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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H 2019에서 주목할 만한 시계 10선
2023-02-22T19:28:42+09:00

스위스 문턱에도 못 가본 슬픈 시계 덕후들을 위해.

매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SIHH (Salon International de la Haute Horlogerie)는 3월에 열리는 바젤월드와 더불어 시계 박람회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두 박람회는 ‘급’이 다르다.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 북적북적한 바젤월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SIHH는 초청장이 필요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정장 차림인 데다, 테이블마다 샴페인도 하나씩 놓여 있다.

이는 발표하는 시계들의 시장 위치가 다르기 때문인데, SIHH는 각 브랜드의 첨단 기술이 집약된 최고급 시계를 주로 다루다 보니 대중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가격대의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판매용이라기보단 전시품에 가까운 수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SIHH의 시계들은 미술관에 온 기분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내년부터는 SIHH와 바젤월드가 둘 다  4월에 열린다고 한다. 또한 오데마 피게와 리차드 밀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SIHH에서 떠난다. 떠나기 전 그들이 내놓은 시계들도 볼만했다. 소개하고픈 시계가 많지만, 딱 10개만 골랐다.

오데마 피게 CODE 11.59 컬렉션

올해 SIHH의 가장 빅 뉴스는 아마도 오데마 피게의 새로운 컬렉션일 것이다. 1970년대 초에 발표된 로열 오크라는 인기 라인업 하나 가지고 거의 반세기 동안 우려먹으면서 시계의 ‘성 삼위일체’ 타이틀이 무겁지도 않냐는 비난을 그간 많이도 받았다. AP는 자신들의 축복이자 족쇄였던 로열 오크의 그림자를 영원히 못 벗어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다만 CODE 11.59 컬렉션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데, 어쩌면 매너리즘에 대한 비난을 잠재우고 로열 오크를 더 만들려는 AP의 큰 그림일지도.

  • 가격: $26,800+
  • 사이즈: 41mm
  • 재질: 옐로우 골드 / 화이트 골드

오데마 피게 Royal Oak Chronograph 38mm

명관인 구관을 버리고 새로운 컬렉션에 몰방할 AP가 아니다. 어김없이 이번 SIHH에서도 여러 버전의 로열 오크를 선보였는데,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크로노그래프 38mm다. 기존 크로노그래프 모델(41mm)보다 훨씬 작아져 데일리로 착용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요즘 롤렉스 데이토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니, 대기 명단에서 10년간 목 빠지게 기다리지 말고 AP의 크로노그래프를 노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 가격: $23,800+
  • 사이즈: 38mm
  • 재질: 스틸 / 로즈 골드

바쉐론 콘스탄틴 Traditionelle Twin-Beat

보통 기계식 시계는 며칠 안 차면 멈추기 때문에 매번 시간을 수동으로 다시 맞춰줘야 하는데, 캘린더 시계의 경우 달력을 새로 설정해야 하니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파워리저브가 65일이라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바쉐론의 Traditionelle Twin-Beat은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 평소엔 5Hz의 매우 높은 비트레이트(beat rate)로 뛰다가 푸셔를 누르면 1.2Hz의 대기 모드로 돌입한다. 워치와인더를 쓰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훨씬 시계에 무리가 덜 가는 방식의 혁신적인 퍼페추얼 캘린더.

  • 가격: $199,000
  • 사이즈: 42mm
  • 재질: 플래티넘

Ressence Type 2

진정 혁신을 논한다면 Ressence를 빼놓을 수 없다. 마냥 콘셉트인 줄만 알았거늘, 작년에 내놓은 콘셉트와 동일한 스펙의 양산품을 선보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기계식 시계에 디지털을 접목시킨 E-crown 기술로, 이는 쿼츠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완전한 기계식 무브먼트를 내장된 디지털 모듈이 조절해주는 형태이다. 우리는 기계식 시계를 선호하지만 이미 기계식이 쿼츠보다 덜 정확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멈춘 시계를 다시 찰 때 전자시계나 컴퓨터를 보고 시간을 맞춘다. E-crown은 그러한 외부적인 디지털의 역할을 내부적으로 결합시킨 것이다. 단지 흠이라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가격.

  • 가격: $48,800+
  • 사이즈: 45mm
  • 재질: 티타늄

IWC Pilot’s Watch Automatic Spitfire

가격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흔히 SIHH에서 공개되는 시계들은 일반인들에겐 그림의 떡이기 일쑤다. 하지만 반갑게도 IWC는 실제로 대중들이 구매할 수 있는 시계도 내놓았다. 이번 파일럿 시계 컬렉션은 기존 가격대를 유지하면서 보급형 시계에도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넣었다. 예전에는 이러한 만행 때문에 IWC와의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던 특정 임볼든 에디터의 마음도 사르르 녹여놓은 스핏파이어 컬렉션의 엔트리 모델.

  • 가격: $4,350+
  • 사이즈: 39mm
  • 재질: 스틸 / 브론즈

랑에 운트 죄네 Richard Lange Jumping Seconds

이번 SIHH에서 랑에가 선보인 시계들은 전부 기존 모델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친 것들이었는데, 본판부터가 워낙 출중한 모델들이라 그 어느 것도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25주년 랑에1도 있었고, 연어색 다이얼의 Datograph Perpetual Tourbillon, 날짜 기능이 추가된 Zeitwerk Date도 하나같이 눈 돌아가기에 충분했지만, 결국엔 제일 맘에 드는 크기의 리카드 랑에 점핑 세컨즈(Richard Lange Jumping Seconds)를 골랐다. 기존 모델에서 블랙 다이얼과 화이트 골드 케이스로만 바뀌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의 시계가 되었다.

  • 가격: $75,100+
  • 사이즈: 39.9mm
  • 재질: 화이트 골드

리차드 밀 Bonbon 컬렉션

리차드 밀이 SIHH를 떠나기 전에 제대로 한 방 먹이고 간다. 이토록 대놓고 장난질 쳐놓은 고급 시계가 또 있었던가. 같은 가격대의 다른 브랜드들이 수백 년의 전통을 내세워 딱딱하고 웃음기 쏙 뺀 시계들을 만드는 동안, 리차드 밀의 본본 컬렉션은 21세기에 고급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순적인 행위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파텍 필립의 최고급 뚜르비옹이나 리차드 밀의 마시멜로 시계나 똑같은 수준의 모순이니, 우리는 마시멜로 시계를 보고 불쾌해할 이유도 없고 뚜르비옹을 보면서 고귀한 무언가를 느낄 이유도 없다.

  • 가격: $122,500+
  • 사이즈: 45.32 x 32.30 x 11.93mm (마시멜로)
  • 재질: Carbon TPT & Quartz TPT / Ceramic

파네라이 Submersible Mike Horn Special Edition

우선 IWC 빅 파일럿보다 큰 47mm라 농구선수 미만은 소화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걸 밝히고 시작하자. 일반 버전에서 야광 도료의 색깔만 다른 이 스페셜 에디션은 19점 한정이라 눈 뜨면 파네라이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시계다. 하지만 한정판 시계를 구입하는 19명에게는 탐험가 마이크 혼(Mike Horn)과 함께 북극 탐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흥미로운 것은 파네라이는 이 모델뿐 아니라 다른 몇 리미티드 에디션에도 그에 걸맞은 ‘경험 패키지’를 추가했는데, 앞으로 점점 한정판 시계는 물질적인 것 이상의 무언가를 제공해야만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 가격: $39,900
  • 사이즈: 47mm
  • 재질: 티타늄

예거 르쿨트르 Master Ultra Thin Enamel 컬렉션

슈트가 남자의 갑옷이라면 에나멜 다이얼의 예거 르쿨트르는 살인 무기다. JLC의 스테디셀러인 울트라 씬 컬렉션이 블루 에나멜 다이얼과 기오쉐 마감으로 단장을 했다. 기본 버전보다 훨씬 더 정교해진 디테일 덕에 손목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 거다. 또 칭찬하면 입만 아프니 자세한 정보는 여기, 그리고 여기서 확인하자.

  • 가격: $35,800+
  • 사이즈: 39mm (문, 퍼페추얼) / 40mm (뚜르비옹)
  • 재질: 화이트 골드

그뢰벨 포지 Balancier Contemporain

큰 시계 트렌드는 점차 수그러들고 있다. 물론 방패 포스를 내뿜는 대부분의 쿼츠 패션 시계는 애초에 클 이유가 없었고, 실제로 뒤판을 뜯어보면 손톱만 한 배터리가 들어있는 게 전부다. 하이엔드 기계식 시계는 조금 다른데, 수백 가지의 수공예 부품이 들어가는 시계의 사이즈를 줄이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번 그뢰벨 포지(Greubel Forsey)의 발란시에 컴템포레인의 경우가 그렇다. 직경 39.6mm, 두께 12.21mm의 그뢰벨 포지라니, 저 가격이 이해가 갈 듯만도 하다.

  • 가격: CHF 195,000
  • 사이즈: 39.6mm
  • 재질: 화이트 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