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연인은 아니지만 연인 같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은 있지만 사귀는 건 아닌’ 정도 선에서 정리된 듯한 썸의 등장 이후로, 연애로 진입하지 못하고 썸에 갇힌 채 미묘한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건지,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입구에서부터 막힌 답 없는 심연 속에서 몹시도 허우적거리던 남과 여를 숱하게 목격했다. 물론 그 미궁의 세계 속 수많은 이들의 땀과 노력이 빚어낸 지분에는 내 몫도 솔찬히 있다. 소회를 밝히자면, 나의 실패의 이유는 을의 입장에 있었다. 내가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배려한다는 이유로 씌워졌던 을의 프레임은 자연스럽게 조바심과 불안감으로 이어졌고, 그걸 견디지 못한 나는 결국 “우리 사이는 뭐야?” 따위의 아침 드라마 속 내연녀 같은 대사를 내뱉으며 관계 규정짓기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별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종지부만 남아있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썸이라는 세계에서는 손쉬운 공감도, 인간적 포용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인정이나 연민 따위를 기대한다면 썸은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이 높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랬다. 간 보기가 양단간에 합의된 탓에 실컷 간만 보고는 부담도, 책임도, 의리도, 양심도 없이 끝나버리는 쿨한 관계다. 덕분에 매너도 개념도 놓아버리고 그냥 잠수 타버린 X도 봤고, 인류애인지 홍익인간인지 몸소 실천하듯 이 썸, 저 썸 타느라 참으로 부지런한 X도 봤으니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썸이라는 세계에서는 손쉬운 공감도, 인간적 포용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항상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되고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던 내 신세를 한탄하려는 건 아니다. 마음이 닿는 대로 부딪치고 부서지는 그 모습이 그지없이 찬란한 을의 연애를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고지순하기만 한 을의 연애를 자처했던 나로서는 꿈꿔왔던 갑의 자리 그 언저리에 놓였을 때 비로소 연애가 즐겁다는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헤어짐 뒤 상대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으로 자신을 치유하던 찌질한 습관에서 벗어나 내가 바라는 연애와 내가 원하는 이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생각보다 간단한 방법에 콧방귀를 뀔 수도 있겠지만 연이은 실패를 자책하며 비혼주의계로 진입하려는 극단에 놓인 이들을 위해 경험과 반성, 실패와 수정의 과정을 무기 삼아 갑의 연애를 위한 몇 가지 팁을 나눠보고자 한다. 물론 시도해봐도 좋고 고집스럽게 마이웨이를 가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연애만큼은 진심이었던 이 에디터의 실패와 수정으로 거듭된 노하우가 갑의 연애를 꿈꾸는 을의 연애에 피가 되고 살이 될 자양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을을 자처하는 그대여, 의미 없는 말은 넣어둬, 넣어둬

대부분 썸 단계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카톡의 세계에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연애 고자들이 수두룩하다. “밥은 드셨어요?”, “뭐 하세요?”, “퇴근하셨어요?” 이 끝없이 반복되는 블랙홀 같은 질문이 당신을 지루한 사람으로 만든다. 매일 알람처럼 반복되는 대화에 핑크빛 기류는 생길 일 만무하고, 그녀 입장에선 매일 12시만 되면 밥은 먹었냐는 당신의 카톡이 이제는 무서울 지경이다. 이건 차단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 그냥 의무감에서 비롯된 발버둥, 내 존재의 환기를 위한 부질 없는 카톡을 보낼 바엔 차라리 프사를 바꿔라.

그냥 의무감에서 비롯된 발버둥, 내 존재의 환기를 위한 부질 없는 카톡을 보낼 바엔 차라리 프사를 바꿔라.

물론 개선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무언가 대화를 시도하고 싶다면 성의도 없고 재미도 없는 근황 묻기 따위는 집어치우고 확실한 약속이나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는 주제를 던져보자. “오늘 거래처 분들이랑 식사했는데 닭갈비 맛집이었어요. 대박 맛집! 같이 먹으러 가요!” 식으로 대화를 시도해보자.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자신감이 없어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밥 먹었냐, 뭐하냐는 식의 카톡보단 분명 훨씬 반응이 좋을 거다. 적어도 이 선톡은 내 관심사를 표출할 수 있고 데이트 약속까지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니까.

자존감 없는 당신은 항상 을일 수 밖에

뭔가 나에게 관심이 사그라든 느낌도 들고, 연락하면 답장은 오는데 말 그대로 ‘적당히’ 받아만 주는 느낌도 들고.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걸 거야’라며 심기일전해보지만 미적지근한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럴 땐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조바심이 들기 마련이다. 이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과도한 카톡. 상대의 관심을 확인하고 말겠다는 을의 기저에 도사린 사악한 조바심이 고개를 든다. 덕분에 당신의 모든 감각이 그녀의 답장에, 카톡의 1자에 모이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대부분 썸과 연애에 실패하는 많은 이들이 늘어놓는 불평 중 하나가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고, 내가 관심 없는 사람은 나를 좋아할까요?”다. 정답은 간단하다.

대부분 썸과 연애에 실패하는 많은 이들이 늘어놓는 불평 중 하나가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고, 내가 관심 없는 사람은 나를 좋아할까요?”다. 정답은 간단하다. 자존감.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자존감에서 비롯된 여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늘 조바심에 좇기고 ‘어떻게 하면 쟁취할까’ 항상 과도한 의욕이 넘친다. 반면 상대적으로 나의 관심이 향하지 않는 그녀 앞에서 나는 자존감에 차 있다. 굳이 잘 보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을뿐더러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수컷의 본능에 쫓기지도 않는다. 때문에 자연스레 대화 자체에 집중할 줄도 알고 눈치 보면서 이런 말을 해볼까, 저런 말을 해도 될까에 자신을 옭아매 매력을 반감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덕분에 상대에게 나는 되려 매력적이고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 연애에 갑과 을을 구분 짓는다는 것이 슬프지만 적어도 내가 더 안달 나서 매달리는 을의 연애를 하지 않으려면 항상 좀! 여유를 가지고 큰 그림을 그려보길 당부하고 싶다.

밀당에 능한 사람은 따로 있다

조금 관계가 진전됐다 싶거나 나를 향한 그녀의 호감에 자신감이 들 때쯤 썸에 종지부를 찍고 그 이상의 진도를 나가길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밀당이다. 섣불리 우위를 점하겠답시고 어쭙잖은 밀당을 시전했다가는 역으로 당하기에 십상이다. 역관광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개념을 인지하자. 밀당은 밀고 당기는 게 아니라 불안감과 기대감이라는 사실을. 

역관광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개념을 인지하자. 밀당은 밀고 당기는 게 아니라 불안감과 기대감이라는 사실을.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자. 당신은 이번 주말 썸녀와 데이트 약속을 한 상태다. 퇴근 후 피곤한 몸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당신과 썸녀는 카톡을 주고받으며 주말 데이트로 한껏 설레는 마음을 가감 없이 표출하고 있다. 갑자기 썸녀는 잠시 잊고 있던 일이 생각난 듯 “아 맞다. 그런데 나 주말에 출근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어.”라며 기분 잡치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당신은 불쾌하고 더러운 기분보다는 ‘이 데이트를 못 하면 어쩌지?’, ‘갑자기 왜 이러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라는 진심 어린 걱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말한다. “아 정말? 그럼 어떻게 하지? 일정을 미뤄야 하나?”라며 애써 아쉬움을 삼키고 어떻게든 데이트를 하고 싶은 마음에 온 신경을 썸녀의 답장에 쏟는다. 칼답하던 썸녀의 답장은 늦어지고, 5시간 같은 5분이 지났을까? 썸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반가운 대답을 들려준다. ‘이럴 거면 그 쓸데없는 불가능성은 왜 제기한 걸까?’ 싶지만 당신은 안도감에 휩싸였고, 웬걸 기분이 더 좋기까지 하다. 그리고는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데리러 갈까?”라며 평소 시도하지도 않던 매너를 보인다. 그렇다. 당신은 그녀에게 낚인 것이다.

불안감과 기대감을 심어주는 데 순서는 상관없지만 그녀는 좋은 분위기라는 전제 하에 갑자기 불안하게 만드는 심리를 이용했다. 기운이 쫙 빠지고 내 행동에 실수는 없었는지 심각하게 고찰하려던 찰나, 썸녀가 데이트는 어떻게든 진행하자며 기대감을 심어준다. 이건 줬다 뺏는 게 그냥 뺏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열 받는 것처럼 배가된 밀당 효과를 만들어낸다. 게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닌지, 뭔가 실수했던 건 아닌지, 앞서갔던 건 아닐지 괜히 나의 과오를 되짚어 보는 미련한 자책을 범했으니 썸녀의 밀당에 아주 성공적으로 걸려든 셈이다. 

대부분 자존감 높은 사람이 밀당에 능한 편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밀당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여러  번 강조하지만) 밀당에 능한 이들만큼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 만일 갑의 연애에 익숙한 이였다면, 불안감을 조성한 썸녀의 말에 “응 알겠어.”로 간단하게 응수하고 더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 그녀와 데이트 하면 좋은 거고 아님 말고. 딱 그 정도의 마인드일 테니까. 그런 태연함과 자신감이 존재해야 저런 사사로운 밀당에 휘말리지 않는 법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없는 잘못까지 찾으려 노력하지는 말자. 그게 을로 가는 지름길이니.

갑 중에서도 상위 1% 슈퍼 갑인 나의 연애 코치는 늘 ‘어장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갑 중에서도 상위 1% 슈퍼 갑인 나의 연애 코치는 늘 ‘어장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양한 옵션이 존재해야 한 여자에게 목메는 슈퍼 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여자와 약속했는데 파투가 났다. 그럼 다른 여자를 만나면 된다. 물론 난잡한 카사노바로 보이기 딱 좋은 모양새지만 못난 나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집착하지 않으며 나를 위한 연애를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편리한 방법이란 것이다.

드라마 <런 온>에서 오미주(신세경)가 기선겸(임시완)에게 “나는 내가 더 소중해서. 그냥 포기할래요.”라며 이별을 고했다. 이게 바로 갑의 연애다. 널 사랑하지만 내가 더 소중한 것. 결국 갑의 연애에 있어 가장 큰 화두는 ‘나’다. 내가 우선이 되어야 비로소 을의 연애에서 벗어나 갑질 한 번 시원하게 해볼 가능성이 생긴다. 반면 나는 뒷전이고 그녀가 우선시되는 관계에선 끝없는 난항만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자존감. 그것이 을의 연애를 극복하는 신의 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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