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은 영화의 좋은 도구로, 또 액션 시퀀스의 훌륭한 조연으로 러브콜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이 모터사이클을 영화의 핵심 주제로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이 리스트에서 뛰어난 작품성까지 갖춘 영화를 꼽자면 숫자는 더욱 줄어든다. 그래서 가진 의문 하나. 망작, 명작을 따로 골라낼 수가 없는 이 협소한 카테고리 안에는 과연 어떤 작품이 있을까? 에디터의 조악한 지식을 최대한 긁어모아 명작과 망작을 2편씩 꼽아봤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2005) – 인디언 스카우트
고령의 나이에도 꿈을 향한 항해를 멈추지 않았던 뉴질랜드인 버트 먼로는 1962년,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미국 유타 주의 본네빌 소금사막으로 향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마개조한 자신의 구닥다리 바이크로 본네빌 스피드위크에 출전하기 위함이었다.
오로지 열정 하나만으로 꿈을 이어가던 먼로는 5년간 이 대회에 지속적으로 출전했다. 그는 매 대회마다 신기록을 써내려갔고, 이제는 모터사이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장식한 위인이 됐다. 이 이야기는 2005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꿈을 좇지 않는다면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야”라는 대사가 깊은 잔향을 남기는 명작이다.
참고로 먼로의 모터사이클은 1920년식 인디언 스카우트였다. 하지만 원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기록 도전을 위한 튜닝 덕분이다. 페어링으로 완성된 스트림라이너 형태에 엔진 또한 지속적인 보어업 작업을 거쳐 950cc까지 배기량을 높였다. 결국 그의 인디언 스카우트는 295.4km/h라는 속도를 찍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1,000cc 미만 클래스 모터사이클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2004) – 노턴 500
2000년대 초반, 유래 없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의 전 세계적 열풍이 불었다. 시대가 낳은 이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는 사상적, 정치적 이념을 넘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소모되기 시작했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바로 그 시대의 정점에서 탄생한 작품이었다.
청년 시절, 젊은 혈기 하나로 친구와 낡은 모터사이클에 올라 떠난 체 게바라의 여행길. 거기서 그는 절망적인 현실에 처한 남미 사회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이 여행은 결국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전환점이 된다.
혁명의 씨앗이 된 이 여정에서 체의 발이 되어준 모터사이클은 1939년식 노턴 500이다. 우리나라에선 낯선 이름이지만, 노턴은 오늘날 레트로 트렌드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클래식 바이크의 가장 완벽한 교과서인 영국의 진짜 클래식 ‘오토바이’ 브랜드였다. 500cc 단기통의 엔진의 낡은 모터사이클 위에 건장한 청년 두 명과 온갖 짐을 잔뜩 싣고도 무사히 달려준 영화 속 바이크가 그저 기특할 따름.
토크(2004) – MTT Y2K 터빈
‘토크’는 아마 이 시리즈를 통틀어 소개한 작품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망작이 아닐까 싶다. 물론 흥행 자체도 처참했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그야말로 눈 뜨고 못 봐줄 수준. 조야하고 1차원적인 시나리오, 허접한 CG로 떡칠이 되어있는 영상미는 영화를 보는 사람이 다 부끄러워질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온통 모터사이클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토크는 작품 내내 스크린을 수놓는 무수한 슈퍼 바이크의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그중 백미는 작품 후반부 포드와 헨리의 모터사이클 체이싱 신에 등하는 MTT의 Y2K다. 헬리콥터 엔진을 그대로 모터사이클에 올려버린 저세상 두 바퀴로 유명한 바로 그 모터사이클이다.
Y2K는 롤스로이스 앨리슨 모델 250 엔진을 사용한 바이크다. 심지어 원래 계획은 제트엔진을 넣고 싶었다고. 물론 공도 주행이 가능해야 했기에 적당히 헬리콥터 엔진으로 타협을 봤고, 그렇게 탄생한 게 이 Y2K다. 320마력이라는 믿기 힘든 출력에 최고속도 420km/h, 테스트 주행 시 14초 만에 350km/h에 도달해버린 역대 최강의 모터사이클이다.
번아웃(2017) – 두카티 파니갈레 1299
2017년에 개봉해 비교적 최근작인 ‘번아웃’ 역시 영화 자체의 완성도만 보면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심지어 소재도 앞서 소개한 ‘토크’와 어찌 그리 닮아있는지, 모터사이클과 마약밀매라는 뻔한 시놉시스가 등장한다. 그래도 모터사이클에 대한 접근법 하나는 훨씬 현실적이고 진중하게 표현한 영화다.
당연히 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소재는 모터사이클이다. KTM부터 야마하, BMW, 카와사키까지 정말 무수한 브랜드의 이륜차가 총동원됐는데, 작품의 줄거리상 주인공 토니는 주구장창 두카티 바이크를 탄다. 그중에서도 파니갈레 1299가 가장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강렬한 연출로 포장된 파니갈레 1299의 주행 신을 보고 있자면, ‘혹시 두카티의 PPL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멋지게 그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