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를 막론하고 클래식한 아이템에는 고유의 헤리티지가 있다. 이를 이해하고 또 인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클래식한 멋을 위해서라면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하곤 한다.
하지만 클래식 모터사이클의 대명사 로얄엔필드(Royal Enfield)를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달랐다. 기존에도 이를 국내에 들여오던 수입처는 있었으나, 워낙 소규모인 데다가 현지 가격 대비 비정상적인 수입가가 발목을 잡았다. 여기에 로얄엔필드 모터사이클 자체의 허술함까지 더해져 한국 시장에서는 설 자리를 찾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그랬던 로얄엔필드가 다시 태어났다. 새로운 수입처는 기존에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 애스턴 마틴(Aston Martin)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를 들여오던 기흥인터내셔널. 인도 본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공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라이더들을 유혹하고 있는 로얄엔필드 코리아는 런칭과 동시에 하남시에 대규모 쇼룸까지 갖춘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로얄엔필드의 꽃을 피워낼 전초기지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에 위치한 로얄엔필드 코리아 플래그십 스토어를 방문하면 처음에는 자칫 “왜 이런 곳에 매장을 열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라이더라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입지다. 수도권 라이더들의 집결지인 양평 만남의 광장을 향해 달리다 보면 (만약 한강 이남에서 출발했다면) 대부분 이 근처를 지나치기 때문.
컨테이너를 연상시키는 패턴의 벽면에 우뚝 솟은 삼각형 지붕의 외관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잡아끌 정도로 단정하고 심플하다. 그 위로 당당히 새겨진 로얄엔필드 CI와 금색 띠는 확고한 클래식 헤리티지를 느끼게 한다. 이 디자인은 전 세계 로얄엔필드 공통 적용 사항이라고.
2층 건물에 정비실과 쇼룸이 분리된 플래그십 스토어는 제법 규모가 크다. 소수의 클래식 모터사이클 팬층을 보유한 국내 시장 상황을 생각하면 조금 의아한 부분. 여기에 로얄엔필드코리아 강기향 점장은 “한국 모터사이클 시장에 로얄엔필드라는 꽃을 피워내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싶다”는 말로 그 의미를 대신했다.
‘가성비’, 치명적 단점에서 최강의 장점으로
영국에서 시작해 이제는 인도가 본향이 된 로얄엔필드는 올해로 118주년을 맞이했다. 역사는 길지만, 지난 1962년 인도에 생산공장이 설립된 이후로 이들은 50년 내내 동일한 설계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왔다. 디자인 감성과 달리 현대 라이더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기계적인 완성도는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반전의 시작은 지난 2013년 로얄엔필드가 인도 첸나이에 생산공장을 새로 설립하면서부터다. 첸나이 공장의 신형 설비로 제품의 퀄리티가 대폭 높아졌고, 인도 생산의 저렴한 단가라는 메리트는 그대로 유지했다. 그전까지 연간 20~30만 대 수준의 물량을 생산하던 로얄엔필드는 현재 연간 90만 대에 육박하는 생산량을 소화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그런데 국내 사정은 달랐다. 인도 현지 가격은 채 4백만 원이 되지 않았지만, 국내에만 들어오면 1천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모터사이클이 됐다. 물론 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소규모 수입에 의지해 억지로 만들어진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현실성 있는 판매가 덕분에 로얄엔필드는 현재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의 돌풍의 핵이 됐다.
하지만 이번 로얄엔필드 코리아는 인도 본사와 정식으로 파트너십 계약을 맺으면서 발걸음을 뗐다. 동시에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쳐, 현재 가장 저렴한 히말라얀 모델의 경우 495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게 됐다. 가장 비싼 클래식 500 크롬 모델도 620만 원에 불과할 정도로 현실성 있는 판매가 덕분에 로얄엔필드는 현재 국내 모터사이클 시장의 돌풍의 핵이 됐다. 업그레이드 목적으로, 세컨드 용도로, 또 데일리와 패션 바이크로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팔방미인이 된 것이다.
쇼룸을 가득 채운 클래식의 미학
지상의 정비실을 지나 2층에 위치한 쇼룸에 들어서면 온통 클래식한 풍경이 라이더들을 맞이한다. 단지 로얄엔필드 모터사이클을 몇 대 늘어놨다고 만들어진 분위기는 아니다. 빈티지한 조명 구성에서부터 천장 디자인, 야전 침대를 연상시키는 소파의 사소한 디테일까지 인테리어와 소품들은 온몸으로 클래식의 미학을 설명하고 있다.
쇼룸 한쪽에는 브랜드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시대별로 로얄엔필드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담긴 액자가 시간순으로 가지런히 배치돼있고, 그 옆으로는 분해된 모터사이클 파츠가 벽면을 빼곡히 채운다. 이 파츠들은 당장 떼어다가 장착해도 사용 가능한 실제 부품으로,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뼈처럼 로얄엔필드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전시해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모터사이클과 함께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건 바로 로얄엔필드 자체 어패럴이다. 물론 라이더 하면 자동으로 떠올릴만한 가죽재킷, 헬멧, 부츠 같은 아이템이 가장 눈에 띄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카테고리가 상당히 넓다. 데일리 캐주얼로 착용할 수 있는 모자, 티셔츠는 물론이고 지갑, 반지, 벨트, 가방 같은 EDC 아이템도 구비하고 있다. 특히 반지는 가죽 소재의 제품도 있어 클래식한 이미지를 완성하는 키포인트 아이템으로도 눈길을 끈다.
어패럴들의 가성비 또한 모터사이클만큼 우수하다.
사실 이 어패럴들의 가성비 또한 모터사이클만큼 우수하다. 할리데이비슨 어패럴의 경우, 가죽재킷이 최소 70~80만 원 대부터 시작해서 프리미엄 라인은 100만 원 대 중반에 육박한다. 반면 로얄엔필드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30만 원 대부터 시작하는 가죽 재킷의 가격표를 발견할 수 있다. 가죽의 질감이나 소재도 크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격보다 중요한 건 클래식 헤리티지
다행히 분위기가 좋다. 1차 수입 물량이 대부분 동났다. 플래그십 스토어 쇼룸에 디스플레이된 모터사이클도 모두 ‘계약 완료’ 태그가 붙어있을 정도다. 하지만 가격만을 보고 섣불리 접근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강기향 점장은 당부의 조언을 남겼다.
“가격보다도 로얄엔필드라는 브랜드의 헤리티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어쨌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모터사이클 제조사 중 하나잖아요. 물론 가격으로 접근하면 ‘저렴한 바이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는 퓨어 모터사이클이라는 슬로건으로 클래식, 빈티지, 정통성을 통해 모터사이클 본연의 즐거움을 선사해드리고 싶어요. 가격은 그다음 문제죠. 가격은 어디까지나 매력적인 구매 욕구를 어필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에 불과하니까요.”
가격보다도 로얄엔필드라는 브랜드의 헤리티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일단 첫 발걸음은 잘 뗐다. 남은 건 ‘앞으로 로얄엔필드를 구입한 라이더들에게 얼마만큼의 만족감을 선사하느냐’다. 다행히 로얄엔필드 측은 2년 2만km의 워런티를 강조하며 “하남시에 위치한 본사에 언제라도 들러서 부담 없이 정비도 받고, 쇼룸에 지속해서 업데이트될 제품들을 구경하며 편안히 즐기다 가도 된다”며 라이더들을 독려했다. 단지 브랜드의 매장이 아닌, 클래식 모터사이클을 사랑하는 라이더들이 애정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희망하면서.
과연 로얄엔필드는 국내에서 클래식 모터사이클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그들의 말마따나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주소 경기 하남시 감초로 357
문의 070-7405-8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