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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시장 골목에서 우연히 시칠리아, 시칠리초이
2026-10-15T14:52:57+09:00

다정하고 넉넉한 상인의 마음으로.

여름의 소요가 지나간 부산 광안리. 그곳엔 지중해의 햇살과 바다가 넘실대는 시칠리아가 있다. 푸른 바다를 마주한 민락골목시장 초입, 익숙한 시장 정취 사이로 낯선 이름의 식당 하나가 여행의 기억을 더듬는다. 최혁준 셰프가 이끄는 ‘시칠리초이(@sicily_choi)’다. 

그는 자신이 쌓아놓은 여행의 기억을, 그곳에서 느낀 사람의 온기를 식탁 위에 옮겨 놓는다. 정갈하게 차려 낸 한 끼보다 길 위에서 즐겼던 음식들과 시장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미소를 오래 기억하는 사람. 그렇게 시칠리아에서 만난 풍경들을 고스란히 가져와 넉넉하고 다정한 상인의 마음으로 오가는 사람을 맞는 시칠리초이 최혁준 셰프의 이야기다. 

광안리 속 시칠리아, 시칠리초이 최혁준 인터뷰

소개를 부탁한다. 

부산에서 ‘시칠리초이’를 운영하고 있는 최혁준이다. 이탈리아 본토를 여행하며 진짜 현지 음식에 깊은 감명을 받아 본격적으로 가게를 준비했고, 올해 이 공간을 열었다. 

원래 요리를 전공한 건가. 

대학에서 요리를 공부하고 호텔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새로운 요리를 배우고 싶어 ‘더 키친 일뽀르노’ 막내로 들어갔는데 이탈리아 음식이 너무 재밌었다. 문득 이탈리아 현지 음식은 어떨까 궁금해졌고, 당시 연애 중이던 지금의 아내에게 신혼여행을 이탈리아로 가자고 졸라 결국 여행을 떠나게 된 거다. 현지에서 처음 맛본 음식들은 한국에서 접했던 이탈리아 음식과는 달랐다. 

어떻게 달랐나.  

생각보다 화려하지도,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지도 않았다. 한국에서 이탈리아 음식은 고급 음식에 속하다 보니 재료를 많이 사용하지만 현지식은 심플하고 명료했다. 봉골레 파스타는 진짜 면이랑 조개만 들어가 있는 거다. 토마토, 올리브오일, 치즈 등 신선한 기본 재료에 충실한 음식들이었다. 그 단순함이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여운이 남아 한국에 돌아와 1년 정도 일을 더 하다가 사직서를 내고 그 퇴직금으로 또다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다. 

©시칠리초이 제공

이탈리아 중에서도 특히 시칠리아 음식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신혼여행이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 중심이었다면, 두 번째 여행은 남부를 집중적으로 돌아봤는데 또 다른 낭만이 있었다. 북부 음식들은 예쁘고 정갈하게 나오는 반면, 시칠리아는 푸짐하고 투박하다. 가격도 북부 대비 저렴한 편이다. 화산섬이라 그 토양에 맞춰서 키워진 작물들도 너무 맛있었다. 좋은 재료들 때문에 사람들이 굳이 요리를 발전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추측도 해봤다. (웃음)

음식뿐만 아니었다. 카타니아라는 도시에서는 아침 7시쯤 수산시장에 갔는데 그곳만큼 활기차고 설레는 곳은 없었던 것 같다. 상인들의 친절함과 잘 알아들을 순 없지만 계속 미소를 지으며 어떻게든 쉽게 설명해 주려 하는 모습이 정말 고마웠다. 그러면서 이것저것을 먹여주는 거다. 이런 시칠리아의 풍경이 강하게 남아 단순히 요리사가 아닌 시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음식을 나누는 상인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음식이 아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귀결되는 답변이 인상적이다.  

사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재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웃음) 다른 사람에게 말 거는 것도 되게 좋아한다. 손님에게 “어디서 오셨어요?” 하고 물어보고, “여기 카페 좋던데 가보셨어요?” 하면 “아, 여기 알아요”라고 답하시고, 자연스럽게 “진짜 맛있죠” 하면서 대화가 이어지는 그런 순간이 참 좋더라. 보통의 레스토랑은 홀 서비스직과 요리사가 따로 있지 않나. 나와 같은 1인 매장은 둘 다를 겸 해야 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만난 시장 상인들처럼 오시는 분들에게 재치 있고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야 민락골목시장에 음식점을 낸 이유가 이해된다. 시장 초입에 이탈리아 음식점을 낸 것 자체가 생소했다.

이탈리아 남부를 여행하면서 더 확실하게 느꼈던 건 시칠리아 음식점은 부산에 차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하고 관광지 특유의 분위기가 잘 맞는다. 시칠리아도 이탈리아의 남부이고 부산도 우리나라에서 맨 남쪽에 있지 않나. 사람들의 성향도 묘하게 비슷하더라. 말도 빠르고. 대학 때부터 이 도시에서 생활해 부산은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 

여행을 다니면서 레스토랑보다는 길에서 사 먹었던 음식들에 대한 기억이 유독 좋았다. 언젠가 나도 식당을 열게 된다면 격식을 차리지 않고 편안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고, 그런 경험이 반영되어 광안리 민락골목시장에 문을 열게 됐다. 

‘내장 버거’ 메뉴가 눈에 띈다. 내장과 버거, 이름부터 낯선 조합이다. 

시칠리아의 가장 큰 도시인 팔레르모에서 먹어 본 내장 버거가 인상적이었다. 피렌체에서도 한번 경험해 봤는데 그곳의 내장 버거는 누구나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이었다면 팔레르모에서 먹었던 것은 소 냄새도 살짝 나고, 소 지방 맛도 나더라. 그리고 오로지 빵이랑 치즈만 주는 거다. 

개성이 강해서 누군가는 선호하지 않는 맛이겠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또 엄청나게 좋아할 것 같았다. 그런 요리를 시장에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돼지 내장으로 만든 순대 문화가 있지만, 소내장을 이렇게 요리해서 빵에 넣어 먹는 방식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으니까.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어떤가. 

실제로 오픈 후 반응도 비슷했다. 내장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여러 번 방문해 주시고, 단골이 되기도 했다. 내장을 선호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굳이 주문 자체를 하시지 않더라. 하지만 한국에 친숙한 느낌으로 바꾸기보다 가능한 현지의 방식 그대로 재현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경험 그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시칠리아에서 느꼈던 맛과 분위기를 손님들도 경험하셨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조리 방식은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송아지 내장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18개월 미만 소 도축은 불법이다. 송아지는 잡내가 적어 물에만 삶아도 괜찮지만, 소는 나이가 들수록 특유의 냄새가 강해진다. 최대한 향신료의 맛을 덜 내면서 잡내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조금 어려웠다. 수도 없이 끓이며 레시피를 조율했다. 

원래도 도전적인 성향인가. 

그렇다. 이 메뉴를 다루는 곳이 서울에도 한두 군데밖에 없을 정도로 흔하지 않다. 오히려 대중성이 없다는 점이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고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메뉴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가격대가 저렴하다.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가격으로 음식을 선보이는 데 특별한 이유나 기준이 있나. 

시장은 그 나라의 음식 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면서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 아닌가. 배낭여행자들에게 최고의 식당이 되기도 하고. 시칠리초이 역시 시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누구나 부담 없이 방문해 남부 이탈리아의 음식을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격을 정했다. 

가격을 책정할 때는 실제 시칠리아 식당들의 사진을 놓고 현지 가격과 비교하면서 유로 환율을 적용해 기준점을 잡았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1만 5천 원 정도에 먹었던 음식이 여기서는 3만 원이라면 너무 김이 빠질 것 같았으니까. 최대한 현지 물가와 비슷한 가격으로 내놓으려 노력했다. 

음악이나 분위기 등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공간을 구성하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부분이 있나. 

내가 시칠리아에서 마주했던 분위기와 기억을 손님들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음식뿐 아니라 음악, 공간의 색감,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그런 경험을 전달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사진이나 오브제를 활용해 최대한 시칠리아 느낌을 내려고 했고, 음악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틀기도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오면 이탈리아 노래를 트는 식으로. 타지에서 자국의 노래를 들었을 때 밀려오는 반가움 같은 것들이 있지 않나.

시칠리초이에서 현지의 감성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음식과 술의 적절한 페어링도 중요할 것 같다. 

유럽이나 동남아를 여행하다 보면 낮에도 음식과 함께 와인이나 맥주를 가볍게 즐기는 문화가 자연스럽다. 이탈리아 음식 전체도 와인에 많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간도 그렇고. 이탈리아 지인이 농담 삼아 얘기하더라.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 음식이 짜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가 맥주라든지 와인을 함께 먹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웃음)

특히 여행은 쉬러 온 것이 아닌가. 부산 여행 중 이곳에 들르셨다면 평소보다 조금 여유롭게, 낮술도 한번 즐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 특히 부산은 아직 낮술에 대한 거부감이 비교적 큰 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이 메뉴를 술안주로만 생각하고 낮 방문은 다소 부담스러워하시는 경우도 있더라. 그런 점이 조금 아쉽다. 

추천 조합을 알려달라.  

이탈리아 가면 너도나도 테이블에 앉아서 먹는 술이 아페롤이다. 식전주로 좋다. 해산물 요리는 그릴로와 페어링했다. 그릴로는 시칠리아 토종 품종으로, 산미가 좋고 레몬 같은 향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열대 과일 향은 거의 없다. 

요즘은 소비뇽 블랑처럼 열대 과일 향이 나는 화이트 와인도 많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와인보다는 그릴로처럼 담백하면서도 산미가 있는 와인을 좋아한다. 해산물 요리는 대부분 그릴로와 페어링을 갖춰놓은 상태다. 레드는 내장 버거를 위해 준비했다. 남부 풀리아 지역의 프리미티보 품종을 사용한 와인이다.

날씨가 쌀쌀해졌다. 메뉴 구성에도 변화를 줄 예정인가. 

현재는 여름 시즌 메뉴를 운영하고 있어 차가운 음식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추석 이후에는 차가운 음식보다는 따뜻한 음식 위주의 메뉴를 선보일 계획이다. 가을 메뉴로는 ‘스티키올라’라는 시칠리아식 곱창구이를 준비하고 있다. 시칠리아식으로 숯불에 구운 곱창에 레몬과 올리브를 곁들여 먹는 음식인데, 현지에서 먹어보니 정말 맛있더라.

또 하나는 내장을 토마토와 함께 스튜처럼 끓이는 ‘꼬제’라는 음식이다. 겨울에는 아무래도 따뜻한 음식과 국물 있는 메뉴를 찾게 되지 않나. 

평소에는 무엇을 하나. 취미가 있다면. 

여행이다. 보통 음식을 위한 여행을 떠난다. 아이패드나 맥북도 챙겨가는데, 하루 동안 먹은 음식과 가격을 가계부처럼 정리하면서 음식 옆에 코멘트를 남겨둔다. ‘문어 샐러드는 샐러리가 포인트였고, 올리브 향은 이랬다’하는 식으로. 그렇게 기록해 둔 것 중 한국에 돌아와서 정말 맛있었던 음식은 한 번씩 직접 만들어본다. 그러면서 레시피도 정리해 놓는 편이다. 여행이 낙이다. 

물론 꼭 멀리 갈 필요는 없다. 한국의 아침 수산시장도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시장 상인들도 아침을 먹어야 하지 않나. 상인들을 위한 식당들은 이른 시간부터 다 문을 연다. 포항 죽도시장에 가면 아침 일찍 여는 곰탕집이 있는데 정말 맛있다. 혹자는 시장 음식이라 냄새가 좀 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게 또 그만의 맛이다. 진하고 푸근한 향이랄까. 시장이다 보니 가격도 저렴하고.

마지막 질문이다. 시칠리초이가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남기고, 어떤 기억을 주는 공간이 되고 싶은가. 

여행을 다녀온 분들에게는 예전에 여행하며 느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그때의 순간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매장이 되고 싶다. 이탈리아나 시칠리아를 아직 가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그곳을 상상하며 여행을 꿈꿀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