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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에 따라 맛볼 수 있는 산해진미가 넘쳐나는 나라에 태어난 행운을 가진 당신. 하지만 산지에서 직접 제철 음식을 맛보는 행동력 따위는 갖지 못했다면, 그래도 괜찮다. TV 미식 기생 속에 갇혀 음식의 맛을 상상만 하지 말고,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을 간판으로 내걸고 뚝심 있게 운영하는 공간들에 발걸음을 보태보자. 서울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을 벗어나지 않고도 결코 현지에 뒤지지 않는 맛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경기도의 맛, 고미정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하는 이천 쌀. 조선시대 농서에도 이천에서 재배된 쌀이 좋다는 구절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실제로 당질과 단백질이 전국 평균치 쌀보다 낮아 더 뛰어난 밥맛을 완성한다. 연희동에 있는 ‘고미정’은 바로 밥만 먹어도 맛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이천쌀밥 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한정식집이 주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탈피해 가족, 친구와 방문해도 좋을 다소 캐주얼한 무드로 공간을 풀어낸 것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
돌솥에 담겨 나온 찰기 어린 밥과 물과 뭍을 넘나드는 식재료를 사용해 차려낸 한 상은 눈이 먼저 즐겁다. 먹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너무 많은 가짓수의 한정식집이 부담스러웠다면 좋은 재료를 사용해 신선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정갈한 맛을 선사하는 ‘고미정’의 기별이 썩 반가울 거다. 안산 자락길을 걸었다면 이곳에 들러 기본에 충실한 든든한 밥 한 끼 먹고 가기를 추천한다. 마음에도 살얼음이 끼는 겨울이 오면 밥이 주는 온기가 더 절실해지는 법이니까.
-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26길 28
- 운영시간 매일 11:30~21:00 (15:20~17:20 브레이크 타임)
강원도의 맛, 봉평옹심이메밀칼국수
강원도는 80%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고원지대,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잘 자라는 감자를 키우기 좋은 환경이다. 감자를 이용해 만드는 많은 강원도 음식 중에서도 감자옹심이는 특유 쫀득이면서도 사각거리는 식감과 자극적이지 않은 맛으로 꽤 단단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음식 중 하나.
공덕역 5번 출구로 나와 약 7분 정도 걸으면 등장하는 곳으로 동네 맛집으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옹심이를 끊임없이 빚어내는 주방에서 간간이 나는 타이머 소리가 음식점 신뢰도를 쭉 끌어올려 준다. 하지만 국물을 한 입 떠먹으면 냄새는 빙산의 일각, 들기름의 향과 맛이 입안을 촘촘하게 감싼다. 기호에 따라 후추를 뿌려 먹으면 또 색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아울러 ‘겉바속촉’ 매콤한 메밀전병도 곁들여 양파 간장에 콕 찍어 맛보자.
- 주소 서울 마포구 만리재옛길 19 1층 봉평옹심이메밀칼국수
- 운영시간 매일 11:00~21:30 (15:25~16:30 브레이크 타임, 일요일 휴무)
충청도의 맛, 예당어죽
서울에서 어죽을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귀한 집. 충남 예당 저수지에서 잡은 국내산 붕어와 민물 새우로 맛을 낸 이 어죽에는 소면, 수제비가 들어가 건져 먹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코스로 밥을 추가 주문해 자작하게 말거나 죽으로 만들어 먹어야 온전히 이 어죽을 살뜰히 누렸다고 말할 수 있을 듯. 민물고기로 유명한 충청도, 그리고 그 맛의 정취가 담긴 예당어죽에 온 이상 빠가사리, 참게, 메기, 민물 새우 매운탕도 맛보자. 민물생선 특유의 비린내는 나지 않으니 편견 없이 접해보도록.
플레이팅만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도리뱅뱅이도 충청도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자극적이지 않게 양념 된 고소한 도리뱅뱅이를 주문한다면 술 마실 각오쯤을 해야 할 거다. 몸보신에도 탁월한 음식들로 가득한, 건강함 넘치는 이 밥상에 합류하고 싶다면 꼭 여럿이 아니어도 좋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1인분의 어죽과 사장님의 친절함이 마음의 온도까지 높여주니까.
-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13길 10
- 운영시간 매일 11:00~21:00 (15:00~17:00 브레이크 타임, 일요일 및 매월 첫째 주 토요일 휴무)
경상도의 맛, 할매 재첩국
광안리에 1호점을 두고 대치동에 두 번째 지점을 낸 ‘할매 재첩국’은 1950년 탄생한 잔뼈 굵은 음식점이다. 섬진강에서 채취하는 재첩은 맑은 물에서 서식하는 조개류로 국, 무침, 전, 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한다. 과거 경상도에서는 아침마다 재첩국을 파는 여인들의 목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고. MBC 예능 <라디오스타>에 사이먼 도미닉이 나와 “재첩국 사이소” 성대모사를 했던 장면을 기억한다면 쉽게 그때의 아침 풍경을 떠올릴 수 있을 거다.
재첩에서 우러나는 국물 맛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정식보다는 재첩 진국을 추천한다. 손맛 깃든 몇 가지 반찬과 곁들여 먹는 재첩국은 그 시원함 저절로 속이 풀리는 기분. 만약 저녁 식사를 위해 이곳에 방문했다면 멸치회 한 접시는 꼭 시켜보길. 갓 잡은 듯한 신선한 멸치회와 어우러지는 새콤달콤한 양념의 맛이 일품이다.
- 주소 서울 강남구 삼성로 308 성원빌딩
- 운영시간 매일 10:00~22:00 (월요일 휴무)
전라도의 맛, 보리수
호남평야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바다와 갯벌에서 수확하는 싱싱한 제철 해산물들이 넘쳐나 식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음식의 고장 전라도. 삼성동에 위치한 남도 음식점 ‘보리수’는 주택가와 오피스 건물들 사이에 자리해 회식과 외식 장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알코올을 사랑한다면 소주를 걸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음식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일단 기본 찬으로 나오는 김치를 맛보면 홍어 삼합을 맛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거다.
그렇다면 3~4인분이 즐길 수 있는 코스 요리를 주문해 육낙무침, 낙지말이구이, 낙지 초무침, 홍어삼합, 황석어 조림 등을 차례로 음미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 그 후 칼칼한 연포탕으로 마무리하자. 인근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라면 점심시간에도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삼성동 시세에서는 상당히 저렴한 편인 7천 원에 즐길 수 있는 요일 백반의 맛도 꽤 훌륭해 피크 시간대에는 웨이팅까지 감수해야 한다. 숙취를 얼큰하게 해장하고 싶다면 애호박 찌개를 주문할 것.
- 주소 서울 강남구 삼성로82길 25
- 영업시간 매일 11:00~22:00
제주도의 맛, 돈불리제담
굳이 비행기를 타지 않더라도 육지에서 미식으로 섬에 닿게 해주는 ‘돈불리제담’. 뜨끈한 국물이 절실한 이 계절에 더욱 반가울 이곳에서 제주도 출신 셰프의 손끝에서 배어난 소박하지만 깊은 맛의 향연을 체험할 수 있다. 사실 이 공간이 더 반가운 이유는 어떤 음식점이든 차려입고 입장해야 할 것 같은 가로수길 옆, 강남 시장 상가 안에 있어 긴장 풀고 가장 편안한 사람들과 한잔하고 싶은 날 방문하기 제격이다.
고추장 물회가 아닌 제주에서 맛볼 수 있는 된장 베이스 물회로 상큼하게 입맛을 돋우고, 해조류와 곁들이는 돔베고기에 멜젓, 된장을 찍어 본격적으로 이곳의 진가를 확인할 것. 입안에서 사르르 퍼지는 적당한 두께감의 돔베고기 마주하노라면 써는 것 자체도 요리의 기술이라는 것이 바로 느껴진다. 이름도 생소한 접짝뼈전골은 돼지의 어깨뼈로 만든 것인데 메밀가루로 뭉근하게 국물을 낸 담백함이 고깃국 특유의 느끼함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 주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2길 46 1층 상가내부
- 영업시간 매일 11:30 ~ 14:30 / 17:00~22:00 (토요일, 공휴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