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이라고 항상 아메리칸 크루저에만 목을 매진 않았다. 수랭식 엔진의 네이키드 모델인 스트리트 시리즈, 미래적인 드래그 머신 FXDR, 최초의 전기 모터사이클 모델인 라이브와이어까지. 가장 보수적인 브랜드지만, 그래도 이들은 항상 가능성과 출구 한쪽은 열어두곤 했다.
할리데이비슨의 항로가 이제는 미개척 지역을 향한다.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멀티퍼포즈 모터사이클-모델명도 거창한 팬 아메리카(Pan America)로 출사표를 던졌다. 현재 어드벤처 바이크 영역은 대중성을 갖춘 일본 브랜드나 높은 완성도와 역사를 자랑하는 BMW 모토라드, 오프로드를 주력으로 하는 KTM이 시장을 장악한 상태. 따라서 할리데이비슨은 이 모델로 쟁쟁한 경쟁자들과 자웅을 겨뤄야 한다.
오랜만에 도전자의 위치에 선 할리데이비슨은 팬 아메리카에서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상당수 벗겨냈다. 남아있는 건 기껏해야 V-트윈 엔진에 가로로 긴 직사각형 형태의 헤드라이트 정도. 사실 이 부분도 정체성을 논하기는 조금 어렵다. 사각 헤드라이트는 최근 모델들에서 고유의 전통을 뒤엎으며 변경된 디자인이었고, 엔진 또한 공랭식이 아닌 수랭식이기 때문. 여기에 윈드스크린과 알루미늄 탑박스&사이드박스를 달아 영락없는 어드벤처 바이크가 됐다.
디자인이나 외장 파츠 같은 요소뿐이 아니다. 장르 특성에 맞게 서스펜션은 도립식을 채택했고, 브레이크도 브렘보사의 제품을 썼다. 캘리퍼 역시 4피스톤 타입이고, 머플러도 마치 하늘을 향해 날아갈 것처럼 후방으로 잔뜩 띄워 달았다. 스포크휠에 달린 신발 역시 두꺼운 사각 블록의 트레드가 촘촘히 박힌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다.
수랭식 엔진이라고 미리 언급한 부분에서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팬 아메리카에는 개량된 레볼루션 엔진이 올라간다. 엔진 헤드의 협각도 60도이며, 975cc와 1,250cc의 두 가지 배기량으로 라인업이 나뉜다. 당연히 출력도 기존의 크루저 모델보다는 훨씬 시원시원하다. 전자는 115마력에 9.7kg.m의 출력을 기록하고 있으며, 후자는 한층 더 파워풀한 145마력에 12.4kg.m의 최대토크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