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잘 모르는 사람은 패션 브랜드로서 에르메스를 우러러보고, 시계를 조금 아는 사람은 에르메스 시계를 무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계를 매우 잘 아는 사람이라면 에르메스에 경의를 표한다. 주산업이 시계가 아닌 디자이너 브랜드 중 뛰어난 시계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 중 하나인 에르메스는 2015년에는 가장 공신력 있는 ‘올해 최고의 시계’ 상인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를 수상한 경력도 있다. 전체적인 시계 시장에서의 입지는 작을지 몰라도 이쯤 되면 에르메스가 단순히 이름을 팔아 시계 시장에서 재미 좀 보려는 심보가 아닌 건 명확하다. 물론 이백 년의 역사를 지닌 브랜드인 만큼 디자인도 뛰어난 것은 당연지사.
올해 에르메스는 Slim d’Hermès 라인에 GMT 모델을 추가했다. Hermès Slim d’Hermès GMT는 클래식한 드레스워치답게 마이크로 로터로 돌아가는 H1950 캘리버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채용했고, 39.5mm x 9.48mm 사이즈의 팔라듐 케이스 내 다이얼과 서브다이얼에서 샌드 블래스트(모래 분사)와 스네일(동심원 패턴) 처리를 번갈아가며 쓴 것이 특징이다. 이와 유사하게 시침과 분침도 절반은 샌드 블래스트 무광 처리를, 절반은 유광 처리를 했으며 10시 방향의 서브 다이얼로 나타내는 듀얼 타임은 그 숫자 배열과 Philippe Apeloig 디자인의 폰트가 매우 독특하다. 로고 위에 위치한 두 개의 작은 원은 홈 타임과 로컬 타임의 밤낮을 표시해준다. Slim d’Hermès GMT는 90개 한정이며, 브랜드가 브랜드인 만큼 악어가죽 스트랩 역시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