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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1년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주인공 진아는 늘 혼자 밥을 먹는다. 콜센터 직원인 그의 밥상 메뉴는 늘 똑같다.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남과 마주할 필요 없는 바 테이블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저녁은 침대 위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다. 그는 새로 입사한 수진이 탐탁지 않다. 고객의 억지스러운 클레임에 “제가 왜 죄송하다고 해야 돼요?”라고 따져 묻는 그의 당돌함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매번 식사를 같이하자며 귀찮게 하는 그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급기야 “수진 씨, 점심 먹을 때 쫓아오지 마요.”라고 매정하게 그를 내친다.
감정노동의 최고봉 중 하나라 불리는 콜센터 상담 업무를 하면서도 일말의 감정적 동요도 느끼지 않았던 진아. 문득 불쾌한 변화가 그에게 찾아온다. 즐거움도 불만도 없이 그저 먹여야 해서 늘 먹었던 쌀국수를 입에 넣었다 이내 뱉어낸다. 환멸이라는 감정도 아까울 만큼 마음에 자리를 주지 않았던 아버지가 교회 사람들을 집에 불러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기계처럼 매뉴얼대로 고객을 응대하던 그가 매뉴얼에서 벗어난 터무니없는 실수를 일으킨다. 감정이, 일상이 흔들린다. ‘밥도 혼자 못 먹어서 사람들 귀찮게’ 하던 수진 때문에.
혼밥이 사회적 자폐라고요?
어렸을 때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 수 없었다. 민망하고, 창피하고, 두려웠다. 반대로 내가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볼 때면, 외롭고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어쩌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은 그게 그만큼 당연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밖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다소 어색한 일이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은 친구가 없는,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그래서 몇 년째 지속되는 ‘혼밥’이라는 트렌드를 보면 감회가 새로울 때가 있다. 이제는 혼자 밥을 먹는 것이 멋지고 쿨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따금 ‘혼밥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은 혼밥을 지양하라고 경고하지만,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것 같다. 혼밥을 위한 독서실 칸막이식 테이블은 이제 식당의 필수품이 되었다. 집에서 홀로 유명 식당의 메뉴를 맛볼 수 있는 밀키트도 보편화됐다. 예전에는 혼자 가면 안 받아주던 삼겹살집도 있었는데, ‘혼삼(혼자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는 것)’을 했다는 것을 마치 개선장군의 전리품처럼 소셜 미디어에 자랑하기까지 하는 요즘이다.
한 유명 칼럼니스트는 이런 혼밥 현상을 두고 ‘사회적 자폐’라고 표현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다소 과격한 이 표현만 보면 분명 비난받을 소지가 있지만, 그의 주장 전체를 들여다보면 조금 생각해볼 구석들이 있는 듯하다. 간추리자면, 혼밥은 <혼자 사는 사람들> 속 수진처럼 현대인이 겪는 인간관계로부터의 스트레스나 감정노동에 대한 방어기제로 유행하게 된 것인데, 이는 소통을 아예 원천 차단하려는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된 양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혼밥을 하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패러다임이 한쪽으로 경도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또한, 이런 구조적 문제 말고 개인의 실존적 문제를 고려한다면 조금 얘기가 달라질 것 같다. 혼밥을 하는 사람들의 사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 그리고 혼밥이라고 다 같은 혼밥이 아니라는 것.
그냥, 그저 그냥 혼밥해요
어렸을 때는 그토록 어려웠던 혼밥을 이제는 누구보다 잘하고 있다. 혼자 삼겹살을 구워본 적도 더러 있고, 식당 ‘이모님’에게 “여기 밥이 엄마 밥보다 맛있네.” 따위로 시작하는 썰렁한 농을 주고받으며 식사를 할 정도로 혼밥이 자연스러워졌다. 혼밥을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인 서사 탓도 있을 것이다.
스무 살 때부터 해온 서울살이, 1인 가구, 노총각.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이 될 듯하다. 꽤 오랜 시간을 혼자 살고,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갈 녀석들은 대부분 장가를 가고, 일에 치여 시간을 아끼려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혼자 먹게 되더라. 혼밥이 좋고 싫고의 문제를 떠나, 그냥 살다 보니 익숙해졌다. 분석적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바쁘고 개인주의적인 현대 도시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랄까. 딱히 누군가와 밥을 먹기 싫다는 사치스러운 이유는 내 사연에 파고들 틈이 없었다.
나와 같은 경로로 ‘혼밥러’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감정 소모가 버거워서 혼자가 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남의 식사 속도를 맞출 필요도 없고,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눈치 보지 않고 먹어도 되고, 음식을 굳이 나누어 먹지 않아도 되고, 쩝쩝대는 소리 같은 불쾌한 식사 매너를 겪지 않아도 되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즐거운 기분으로 사색할 여유도 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주 단순한 이유들도 혼밥을 설명해주는 유의미한 표본들이다.
혼밥을 하는 모두가 꼭 ‘사회적 자폐’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로부터의 스트레스, 감정노동 같은 외생적인 요인들에 무조건 휘둘릴 만큼 사람들이 무기력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집단보다 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게 당연하고, 그렇게 자라왔고, 남들도 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냥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편해서. 그런 사연으로 어쩌다 보니 혼밥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낸 사람들. ‘그저 혼밥이 편하고 좋아서’, 이 단순한 이유로도 혼밥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어쩔 수 없이 혼밥해요
나의 혼밥 생활은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어쩔 수 없어서 하는 혼밥과 자발적으로 하는 혼밥. 전자의 경우는 보통 집에서의 식사가 해당되는데, <혼자 사는 사람들> 속 수진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도시락이 주메뉴고, 거기서 조금 여유를 부려보면 손이 많이 가지 않는 반찬 한두 가지에 밥이 전부다. 컴퓨터 데스크 앞이나 침대 위가 식탁을 대신하고, 설거짓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물도 병째로 들고 마신다. 일이 바쁘거나 같이 식사할 동료가 없다면 직장에서도 혼밥을 더러 하는데, 되도록 빨리 준비되는 백반집에서 10분 안쪽으로 허겁지겁 식사를 해치운다.
가끔은, 이런 형태의 혼밥을 하면서 미디어가 주도가 되어 혼밥의 미덕을 나열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조금 이질감이 느껴진다. 정말 어쩔 수 없어서 혼밥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대로 차린 식탁에서, 마음이 통하고 입맛이 통하는 사람과 식사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람을 대하는 게 어려워서, 식사를 함께할 친구와 가족이 없어서, 일이 너무 바빠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학교, 직장과 같은 소속집단에서 혼밥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이질감은 더 깊게 느껴진다. ‘혼밥’이라는 가벼운 줄임말로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이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식사를 하며 타인의 시선에 둔감해지려 하고, 혹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나에게 누가 걱정 어린 인사를 건넬까 말 그대로 부랴부랴 ‘눈칫밥’을 먹는 그들.
물론 나에게 그들을 측은하게 여길 자격은 없고, 그들 스스로도 딱히 혼밥에 대해 억울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혼밥을 즐기든 그렇지 않든, 대다수 사람은 스스로의 상황에 대해 ‘그냥 그렇게 될 일이라 그렇게 된 것’이라고 정당화하며 사니까. 그래도, ‘사회적 자폐’ 같은 부정적인 표현도 그렇지만, 혼밥을 ‘멋지고 쿨하게’ 호도하는 것도 어색하다.
정작 혼밥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드러내놓고 혼밥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미디어와 광고 말고는 현실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냥 가만히 혼밥 좀 하게 내버려 두면 안 될까.
우리 혼자, 또 함께 먹어요
“네가 밥 먹는 게 꼴 보기 싫어졌어.” 드라마 <또 오해영> 속 주인공 해영이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으며 들은 말. 해영에게는 이보다 비참하고 모욕적인 말이 없었다. 차라리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말을 하지. 얼근하게 술에 취한 그가 말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맛있는 것에 그렇게 열광하지도 않고, 맛없는 것에 광분하지도 않아요. 이미 충분히 좋으니까.”
혼밥이 트렌드가 되고 증가한다는 것은 그만큼 오늘날 개개인들에게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자발적 혼밥이든, 비자발적 혼밥이든, ‘사회적 자폐’로 인한 혼밥이든, 그냥 단순히 혼밥이 좋아서이든, 기꺼이 내 불편을 감내하며 함께 식사를 할 만큼 꼴 보기 좋은 사람이 많지 않다는 얘기일 테다.
어쩌면 우리가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는 말을 그토록 쉽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후각과 미각을 통한, 가장 직관적이고 원초적인 수준에서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밥을 먹고, 밥을 먹으면 즐거우니까. 그래서 다른 활동을 같이하자는 것보다 더 이견의 여지가 없으니까. 그렇게 유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그러니 혼밥이 늘어난다는 것은 다시 우리 삶에서 유대가 없어진다는 조그만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이유는 배려·양보·이해·관용과 같은 고리타분한 가치들이 없어졌기 때문일 테고. 직장 상사의 ‘꼰대’ 소리, 오지랖 넓은 친구의 참견과 훈수, 도무지 음식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E 성향 동석자의 하이텐션도 꼴 보기 싫고, 반대로 내가 싫으면 무조건 ‘틀리다고’하는 이들의 태도도 꼴 보기 싫은 요즘 사람들. 우리는 정말 밥 한번 같이 먹기 그렇게 어려운 걸까?
혼밥이 좋냐 함께하는 밥이 좋냐는 논쟁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을 것이다. 1인 가구가 많아지고 혼자만의 시간이 부족한 오늘날 대다수 사람에게, 더욱이 적지 않은 시간 집단 문화 속에서 개인의 희생을 강요받았던 우리에게 혼밥은 몸과 감정의 안식을 가져다주는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당연하게 인정하고 격려해줘야 하지 않을까. 반대로, 집단 속에서 원자처럼 각자도생하는 개개인들이, 밥 한번 같이 먹기 위해, 그래서 ‘같이 살기’ 위해 배려하고 이해하는 노력도 지금보다는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 둘의 적당한 균형과 선만 맞춘다면, ‘사회적 자폐’니 ‘쿨한 혼밥’이니 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다시 <혼자 사는 사람들>로 돌아와서. 진아는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나오지 않는 수진에게 전화를 건다. “사실 전화를 걸긴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 사무실에서 전화할 땐 어렵지 않았는데.”라고 운을 뗀 그는 곧이어 말한다. “근데 사실 저도 혼자 밥… 못 먹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척하는 것뿐이지.” 콜센터 휴직을 신청하고 사무적으로만 대하던 상사에게 태연하게 “정리되면 밥이나 같이 먹어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무시로 일관했던 아버지에게 묵혔던 감정을 마음껏 쏟아낸 후 며칠 뒤, 아버지에게 전화해 “딱 그렇게까지만 지내요, 우리”라고 담담히 말한다. 도무지 마음에 어떤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 몰라 마냥 내치기만 했던 그에게 적당한 ‘선’을 내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