은 해발 810m, 날카롭게 솟아오른 화강암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진 등반코스다. 고고하게 솟아오른 자태만으로 바라만 봐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인수봉은 동면, 남동면, 남면, 남서면, 서면 총 5개의 면에 80여 개의 등반 루트가 있어 주말만 되면 바위를 오르기 위해 전국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암벽반 교육생이 인수봉에 오르는 날은 교육 5주 차인 종합 등반 날이다.

그 첫 인수봉을 위하여 4주 내내 한 피치(로프 한 동으로 갈 수 있는 거리, 약 20m)의 바위에서 다양한 등반, 하강, 시스템 기술을 연마한다. 2피치 이상의 루트를 등반하는 것을 ‘멀티 피치 등반’이라고 하는데 4주간의 교육은 바로 이 멀티 피치 등반에서 능숙하게 장비를 다루며 등반할 수 있도록 기술들을 몸에 배게 훈련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Photo by 김강현

‘암벽연수반’은 멀티 피치 등반의 연속이다. 암벽반을 졸업한 뒤 등반하기 좋은 인수봉의 루트는 대표적으로 ‘인수A’, ‘인수B’, ‘우정A’, ‘우정B’, ‘아미동’, ‘의대’, ‘취나드B’, ‘패시’ 등이 있다(암벽루트의 이름이 다양하다. 첫 개척자가 원하는 대로 이름을 짓는다). 결코 쉽지 않은 코스다. 루트로 진입하기 위해 오르는 큰 바위인 ‘대슬랩’을 포함하면 총 5~7피치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 암벽연수반은 하루에 두 루트를 교육하는데, 초보자 기준으로 7~8시간 소요된다.

슬랩등반, 크랙등반

암벽의 경사가 약 30~70도의 바위 사면을 ‘슬랩’이라고 한다. 이 반질반질하고 깎아지른 각의 화강암을 오르는 일은 몹시 두근거리고 설렌다. 슬랩 등반은 가장 어려운 기술인 ‘용기’를 요구한다. 머리를 바위 쪽으로 바짝 갖다 대고, 손과 발은 작은 돌기 홀드들을 찾아 짚으며 발 앞부분으로 홀드를 딛고 일어나 다리를 쭉 펴 일어나며 오르는 등반이다. 그 조그만 홀드를 어찌 믿어 딛고 일어나겠는가. 온몸의 체중을 자그마한 발가락에 실은 채. 처음에는 바위에서 발이 미끄러지는 감각을 경험하는데 그 이후부터는 추락이 두려워 무서워진다.

Photo by 김예림

하지만 용기를 내면 일어날 수 있다. 발을 믿고 일어서면,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한걸음 씩 가다 보면 도착점에 도달한다. 이제 슬랩을 마주할 때 속으로 하는 생각이 있다. ‘서두르지 말고, 내 페이스대로.’ 등반은 일상과 닮은 점이 있다. 빠른 것이 즐거운 사람은 빠르게 가면 되고, 본디 느린 사람은 느리게 가면 된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호흡을 무시하고 오르면 추락한다. 등반에서도 나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반은 일상과 닮은 점이 있다. 빠른 것이 즐거운 사람은 빠르게 가면 되고, 본디 느린 사람은 느리게 가면 된다.

바위의 갈라진 틈을 ‘크랙’이라고 한다. ‘재밍’은 크랙에 손과 발을 넣고 힘을 주어 오르는 기술이다. 나는 크랙 등반이 약하다. 평생 근력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하다. 크랙 등반은 무엇보다도 틈을 홀드 삼아 잡고 오르는 기술이기 때문에 어깨와 등 근육이 발달하면 좋다. 크랙은 내게 동기부여의 대상이다. 등산학교를 졸업한 후 실내외 클라이밍장에서 훈련하고 있는데 크랙에서 힘을 잘 쓰기 위해서 어깨와 등, 코어의 힘을 기르고 있다.

Photo by 김선미 / 문나래

등반 여행

일본의 산악 만화 ‘산’이라는 작품이 있다. 일본 북알프스의 민간 산악 구조대원 ‘산포’가 산을 집으로 살며 그곳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는 이야기를 배경으로, 산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휴먼 드라마다. 에피소드마다 눈물을 훔치는데 간간이 편안하게 미소 짓게 되는 부분이 있다. 어제는 이 대사를 읽고 그랬다. ‘기분 좋은 바위 위에 누워 낮잠을 잤던 기억이 납니다. 낮잠만 자고 다니는 산 여행….’ ‘이거다! 이것이 바로 나의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반을 하는 동안 궁극의 행복을 느꼈던 순간은 등반과 더불어 그 등반을 위해 여행을 준비하던 시간, 그리고 등반 전과 후의 야영장에서의 하룻밤. 사람들과의 뜨끈하고 든든한 식사, 고단한 산행 후의 맛있는 커피 한 잔. 바로 이런 것들의 총합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등산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다. 앞으로 추구해나갈 행복의 기준, 그걸 알게 된 것이 등반이었다. 그래서 나는 등반에 모든 것을 바친다. 등반을 위해 평일을 살아가고, 주말에는 등반을 떠난다. 그곳이 자연 바위이든, 인공 암장이든 관계없이 열심히 등반한다. 언제나 다음 등반 여행을 기대한다. 나는 산의 꿈을 꾼다.

2022년 7월

저 문-너머, 아웃-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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