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Archive
2022. 3. 18.
[뉴스레터 #25] 강력하거나 혹은 새롭거나
2022. 3. 4.
[뉴스레터 #24] 사랑은 향기를 타고, 봄이니까 이벤트😉
2022. 2. 18.
[뉴스레터 #23] 사소함이 쌓여 변화를 이루는 과정, 브랜드의 성장 이야기
2022. 2. 4.
[뉴스레터 #22] 봄이 오나 봄
2022. 1. 21.
[뉴스레터 #21]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걱정이 앞서나요
2022. 1. 7.
[뉴스레터 #20]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두 번 받으세요
2021. 12. 24.
[뉴스레터 #19] 님, 메리 크리스마스🎅
2021. 12. 10.
[뉴스레터 #18] 임볼든에서 연말 선물에 대한 힌트를 얻어보세요
2021. 11. 26.
[뉴스레터 #17] 브랜드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빛나는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며
2021. 11. 12.
[뉴스레터 #16] 겨울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준비
2021. 10. 29.
[뉴스레터 #15] 님의 취향은 무엇인가요?
2021. 10. 15.
[뉴스레터 #14] 올해 마지막까지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했어요.
2021. 10. 1.
[뉴스레터 #13] 임볼든 뉴스레터? 선물 상자를 뜯어보는 것 같은 설렘!
2021. 9. 17.
[뉴스레터 #12] 가을과 함께 온 기다렸던 소식들
2021. 9. 3.
[뉴스레터 #11] 형태와 기능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님을 위해
2021. 8. 20.
[뉴스레터 #10] 추억과 새로움의 공존, 레트로를 위하여
2021. 8. 6.
[뉴스레터 #9]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지금을 위한 임볼든의 큐레이션
2021. 7. 23.
[뉴스레터 #8] 이벤트는 아직 진행 중, 킹스맨 우산이 탐나지 않나요?
2021. 7. 9.
[뉴스레터 #7] 이벤트 있어요! 좋은 건 소문내는 게 미덕😉
2021. 6. 25.
[뉴스레터 #6] 클래식은 영원하다
2021. 6. 11.
[뉴스레터 #5] 님의 일상에 시원한 바람이 되어줄 임볼든의 다섯 번째 뉴스레터
2021. 5. 28.
[뉴스레터 #4] 임볼든과 함께 선택의 폭은 넓히고, 결정은 빠르게
2021. 5. 14.
[뉴스레터 #3] 본격적 여름 날씨, 분위기 살려주는 임볼든 소식
2021. 4. 30.
[뉴스레터 #2] 임볼든이 담아온 두 번째 소식도 함께 즐겨요
2021. 4. 16.
[뉴스레터 #1] 남자라면 절대 놓치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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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남자, 어린 여자, 그들의 ‘속’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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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노력이란 걸 해봤냐? 너는 걔들보다 볼 것도 없는데 무슨 노력? 넌 노력 1도 안 한 거야

그날 모임에서도 그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마치 현인의 금언이라도 경청하듯 모두가 그의 말 한 토막 한 토막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가 독차지한 말의 권위 앞에 모두가 침묵으로 경의를 표하고 있는 가운데, 다소 옹색하지만 나름 반기를 든 이가 있었다. 칭찬인지 비방인지 모를 그의 발언, “이 형은 진짜 여자 쉽게 꼬시지 않냐? 될 사람은 된다니까. 나는 죽어도 안 되더만.”

40대 후반에 접어든 모임의 주인공은 얼마 전 20대 중반의 여성과 교제를 시작했다. 지난 2년 동안 20대 여성과 세 번의 만남을 가졌다. 잘 생기지도 못 생기지도 않은 그저 적당한 얼굴, 170cm를 살짝 웃도는 평범한 키의 보유자이다. 재치가 넘친다거나 딱히 유머러스하다고 하기도 어렵다. 외모를 제외하고 그가 내세울 수 있을 만한 건 꽤 큰 기업의 꽤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 그렇다고 불법적인 조건 만남이나 스폰서 관계도 아니었다. 상대 여성은 수려한 외모 만큼 학벌이나 ‘스펙’도 썩 괜찮았다. 단순한 ‘섹파’도 아니고 ‘만나는 사이’에 가까웠다.

그의 ‘성공 비결’은 ‘직업이 좋아서’, ‘돈이 많아서’, ‘자신감이 있어서’, ‘말빨이 좋아서’ 등 인터넷 연애 코칭이나 픽업 아티스트들이ㅡ물론 이런 조건들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갖춰져야 하겠지만ㅡ뻔하게 제시하는 방법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군의 도발에 대한 주인공의 응수는 다소 부적절하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꽤나 따끔했을 것이다. “네가 노력이란 걸 해봤냐? 장X건 X진모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너는 걔들보다 볼 것도 없는데 무슨 노력? 넌 노력 1도 안 한 거야.”


노력의 목적지는 섹스, 그런데 왜 하필 어린 여자인가

노력의 크기는 지극히 주관적이다. 어느 정도의 노력이 뒤따라야 성공할 수 있는지에는 정답이 없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여자에 ‘미쳤다’. 잠을 줄이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여성이 좋아할 법한 모든 가능성을 시험해본다. 단순히 몇 번 ‘껄떡’ 대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여성이 몇 차례 거절 의사를 보여도, 대다수의 남성처럼 마음 상하거나 계산이 맞지 않다고 판단해 멈추지 않는다. 회사 중역 회의 시간에도 그녀와의 문자를 끊지 않고, 외근 중 30km 떨어진 곳에 있는 그녀와 점심식사를 위해 어떻게든 짬을 내는 그이다. 노력의 범위에 한계를 두지 않는다.

누가 봐도 합리적이지 않은 행동이다. 정작 이처럼 큰 노력을 쏟아 얻고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고 얄팍하다. 20대 여성과의 교제하는 대부분 중년 남성들의 목적은 그 시작도 끝도 섹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진지한 만남을 원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남녀 관계의 나이 차에 대한 민감도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띠동갑 두 바퀴 가까운 관계를 응원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 오래간 진지한 만남을 가진다면 따가운 시선을 극복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여간 만만한게 아니다. 또 다른 현실적 요인은  중년의 남성들이 많은 경우 가정이 있다는 불편한 사실.

그런데 왜 하필 어린 여성과의 섹스일까. 여러 해석들이 가능하겠지만, 그나마 조금 과학이라는 것을 빙자한 이론으로는 진화론 계열이 있다. 어린 여성이 더 건강한 아이를 낳기 때문에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최적의 가임기에 있는 여성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성은 나이가 많은 남성일 수록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있기 때문에 나이 든 남성을 택한다는 것.

하지만 어린 여성을 갈구하는 중년 남성들이 이런 원초적인 이유 하나만으로 그 무진 애를 쓴다고 하기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고작 섹스 한 번 하자고 물적·심적 자원을 물 쓰듯 쓰고 사회적 지탄의 리스크를 감수하겠는가. 여성 입장에서도 그저 돈이 많고 직업이 좋다고 나이 든 시들시들한 남성을 택한다는 것은 ‘난쏘공’ 시절에나 있을 법한 얘기로 들린다. 좀 더 수긍이 갈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 남자의 입장 ㅡ 핵심은 섹스, 그러나

비싸고 화려한 시간이 아닌, 그저 함께 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던 어린 시절의 노스텔지어에 침잠하게 만든다.

단지 섹스만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각고의 노력을 쏟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원나잇이든 뭐든 더 쉬운 방법이 있으니까. 궁극적인 도달점이 어린 여성과의 섹스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만남에 상승효과를 불어 넣어 줄 결정적 매력 포인트들이 이 위험한 장난에 그들을 기꺼이 뛰어들게 만든다.

나이 든 남성과 어린 여성의 사회적 행동 패턴과 심리는 궁합이 잘 맞는 측면이 있다. 20대 초반-중반에 속하는 이들은 아직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과 설렘이 더 많은 나이를 살고 있다. 돈이 많든, 유행에 민감하든 같은 나이대와 어울리며 향유할 수 있는 물질적이고 문화적인 재화는 경제력과 경험이 갖춰진 중년의 그것과는 다른 층위의 것이다. 때문에 나이 든 남성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배려와 지출만으로도 어린 여성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신선한 환기로 다가온다. 

만 팔천 원 짜리 캐주얼 스시가 아닌 미들급 스시야에 가는 것만으로도,  번화가의 시끄럽고 번잡한 펍이 아닌 적당한 호텔 라운지 바에 가는 것만으로도 어린 여성으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은  중년 남성들에게 신선한 환기로 다가온다. 비싸고 화려한 시간이 아닌, 그저 함께 있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던 어린 시절의 노스텔지어에 침잠하게 만든다. 이것에 남자들이 환장하는 것이고. 앞선 이야기의 주인공과 더불어 어린 여성과의 교제에 빠져든 중년 남성들이 하나같이 ‘회춘하는 것 같다’, ‘마음이 젊어진 것 같다’고 말하는 데는 비단 성적인 요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이유는, 골치가 아프지 않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것만 빼면, 만남에서 골치 아플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같은 나이대의 진지한 관계라면 으레 할 법한 앞으로 미래에 대한 설계, 생계에 대한 이야기,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따위의  골치아픈 얘기들을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있다. 이런 것들이 없다. 그냥 맛있는 음식을 먹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술 한잔하고, 기분 좋은 취기하에 섹스를 하면 그만인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중년의(혹은 그 이상의) 유명 인사들이 흔히 보이는 여성 편력도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이러한 반응과 맞물려 잠자리에 대한 태도는 잊혀저 가는 남성성과 존재감을 되살려 주는데 큰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나이 든 남성을 만나는 어린 여성은 그들의  섹스 테크닉에 매혹당하며 이를 통해 감정적 유대까지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능숙한 테크닉이라는 전제만 갖춰진다면, 어린 여자로부터 돌아오는, 그 나이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교성과 몸부림이라는 보상이 따르게 된다.  남성의 말초신경을 그 뿌리부터 흔들어 버린다.


그 여자의 입장 ㅡ 제 3지대의 관계

나이 든 남성은 이 친구와 애인 경계 사이, 제3지대 카테고리에 속한 인간인 것이다.

중년 남성을 만나는 어린 여성들을 흔히 ‘꽃뱀’ 혹은 ‘골드 디거(gold digger)’로 일반화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너무 단순하게 매도하는 경향이 있다. 익숙해진 사회적 규범의 틀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또 몇몇 개개인은 ‘돈으로 젊음을 사는 중년 남성’ 그리고 ‘지조 없이 늙은이를 만나는 젊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으로 그들을 자신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깎아 내리며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로 여자 입장에서는 돈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수치상으로만 봤을 때 여성이 사회적 자원에 접근할 기회나 임금 수준에서 불리한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꼭 이러한 천박한 자본주의적 목표만으로 이해가 어려운 것은 그들도 사람을 가린다는 것이다. 소위 ‘스폰’이라고 하는 관계들만 봐도, 본격적인 게임 전에 상호 접견과 면접 자리가 진행된다. 남자도 ‘뺀찌’를 놓지만, 여자가 ‘뺀찌’를 놓는 경우도 그에 못지않다고 한다. 

좀 더 그럴듯하게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이들은 ‘스톡홀롬 신드롬’이나 ‘부친으로부터의 애정결핍’ 혹은 요즘 필요 이상으로 남발되는 ‘가스라이팅’ 등을 거론한다. 과연 그럴까. 최근 몇 년 동안 수행된 연구들에 따르면, 표본 집단에서 돈이나 각종 결핍 때문에 나이 든 남성과 만나는 젊은 여성의 수는 그다지 괄목할만하지 않다고 한다(한국에서도 이런 연구 좀…).

앞서 말했듯 중년의 화려한 섹스 테크닉에 매료된 여성들도 이런 부류에 포함되겠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남자와 비슷한 심리로 관계를 맺는 경우도 많다. 복잡할 것 없다. 재벌 3세가 아니라면,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들과의 관계는 뚜벅이, 김밥천국, 아울렛 신세로 몸 고생해야 하고, 하염없이 낮은 정신연령에서 나오는 투정과 궁상을 받아줘야 하는 정신적 고통도 유발한다. 

또한, 누구나 일탈이 필요하듯, 나이 든 남성을 돈이 아닌 다른 이유로 만나는 여성들에게는 나이 든 남성들이 일종의 스릴 있는 ‘일탈’이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어처구니없는 어린애 짓을 안 하고, 몸도 편하고, 거기다 잠자리에서도 동년배 남자들이 보여줄 수 없는 신세계를 선사한다. 골치 아플 것도 별로 없다. 애초에 질척거릴 것 같은 나이 든 남자는 선택지에 없다. 언제 헤어져도 상관없고 감정을 모두 쏟을 필요 없는, 그러면서도 안락함과 쾌적함과 풍족함을 제공해주는 나이 든 남성은 어찌 보면 매우 합리적인 선택지이다. 

많은 여성의 경우 ‘친구’와 ‘애인’의 경계나 각각에 대한 기대치가 남성의 그것보다 상당히 모호하다. 나이 든 남성은 이 친구와 애인 경계 사이, 남자들은 쉬이 상상할 수 없는 제3지대 카테고리에 속한 인간인 것이다.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이런 관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관계들의 끝은 대체로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관계 자체가 로고스에 기반했다기 보다는 스릴과 쾌락이 우세한 만큼, 언젠가 관계의 쾌락에 한계효용을 체감하게 된다면 관계의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 번 한 번의 만남의 끝은 쿨하고 뒤끝 없을지 몰라도, 계속된 가볍고 자극적의 만남은  결국 ‘시들함’ 혹은 ‘집착’이라는 상반된 감정의 노정을 따른다. 

둘 중 어느 감정이 누구에게 돌아갈 지는 모른다. 서로가 같은 감정을 가진다면 해피엔딩이겠지만, 서로 다른 감정의 결을 따른다면 이 쾌락의 계약 관계는 불평등하게 종결될 수밖에 없다. 한쪽은 새로운 쾌락을 제공해줄 또 다른 대상을 찾고, 다른 한쪽은 일시적인 쾌락을 넘어 더욱 지속적인 유대를 원하게 되며 전자에게는 곤혹스러움을, 후자에게는 마음의 상처를 안긴다. 나이를 떠나 남녀 관계에서 서로 다른 감정선을 가지면 이처럼 둘 중 누구는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르지만, 나이 든 남성과 어린 여성의 만남에 따르는 대가는 좀 더 무거워 보인다.

욕망이라는 것은 한번 개방된 이상 쉽게 하향 조정되기 어렵기에, 한번 이런 관계에 노출된 이상 남녀 모두가 계속해서 어린 여성과 나이 든 남성을 좇게 만드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게 새로운 이성을 찾는 데 드는 육체적·심리적 에너지,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멘탈, 똑같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 속에서 커져가는 감정은 공허함 뿐일 것이다. 아무런 낙인 없이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과 떳떳하게 교제하는 것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관계, 누군가는, 언젠가는 ‘정상적이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