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 이 전제는 클래식 바이크를 타는 라이더 또한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예쁜 디자인을 얻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편리함을 포기하곤 했으니까. 이는 바이크뿐 아니라 헬멧 선택에 있어서도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다. 바이크에 어울리는 예쁜 디자인을 위해 상대적으로 클래식 헬멧들은 많은 부분에서 손해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더들은 항상 그 안에서 답을 찾곤 했다.늘 그랬듯이. 아마 아래의 리스트에 그 해답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아라이 라피드네오
헬멧 시장 전통의 강자인 아라이(Arai)를 대표하는 레트로 디자인의 헬멧 라인업이다. 물론 여타 브랜드의 전통적인 클래식 헬멧과 비교하면 디자인 무드가 살짝 다른 결을 띄긴 하지만, 충분히 클래식 바이크 라이더에게 사랑 받는 헬멧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이처럼 디자인 언어가 살짝 다른 톤을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바이크 라이더들이 이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연 성능에 있다. 일단 라피드네오는 모든 클래식 카테고리의 헬멧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SNELL 인증을 획득한 헬멧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DOT나 ECE 인증만 획득해도 헬멧이 갖는 기본적인 안전성은 확보되지만, SNELL 인증은 그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거친다. 따라서 클래식 헬멧 중에서는 군계일학의 안전성을 보장한다.
그 외에도 아라이가 자랑하는 프로쉐이드 실드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메리트다. 별도의 선바이저 장치나 스모크 실드 교체 없이 외부에 덧대어진 프로쉐이드를 그저 손으로 올렸다 내리는 가장 직관적인 메커니즘으로 태양빛을 차단할 수 있어 편의성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하다. 다만 셸 사이즈 자체가 상당히 커서 일반적으로 소두핏을 선호하는 클래식 바이크 라이더들에게는 디자인에서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헬멧 무게도 상당히 무겁다. 결정적으로, 프로쉐이드 실드를 비롯해 핀락, 친커튼 등 필수에 가까운 액세서리들을 모두 따로 구입해야 하기에, 풀세트를 제대로 구비하려면 많은 지출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중량 1,542g
인증 SNELL
턱끈 D링
쇼에이 글램스터
아라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쇼에이(Shoei)지만, 이상하게도 클래식 풀페이스 헬멧 라인업은 오랜 시간 부재중이었다. 그랬던 쇼에이도 결국 오랜 침묵을 깨고 지난해 글램스터를 론칭하며 클래식 풀페이스 헬멧 시장에 뛰어들었다.
글램스터의 세일즈 포인트는 단연 디자인이다. 물론 라피드네오도 뛰어난 도장 수준을 자랑하지만, 글램스터의 경우 그에 상응하거나 혹은 근소 우위를 점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퀄리티와 색감을 보여준다. 또한 정통 클래식 헬멧의 디자인을 충실하게 보여주면서도 굉장히 작은 셸 사이즈를 구현해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DOT 인증을 획득해 기본 이상의 안정성을 갖췄다. 또한 이마와 친가드 부분에 에어덕트를 마련해 의외로 훌륭한 통기성을 느낄 수 있다.
사이즈가 작은 만큼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중량이다. 다른 클래식 헬멧과 비교하면 거의 200~300g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경량화 측면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작은 사이즈 덕분에 웬만한 바이크의 탑박스나 트렁크 공간이 좁아 수납이 불가능한 경우가 거의 없고, 가벼운 무게로 휴대성에서도 메리트가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그리고 라피드네오 대비 떨어지는 풍절음 및 방풍 성능은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중량 1,202g
인증 DOT
턱끈 D링
빌트웰 그링고 S
빌트웰(Biltwell)은 다른 헬멧 브랜드와 달리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된 비교적 신생에 속하는 제조사다. 또한 시작부터 빌트웰은 노골적으로 중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나선 브랜드이기도 하다. 다행히 그 전략이 유효했던 걸까. 현재는 클래식 바이크 입문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대표적인 헬멧 브랜드가 됐다.
물론 그 이유는 가격에 기인한다. 기본적으로 유수의 브랜드들이 출시하는 클래식 헬멧들의 경우 최소 40만 원대의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 반면, 빌트웰의 대표적인 그링고 S 같은 헬멧은 그의 절반 가격으로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표를 달았다. 또한 친가드 부분의 면적이 상당히 넓어서 안면 노출도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부분에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다만 저렴하면서도 디자인에 신경을 쓴 만큼 기능적인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헬멧임은 부인할 수 없다. 방풍성능, 풍절음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셸의 만듦새나 내부의 내피 구조도 다소 조악한 포인트가 보인다. 그래서 장거리나 고속 라이딩의 빈도가 높은 라이더들은 이어플러그를 착용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중량 1,510g
인증 ECE
턱끈 D링
벨 불릿
긴 역사를 가진 브랜드인 만큼 벨(Bell) 또한 클래식 헬멧에는 고유의 노하우가 있다. 불릿은 그중에서도 벨을 대표하는 풀페이스 클래식 헬멧 라인업이다. 얼핏 보면 빌트웰 그링고 S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디테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다소 동글동글한 그링고 S와 달리 불릿은 조금 더 헬멧 본연의 묵직한 이미지를 주는 편. 또한 다양한 패턴의 데칼, 셸 소재, 실드까지 디자인에서 선택할 수 있는 베리에이션이 넓다.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는 다른 클래식 헬멧들에 비해 친가드 부분의 면적이 좁다는 것이다. 이는 취향에 따라서 호불호를 타는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얼굴의 노출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입 아래까지 내려오는 넓은 실드 면적 덕분에 풀페이스 헬멧임에도 불구하고 흡연이 가능하며, 시야도 넓어진다는 의외의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석으로 탈부착하는 직관적인 방식의 실드 홀더도 상당히 편리하다.
단점은 아무래도 클래식 헬멧들이 필연적으로 갖게될 수밖에 없는 취약한 풍절음 대책을 꼽을 수 있겠다. 아무래도 라피드네오와 비교하면 확실히 풍절음이 큰 편이며, 정작 그링고 S와 큰 차이가 없으면서도 가격은 거의 2배 이상 비싸다. 따라서 가성비 측면에서는 조금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 또한 핏도 가장 서양인 두상에 가까운 타입이기에 무조건 직접 착용해본 뒤 구매할 것을 추천한다.
중량 1,426g
인증 DOT/ECE
턱끈 D링
HJC V90
자랑스러운 국내 기업인 홍진(HJC) 역시 빠질 수 없다. 그동안 홍진은 브랜드의 위상이나 볼륨에 비해 유독 클래식 헬멧 라인업에 인색한 편이었다. 하지만 결국 레트로라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홍진 역시 최근 다양한 클래식 헬멧 라인업을 공개하며 카탈로그를 채워나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공개만 하고 출시 일정은 미정으로 남아있는 제품도 많은데, 현재 즉시 구입 가능한 헬멧은 V90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 헬멧의 가장 큰 메리트는 바로 현존하는 클래식 헬멧 중 거의 유일한 모듈러 타입, 즉 시스템 헬멧이라는 점이다. 당연히 모듈러 헬멧의 편의성을 그대로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일반적인 클래식 헬멧과 달리 내부에 선바이저 장치가 달려있어 간편하게 태양빛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편의성도 잘 챙겼다.
다만 엄밀히 따지자면 V90은 클래식 헬멧이라기보다는 버블실드와 플랫한 디자인의 친 가드를 적용한 시스템 헬멧에 가깝다. 정수리에 마련된 에어덕트를 비롯해 모듈 장치들로 인해 사실 클래식 헬멧의 디자인큐는 느끼기 힘든 편이다. 또한 중량도 1,580g으로 상당히 무거운 편에 속한다. 다만 모듈러 헬멧임을 감안한다면 결코 무겁다고는 할 수 없는 중량이니, 조금 클래식한 무드의 모듈러 헬멧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중량 1,580g
인증 ECE
턱끈 D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