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시계가 꿈꾸는 마지막 무대. 심해에 닿고, 북극과 사막을 횡단하며, 트랙 위에서 속도의 한계를 넘어선 시계는 이제 우주라는 무한을 바라본다. 단순히 우주를 닮은 디자인이나 영감에서 머물던 시계가, 실제 우주와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 움직임은 구체적이다. 실제 운석과 행성 조각을 다이얼에 새기고, 성층권을 넘어 극한 환경에서 시계 테스트를 진행하는 등, 시계는 우주의 시간을 담은 존재로 진화 중. 이제 시계 업계도 우주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걸까? 지금 시계의 시선은 우주로 향하고 있다.
시계와 우주
그 특별한 연결
우주와 시계는 오래전부터 같은 꿈을 꾸어왔다. 인간은 시간을 재기 시작한 순간부터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의 움직임으로 계절을 읽고, 행성의 궤도로 낮과 밤을 나눴다. 시계는 그 질서를 손목 위로 옮겨온 장치였다.
시계는 언제나 우주와 닮아있다. 정밀하게 맞물린 톱니바퀴는 행성의 공전과 자전을 닮았고, 다이얼 위 인덱스는 별자리처럼 질서정연하게 배열됐다. 고대의 천문 시계부터 현대의 크로노그래프까지. 시계는 우주 질서를 압축한 작은 코스모스였다.

그 상징성은 20세기 중반, 인간이 실제로 우주로 향하며 다시 불붙는다. 대표적인 건 역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다. 1960년대 우주 경쟁은 시간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인류의 집념. 그 현장에는 늘 시계가 있었다. 달 표면에서 작동한 유일한 시계로 기록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는 인류가 지구의 시간을 벗어나 처음으로 달의 시간을 기록한 순간이었다. 몇 년 뒤에는 세이코의 아스트론이 그 흐름을 이었다. 시계는 시간의 근원과 연결되고, 거대한 미지의 세계 앞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인간의 욕망으로 진화했다.
내 손목 위의 우주
작은 시계, 무한을 품다
오늘날 시계는 더 이상 우주를 바라보지 않고, 우주를 품는 단계로 나아간다. 실제 별 파편과 행성 조각을 다이얼에 새겨 넣는 등, 시계 안으로 우주 물질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포멕스(Formex)의 에센스 스페이스 글레이셔가 그 대표적인 예다. 브랜드 25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이 시계의 다이얼에는 45억 년 된 무오니오날루스타 운석 조각이 삽입되었다. 태양계가 막 형성되던 시기의 금속 파편이 북극권 얼음에서 발견되어, 이제는 한 사람의 손목 위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것. 포멕스는 이를 “시간의 근원과 연결된 물질”이라 설명했다.

오메가(Omega)는 이 흐름을 더욱 확장한다. 달에서 떨어진 운석을 문페이즈 디스크에 새겨넣은 스피드마스터 문페이즈 메테오라이트다. 문페이즈, 항성시, 달 궤도 표시 같은 천문학적 컴플리케이션이 실제 우주 파편과 맞닿으며 진짜 우주의 일부가 됐다. 스피드마스터가 품은 문워치의 정통성을 실제 우주 물질로 확장한 셈이다.

한층 시적인 사례도 있다. 다이얼 속에 달과 화성, 소행성의 파편을 삽입해, 하나의 작은 우주를 만든 것이다. 프랑스 워치메이커 루이 모안(Louis Moinet)의 스페이스 레볼루션이 그 주인공. 마치 시간이란 거대한 우주의 움직임을 축소해 놓은 것임을 상기시키듯이, 서로 다른 천체가 맞물리며 시간을 시각화했다.
시계에 운석 조각과 천체 파편을 담는 것은, 시계를 착용하는 인간 또한 우주와 연결되는 하나의 매개체라는 뜻. 다이얼 위 작은 파편 하나에도 45억 년 전 태양계 역사와 천체의 움직임이 담겨 있다. 시간을 측정함으로서 우주의 흐름과 만나는 셈이다.
진짜 우주를 경험한 시계
성층권을 넘어서
진짜 우주로 시계를 보내는 사례도 있다. 우주에서 모티브 얻는 것을 넘어, 우주와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최근 포티스(Fortis)가 개발한 우주용 시계가 대표적. 그동안 바다, 하늘을 주 활동 무대로 삼았던 포티스는 스웨덴 우주공사(SSC)와 협력해 우주인을 위한 시계 스트라톨라이너 S-41를 개발했고, 이에 탑재된 werk 17 무브먼트는 실제 우주에서 테스트된 최초의 무브먼트로 기록됐다.

이 시계는 스웨덴 에스랑게 우주센터에서 준궤도 비행 테스트를 거쳐 성층권 밖으로 이동했다. 섭씨 70도 진공 환경에서 1시간 30분 동안 작동 테스트를 마치며, 혹독한 우주 환경에서의 정확성을 입증한 사례였다. 케이스백에 새겨진 ‘Space Resistant 20ATM’이란 문구는 그 실험의 결과. 시계가 더 이상 지구의 한계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줬다.
보다 실험적인 접근을 택한 브랜드도 있다. 다이아톰(Diatom)은 영국의 우주 비행 스타트업 ‘센트 인투 스페이스(Sent Into Space)’의 워치 브랜드로, 제작하는 모든 시계를 성층권 비행에 올린다. 이들의 시계에는 달 암석, 화성 운석, 심지어 아폴로 13호 캡슐의 금속 조각이 다이얼에 새겨진다. 각 시계는 우주를 여행한 뒤 고객의 손목으로 돌아오며, 구매자는 자신의 시계가 우주를 비행하는 영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다이아톰은 “이 시계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여정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말한다. 실제로 운석을 다이얼에 새기는 수준을 넘어, 지구 밖에 다녀온 시계라는 점에서 한층 더 직접적이다. 우주와 시간의 만남, 그 실체적 경험을 손목 위에 구현한 셈이다. 브랜드는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상징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우주와 물리적으로 연결되길 원한다.”
조금 다른 길도 있다. 시계를 우주에 보내는 대신, 시계 기술을 우주로 보낸 것이다. 일본 민간 달 탐사 기업 ispace의 Hakuto-R 프로젝트 달 착륙선 다리에 사용된 금속이 바로 시티즌(Citizen)의 독자 소재 슈퍼 티타늄. 워치메이킹 기술이 우주 탐사의 일부로 확장되며, 공학과 탐사의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오메가 또한 우주와의 동행을 이어가고 있다. UAE 우주국 및 두바이 모하메드 빈 라시드 우주센터와 협력해, 중동 최초의 우주인 술탄 알네야디(Sultan Al Neyadi)의 국제우주정거장(ISS) 미션을 공식 후원했다. 그의 손목 위에는 전설적인 스피드마스터 문워치와 함께, 고기능 항공우주용 모델인 스피드마스터 X-33이 나란히 올랐다.

한편 IWC는 세계 최초 상업용 우주정거장을 설계 중인 미국의 스타트업 배스트(Vast)와 함께 우주 비행에 적합한 시계를 개발하고 있다. 이 시계는 향후 발사될 Haven-1 우주정거장에서 사용될 예정이며, 실제 정거장 하드웨어와 동일한 테스트를 거친다고. 20세기 초 항공 산업과 함께 성장했던 IWC가, 21세기에는 우주의 시간을 계측하는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 우주를 거쳐온 시계는 우리로 하여금 우주라는 거대한 이야기 속에 발을 들여놓도록 한다. 상징이나 모티브를 넘어 실제 우주와 연결될 때, 우주 일부를 손목 위에서 직접 느낄 수 있다.
시계가 우주를 꿈꾸는 이유
우주는 시간의 시작

우주는 지구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극한이 압축된 공간이다. 진공, 무중력, 극저온, 방사선. 그 어디에서도 작동해야 하는 시계는 인간이 만든 기술의 총아와도 같을 것이다.
지금 시계 업계는 새로운 변곡점에 서 있다. 과거에는 심해 1000m의 방수 성능, 시속 300km 레이싱의 정밀함으로 기술력을 증명했다면, 이제 시계는 성층권 80km 밖으로 그 시선을 돌린다. 단순 마케팅 때문은 아니다. 시간을 가장 정밀하게 다루는 도구로서, 시계는 무한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우리는 여전히 시간을 이해하려 하고, 우주는 그 근원을 탐구할 수 있는 장이 된다. 우주로 향하는 시계는 시간의 원리에 대한 인간의 순수한 호기심을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