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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카세(おまかせ)는 일본을 넘어 이제 국내 요식업계에서도 하나의 형태로 자리매김했다.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먹을 것인지에 대한 사항들을 셰프에게 일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오마카세. 그 재료의 경계는 한우, 디저트, 커피, 티, 장어, 흙돼지 등으로 더욱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셰프와 고객이 음식을 매개로 직접 소통하며 제한된 인원만이 특정 장소와 시간을 공유하는 이러한 미식 경험은 ‘고급’이라는 단어와 맞물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순대’ 그리고 ‘오마카세’는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 단어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대상들의 무게감이 다른 탓일 거다. 국밥집에서 주로 소비되는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인 순대와 다소 폐쇄적인 방식을 빌려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는 오마카세, 쉬이 메울 수 없을 것 같은 그 틈에 ‘리북방’이 있다. 세계 최초 ‘순대 오마카세’라는 타이틀을 달고. 매력적인 간극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시선과 발걸음을 향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처음’이 되기까지
최지형 셰프가 이끄는 ‘리북방’의 시작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함경남도 출신 외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김치, 순대, 명태식해 등 어린 시절부터 이북 음식을 몸으로 체득한 최 셰프는 미국에서 한 요리 공부를 바탕으로 ‘리북방’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서교고메’를 열었다. 하지만 사업 성공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쉽지 않았고 여러 고민을 하던 차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매니멀트라이브 김대영 대표와 머리를 모았다. 김 대표는 어르신들이 도마 위에서 툭툭 썰어 내어주는 순대, 그 모습을 떠올렸다.
“최 셰프가 순대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봤어요. 일단 만들기도 어려울뿐더러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고요. 재료를 씻고, 다듬고, 1차, 2차 작업까지 하고 나면 3일 정도가 걸렸어요.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완성되는 음식이구나 생각했죠. 부드럽게 입 안에서 녹는 순대, 그리고 이렇게 고생스럽게 만들어진 이 음식이 국밥에만 들어가기에는 아쉬웠어요. 자연스레 순대를 어떻게 하이엔드로 풀 수 있을까 고민을 했던 거 같아요.”
식자재를 공수하는 과정부터 손질, 만드는 공정 그 하나하나를 허투루 하지 않고 재료를 직접 가공하며 ‘크래프트맨십’을 추구하는 것. 그것은 이미 김 대표가 전개하는 브랜드 텍사스 바비큐 전문점 매니멀스모크하우스, 디트로이트 피자를 선보이는 모터시티바이매니멀 등에서 앞서 내세웠던 가치였다. 그리고 이 장인 정신이 깃든 태도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음식인 순대와도 자연스레 닿았다.
그는 사업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제일 힘주어 강조한다. 처음이 된다는 것은 그 영역에서의 기준점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음식이 가진 역사, 배경 등도 그가 사업을 펼치기에 앞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으로 꼽는다. 이북 다이닝은 모든 화살이 과녁 정중앙으로 모이듯 맞아떨어졌고, 필연처럼 그들은 마포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순대 오마카세라는 모험을 시작했다.
“마포가 워낙 막강한 스시 오마카세집들이 포진해 있는 동네이기도 해 이건 모험이었어요. 처음 4~5개월은 정말 힘들었거든요. 순대가 왜 이렇게 비싸냐는 욕까지 먹을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가짓수와 퀄리티로 따지면 가성비가 좋은 편이거든요. 그냥 버텼어요. 서교고메부터 아등바등 버티면서 온 브랜드라 지금의 모습에 더 자부심이 생기는 거 같아요. 묵묵하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많은 분이 관심을 두시고 미쉐린 가이드에도 선정이 됐죠. 무엇보다 순대 오마카세라는 것이 유일무이하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저희는 SNS에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는 그런 공간이 되길 원하지 않아요. 조금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고, 그게 음식으로 시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리북방’이 선보인 순대 오마카세는 그야말로 세계 최초다.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고 시도하지 않았던 이러한 행보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도 반응이 일었다. “요즘에는 외국에서 손님들이 와요.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순대에 들어가는 내용물을 봤을 때 혐오 식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예상외로 프랑스, 미국인들도 많이 방문하더라고요. 이 브랜드를 해외로 가지고 나가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지만 다소 막연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런 데이터를 통해서 마켓을 가늠할 수 있게 됐어요. 순대를 메인으로, 다이닝 느낌을 부각했던 점이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포인트였던 거 같아요. ”
이북 다이닝, 그리고 우리가 몰랐던 순대의 맛
오마카세의 핵심은 코스 간 맛의 균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인 재료를 사용한 음식들을 지루하지 않은 방식으로 배치하고 중간중간 입맛을 돋우는 구성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북 음식을 선보이는 ‘리북방’은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평소 흔히 맛볼 수 없는 이북 음식을 만나는 일은 한 입이 새롭고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
‘리북방’은 순대를 먹었을 때 가장 맛있다고 느낄 최상의 온도를 찾아 제공하고 아바이, 피순대는 물론 양순대, 오리순대, 백순대 등 5가지 종류를 낸다. 아울러 이와 곁들일 네 가지 장을 준비해 미식 경험의 지평을 넓혀주는 곳. 장은 천일염보다 염도가 낮고 감칠맛이 뛰어난 말던 소금, 강원도 전통 장인 까막장, 된장과 서리태콩을 섞어 만든 막장, 최상급 새우젓인 육젓 등이 제공되며 각각 순서에 따라 셰프의 설명을 참고해 즐기면 좋다.
야채 피순대는 가장 친숙한 맛을 내어 순대 오마카세 입문용으로 제격이다. 열 다섯 가지가 넘는 채소를 넣어 영양적인 면에서도 훌륭한 편. 소금과 육젓과 곁들이면 짭짤한 감칠맛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선지를 넣지 않은 백순대는 채소와 당면이 들어가 마치 만두와 비슷한 식감을 선사한다. 익히 먹어 봤을 아바이 순대는 가장 많은 품이 들어간다. 서른한 가지 재료를 따로 볶아 별도 조미해 밑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고. 선지 함량이 90%나 되어 입안에서 부드럽고 촉촉하게 흐드러지며 춘장 맛이 나는 까막장에 찍어 먹으면 훌륭한 궁합을 자랑한다.
오리 순대는 타임, 파슬리 등의 향신료가 다소 이국적인 풍미를 자아내고, 겉을 바삭하게 토칭한 것도 색다른 식감을 선사한다.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마지막 양순대는 양고기로 속을 채우고 돼지고기, 각종 채소, 당면, 말린 바질, 타임, 오레가노, 로즈메리 등을 사용해 쯔란에 찍어 음미하면 더 다채롭고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코스를 구성하는 곁들임 음식도 다이닝을 더욱 완벽하게 꾸려준다. 전식으로는 함경도 원산 지역에서 즐겨 먹던 잡채를 재해석한, 원산 잡채가 새콤달콤한 오미자 초와 곁들여져 입맛을 돋운다. 그다음으로 맛본 레드 와인과 춘장을 사용해 만든 편육은 프랑스 헤드치즈와 비슷한 느낌으로 국적을 초월하는 맛이다. 순대와 순대 사이, 느끼함을 잡아줘야 하는 순간 기지를 발휘하는 명태식해는 생강 향이 개운하게 올라와 입안을 깔끔하게 씻어준다. 후식은 직접 만든 달콤한 대추차와 부드러운 양갱, 과일로 구성되어 입가심까지 완벽하게 할 수 있다. 참고로 코스를 진행하는 동안 물 혹은 음료수보다 술 한잔 꼭 곁들이는 걸 추천한다.
“보통 손님들이 오마카세와 전통주를 드시는데 의외로 순대와 레드 와인이 썩 잘 어울려요. 순대를 프랑스 부댕 누아르 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순대의 기름기를 와인이 깔끔하게 씻어줘 함께 즐겨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음식으로 시간을 잇는 방법
프라이빗한 음식점일수록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일정 부분 공간이 안고 가기 마련이다. 리북방은 환한 창으로 쏟아지는 볕이 오래된 나무와 닿아 더욱 포근한 인상을 준다. 김 대표는 이곳을 할머니 대에서 사용하던 부엌의 느낌을 내고 싶었다고. 100년 이상 된 고목으로 만든 테이블과 테이블 너머로 보이는 가마솥, 주전자 등에서 옛것의 정취가 느껴진다. 재료 손질 방법, 재료가 들어가는 비율 등 최 셰프의 할머니가 고수하셨던 그 방식을 물려받은 리북방의 정체성과 공간 인테리어가 절묘하게 포개지는 듯하다.
“리북방은 꼿꼿한 철학으로 맛을 유지한 내림 음식의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신기하게도 정말 이북을 고향으로 둔 분들이 방문해 주시더라고요. 또 30대분들도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들을 모시고 오세요. 저희는 SNS에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는 그런 공간이 되길 원하지 않아요. 조금 더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고, 그게 음식으로 시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세월이 깃든 맛을 바탕으로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 ‘리북방’. 그곳은 언제나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처음을 지향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준이 될 것이다. 화성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먹은 한식, 그 한 줄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게 되길 바란다고 말하는 김 대표의 단단한 목소리와 결연한 눈빛이 리북방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우리는 음식으로 지역과 세대, 또 시간을 잇는 일에 충실한 마음을 쏟는 그들의 다음 행보를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리북방>
가격 _ 평일 점심 49,000 / 평일 저녁 및 주말 65,000 (주류 주문 필수)
위치 _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1길 16 2층 리북방
영업 시간 _ 화~금 런치 12:00 디너 19:00 / 토,일 런치 12:30 디너 17:00, 19:30
인스타그램 _ @leebukb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