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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의 역사, 그리고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
인류는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최초의 술을 마신 사람에 대한 힌트는 불교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인도에 ‘수라’라는 사람이 히말라야에 물건을 구하러 가는 길에 한 나무에 물이 고여있는 것을 보았다. 주변에 새들이 벼 이삭을 물고 날아왔는데, 몇 개는 그 나무의 물이 고인 곳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물을 마신 새들은 나무 옆에서 잠이 든 것이다. 또 원숭이들도 그 물을 마시고 잠들었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그것을 보고 ‘짐승이 마시는 것을 보니, 독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한 수라는 그 물을 마시게 되고, 그러자 알딸딸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이후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긴 그는 잠자는 새를 잡아 구워 먹었고, 그 나무에 고인 물을 다 마시며 며칠을 그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술은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한 발효식품이었다. 최초의 술은 과일이나 꿀 등 당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자연에서 공기 중의 효모와 미생물을 만나 자연스레 발효되어 생겨났다. 술이 되기 위해서는 당과 효모가 필요한데, 과일에 풍부한 것이 당이고 또한 효모는 야생의 과일 껍질에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술은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한 발효식품이었다.
그 이후 인류가 곡식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곡식으로 만든 발효주도 등장했을 것이다. 곡식은 과일보다 발효가 어려운데, 곡식의 전분을 당으로 변화시키는 당화 과정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증류는 중세 시대 이후로 넘어가야 하는 먼 미래의 이야기다.
수라가 마신 술도 아마 과일과 곡식이 함께 발효된 술이었을 것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처음 술을 마셨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술은 인간이 발명한 것이 아닌, 발견한 것이라는 점이다. ‘신의 물방울’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마디로 술은 인간에게 자연이 준 선물이다.
술이 되려면
술이 되기 위해서는, ‘당’과 ‘효모(Yeast)’라고 하는 미생물이 필요하다. 당을 먹이로 삼아, 효모가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생성하게 된다. 이 과정을 ‘알코올 발효’라고 하며, 당을 이용해 바로 알코올을 만들었기 때문에 ‘단발효(Single-Step-Fermentation)’라고 부른다. 그래서 역사상 최초의 술은 포도가 발효된 와인, 혹은 꿀이 발효된 ‘미드(Mead)’처럼 당이 풍부한 재료가 자연적으로 발효된 술이었을 것이다.
곡식을 이용한 술은 중간에 과정이 한 단계가 더 추가된다. 곡식이 가진 전분을 당으로 전환하는 ‘당화(Saccharification)’라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전분을 분해하기 위해서는 ‘효소(Enzyme)’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효소가 있지만, 이 전분만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전분분해효소(Amylase)’, 아마 다들 이름은 한 번씩 들어봤을 ‘아밀라아제’이다. 우리의 침 속에 있는 그 아밀라아제. 밥을 꼭꼭 씹으면 달아지는데, 전분이 분해되며 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렇게 곡식의 전분을 전분분해효소가 잘라내어 당화 시킨 후에, 그 당을 효모가 먹고 알코올을 생성하는 것을 ‘복발효(Two-Step-Fermentation)’라고 한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
술을 마시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사람은 보통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 이상이 되면 취기를 느낀다. 알딸딸한 느낌과 함께 일반적으로 취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들이 나타난다. 말이 많아지고, 혀를 꼬고, 크게 웃거나 울기도 한다. 주위의 사람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도 어느정도 취기가 올라왔을 때 하는 행동이다.
우리나라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 혈중 알코올 농도 0.03% 인것을 감안하면, 혈중 알코올 농도 0.08%면 누구나 취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화학반응이다. 그런데, 0.08% 미만의 취기는 어떨까? 완전히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기가 오르기까지 우리 몸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화학반응 외에 다른 요소가 우리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사람은 보통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8% 이상이 되면 취기를 느낀다.
여기에 관해서 아주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논문이 소개되어 있는 한 책에 소개된 일화이다.[1] 1973년, 미국의 심리학자 Marlatt과 그의 동료들은 왜 사람들은 술을 한 잔만 마시고 멈추지 못할까? 라는 질문을 주제로 술과 행동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2] 술을 마시면 자제력을 잃는 것은 술의 어떤 화학 성분 때문인가? 아니면 심리적인 요인인가? 아니면, 습득된 사회적 행동인가?
실험의 설계 방법이 아주 재미있는데, 연구팀은 신약의 임상실험 연구방식을 도입했다. 그들은 약(drug)과 위약(placebo)을 실험군과 대조군에게 각각 투여하는 방식으로 알코올과 논알코올 음료를 나눠줬다. 다만 참가자들에게 본인이 마시는 것이 술인지 논알코올인지 모르게 하는 것이 실험의 난관으로 작용했는데, 연구진은 아주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먼저 연구진은 ‘새로 오픈하는 업장의 음료 테이스팅’이라는 명목으로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참가자들은 연구진에 의해 네개의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 그룹1- 술이 들어간 음료 테이스팅을 고지하고, 실제로 술을 받은 팀 (Expect 술 / Get 술)
- 그룹2- 논알코올 음료 테이스팅을 고지하고, 실제로 논알코올을 받은 팀 (Expect 논알코올 / Get 논알코올)
- 그룹3- 논알코올 음료 테이스팅을 고지하고, 실제로 술이 들어간 음료를 받은 팀 (Expect 논알코올 / Get 술)
-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그룹4 – 술이 들어간 음료 테이스팅을 고지하고, 실제로 술을 넣지 않은 팀 (Expect 술 / Get 논알코올)
결과는 아주 흥미로웠다. 참가자들은 본인이 술을 마신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취했을 때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룹 1과, 그룹 4 외에는 취했을 때 일어나는 행동의 변화를 관찰할 수 없었다. 특히 실제로 술이 들어갔지만, 술이 들어가있지 않다고 고지를 받은 그룹 3이, 실제로 술이 들어가지 있지 않지만, 술이 들어가 있다고 안내 받은 그룹 4에 비해 더 높은 자제력을 보여줬다. 술이 들어있다고 기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술에 취하게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술이 들어있다고 기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술에 취하게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 실험을 더욱 확대해 그는 아예 연구실을 개조하기에 이른다. 술 자리의 분위기와 환경이 음주 시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그는 연구실의 2층을 Bar로 개조했다. 이름하여 BAR Lab(Behavioral Alcohol Research Laboratory, 알코올행동학연구소)라고 명명한 실험실에서 그는 어둑한 조명을 설치하고, 스테레오 시스템으로 은은한 음악을 틀었다. 좁고 긴 바 테이블을 설치하고, 그 뒤에는 글라스와 술병을 올려두었다. 물론 카메라와 마이크도 몰래 설치했다.
적절한 주위 환경이 제공되었을 때, 그룹 4(Expect 술 / Get 논알코올)의 피시험자들은 말이 꼬이거나 얼굴이 붉어지고,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등 술에 취한 행동을 보였다. 알코올이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상태 또한 우리 몸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친구들끼리 포차에서 만나면 그 술자리의 분위기가 있다. 왁자지껄 떠드는 사람들,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 그 공간의 열기. 또, 어떤 날은 은은한 조명 아래 재즈가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바에서 마시는 위스키 한잔에 감성에 촉촉이 젖기도 한다. 술을 싫어하지만 술자리는 좋아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도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말인 것이다.
[1] Adam Rogers. (2004) Proof: The science of boooze.
[2] G.A Marlatt et al. J Abnorm Psychol. (1973) Loss of control drinking in alcoholics: an experimental ana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