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브랜드가 있다. 관심이 전혀 없는 분야일지라도, 무언가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아 사람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그런 브랜드 말이다. 거의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자동차와 달리, 여전히 특정 계층만 소비하는 이륜차에도 그런 브랜드는 있다. 바로 두카티(Ducati)다.
모터사이클의 열렬한 팬도, 혹은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이름은 들어봤을 그 브랜드. 붉게 타오르는 강렬한 레드의 시그니처 컬러와 하이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슈퍼바이크의 대명사, 두카티의 현재와 과거를 한번 천천히 뜯어보고자 한다.
두카티의 역사는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볼로냐에 있는 한 아버지와 그의 세 아들이 함께 두카티를 설립했다. 오늘날 프리미엄 슈퍼바이크 브랜드로 명성이 자자한 두카티지만, 그 시작은 사실 라디오를 비롯한 통신 기기 관련 설비 제조업체였다. 한때는 1천 명이 넘는 직원 규모를 자랑하던 회사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두카티는 변화의 기로에 선다. 전쟁 중이던 1944년,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창고가 파괴된 것이다. 두카티는 다시 전쟁 직후의 유럽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전후의 두카티는 1964년, 알도 파리넬리가 발명한 50cc 엔진 덕에 처음으로 이륜차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전후의 두카티는 1964년, 알도 파리넬리가 발명한 50cc 엔진 덕에 처음으로 이륜차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이 작은 엔진은 이탈리아어로 작은 강아지를 뜻하는 ‘쿠치올로’라고 불렸다. 자전거에 쿠치올로를 올린 이 바이크는 효율적인 교통수단으로 이탈리아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렇게 두카티의 모터사이클 역사가 시작됐다.
1950년까지 두카티는 쿠치올로에서 영감을 받은 모터사이클을 디자인했다. 이는 공식적인 두카티 최초의 모터사이클로, 최대 시속 40마일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공랭식 48cc 엔진을 탑재하고, 44.45kg의 무게로 세상에 나왔다. 그 후 두카티는 쿠치올로라는 이름을 버리고 55M로 리브랜딩을 했다.
고품질, 고성능 모터사이클에 대한 두카티의 명성은 1954년부터 1989년까지 수석 디자이너이자 기술 엔지니어를 역임한 파비오 타글리오니의 공이 크다. 그가 바로 데스모드로믹 밸브 디자인을 채택하고, 지금까지도 두카티의 시그니처로 남아있는 된 L-트윈 실린더 엔진을 개발한 사람이다.
L-트윈 엔진은 각각 수직과 수평으로 배치된 2개의 실린더가 L자 모양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수십 년간 두카티를 상징하는 레이아웃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의 명성을 얻기까지
아마 두카티의 유명한 모델을 하나하나 설명하다 보면 거의 한 권 분량의 책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두카티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모터사이클이 몇 개 있다. 여기에서는 브랜드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 대중문화에서도 크게 활약한 모델 위주로 선정했다.
1971년에 처음 공개된 750GT는 타글리오니가 새롭게 디자인한 L-트윈 엔진을 올린 최초의 양산 모델이었다.
1970년 이전에도 두카티는 타글리오니의 엔진으로 레이싱 업계에서 큰 이목을 끌었다. 슈퍼바이크가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었던 당시에는 이륜차 라이더들도 점점 더 빠른 스피드를 원하고 있었다. 이 니즈에 두카티는 750GT로 화답했다. 1971년에 처음 공개된 이 바이크는 타글리오니가 새롭게 디자인한 L-트윈 엔진을 올린 최초의 양산 모델이었다. 두카티는 1974년까지 약 4천 대를 생산했고, 1978년에는 40대의 한정판도 출시했다. 두카티 750GT는 오늘날 클래식/올드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수집가들의 위시리스트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1979년에 데뷔해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생산됐던 두카티 판타(Pantah)가 등장했다. 판타는 벨트 구동 캠축 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두카티 모터사이클이었다. 판타 이전에 캠축은 베벨 기어를 활용해왔는데, 벨트를 활용한 판타가 등장하면서 현대 두카티 모터사이클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2003-2006년형 두카티 999는 대중이 ‘두카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바로 연상되는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모델이다. 세 개의 슈퍼바이크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전적도 있는 강렬한 레드 컬러의 슈퍼바이크로, 916으로 시작해 996, 998로 이어진 슈퍼바이크의 마지막 계보를 장식하는 모터사이클이었다.
2003년 데뷔 당시, 이전의 모습에 익숙했던 두카티 팬들은 999의 디자인을 반기지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는 999가 못생겼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지만, 결국 트랙 위에서 999가 이뤄낸 성과는 무시할 수 없었다. 2005년에는 999의 고성능 버전이 두카티 999S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고, 비평가들은 이 모델을 역사상 최고의 V형 2기통 엔진으로 평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999가 못생겼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했지만, 결국 트랙 위에서 999가 이뤄낸 성과는 무시할 수 없었다.
두카티 역사를 구성하는 마지막 퍼즐의 한 조각은 두카티 스크램블러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바이크 수입사인 조셉 베를리너가 미국으로 들여올 단기통 바이크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두카티 스크램블러는 1974년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1960년대 전반에 걸쳐 여러 종류의 엔진 및 변속기로 출시됐다.
그리고 2015년, 스크램블러라는 이름이 두카티의 포트폴리오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두카티는 이 두 번째 스크램블러를 통해 좀 더 실용적인 모델을 선보였고, 바운더리도 넓힐 수 있었다. 새로운 스크램블러는 두카티를 타고 싶지만 슈퍼바이크까지는 필요하지 않고, 대신 가끔 임도나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바이크를 필요로 하는 고객에게 다가가고자 했다. 현재 두카티 스크램블러는 800cc와 1,200cc 두 가지 클래스에 걸쳐 카페 레이서부터 데저트 슬레드까지 총 8가지 스타일로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두카티의 미래는 밝다
지난 2012년부터 두카티는 폭스바겐 그룹 산하 브랜드로 아우디, 람보르기니 같은 유수의 브랜드와 형제 관계를 형성하며 여전히 강세를 떨치고 있다. 여전히 다양한 모터사이클을 선보이는 두카티는 몬스터와 멀티스트라다, 파니갈레 같은 수많은 상징적인 모델을 꾸준히 업데이트해오고 있다.
1993년 두카티는 최초의 몬스터를 통해 슈퍼바이크의 스릴과 민첩함을 지닌 경량 스포츠 네이키드로 선보였다. 현재 2021년형으로 거듭난 신형 몬스터는 9,250rpm에서 111마력, 6,500rpm에서 68lb-ft의 토크를 내는 937cc 데스모드로믹 테스타스트레타 L-트윈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새 몬스터에서는 더 이상 트렐리스 프레임을 찾아볼 수 없지만, 디자인은 1993년의 클래식 몬스터에서 영감을 얻어 오히려 그 원류에 더 충실한 모양새를 띈다. 물론 적으로 훨씬 발전된 풀 LED 헤드램프 같은 장비가 탑재됐다는 가장 큰 차이점이 있지만 말이다.
2021년형 두카티 멀티스트라다 V4는 스포츠 바이크와 퍼포먼스와 엔듀로의 어드벤처 아이덴티티, 그리고 GT의 끈덕진 성향을 하나에 모두 담아낸 올라운더 바이크다. 모델은 4기통 그란 투리스모 V4 엔진을 탑재했으며, 10,500rpm에서 170마력의 출력과 8,750rpm에서 92lb-ft의 토크를 낸다. 여기에 라이더의 안전을 위한 보조 레이더 시스템, 안락함을 위한 조절식 시트와 전자식 서스펜션을 특징으로 한다.
붉은색을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
페라리(Ferrari)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탈리안 스피드 머신이지만, 그 레드 컬러는 페라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두카티는 모터스포츠의 역사에서 17개의 제조업체 월드 챔피언십과 14개의 라디어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컵을 따냈다. 동시에 오늘날 두카티는 많은 이륜차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각기 다른 용도와 라이프스타일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라인업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수많은 모델이 각자 추구하는 지향점은 결국 한 곳에서 만난다. 그들이 추구하는 ‘Be Fast’의 가치는 아마 두카티라는 브랜드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될 것이다.
Edited by 조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