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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2026-09-07T10:42:40+09:00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대등왜>에서 발견한 등산의 이유.

나영석 PD가 간만에 출연진을 고생시키는 프로그램으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예능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이하 <대등왜>)는 등산과는 거리가 먼 4명이 내로라하는 국내 명산을 오르는 여정을 그린다. 목적은 분명하다. 프로그램명에 대한 답을 찾아나간다. 그래서, 대체 등산은 왜 하는 걸까?

공개 시점도 절묘하다. 최근 들어 산을 찾는 2030이 눈에 띄게 많아졌고, 곧 있으면 등산하기 가장 좋은 단풍의 계절이 다가온다. ‘등산 싫어’ 인간에게는 무의미하지만. 자연 경관에 별 흥미가 없고, SNS에 올릴 인증샷에는 더더욱 관심 없는 누군가가 등산의 이유를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발끝으로 느끼는 생존의 감각

등산은 실전이다

등산을 주제로 한 콘텐츠에는 단골 수식어가 있다. 험난한, 극한의, 처절한. 아무것도 모른 채 모인 <대등왜> 멤버에게 주어진 퀘스트도 이 단어의 나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감온도 영하 27.5도, 왕복 열 시간. 초심자의 몸뚱이로 한겨울 설악산을 오른 네 명은 수없이 힘듦을 토로하며 다리를 움직였다. 예능이니만큼 극적으로 풀어낸 부분도 있겠지만, 그저 방송이라고 웃어넘길 만한 일은 아니다.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넷플릭스

등산은 힘들다. 힘든 수준을 넘어 위험하다. 소방청 집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산악사고 구조 건수는 1만 134건. 그중 실족이 2,724건으로 가장 많았다. 네 건 중 한 건은 발을 헛디뎌 벌어진 일이라는 뜻이다. 그 위협은 산행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조차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천혜의 풍경을 앞에 두고도 모두가 발끝만을 바라보며 걸음을 이어가는 이유다. 무사히, 몸 성히 돌아가고 싶으니까.

매 걸음 어디에 발을 놓을지, 어디를 잡을지 결정하는 일은 적잖은 집중력을 요한다. 산을 오르다 보면 시간이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지나가는 이유다. 저 낙엽 뭉치를 밟으면 미끄러질 수 있겠다, 돌에 패인 부분에 발을 걸고 올라가야겠다. 생존 욕구만큼 인간을 완벽한 몰입의 상태로 만드는 것도 없다. 요가나 명상이 훈련을 통해 다다르고자 하는 그 지점을, 산에서는 누구라도 체득하게 된다.

당장에 집중하니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덕분에 복잡했던 머릿속은 오랜만에 고요해진다. 잡념을 버리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럴 겨를이 없다. 물론 그 순간 동안 잊는다고 해서 고민거리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자고 일어난 후처럼 조금 가벼워질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가끔은 그 가벼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넷플릭스

발에 맞닿는 감각도 새롭다. 돌산인지 흙산인지, 눈 덮인 설산인지 단풍 진 가을 산인지. 길이 조성돼 있는지, 어제 비가 내렸는지. 등산이라는 행위 안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담긴다. 그 하나하나에 산은 천차만별로 바뀌고, 그 땅을 밟는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감각도 달라진다. 여느 때보다 발끝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대지 그 자체. 도시를 거닐 때는 생각지도 못한 경험이다.

포기할 수 없다, 진짜로

선택지가 없는 게 꼭 나쁜 걸까?

“에스컬레이터라도 있으면 전 바로 내려갔어요. 근데 내려갈 수 있는 거도 아니고…”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넷플릭스

설악산을 한참 오르던 카더가든은 허벅지에 극렬한 통증을 느낀다. 몇 번을 주저앉는다. 못 하겠다며 진심 어린 투정도 부린다. 그러던 그가 다시금 몸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미션을 해내고야 말겠다’라는 식의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다는 말이 아니다.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포기해 봤자 또 내려가야 하는데, 그냥 하자’에 가깝달까.

먹고 살기 위한 노동처럼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는 힘들 때 포기할 수 있다. 드라마가 재미없으면 끄면 그만이고, 공부가 지루하면 책을 덮을 수 있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돈 내고 끊은 헬스장은 안 가면 땡, 달리다 지치면 걷거나 멈추면 된다. 그렇게 하다 만 것들이 수두룩하게 쌓인다. 하지만 등산은 구조 헬기를 부르지 않는 이상 포기 자체가 불가능하다. 카더가든의 말마따나 산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으니까.

이게 왜 등산의 이유가 되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할 수 있어야 좋은 거 아니냐고. 하지만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이 주는 피로감을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당장 점심때 뭘 먹어야 할지 고르는 것도 골이 아픈 마당에, 하루에도 수십 번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고역이다. 산에는 그게 없다. Yes or Yes다. 아무리 자기 주도적인 사람이더라도 때로는 누가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은 법이다.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넷플릭스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점은 달리 보면 위험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로 산악사고 인명피해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아침 일찍 출발한 사람이 지치기 시작할 때쯤이다.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매몰돼 극한까지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이대로라면 큰일 나겠다 싶으면 그만둘 줄도 알아야 한다. 웬만해선 등산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웬만함을 넘어서면 멈추자.

등산은 맛있다

이렇게 배고파 본 적이 없어요

누군가는 등산에 앞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음식이다. 초코바나 바나나처럼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행동식은 기본이요, 김밥에 컵라면까지 알차게 챙긴다. <대등왜>에서는 코펠에 불까지 싸 들고 와 삼겹살 파티를 벌인다. 명분이야 있다. 몸에 저장된 연료가 떨어지면 다리가 갑자기 풀리고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저혈당 상태, 봉크(Bonk)가 올 수 있기 때문.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넷플릭스

사실 컵라면을 위해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챙기고, 삼겹살 파티 준비로 온갖 조리도구를 챙기는 게 효율적인 일은 아니다. 부피도 클뿐더러 무게도 더해져 산행을 더욱 고단하게 만든다. 그저 소모되는 칼로리를 채우는 게 목적이라면 고칼로리 에너지바를 여러 개 챙기는 게 훨씬 편리한 선택일 것이다. 실제로 봉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몰아 먹는 게 아니라 배고프지 않아도 조금씩 꾸준히 먹어야 한다.

산을 오르는 데 도가 튼 등산객들이 이를 모르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먹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따로 있겠다. 답은 단순하다. 맛있으니까. 다 식고 꾸깃해진 김밥도 산에서는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지금 시대에서는 배가 고파질 일이 그렇게 많지가 않다. 허기가 심각해지기 전에 뭘 집어 먹는 게 보통이다. 그나마 체중 감량을 위해 식단을 할 때만큼은 극단적인 배고픔을 느꼈었는데, 그마저도 다이어트약이 등장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배고픔이 불필요한 감각으로 여겨지는 거다. 배곯을 일 없는 현대인은 적당히 출출한 상태나 되레 더부룩한 느낌을 이어간다.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넷플릭스

산에서는 잊었던 그 감각이 돌아온다. 행동식을 계속 챙겨 먹었더라도 정상에 설쯤이면 좀처럼 겪지 못하는 종류의 허기가 밀려온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쯤 되면 입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게 다 맛있다. 고를 것도 없다. 배달 앱 뒤적이다 반쯤 물려버리는 도시와 달리, 산에서는 배낭에 챙겨 온 옆구리 터진 김밥 하나가 유일한 선택지다. 그러니 어느 산이든 하산 맛집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 사장님 솜씨도 솜씨지만, 절반 정도는 배고픔이 만든 맛이다.

배려가 의무가 되는 곳

마음껏 도와주자

여럿이 하는 운동은 대개 둘 중 하나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도생하거나, 함께지만 경쟁하거나. 헬스는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축구나 농구는 팀으로 움직이지만 이겨야 할 상대가 있고, 안 되겠다 싶은 사람은 벤치에 앉히면 그만이다. 탁구나 배드민턴은 실력이 비슷하지 않으면 아예 경기 자체를 해주지 않는다.

등산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일단 이길 상대가 없으니 앞서갈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잘하는 사람은 앞이 아니라 뒤에 서야 한다. 힘들어하는 이를 선두에 세우고, 경험 많은 사람이 끝에서 상황을 살펴야 한다. 자연스럽게 속도는 가장 느린 사람에게 맞춰진다. 훈훈한 배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겨선 안 되는 행동 규칙에 가깝다. 뒤처진 한 명이 혼자 남는 순간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넷플릭스

무거운 짐을 들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사람을 봤을 때, 누가 봐도 길을 헤매고 있는 외국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과 오지랖 부리지 말자는 마음이 부딪혔던 적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도시 사람들은 매정해서 서로를 모른 체 지나가는 게 아니다. 그래도 되는지를 모르겠어서 그만두는 거다. 알고 보면 배려할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쪽에 가깝다.

산에서는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처지면 기다려주고, 힘들어하면 앞에 세우면 된다. 정해진 룰이니 배려받는 사람으로서도 부담이 덜하다. 그렇게 의무감으로라도 각자의 걸음을 몇 시간씩 맞추다 보면 어떻게 될까? 딱히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더라도 어떠한 유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대등왜> 멤버 네 명 역시 마찬가지다. 평소라면 한자리에 모일 기회도 없었을 사람들이 설악산 한 번으로 끈끈함이 생겼다.

대체 등산을 왜 하는 건데
©넷플릭스

<대등왜> 출연진 네 명의 등산모임 이름은 하산악회다. 말 그대로 하산하고 싶은 사람들. 우스꽝스러운 작명 같지만, 어쩌면 등산의 이유를 가장 정확히 담은 이름일지 모른다. 발끝의 감각도, 포기할 수 없는 상황도, 배고픔도 배려도 정상이 아니라 오르내리는 동안에 있다. 지금껏 산을 멀리해온 건 꼭대기를 밟기 위해 오르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 아닐까? 어차피 내려갈 거 왜 오르냐는 질문은 근본적으로 틀렸다. 산은 내려가기 위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