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 고미술상가는 지금 서울에서 가장 ‘뜨는 곳’이다. 이상한 일이다. 답십리역 근처 오래된 아파트 상가. 이렇다 할 맛집이나 카페도 없이, 30년 넘은 골동품 가게들로 빼곡한 이곳이 갑자기 주목받는다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사이로 젊은 상인들이 하나둘 가게를 열었고, 그와 함께 새로운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해 가을부터 서서히 감지되기 시작했다는데. 요즘 사람들이 성수도, 한남도 아닌 답십리로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십리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110여개의 상점이 모인 국내 최대 규모의 고미술 상가다. 1980년대 서울 아현동과 청계천 일대에 있던 고미술 가게들이 이곳으로 이전해 모여들었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골동품’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골동품은 오래된 서화와 유물, 기물로 미술적 가치를 지니는 물건을 말한다. 소장된 물품만 자그마치 250만 점. 놋그릇, 다듬잇돌 같은 민속품부터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도자기와 고가구, 가야 시대 토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원래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는 골동품 마니아 또는 수집가, 외국인이 주로 찾았다. 큐레이터, 공간 기획자, 바이어 등 비즈니스 목적으로 찾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일반인의 출입은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곳에 20~30대 젊은 층의 발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데이트하는 커플, 아이 손을 잡고 나온 가족 등 주말에는 좁은 복도가 붐빌 정도다.
오래된 것이 좋아졌다
요즘 사람들이 답십리 고미술 상가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지점은 이렇다. 젊은 사람들이 옛날 물건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고, 그 안목을 기르는 과정에서 빈티지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이는 의류나 가구처럼, 빈티지 제품을 단순한 중고가 아닌 희소한 물건으로 인식하고 기꺼이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제 해외를 넘어 한국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고미술’로 관심이 이어지는 게 아닐까.

하지만 이 현상을 단순히 ‘레트로’라는 흐름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골동품 상가 주인은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물건이 어디서 왔고, 누가 썼고,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옛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물건들은 저마다의 시간을 품고 있고, 그 시간은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 지금 사람들에게 닿는다. 그렇게 상인이 물건에 관한 이야기를 정성 들여 풀어내는 동안,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오래된 물건이 지닌 형태와 질감, 그리고 그 안에 쌓인 깊이에서 ‘멋’을 발견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울 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색다른 걸 좋아하잖아요. 다른 걸 찾기 위해 오는거죠. 주로 사진 작업하는 분들이 많이 와요. 소반 위에 작은 달항아리 하나 올려두면 찰떡궁합이거든. 그렇게 세팅해서 그대로 가져가기도 하고요. 디저트 접시로 쓰겠다고 찾는 분들도 있고, 보석 작업 하는 분들도 많이 찾아요.”
직접 보고, 만지고, 선택하기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살아있는 박물관에 가깝다. 이곳의 컵과 그릇, 가구는 유리장 너머에 놓인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가까이에서 보고, 직접 만져보며, 지금의 생활 안으로 끌어올 수 있는 물건들이다. 박물관에서만 접하던 전통 기물을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경험하고, 손으로 만지며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끈다.
옛날 물건들은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 끝없이 쌓여 있다. 정교하게 선별되고 정리된 편집숍과는 다르다. 이곳에서의 쇼핑은 선택이라기보다 탐험에 가깝다. 성수동이나 한남동이 이미 정제된 취향을 보여준다면, 답십리는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다. 무엇이 나올지 모른 채 뒤적이고, 들춰보며 찾아내는 과정. 그 ‘발굴하는 맛’이 사람들을 붙잡는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의 가격대는 만 원대의 작은 액세서리부터 수천만 원대 고가구까지 다양하다. 잘 살펴보면 동시대 작품보다 낮은 가격에 조선 시대 가구를 구입할 수도 있다. 만복당에서 만난 한 손님은 고가구의 가격을 듣고는, 해외 경매에서 비슷한 물건이 두 배 이상에 거래되는 것을 본 적 있다며 “이 정도면 오히려 저렴한 편이네요”라고 말했다.
결국 이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특정한 물건이라기보다, 물건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일 것이다. 일상 속 사물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 무엇을 곁에 두고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간직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아름다움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기 보다, 각자의 선택 속에서 길어 올려지는 감각이 있음을 느끼면 된다.

“지금 이 누빔 함을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예전에 인사동에서 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돌아가시면서 맥이 끊겼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어서 만들고 있어요. 누빔은 우리나라만 있는 한국 전통인데, 의미가 있는 거니까. 이번에 리움 미술관에서 찾아 오더라고요. 아름다움은 누가 계속 들여다보고 써줘야 살아 남아요.” 예명당 대표의 말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한국미를 찾는 젊은 사람들
젊은 세대가 고미술에 입문하게 된 데에는 최근 새롭게 유입된 몇몇 상점의 역할이 크다. 성수동 ‘프로젝트 렌트’의 최원석 대표의 OF(Old Fashioned)를 비롯해, 고미술에 동시대적 감각을 더한 고복희, 빈티지 의류와 전통 섬유를 한 곳에 섞어낸 호박아트갤러리까지. 이들은 답십리를 하나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꾸며 젊은 층이 고미술에 입문하도록 했다.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과 새로 들어온 문화 기획자, 젊은 빈티지 판매자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 셈이다.

이들이 고미술을 다루는 방식은 분명하다. 골동품을 케케묵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다시 해석하는 것. 조선시대 목가구인 반닫이 위에 뱅앤올룹슨 A8 스피커를 올려두고, 제사용 기물에 다기와 찻잔을 담아두는 식이다. 물건의 쓰임을 고정하기보다, 동시대 감각 안에서 자유롭게 호흡하도록 배치하는 점이 재미있다.
공간 연출 방식도 다르다. 수백 점의 물건을 빼곡히 쌓아두는 대신, 엄선한 몇 점의 물건만을 여유 있게 놓는다. 단순히 옛것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옛것과 새것을 한데 섞어 지금의 라이프스타일로 제안하는 큐레이션 쇼룸에 가깝다.

지금 ‘뭘 좀 아는 사람들’이 답십리로 모이고 있는 건 확실하다. 최근 정동길에 있던 두손갤러리가 이곳으로 이전했고, 곧 리빙 편집숍 챕터원도 문을 열 계획이다. 얼마 전에는 빈티지 오디오를 다루는 가게가 입점 계약을 마쳤다고 한다. 이제는 공실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오래된 것’이라는 답십리의 고유한 정체성이 요즘 ‘감각 쟁이’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많은 것이 쉽게 복제되고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 결국 가치 있는 것은 다른 무언가가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오래된 것과 지금의 감각이 겹치는 답십리에 젊은 세대가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