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MTB도, 로드 바이크도 아닌 이 사생아 같은 포지션의 그래블 바이크가 시장에서 이런 흥행 가도를 달릴 줄은. 10년 전 국내에 소량으로 수입되기 시작한 사이클로크로스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자전거’로 폄하 받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실로 놀라운 변화다. 어지간한 임도와 자갈길 주행을 수행할 수 있으면서 로드 바이크만큼 제법 빠르게 달릴 수도 있는 이 그래블 바이크는 무엇보다도 한국 지형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자전거이기도 하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그래블 바이크는 태생적으로 강한 내구성이 필요한 만큼, 여전히 알루미늄 프레임이 주류를 이룬다. 반면 ‘고가 자전거=카본 프레임’이라는 공식이 일반화된 국내 시장에서 카본 로드를 살 수 있는 예산으로 굳이 알루미늄 자전거를 사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블 바이크는 무엇보다도 한국 지형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자전거이기도 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블 바이크의 시장 가격도 점차 현실적인 수준으로 정착하는 중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그래블 바이크에 한 번 입문해보는 건 어떨까? 출퇴근부터 장거리 자전거 일주까지, 그 어느 영역에서도 빠지지 않는 팔색조 같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00만원 언저리, 혹은 그 이하로 살 수 있는 가성비 그래블 바이크 리스트를 모아봤다.
코로나19로 자전거 시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수입사들은 재고 처리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수량을 대폭 줄이거나 라인업에서 중간중간 빼먹고 수입하는 모델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황당한 것은 공급이 줄어들다 보니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어, 요즘은 자전거가 없어서 못파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메리다를 대표하는 그래블 바이크인 사일렉스는 그런 점에서 아쉽다. 가성비가 좋은 사일렉스 300의 2021년 형 모델은 현재로는 수입 계획이 없는 상태인데, 지난해까지는 100만 원 초반에 수입이 됐었고, 중고시장에서는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접할 수 있다. 현세대 그래블 바이크 중에서 프레임이 가장 MTB스러운 지오메트리를 가지고 있으며, 구동계는 스램 아펙스 1 로 싱글 크랭크에 44t 스프라켓의 11단 기어 사양을 갖추고 있다. 다만 디자인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입문기로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뽑아낼 수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10년 전 사이클로크로스가 소개되던 초창기에 같이 소개된 자이언트의 대표적인 그래블 바이크 모델이다. 45c 타이어까지 장착 가능한 넓은 타이어 클리어런스, 튼튼한 내구성, 그리고 자신의 주행 스타일에 맞출 수 있도록 세팅의 폭이 넓고 부품 적용의 개방성 측면에서 뛰어난 강점을 보인다. 게다가 특유의 가성비와 무난한 AS 및 정비성은 자이언트라는 대중 브랜드가 주는 최고의 메리트다.
물론 상위 모델인 리볼트 0과 1이 있지만, 입문기로는 리볼트 2로도 충분하다. 시마노 소라 등급 구동계를 사용하며, 과거와 달리 이제는 리볼트 2에도 유압식 디스크 브레이크가 들어간다. 다만 이 브레이크는 자이언트 컨덕트라는 일종의 세미 유압 브레이크로,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성능 유지•관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참고로 신차가 기준은 109만원이지만, 숍마다 재량껏 진행하는 프로모션을 통해 100만 원 이하로 구매할 수 있다.
메리다나 자이언트 같은 메이저 브랜드와 알톤 같은 저가 브랜드가 표방하는 가성비의 온도 차는 조금 다르다. 첼로의 리로드 A3는 그 사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아낸 모델이다. 신차 기준으로도 80만원 초반이라는 훌륭한 가성비를 자랑하는데,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탑튜브의 실루엣과 블랙 앤 화이트의 데칼로 이뤄지는 디자인까지 호평을 받고 있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구동계는 시마노 소라 18단에 RS305 기계식 디스크 브레이크가 적용된다. 물론 카본 프레임을 사용하는 상위 등급인 리로드 G7이나 G8과 비교하면 A3의 프레임이 다소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블 바이크는 알루미늄 소재로도 충분하다. 물론 11.4kg의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완성차 무게는 조금 아쉽다. 그래도 시트포스트는 카본 소재가 적용되었다는 것을 위안거리로 삼자.
가장 저렴한 예산으로 그래블 바이크에 입문하고 싶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알톤 벨록스 CC가 답이다. 엄밀히 따지면 벨록스 CC는 사이클로크로스와 그래블 바이크의 중간쯤에 걸친 미묘한 성향을 보여주기는 한다. 하지만 역시 가격이 깡패라고 했던가. 3년 전 신차 출시 가격도 60만 원 선이었으며, 현재 중고가는 무려 10~20만 원대 매물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다.
성능은 정말 말 그대로 가장 기본적인 스펙만을 갖춘 엔트리 모델이다. 구동계도 클라리스 16단 기어 사양. 하지만 입문기로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기계식 디스크 브레이크도 수긍할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타이어는 기본 35c가 들어가지만, 그보다 더 두꺼운 사이즈도 무리 없이 장착할 수 있다. 승차감도 제법 괜찮은 편이다.
대안을 찾는다면
물론 다른 선택지도 있다. 사실 그래블 바이크는 사이클로크로스나 투어링 바이크, 엔듀런스 로드까지 꽤 교집합이 많은 장르이기에, 자신이 다른 스타일을 원한다면 눈을 조금만 돌려 얼마든지 대안이 될 만한 바이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세세한 부분을 따지고 들어가면 그래블 바이크와 사이클로크로스는 분명 다른 영역의 자전거다. 다양한 주행 환경을 상정한 그래블 바이크에 비해 사이클로크로스는 보다 더 반복적인 레이스와 속도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사실 교집합이 꽤 큰 만큼 굳이 하나에 얽매이지는 않아도 된다. 그런 면에서는 인피자 코넷CX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11-30t의 스프라켓에 슈발베 마라톤 32c 타이어 같은 사양은 확실히 험로 주행보다 빠른 레이스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험하지 않은 임도 주행은 이 정도로도 충분하지만, 조금 더 터프한 라이딩을 원한다면 35c 이상의 블록 타이어로 교체하면 좋다. 클리어런스도 꽤 넓어서 38c까지 장착할 수 있다. 구동계는 시마노 풀 소라 등급의 18단 기어이며, 기계식 디스크 브레이크를 사용한다. 케이블도 모두 인터널 방식으로 매립된다. 현재는 중고로만 찾아볼 수 있다.
자이언트의 터프로드 시리즈는 상당히 미묘한 모델이다. 굳이 리볼트 시리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티바이크도, MTB도 아닌 이런 중복되는 자전거를 만들어야 했을까? 같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굳이 산악 싱글트랙이나 다운힐을 타지 않으면서, MTB가 아닌 바이크로 일상 주행이나 가벼운 오프로드를 더 편하게 탈 수 있는 것을 포인트로 잡는다면 터프로드도 괜찮은 선택이다.
터프로드의 강점은 장거리 주행과 투어링에 있다. 그러다 보니 핸들바도 허리를 조금 더 세울 수 있는 플랫바를 채택하고 있다. 앞 변속기는 아세라, 뒷 변속기는 알리비오 사양이지만, 유압식 디스크 브레이크를 채택한 점은 편리한 투어링을 위한 이 자전거의 목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이다. 튜브 하단에 설치된 디플렉터는 오프로드 주행에서 튀는 돌과 자갈로부터 프레임을 잘 보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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