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일상의 단서들을 지우고, 언제 보아도 낯선 손바닥 지문 같은 공간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을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까. 1년 3개월 동안 무려 41개국을 누빈 유튜버 여행가 Jay. 그가 담아낸 여행기의 좌표는 풍경과 사람, 소탈한 그의 모습 사이를 오간다.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데에도 용기는 필요하고, 과감히 일상으로 돌아온 그에게 궁금했던 사사로운 이야기를 건넸다. 밥은 먹고 다녔다는 질문은 과감히 건너뛰고.
여행을 잠시 멈춘 지금, 일상에서 최근 가장 주력하는 ‘무엇’이 있으시다면.
가장 마음을 쏟는 일은 ‘관계’인 거 같아요. 요즘 여행 관련업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라 많은 여행 크리에이터들이 국내 체류 중인데요, 사실 전 세계에 흩어진 여행 유튜버들이 한 나라에 장기간 모여 있는 건 정말 드문 일이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그들과 자주 만나고 있어요. 같은 분야이다 보니 서로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더욱 서로에게 힘이 되더라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제 속을 다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들을 더 만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보물 같은 사람들이 한명 한명 제 옆에 생겨 이 힘든 시기를 정말 행복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긴 여행에서 가장 그리웠던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가장 그리웠어요. 겉으로는 표현을 잘 안 하지만, 사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에요. 세계여행 이전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1년 정도 다녀왔는데, 살고 싶을 정도로 그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행복했어요. 주변에서도 영주권을 취득하는 사람이 많아 그냥 이곳에 정착할까 하는 고민을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가족, 친구들과 한참 동안 떨어질 생각을 하니 단번에 포기가 되더라고요.
이번 세계 일주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어요. 혼자 여행하겠다는 큰 결심을 했어도 정말 풍경, 좋은 음식 앞에서는 ‘친구, 가족들과 함께였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장거리 비행에서 보통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나요.
‘무조건 취침’이 제 철칙입니다. 여행과 유튜브 채널 운영을 병행했기 때문에 사실 쉬는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낮에는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에 들어와서 잠들기 전까지는 틈틈이 영상 편집을 했었습니다. 심지어 스케줄이 너무 빡빡한 기간에는 잠을 포기하고 새벽까지 편집 후 바로 투어를 나간 적도 있어요.
이렇게 빠듯하다 보니 이동 중에도 편집을 하는 편인데, 비행기에서는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기내 테이블도 좁고, 비행공포증도 살짝 있어서 집중도가 떨어져요. 그래서 장시간 이동할 때에는 체력 충전을 위해 많이 자 두는 편이고, 정말 잠이 오지 않을 때만 편집을 합니다. 눈 뜬 채 멍하게 있는 시간보다 차라리 편집을 하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요. 여행하는 동안 다른 건 다 뒤로하고, 정말 ‘여행’과 ‘기록’, 이 두 가지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여행 중 가장 선명하게 남은 한 장면을 말씀해 주신다면.
아프리카 일정이 정말 빡빡했어요. 사실 그럴 계획은 아니었는데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잦아 그냥 흘려보낸 날들이 많았어요. 예를 들어, 탄자니아에서 잠비아로 가는 2박 3일 타자라 열차를 탔는데 도중에 탈선되어 꼼짝없이 기차에 갇혀 무려 28시간이 지연됐어요. 또 인터넷 정보만 가지고 나미비아 입국을 시도했지만, 그 정보가 오류투성이라 항공권을 날렸죠. 그렇게 입국 포기를 한 후 남아공으로 목적지를 바꾸었는데 공항에서 수화물이 오지 않아 이틀을 그냥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생전 들어 본 적도 없는 ‘레소토’라는 나라를 가게 되었어요. 도착하니 저녁 10시쯤 됐을까요. 골짜기 마을에 있는 숙소라서 가로등도 하나 없었어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무심코 하늘을 봤는데 밤하늘에 별이 정말 빼곡하게 차 있었어요. 심지어 은하수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여태껏 이렇게 멋있는 밤하늘을 본 적이 없었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든 일을 겪은 후에 이런 광경을 마주하니 그간 고생했던 제에게 위로를 해주는 기분이 들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정말 황홀했고, 피로가 싹 씻겨가는 기분이랄까. 지금도 그날 밤하늘이 선명하게 기억나요.
떠날 때 유독 아쉬웠던 여행지 세 곳을 꼽아주세요.
첫 번째로는 이집트의 다합. 바닷속이 아름다운 해안 도시이자 세계에서 스쿠버 자격증을 가장 저렴하게 취득할 수 있는 곳인 다합은 한국인이 정말 많아요. 때문에 장기간 여행하다가 사람이 그리워 질 때쯤 방문하게 되면 타지에서 한국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에요. 한 집에 여럿이 모여서 생활하는 분위기가 대학생 시절 친구들 여럿이서 자취하는 그 느낌이었어요.
집 식구들이랑 요리도 해 먹고, 수영도 다녀오고, 밤에는 술도 한잔하고,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가족처럼 정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생활하다가 다른 여행지로 이동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그 사람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그 순간이 가장 아쉬웠어요.
그다음은 1년 3개월 동안 41개국을 여행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나라, 스리랑카입니다. 비자 기간이 30일인데 29일째 되는 날 이동을 했을 정도로 기간을 꽉꽉 채웠어요. 하지만 출국 5일 전에 테러가 발생해 꼼짝없이 숙소에만 있게 되었어요. 물론 아쉬움이 남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갈 겁니다. 무조건.
마지막 한 곳은 세계여행의 마침표가 된 브라질입니다. 사실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운 마음이 커 브라질을 골랐어요. 이 긴 여정을 마칠 땐 생각도 많아지고 덤덤한 모습으로 엔딩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급하게 귀국을 결정했고, 탈출하다시피 빠져나오게 됐어요. 렌소이스라는 도시 여행을 가장 고대했는데, 결국 가지 못했고 브라질에서 멕시코로 건너가 그곳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려 했지만, 그 역시 불발돼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여행도 일상이 되면 권태롭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올 거 같아요.
저는 ‘장기간’, ‘나 홀로’라는 수식이 붙는 유럽 여행은 사실 좋아하지 않아요. 물론 이것 또한 개인차가 있겠죠. 저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한 유럽의 모습을 기대했고 처음에는 물론 좋았어요. 하지만 제가 2달 동안 유럽 일주를 하면서, 계속 비슷한 건물들을 보니 더는 이 풍경들이 멋있어 보이지 않더라고요. 익숙해져 버린 거죠.
아울러 멋지고 이쁜 풍경들 앞에서 혼자 사진을 찍는데 너무 외롭더라고요. 내가 왜 더 이상 흥미롭지도, 심지어 물가도 비싼 곳에서 억지로 머물고 있나 싶었습니다. 유럽은 연인과 함께 짧게 다녀오는 것이 제 여행 취향과 맞는 거 같아요. 그래도 에펠탑은 너무 좋아서 파리에 있는 나흘 동안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동 시 가장 선호하는 교통수단이 있나요.
장기여행을 하면 어쩔 수 없이 지출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거든요. 그래서 ‘여기에서 저 장소까지 어떻게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갈 수 있을까’를 고려했을 때 버스가 가성비 면에서 최고입니다.
택시는 정말 급하지 않은 이상 타지 않았고 인도 같은 곳은 기차도 저렴해 많이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 강조하자면 최고는 버스에요. 국경을 건널 때에도 가능한 상황이라면 버스를 고집했습니다.
여행지에서 샀던 것 중 생각나는 가장 쓸모없는 물건은.
저는 웬만하면 기념품, 장신구 등은 절대 사지 않아요. 이 물건들이 앞으로 남은 내 여행에 대한 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모로코 사하라사막을 가기 전 햇빛이 강렬하다는 얘기를 듣고 스카프 하나를 샀는데, 사막 투어 업체에서 두건을 빌려주더라고요. 그 정도예요. 워낙 물건을 흥청망청 사는 성격이 아니라 다른 쓸데없는 물건은 없는 거 같네요.
워낙 순수한 분위기가 있어서 험한 일을 당했을 때 했던 가장 심한 욕을 짓궂게 묻고 싶네요.
‘미친 거 아니야?’ 사실 욕을 입에 담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요. 불합리한 일을 당하면 혼자 삭히는 편이고, 불의는 또 못 참아서 관광객이라고 얕잡아 보면 한 소리 할 때는 있어요. 그래도 욕은 발설하지 않습니다.
배고픈 배낭 여행객들에게 슬쩍 흘려주고 싶은 돈을 절약하는 꿀팁을 알려주세요.
지금 말씀드릴 몇 가지 팁은 지극히 사적인 방법임을 염두에 두시길 바라요. 일단 앞서 말씀드렸듯, 택시는 되도록 타지 않고 만약 타게 되더라도 무조건 우버나 그랩 등 택시 앱을 이용할 것. 만약 서비스 지역 사정권에서 벗어났다면 미터기를 켜 달라고 요구하세요.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부르는 값의 절반을 깎는 흥정 기술이 필요해요.
두 번째는 온라인으로 관광지 입장권 가격을 먼저 확인하시라는 거예요. 생각보다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세 번째는 세탁 비용 줄이기. 샤워 시 직접 손빨래를 하고, 위생에 한계가 온다면 나라 이동 전 한 번씩 세탁소에 맡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지갑이나 여권 등 소지품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돼요. 돈을 덜 쓰는 것보다 있는 돈을 지키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여행지에 가면 꼭 하는 Jay님 만의 루틴이 있나요.
가까운 곳에 시장이 있다면 첫날 가장 먼저 가보는 편이에요. 그곳에는 그 나라의 음식문화, 전통의상, 각종 생활 장신구들 정도는 기본으로 볼 수 있거든요. 이를 통해 기본적인 문화, 물가, 음식 등을 접할 수 있어서 그 나라에 적응하기보다 쉬워져요. 길면 1달, 짧으면 1주 동안 한 나라에서 머무는 편인데 첫날 이렇게 시장을 돌면 앞으로 남은 일정을 좀 더 수월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떠나는 행위를 통해 새롭게 발견한 ‘머무름’에 대한 의미가 있다면.
여행을 다닐 때 한 도시에 일주일 이상 머물지를 않았어요. 사실 한 도시를 다 둘러보기에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유일하게 한 도시에 한 달간 머물렀던 곳이 있었는데, 바로 ‘이집트 다합’이에요. 일주일 안에 다합의 매력을 모두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요. 앞서 말씀드렸듯 다합은 도시 자체의 매력은 물론 사람 때문에 다음 행선지로 걸음을 옮기기 너무 아쉬웠어요.
저에게 떠난다는 건 미래에 대한 설렘이고, 머무른다는 건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정이 자꾸 옷깃을 잡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곳은 정말 나눌 수 있는 정과 마음들이 가득했거든요.
마음에 남는 타국의 정서, 혹은 문화가 있나요.
인도를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겁부터 났어요. 워낙 소문도 안 좋고, 소매치기, 강간 등 인터넷 매체에는 자극적인 모습들뿐이었으니까요. 그래도 타지마할과 갠지스강만이라도 보자며 마음먹고 갔는데, 역시나 귀를 때리는 시끄러운 경적에 압도당하고, 길을 걸으면 1분에 한 번씩 말 거는 사람들 때문에 몸이 저절로 경계 모드가 되었어요.
도로는 차가 다니는 길인지 사람이 다니는 길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혼란스럽고, 정말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걱정부터 들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어느새 여행을 하다 보니 인도의 매력에 빠져서 1달 반이나 다녔고, 이미 북인도에서 남인도까지 내려와 있었어요.
남인도에서 현지인 친구를 사귀어 가정집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는 제 돈을 한 푼도 못 쓰게 했어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물어보니 ‘손님은 왕(guests are god)’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놀다 가라고. 오만가지 걱정, 부정적인 생각을 품었던 제가 부끄러워졌어요. 이를 통해 어떤 나라든 내가 직접 겪은 후에 그곳을 판단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행할 때 항상 가지고 다니는 EDC를 소개해 주세요.
아무래도 촬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옷, 세면도구 같은 생활용품을 제외하면 사실 다른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에요. 고로 촬영에 필요한 캐논 G7X 마크 2, 고프로 6, 갤럭시 S8, 보조배터리가 저의 여행 EDC가 될 거 같네요.
마지막으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구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면.
채널을 만들 때 ‘세계 일주 기록’이 제 목표였어요. 구독자 수가 점점 늘면서 구독자님들에게 ‘같이 여행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 ‘못 가본 곳을 영상으로나마 느끼며 대리 만족시켜드리는 것’ 이 두 가지에 포커스를 두게 되었고요. 제가 간 곳이 구독자분들이 여행했던 장소라면 추억을 되살려드리고 싶고, 생소한 곳에 닿아 있다면 영상을 보시며 함께 걷는 기분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