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게임 어워드 2021(The Game Awards 2021)>이 한국 시각으로 지난 금요일 개최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게임 팬들은 큰 기대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다 할 대작도 없었고 혹시나 하고 기대감을 가졌던 타이틀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판매량과 별개로 팬들의 반응만 놓고 보면, 그야말로 암흑 같았던 한 해를 보낸 게임 업계였다. 때문에 최소한 필자에게 자타공인 연례 최대 규모의 게임 시상식에서 기대할 법한 임팩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으레 느끼는 성취감과 보람보다는 씁쓸함과 회한만이 남았다. 출품작들에 대한 축하와 격려보다는 연민과 마지못함이 우세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어둠 속 한 줄기 빛은 희미하게 명멸하는 듯했다. 이처럼 암담하지만 일말의 희망을 예견했던 <더 게임 어워드 2021>을 살펴보며, 비디오 게임의 현주소 그리고 발표된 공개 예정작들이 시사하는 바를 헤아려보자.


의아하지만, 분명했던 수상 결과

자타공인 AAA 게임들의 수준이 올해만큼은 처참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말이 많았다. 작년 개연성과 감정선 밥 말아 먹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2>의 GOTY 수상으로 논란을 치렀음에도, <더 게임 어워드>의 소신인지 고집인지 모를 선정기준은 또다시 입방아에 오르게 되었다.

이변이 속출했다. 많은 이들이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를 유력한 GOTY(Game of the Year, 올해의 게임) 후보로 점쳤으나, 영예는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 <잇 테이크 투>가 차지하게 되었다. 대체로 훌륭하지만, 코옵 플레이를 기반으로 하기에 진입장벽이 다소 있고 뻔한 스토리텔링의 단점이 있음에도 GOTY로 선정돼 석연찮음을 느끼는 이가 적지 않다.  디렉팅상과 미술상에는 최적화 이슈(PC 버전 기준)가 있었던 아케인 스튜디오의 <데스루프>가, 각본상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선정되는 등 대다수 수상작이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대형 타이틀이 GOTY를 차지하는 것이 거의 관행처럼 되었기에 이번 수상의 의미는 남다르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이름값이 아닌 게임성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의미일지, 아니면 대형 개발사들이 보여준 그간의 실망스러움에 대한 일침일지는 주최 측 말고는 모르겠지만, 명확한 것은 자타공인 AAA 게임들의 수준이 올해만큼은 처참한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게임들이 사용자 만족도보다 언론 플레이와 단기적 판매량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지속되어 왔는데, 이러한 비판을 반증하는 소식도 전해졌다. 2015년 출시되었다가 최근 갑자기 재떡상한 <파이널 판타지 XIV>가 우수 서비스상(Best Ongoing)과 커뮤니티 지원상을 수상한 것이 그것이다. 잘 만든 게임이 맞고, 이미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2>같이 세월이 지나도 사랑받는 게임들의 사례가 있지만, 기술 발전 속도가 과거보다 비약적으로 증가한 오늘날  고인물 게임이 왕좌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일면 안타까운 사실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수상작 장르의 편향성 이슈이다. 메타크리틱과 오픈크리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포르자 호라이즌 5>는 아예 GOTY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주최 측은 출시 기한 문제를 거론하며 비판에 대응했지만, 어불성설이었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포르자 호라이즌 5>는 어느 부문에도 후보로 오를 수 없었는데, GOTY만 쏙 빼놓고 음향 디자인상을 비롯한 3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더 게임 어워드>가 시네마틱 액션 게임만 편애한다는 비판론자들의 주장에 더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당연히 여타 장르 게임 개발사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신감 혹은 높아진 기대치

돌이켜보면 작금의 게임 암흑기는 작년부터 전조가 있었다. 초기대작 <사이버 펑크 2077>이 팬들에게 ‘빅엿’을 안겨주었고, 못지않은 기대를 받았던 <바이오하자드 RE:3>는 부족한 콘텐츠로 뭇매를 맞았다. 코로나 19로 정상적인 개발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신뢰성이다. 언급한 두 게임의 경우 출시 전 기대감을 부풀게 하는 여러 광고와 뉴스들을 하루가 멀다고 내놓았지만, 실제 게임과 조우하며 팬들이 받은 것은 배신감뿐이었다.

이러한 사건들로 내성이 생긴 것일까. 게임 팬들은 게임 발매 소식이나 트레일러가 나올 때마다 기대보다는 의심을 먼저 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물론 지난 몇 년간 전율을 돋게 만든 AAA 게임들, 예컨대 <위쳐 3>, , <레드 데드 리뎀션2>, <갓 오브 워>,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와 같은 작품들로 팬들의 눈이 높아진 탓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원인이 되었든, 올해의 게임들은 이러한 배신감과 높아진 기대감을 극복할 만한 성과를 출시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보여주지 못했다. 사전 트레일러로 ‘혹시나’ 했던 <파크라이6>는 역시나 ‘유비가 유비했다’로 귀결되었으며,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같이 꽤 높은 완성도로 나온 타이틀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했던 불멸의 명작들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다소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올해의 수상작들은 반쪽짜리 챔피언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임  보릿고개, 과연 언제쯤이나 해소될 것인가?


해뜨기 전 새벽이 가장 밝다는 클리셰, 진부하지만 대게는 옳은

이번 <더 게임 어워드>의 백미는 수상작보다는 독점 공개작에 있었다. 모든 공개작을 지켜본 후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한 번만 더 믿어보자.’ 해뜨기 전 새벽이 가장 밝다고 하지 않았는가. 진부하긴 하지만, 인류의 경험상 대체로 들어맞는 얘기다. 이미 올해 중순부터 대형 게임 행사 및 온라인 소식을 통해 내년(길게는 내후년 초) 출시 게임 리스트가 공유되어 기대감을 한껏 부풀려왔다. 이번 <더 게임 어워드>에 출품된 출시 예정작들은 이러한 기대치가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더해줬으며, 사펑발 PTSD를 치유해줄 만한 근거들도 더러 제시하였다.

역시 액션 게임이 대세인 듯하다. 단연 최고의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은 프롬 소프트웨어의 <엘든링>. 프롬 소프트웨어는 실제 소비자들이 만나 볼 정도의 완성도가 갖춰지지 않으면 게임 출시 소식을 섣불리 알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엘든링>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는데, 11월 5일(한국 시각) 최초로 공개한 18분여 분량의 게임플레이 영상을 본 시청자들도, 11월 12일 진행된 네트워크 테스트에 참가한 플레이어들도 연신 ‘미쳤다’를 외칠 정도로 출시 전부터 높은 완성도를 약속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일, 가시거리 안으로 들어온 듯하다. 

<엘든링> 외에도 <포스포큰>, <호라이즌 포비든 웨스트>, <수어사이드 스쿼드: 킬 더 저스티스 리그> 등의 출시 예정 대작들은 더욱 장엄한 스펙터클과 흥분감을 안겨줄 인게임 액션을 보여줘 게이머들이 올해 느낀 실망감을 달래주었다. 특히 스퀘어 에닉스의 <포스포큰>은 이전 공개된 트레일러보다 더욱 화려한 이펙트의 스킬과 그래픽을 보여줘 몇몇 이들은 벌써부터 내년 GOTY 후보로 손꼽기도 했다. <수어사이드 스쿼트: 킬 더 저스티스 리그> 또한 실망스러웠던 영화와 달리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을 보여줘 DC 팬들 뿐만 아니라 대다수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액션 게임 외에도 눈길을 사로잡는 타이틀이 적지 않았다. 흑사병을 주제로 제작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던 <플래그  테일: 이노센스>의 후속작 <플래그 테일: 레퀴엠>은 전편보다 더 무게감 있는 분위기와 강화된 액션을 예고하였고, 독특한 세계관과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호평을 받았던 <헬블레이드: 세누아의 희생>의 후속작 <세누아의 전설: 헬블레이드2> 또한 더욱 심오한 스토리 전개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이블 웨스트>, <나이팅게일>과 같이 실험적인 장르의 게임들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며, <앨런 웨이크 2>, <소닉 프론티어>, <몬스터 헌터 라이즈: 선브레이크> 등 기존 명작의 명맥을 잇는 게임들도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모든 기대작을 그야말로 압살하는, 이번 <더 게임 어워드>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의외의 타이틀, <매트릭스 어웨이큰스: 언리얼 엔진 5 익스피어리언스>였다. 공개된 영상은 시네마틱 비디오와 인게임의 구분이 힘들 정도였으며, 이를 뛰어넘어 현실과 가상의 구분조차 힘든 충격적인 그래픽을 시연해 언리얼 엔진 5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에픽 게임즈는 향상된 AI기술과 디지털 휴먼 기술이 접목된 언리얼 엔진 5가 수많은 오브젝트의 실시간 상호작용을 가능케 할 것이라 설명하는 한편, 메타버스 가능성까지 기정사실화 하고 있어 메타버스를 표방한 기존 게임들을 ‘애들 장난’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만들 것을 예고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일, 가시거리 안으로 들어온 듯하다. 


2022년은 국뽕 한도치 초과의 해?

오랜 기간 국내 게임 개발사들의 콘솔 타이틀 개발은 불가능의 영역처럼 여겨졌다. 기술과 인적 자원의 문제도 있지만, 이 문제가 아니더라도 ‘갓챠’게임에 혈안이 된 대형 게임 업체들의 행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콘솔 타이틀 개발 불모지라는 낙인도 점점 사라질 듯한 기미가 보이고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국뽕 알러지가 있지만, 이번 <더 게임 어워드>에서 이례적으로 패트리어티즘 비슷한 걸 느꼈다. 펄어비스의 신작 <도깨비>의 뮤직비디오 ‘락스타(ROCKSTAR)’  공개가 그 계기였다. 이미 게임 플레이 영상과 개발 과정 영상이 공개되어 국내외의 호평을 받고 있지만, 연중 최대 규모 게임 시상식에서 이와 같은 특별 영상을 보는 것은 감회가 남달랐다. 특히 콘솔 게임 선진국들과는 차별화된 한국적 색채가 가득한 디자인과 독특한 액션 요소들은 <도깨비>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또한, 넥슨의 자회사 엠바크 스튜디오의 <아크 레이더스>는 박진감 넘치는 총격 액션과 다양한 무기, 협동 플레이를 통한 거대 생명체의 부위 파괴와 같은 흥미로운 요소들을 선보여 기대감을 높였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크로스파이어>의 후속작 <크로스파이어 X>는 우려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워낙 중국 팬덤이 강해 흥행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최근 FPS 게임의 싱글플레이 인기가 하향 추세라 <크로스파이어X>의 싱글플레이도 이러한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다만 여타 유사 장르 게임과 달리 총격 액션 외에 특수 능력 사용, 다양한 모드 지원, <맥스 페인>, <앨런 웨이크>, <컨트롤> 개발사 레메디 엔터테인먼트가 참여한다는 점 등에서 차별화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그 외에도 <더 게임 어워드>에 등장하지는 못했지만, 해외에서 주목하고 있는 내년 출시 예정작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펄어비스의 <붉은 사막>은 전 세계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초기대작이며, 엑소슈트 기반의 액션 게임  <플랜8>, 니어 오토마타 혹은 베요네타를 연상케 하는 <프로젝트 이브>, 동화 피노키오에서 모티프를 얻은  등도 ‘K-게임’의 부상을 점쳐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게이머들을 ‘호구’로 보지 마라 

그래서 이번 <더 게임 어워드>는 그 어느 때 보다 실망과 희망, 낙담과 환희, 정체와 혁신이  평행선을 달렸던 자리였던 듯하다.

게임 자체의 완성도와 별개로, 이번  <더 게임 어워드>는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포스포큰>은 69.99달러라는, 아무리 대작이지만 높은 가격 책정으로 출시 전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69.99달러라는 가격이 국가별 환율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책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테크 웹진 킷구루(Kitguru)에 따르면, 이러한 정책은 미국에 비해 이스라엘 게이머들이 48%, 유럽 게이머들이 30%, 영국 게이머들이 23%, 호주 게이머들이 11% 더 비싼 가격에 게임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더 비싼 금액을 지불해도 특전이 따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와 같은 스퀘어 에닉스의 비합리적 처사는 다른 타이틀에서도 계속되었다. <파이널 판타지 VII 리메이크: 인터그레이드>의 PC 버전 출시가 예고도 없이 발표되었는데, 반가움보다는 ‘킹 받게’하는 가격 책정으로 웃지 못할 해프닝을 자아냈다. 에픽 게임즈 스토어 출시 예정작 리스트에 등록된 <파이널 판타지 VII 리메이크: 인터그레이드>의 가격은 역시 69.99달러. AAA 게임 기준 출시 1년이 지난 PS 게임이 PC로 출시되는 경우 대부분  50달러 안팎의 가격이 책정되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 또한 터무니없는 가격 책정이다. 게이머들의 반발이 심해지자, 에픽 게임즈 스토어에서 가격을 숨기는 꼼수까지 자행해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가격 정책이 물꼬를 튼다면, 다른 게임들에 선례(?)가 될 것이 자명하다. 좋은 게임에 걸맞은 합리적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완성도 덜 된 게임을 출시한 후 DLC를 비롯한 추가 과금 요소를 우후죽순 쏟아내는 행태가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갓챠’게임만 욕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더 게임 어워드>는 그 어느 때 보다 실망과 희망, 낙담과 환희, 정체와 혁신이  평행선을 달렸던 자리였던 듯하다. 그 위태로운 긴장이 어떠한 방식으로 깨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냉정하게 말해서 게이머들은 미완성 상태의 게임이 나와도, 아무리 비합리적인 가격으로 게임이 출시 돼도 구매 자체를 중단하는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개발사들은 <데이즈 곤>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가빈(John Garvin)이 그랬듯 ‘할인받아 샀으면 속편 따윈 기대하지 마라’ 따위의 X소리로 뻔뻔하게 일관할 것이다. 혹은 무료 DLC 따위로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알량한 조삼모사로 일관할 것이다.

다만, <사이버 펑크 2077> 사태나 이번 스퀘어 에닉스의 가격 책정에 대한 심상치 않은 여론은 일말의 희망을 남겨둔다. 조금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리니지 2M> 불매운동 등도 함의하는 바가 작지 않다. 소비자들 입장에서 부당한 판매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여론밖에 없다. 더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더 공격적으로 집단행동을 하는 것 만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답인 듯하다. 그 가속도가 배가 되어가는 게임 기술에 걸맞은, 또 게이머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에 수렴하는 비즈니스 모델과 서비스 정신이 도래하는 것, 결국 우리 게이머들 손에 달린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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