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어김없이 돌아온 밸런타인데이. 누군가는 또 혼자냐고 마른 장판 위에 누워 한탄하겠고, 어떤 이는 이런 날은 참 빨리도 돌아온다며 선물 검색에 신중을 기하고 있을 터. 그리고 준비성 철저한 당신은 모든 준비를 끝내고 그날의 분위기를 완성할 밸런타인데이 BGM을 고르고 있을 거다. 화려한 이벤트 없이도 훅 들어오는 가사 한 줄이면 그녀와 딛고 있는 공간을 반짝이게 한다는 사실, 몰랐다면 이 노래들을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 속히 얹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렌의 추천곡
Track 01. Boyz II Men – You Make Me Feel Brand New
목소리를 신이 주신 최고의 악기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전설적인 원조 R&B 그룹이 지나간 명곡들을 재해석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The Stylistics의 1974년 곡을 이들만의 목소리로 보컬은 업데이트, 하지만 악기 사용과 기본적인 곡의 구성은 원곡에 충실했던 이 리메이크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고마움을 시적으로 표현한다.
너무나도 소울풀한 보컬이 가사 한마디 한마디를 더욱 주옥같이 만들어 주기에 이 곡은 사랑의 날 밸런타인데이에 더욱 적합하다. 하지만 어설프게 따라 했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으니 이 곡은 그냥 Boyz II Men 형님들이 부르시는 것을 조용히 감상만 하길.
Track 02. Tony Bennett – The Way You Look Tonight
이 시대의 진정한 마지막 재즈 보컬리스트, 나이도 꽤 들었을 때 줄리아 로버츠 주연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OST에 삽입되었던 이 곡은 조용하며 소소한 사랑을 고백하는 러브송의 대부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원곡은 Fred Astaire 주연의 1936년 영화 ‘Swing Time’의 OST에서 처음 소개된 곡이지만, 토니 베넷만의 감성으로, 그리고 더욱더 느린 템포로 이 곡의 정서와 가사의 의미를 더욱 가슴 미어지게 표현한다. ‘당신이 코를 찡그리며 웃는 모습이 바보 같은 나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라는 부분에서 멜로디를 무시하며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부분은 듣는 이들의 마음속에 사랑을 다시 싹트게 하지 않을까 싶다.
Track 03. Southern All Stars – いとしのエリ
코믹한 음악 그룹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Southern All Stars를 진정한 음악인으로 도약시킨 곡. 미국의 거장 Ray Charles가 1988년에 리메이크를 했을 만큼 아름다운 멜로디와 간략하지만, 직선적인 사랑의 메시지가 담긴 코러스는 듣는 이들이 언어의 장벽을 뚫고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곡이다.
보컬의 퀄리티가 높지도 않고 멜로디도 단조로울 수 있으나 달콤한 사랑의 메시지만은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곡 이후로 이 밴드는 주옥같은 명곡들을 많이 쏟아내며 김장훈 같은 국내 가수도 여러 번 이들의 곡을 리메이크할 만큼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고 아직 두터운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에디터 푸네스의 추천곡
Track 04. 20세기 소년 – 사랑노래
이 노래는 저격 곡이다. 많은 사람이 듣고 있겠지만, 그리고 그들에게는 스쳐 가는 노래일지 모르나 이건 정확히 당신을 향하고 있는 사랑 노래라는 것. 제목처럼 러브송이긴 하지만 다소 안타까운 건 이미 떠나가 버린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 노래를 리스트에 올린 이유는 나지막이 읊조리는 도입부 때문. 언젠가 우리에게도 이별이 당도할지 모르지만, 그때 이 노래를 꼭 기억해 달라는 당부의 말을 곁들이면 밸런타인데이에도 썩 어울리는 곡이 된다.
Track 05. Meghan Trainor – Like I’m Gonna Lose You (Feat. John Legend)
영원히 혹은 처음처럼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고백을 믿어줄 여력 없는 그런 나이가 됐다. 누군가를 잃고 또 그렇게 흘려보낸 경험치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다. 하지만 메간 트레이너 가사처럼 ‘곧 당신을 잃을 것처럼’ 사랑하겠다는 목소리에는 ‘그렇다면 이렇게 또다시 항복’을 외치게 된다. 그리고 뒤이어 흘러나오는 ‘당신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는 노랫말은 마음에 단단한 쐐기를 박는다. 수 없이 커버된 곡이지만, 헨리와 이하이가 주고받는 소울 충만한 이 대화에 동참해 보기를 추천.
Track 06. 2LSON – The lady
서로의 마음을 간파하고 딱 한 걸음만 더 다가가면 게임 셋인 상황, 이 노래가 시작에 불을 붙인다. 아껴 두었던 감정 꺼내라고 멍석 깔아준 이런 날을 놓치기는 너무나 아까우니 모든 장르에 녹아드는 범키 목소리를 빌어 섹시한 고백을 시작할 때. 이 노래는 드라이브하면서 들으면 그 맛이 더 사니까 마지막 한 끗이 필요한 순간, 잠시 신호 대기 중에 재생 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애써 감정을 숨기는 그녀 표정이 무장해제 되며 설레는 마음이 도로 위를 둥둥 떠다니도록.
에디터 형규의 추천곡
Track 07. Whitesnake – Is This Love
1부터 100까지, 모든 것이 그야말로 쌍팔년도의 정수를 그대로 담아낸 불멸의 록 발라드. 뮤직 비디오를 본다면 지극히 촌스러울 것이고, 에코 잔뜩 들어간 스네어 톤의 드럼이나 아롱다롱 아르페지오는 너무나 전형적인 그 시절의 모습을 그려낸다.
물론 그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80년대, 골든에이지에 대한 로망과 향수로 가득한 곡이기도. 사실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올타임 베스트 발라드 넘버이기도 하다. 1980년대 음악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가장 먼저 들려주고픈 그런 곡.
Track 08. Show-Ya – 愛さずにいられない -Still be hangin’ on-
헤비메탈 밴드의 이미지가 더 익숙한 쇼야지만, 내가 이 여성 5인조 밴드를 알게 된 계기는 바로 ‘Glamours’ 앨범, 그리고 이 곡이었다. 아직 군대 가기도 전이었던 대학생 시절, 도입부에서부터 강렬하게 각인되는 이 곡의 멜로디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 감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케이코 테라다의 고혹적인 목소리, 스쳐가는 사랑을 놓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잡으려는 애수 어린 멜로디가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그 기분. 20대의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나에게는 첫사랑과도 같은 곡이다. 유일한 단점은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영어 발음 정도다.
Track 09. 넥스트 – Here, I stand for you
물론 이 곡을 러브송으로 분류하기엔 어폐가 있다. 어떻게 보면 신해철의 인생 철학을 가장 치열하게 투영해낸 곡으로, 실제로도 노랫말에서 사랑한다는 표현은 단 한 번도 -물론 전주에서 내레이션으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긴 하지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먼 훗날, 언제가 될지 모르는 시점에서 내 곁에 자리할 미래의 연인, 배우자를 위해 예비한 이 곡은 그 어떠한 사랑 노래보다도 진정성 있는 울림을 담아낸다. 스킨십이나 키스신 하나 나오지 않는 ‘엽기적인 그녀’가 최고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자리한 것을 생각해보길. 이 곡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더 위대하고 소중하다.
에디터 신원의 추천곡
Track 10. Sam Ock – remember
첫맛부터 끝 맛까지 완벽하게 감미로운, 재즈와 낭만이 흐르는 멜로디를 베이스로 깔고. “별들이 이 땅으로 떨어지고 나는 부서진 것만 같을 때에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가졌음을 기억하겠어요”라고 읊조리는 부드럽고 포근한 가사가 마음의 표면을 툭툭 건드리는 곡이다.
작곡, 프로그래밍, 기타, 베이스, 보컬, 랩까지 모두 소화하는 천재 멀티 아티스트 샘 옥, 그가 한국계 미국인이라 왠지 모르게 더 정이 가기도. 와인 혹은 홈메이드 칵테일,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준비하고 이 노래를 플레이하면 이로써 완벽한 밸런타인데이의 한 장면이 완성된다.
Track 11. Ardhito Pramono – The Message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신의 재즈 싱어송라이터 아르디토 프라모노. 그의 보컬은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중독성이 있다. 깊고 진솔하고 묘해서 계속 관찰하고 싶은, 이 목소리를 다 해부해 보려면 끊임없이 들어줘야 할 거 같은 매력 말이다. 특히 이 노래로 발현되는 그의 호소력을 보면 여유와 위트, 아련함이 녹아있는데, 이것이 진정 95년생의 감성인가 믿기 어려울 정도. 굳이 재즈팝계 신동이라는 해설을 듣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와 호소력 하나면 모든 게 증명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