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일까. 내가 사회주의 국가에 살고 있었나.

*이 글에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에게 올해 최고의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선택할 것이다. 히어로물을 썩 좋아하지 않는데도, 쇄도하는 극찬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개봉 전부터 셀 수 없이 많은 루머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개봉이 임박할 무렵에는 루머라기보다 거의 희망이나 바람에 가까워졌던 것이 사실이다. 실체를 드러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이런 열망을 200% 채워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영화를 봤으면 다른 이들의 후기도 살펴보는 것이 모름지기 인지상정. 조금 당황스러운 광경을 목격했다. 거의 모든 구간을 지루하게 봤다는 한 관람객의 리뷰에 댓글 공세가 이어졌다. ‘영화 제대로 본 거냐?’, ‘소시오패스임?’, ‘이해를 못 하니 명작인지 모르지’ 등의 비방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유사한 광경이 벌어졌고, 영화를 관람한 지인은 딱히 인상적인지 모르겠다고 했다가 남자친구와 멱살 잡기 직전까지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일까. 내가 사회주의 국가에 살고 있었나.

나름의 성찰을 해보았다. 한때 히어로물이라면 젠체하며 ‘작품성은 전무한 스펙터클 포르노’라고 치부했던 내가 왜 유독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만은 재미를 넘어 열광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왜 어떤 이들은 ‘역대급’이라 불리는 이 영화가 재미없다고 해서 비난을 자초하는지. 문득 한 가지 그럴듯한 가능성이 떠올랐다. 추억 버프. 


기억의 무게, 추억하는 이의 책임

2002년 개봉한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부터 2019년 개봉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까지 전 시리즈를 챙겨보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당연히 추천하지 않는다. 이번 신작을 보려고 이전 작품들을 정주행할 계획이 있다면, 어느 정도 재미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각 작품을 개봉했던 무렵에 보지 않았던 이들, 최소 마지막 감상으로부터 꽤 오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은 이들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평론가와 대중들의  감흥 그 언저리 즈음에도 닿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에서 팬들이 가장 기대하던 것은 일명 ‘삼파이더맨’의 등장 여부였다. <스파이더맨> 3부작(2002-2007)의 주인공 토비 맥과이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부작(2012-2014)의 주인공 앤드류 가필드, 그리고 가장 최근 시리즈의 주인공 톰 홀랜드가 이번 신작에서 한 데 모인다는, 그야말로 스파이더맨 역사상 기념비적인 장면이 연출될 것인지를 놓고 전례 없던 관심이 쏠렸다.  멀티버스 세계관이 전개되며 전작들에 등장했던 빌런들이 총출동한다는 것은 사전에 공식화됐지만, 유독 삼파이더맨의 출연 여부만큼은 개봉 당일까지도 철통 보안이 유지됐다. 

그리고 영화가 후반부로 접어들 무렵, 전 세계 대부분의 극장에서는 세상이 멈춘 듯한 적막에 뒤이어 탄식과 환호가 쏟아져 나왔으리라. 멀티버스 개방 후 스파이더맨의 친구 네드(제이콥 배덜런)가 우연히 연 포털 넘어 어딘가 어색하게 서 있는 스파이더맨. 그가 스크린을 향해 내딯는 발걸음에 맞춰 관객들의 심장 박동도 차츰 강해졌을 것이다. 설마, 설마. 가면을 벗으며 드러난 앤드류 가필드의 얼굴과 20년만의 재등장에 감회가 새로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토비 맥과이어의 등장으로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연말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을 테다. 

인고 끝에 찾아오는 해방감의 크기란 시간에 비례한다는 것

이번 영화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이 대목이야말로 내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쉽게 추천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전편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감상한다면 ‘이게 뭐?’라는 시큰둥한 반응이 따를 공산이 있고, 단기간에 몰아서 보더라도 쉽게 얻어낼 수 없는 시리즈와 관객 사이의 ‘감정적 유대’가 있다. 20년이란 시간 뒤에 각기 다른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한자리에서 본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전 시리즈들에 대한 영화 속 삼파이더맨의 레퍼런스가 왜 그리 반갑게 느껴지는지는 머리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영역 바깥쪽의 것이다. 

십수 년 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옛이야기, 눈도 쉽게 맞추지 못했던 시리고 에인 짝사랑 상대를 오랜 세월 후 조우하며 나누는 눈빛의 파토스는 오로지 당사자들만의 것인 것처럼, 20년이라는 세월의 적층 까마득한 아래 퇴적된 기억과 추억을 다시 발견한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시간의 보상이다. 그렇기에 <스파이더맨 3> 이후 마땅한 배역을 따내지 못해 영화계를 떠났던 토비 맥과이어에 대한 안타까움, 소니의 ‘뻘짓’으로 속편이 이어지지 못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대한 아쉬움 등을 보상받았다는 데서 나오는 환희는 단지 플롯을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 최고의 명장면은 앤드류 가필드의 스파이더맨이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는 MJ(젠데이아 콜먼)를 가까스로 구해낸 후 만감이 교차하는 듯 울먹거리는 씬이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2014) 속 똑같은 상황에서 연인 그웬 스테이시(엠마 스톤)를 간발의 차로 구하지 못했던 그가 비로소 모든 죄책감과 후회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에 나조차 7년간 괴로워했던  속박에서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물론 사회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내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결의 감정을 가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인고 끝에 찾아오는 해방감의 크기란 시간에 비례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의심하기 어려울 것 같다.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스파이더맨을 함께해온 팬들에게 비단 스파이더맨 자체만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각 시리즈를 볼 당시의 영화관의 정취와 사람들, 울고 웃고 분노했던 영화 외적인 경험들, 오랜 세월 제작이 중단되며 찾아온 망각의 시간,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진 재회. 스파이더맨이라는 표상과 연결된 이러한 길고 짧은 기억의 파편들은 이번 신작을 통해 조밀하게 연결되고, 그렇게 생겨난 전에 없던 정동(情動)이 그들의 지금과 같은 감상을 이끌었을 것이다.

피터의 숙모 메이(마리사 토메이)는 <스파이더맨1> 속 피터의 삼촌 벤(클리프 로버트슨)의 대사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를 그대로 반복한다. 이와 유사하게, 무거운 기억은 현재의 판단을 좌우하지 않는가. 지난 20년 동안의 스파이더맨을 추억하는 이라면, 이번 신작에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겸허한 이해가 한편으로는 좋은 추억에 따르는 책임임을 이해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팍스 마블리카’를 꿈꾸는가

영화 자체 얘기를 한번 해보자. 감히 평가하자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종합적 측면에서 분명 잘 만든 영화가 맞다고 본다. 단적으로 로튼 토마토 94%, IMDb 9/10라는 점수(12월 22일 기준)가 이를 대변해준다. 소문난 잔치이고, 먹을 것도 넘쳐난다. 볼거리가 다양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멀티버스를 위시해 후속작들을 위한 탄탄한 ‘밑밥’ 작업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일부 마블 팬들이 역대급 마블 영화라고 할 만하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무엇보다 소니의 농간질로 인한 전작들의 서로 다른 설정을 어떻게 새 작품에 녹여낼지 고민이 많았을 텐데, 삼파이더맨을 비롯해 모든 빌런 사이의 연결고리를 매우 유기적으로 만들어냈다. 그 외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잼민이 같던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이 결국에 현 세계를 구하기 위해 모든 이로부터 잊혀지는 선택을 하는 성장기도 꽤 묵직하게 묘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억 버프’ 적용 여부와 상관없이 영화에 대해 소수의견을 내놓는 일은 충분히 정당해 보인다. 화려한 CG와 출연진이라는 양념을 걷어내면 스토리 자체가 단조롭다는 일부의 평가도 눈에 띈다. 만천하에 정체가 드러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가 정체가 드러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고, 주문을 시전하던 중 이 사람도 빼고 저 사람도 빼달라고 트롤 짓 하는 피터 때문에 멀티버스가 열리게 된다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이러한 소수의견들이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단죄 수준의 비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 세계로 유입된 빌런들을 교화시킨 후에야 돌려보내겠다고 하는 피터의 오지랖에서 시작된다. 이 때문에 주요 인물이 사망하기까지 하고 겪어도 되지 않을 일을 겪는 주요 인물들의 모습은 다소 어이없게 느껴질 수 있다. 철부지 어린 애의 순수한 마음을 표현한 설정일 수도 있고,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부터 고초를 겪으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성장 과정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쯤으로 볼 수도 있다. 혹은 마블 세계관 확장과 멀티버스를 위해 잘 깔아놓은 초석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일부 대중 입장에서 여전히 억지스럽고 단조롭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소수의견들이 인터넷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단죄 수준의 비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유독 마블 영화에서 이러한 단두대의 칼날이 더 서슬 퍼렇게 느껴진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인물들의 깊은 내면 묘사나 복잡한 관계망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갈등, 현실 세계에서의 구조와 실존의 고민 등에 집중한 영화는 분명 아니다. 단조로운 스토리를 멋진 연출과 좋은 스토리텔링으로 전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스토리의 토대를 중심으로 평가할 때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올 수 있음은 당위의 문제를 떠나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굳이 보지 않아도 될만한 정보가 되기 충분한 이유이다. 

소위 ‘작품성’ 있는 영화에 들이대는 잣대를 철저히 상업적인 영화에 들이대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잣대를 들이댄다면 인간 사회는 소통할 이유가 없다. 스포츠와 전기공학같이 거리가 있는 분야도 아니고, 같은 영화군 내 이런 정도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철옹성 같은 팬덤하에서 문화적인 자급자족을 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마블 영화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정당화한다거나 과도한 상업주의로 타 영화가 설 자리를 빼앗는다는 등 이성적으로 논의해볼 만한 지점들이 분명 있는데도 말이다.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는 2019년 <뉴욕타임스>에 ‘마블 영화는 영화(시네마)라고 볼 수 없다(Marvel Movies Aren’t Cinema)’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가 마블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스콜세지의 취지는 마블 영화가 잘 만든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맞지만 예술성 혹은 작품성과는 별개의 영역이다, 정도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상 마블 팬들의 분노는 마치 이 노장을 다시는 업계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는 듯 격렬한 것이었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팍스 마블리카(Pax Marvelica)’인가? 


그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길 바라며

앞서 말했듯 개인적으로 히어로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초인적인 능력과 투철한 도덕성,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무장한 주인공의 행동과 대사가 낯간지럽게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악을 단죄하고 선한 변화를 끌어내는 ‘개인’이라는 콘셉트도 이따금 위험하게 보인다.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부여한 공적인 권력이 부재한 한낱 자경단이지만, 범인들이 갖고 있지 못한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추앙받는 모습에서 마치 플라톤이 꿈꿨던 철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스파이더맨 시리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시민들이 총상을 입은 스파이더맨을 도와주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공사장 현장 감독이 스파이더맨의 웹 스윙(구조물에 거미줄을 연결해 이동하는 스파이더맨의 액션)을 위해 퇴근 시간에 들떠 있을 크레인 기사들에게 ‘오늘 야근이야!’라고 비장하게 말하는 대목에서는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오그라듦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이런 개인적인 평가는 사실 나의 고지식한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고, 조금만 객관화해 보면 나쁘게 볼 이유는 전혀 없다. 히어로물에 동반되는 엄청난 스펙터클과 당대 최고의 핫한 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 긍정적인 쾌락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영감을 얻을 수도 있고, 현실이라는 핑계로 무신경했던 윤리적 책무나 이타심도 고무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속 인간의 여러 한계나 공권력에 대한 답답함으로부터 일탈하는 창구가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처럼 많은 영화에 대해 양가적인 평가를 하리라 본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중 어느 쪽이 자신의 취향에 더 가까운지가 다를 뿐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스파이더맨과 함께한 오랜 추억이 있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역대급 명작일 수 있지만, 사전에 쌓아 놓은 감정적 유대가 얕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시간 때우기용 영화일 수 있다. 예술성 짙은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영화보다는 테마파크 정도의 여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영화관 가는 그 발걸음 잠시 멈추기에 충분한, 아니 합당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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