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이 서늘한 공포영화로 한여름 무더위를 쫓아내자’ 따위의 뻔뻔한 클리셰를 들먹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맘때면 으레 이런 류의 영화들이 쏟아지는 통에, 이제는 딱히 명목이 없어도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여름 시즌에 공포물 하나 보고 지나가지 않으면 섭섭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신작과 트렌드를 따라가기 버겁다면 지금 소개하는 작품들처럼 고전에 눈길을 돌려봐도 좋겠다. 물론 지금의 눈으로 다시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겠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정말로 무서웠다.
사탄의 인형 (Child’s Play, 1988)
지금 보면 ‘건장한 성인이 왜 저런 낡아빠진 단순한 인형 하나 처리하지 못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먼저 남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에는 이 영화 덕분에 인형 트라우마까지 생길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공포 영화의 고전이다.
후속작으로 갈수록 공포물에 은근한 유머 코드를 섞어내곤 했는데, 이 시리즈의 1편은 순수하게 호러의 관점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더 흉측하게 변하는 처키의 얼굴을 보는 것 또한 이 작품의 백미. 다만 처키의 원본인 ‘Good Guy’ 인형 자체가 애초부터 너무 그로테스크하게 생겨먹었다는 점은 두고두고 의문으로 남는다. 러닝타임 87분.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현대적인 개념에서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좀비물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역사적인 작품. 좀비물의 창조자라고도 할 수 있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제작 환경이 흑백이었던 탓에, 이같은 비주얼에서 오는 컬트적인 영상미까지 더해져 좀비 영화의 시초이자 위대한 고전으로 역사에 박제됐다.
지금이야 대부분 미디어에서의 좀비는 우사인 볼트 뺨칠 정도로 미친듯이 달리는 게 표준 설정이 됐지만, 원래 오리지널 좀비는 이처럼 느릿느릿하게 걸어와 끈끈한 늪처럼 공포를 선사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이 작품을 보지 않고 좀비물을 논한다는 건 어불성설. 사료적인 측면에서라도 한 번 쯤은 꼭 보길 권한다. 러닝타임 96분.
오멘(The Omen, 1976)
엑소시스트와 함께 오컬트 장르의 대중화를 이끈 오멘은 공포스럽거나 잔인한 장면 하나 없이도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하는 고전 명작이다. 영화 속 장치로 도입한 사탄과 악마의 숫자 ‘666’이 이 영화를 통해 유명해지기도 하였고, 영화 촬영 중 일어난 갖가지 미스터리한 사고들 때문에 ‘오멘의 저주’라는 일화도 유명해졌다.
이야기 구도와 장치는 고전적인 서양 오컬트 영화의 그것을 따른다. ‘적 그리스도’로 지목되는 어린아이는 가장 순수한 악의 알레고리로 등장하며, 그의 양아버지는 악마를 처단해야 한다는 기독교적 메시지가 곳곳에서 반복됨에도 의심을 거듭하며 파멸의 길로 접어든다. 기괴한 신시사이저 배경음악도 영화의 음산하고 기분 나쁜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준다. 러닝타임 111분.
나이트메어(A Nightmare On Elm Street, 1984)
마치 지옥 불에 덴 듯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 이상하리만큼 이질감이 드는 중절모와 초록색과 빨간색 줄무늬 셔츠, 손가락 끝에 칼이 달린 장갑. 나이트메어는 몰라도 영화 마스코트 프레디 쿠루거의 끔찍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13일의 금요일의 빌런 제이슨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살인마 캐릭터이며,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여 총 9편의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어린아이들의 꿈속에 나타나 그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프레디와 그에 맞서는 아이들의 고군분투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인간의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인 잠과 그 결과로서의 죽음 그리고 그 매개체로서의 몽마라는 설정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무기력함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공포를 극한까지 몰고 간다. 러닝타임 91분.
매드니스 (In the Mouth of Madness, 1995)
‘오멘 3’, ‘이벤트 호라이즌’, ‘쥬라기 공원’ 등 동심을 헤집고 공포심 유발에 한몫 단단히 한 배우 샘 닐이 이 영화에서도 활약 중이다. 오랜 시간 기억되는 잔향 짙은 호러물은 본디 순간적인 놀램보다 영화에 깔린 두려운 분위기로 관객을 서서히 침몰시키는 작품인 법인데, 이 영화가 딱 그렇다.
실종된 소설가 케인을 찾기 위해, 마치 그가 쓴 그로테스크한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사립 탐정 트랜드.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또한 현실과 환상 그 언저리에서 함께 광기에 휩싸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러닝타임 95분.
쿠조 (Cujo,1983)
스티븐 킹 원작 소설 기반 영화 ‘쿠조’는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는 몇 가지 포인트를 포착해 영상에 녹여냈다. 설핏 스토리를 들으면 광견병에 걸린 강아지가 한 가족을 공격하는 내용이 뭐 회자할 내용인가 싶겠다.
허나 인간이 아니기에 소통할 수 없는 무력함, 친근하다고 느꼈던 존재가 주는 공포, 마치 ‘악마를 보았다’ 도입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자동차라는 협소한 공간 등이 하나로 버무려져 밀도 높은 긴장감을 난사한다. 세상에 다시 없을 세인트버나드 메소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 러닝타임 91분.
샤이닝 (The Shining, 1980)
이 영화는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산산이 조각냈다. 으레 ‘공포스러운 것’은 시각적으로 어둡게 처리되고는 하지만 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기존 답습을 허물고 시종일관 밝은 톤을 이어나가며 공포를 선명하게 묘사한다.
특히 <샤이닝>은 영화적 언어로도 높이 평가되는데 그 중심에는 대칭 구도가 놓여있다. 호텔 공간, 쌍둥이, 죽은 자매의 위치 등 완벽한 대칭 구도가 안정감을 주기보다 오히려 관객을 소름 끼치게 만든 것. 거기에 늘어지는 듯한 불쾌한 사운드, 섬뜩한 잭 니콜슨의 연기가 더해져 기괴함을 넘어 광기마저 드러낸다. 넷플릭스에서도 만나볼 수 있으며, 러닝타임 144분.